질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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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질지왕은 452년에 왕후사를 건립하고 밭을 기증하여 수로왕과 허왕옥의 명복을 빌었다. 463년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고, 481년 신라를 지원하여 고구려, 말갈 연합군을 격퇴했다. 남제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보국장군 등의 관작을 받았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미사흔의 딸 통리를 왕비로 맞았으나 아들이 없어, 조카 하희를 후궁으로 삼았고, 이후 선통을 태자로 삼았으나 선통과 통리가 죽자 김상의 딸 방원을 왕후로 삼았다. 질지왕의 아들로는 겸지왕이 있다.

질지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글질지왕 또는 금질왕
한자銍知王 또는 金銍王
로마자 표기Jilji wang 또는 Geumjil wang
영어Jilji wang or Geumjil wang
왕조
왕조금관가야
생애
즉위451년
퇴위492년
사망일492년 10월 4일
부왕취희왕
모후인덕
배우자방원
이름
김 질지
존호 및 시호
시호장왕
묘호미상
기타
능묘미상
자녀겸지왕(鉗知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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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질지왕은 452년부터 491년까지 재위한 금관가야의 제7대 왕이다. 수로왕과 허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후사를 창건하고,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는 등 불교 진흥과 국방 강화에 힘썼다. 남제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관작을 받기도 하였다.

2.1. 불교 진흥과 국방 강화

452년 시조 수로왕과 허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허황후가 처음 만난 자리에 왕후사(王后寺)란 절을 짓고 밭 10결을 바쳤다. 왕후사는 김해시 보배산에 있었던 절로 임강사 또는 태장사라고도 했는데 터만 남아 있다.

463년 왜구가 황산하(黃山河)를 건너 침략해오자 병사를 보내 방어했다. 481년 고구려말갈신라를 공격하여 미질부성(彌秩夫城)까지 이르자, 신라왕이 원병을 요청해와 백제와 같이 3국이 연합하여 추격하여 니하(泥河)까지 진격해 천여 명을 죽였다. 487년 흰 꿩을 사로잡아 신라에 보냈다.

남제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는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의 관작을 하사받은 하지왕(荷知王)과 같은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2.2. 남제와의 외교 관계

452년 시조 수로왕과 허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허황후가 처음 만난 자리에 왕후사(王后寺)란 절을 짓고 밭 10결을 바쳤다. 남제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의 관작을 하사받은 하지왕(荷知王)과 같은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2.3. 《화랑세기》에 기록된 왕위 계승 관련 내용

화랑세기》에 의하면 질지왕은 미사흔의 딸 통리(通里)를 왕후로 삼았으나 아들이 없었다. 이에 통리의 조카인 백흔(白欣)의 딸 하희(河喜)를 후궁으로 삼았으나, 하희 역시 아들을 낳지 못했다. 얼마 후 통리가 아들 선통(善通)을 낳자, 질지왕은 크게 기뻐하며 선통을 태자로 삼았다.

선통은 말 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하여 들에서 사냥을 하던 중 비를 만나 사간(沙干) 김상(金相)의 집에 들어갔다. 김상은 좌지왕의 외손이었다. 김상의 딸 방원은 교태에 능하고 아름다웠는데, 선통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었고, 1년 남짓하여 딸을 낳았다. 통리는 이 소식을 듣고 딸을 거두어 태자비로 삼았다. 얼마 후 통리와 선통이 모두 죽자, 질지왕은 방원을 왕후로 삼았다. 방원은 질지왕과 আগে 밀통을 하고 있었으며, 왕후가 된 후 아들 겸지(鉗知)를 낳았다.

3. 가계

* 부왕: 취희왕
* 모후: 인덕부인 - 각간 진사(進思)의 딸
* 왕비: 방원부인 - 사간 김상(金相)의 딸
* 아들: 겸지왕
* 며느리: 숙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