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일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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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수일은 평안북도 삭주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빈곤한 생활을 겪었으나, 북한 정권 수립 후 김일성을 지지하게 되었다. 1955년 조선인민군 해군에 입대하여 복무했으며, 1965년 공작원으로 남파되어 체포된 후 전향을 거부하여 약 34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1999년 출소 후 공공근로 등으로 모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며,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북한으로 송환되어 조국통일상을 받고 시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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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일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로, 일제강점기 신의주고등보통학교와 게이오기주쿠고등부를 졸업하고 광복 후 윤치영, 이승만 밑에서 비서로 활동했으며,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교수로 활동했고, 김대중을 지지했으나 DJP 연합에 실망하여 지지를 철회했으며, 저서로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이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 신광수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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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체포되어 31년간 수감 생활을 한 비전향 장기수 리두균은 출소 후 탕제원을 운영하다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조국통일상을 수상하고 《로동신문》에 글을 발표하며 조선로동당과 김정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 - 문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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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 참전 후 루마니아에서 유학했으며,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대남 공작 활동을 하다 일본인 납치 사건에 연루되어 대한민국에서 체포, 복역 후 북송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그의 송환을 요구하고 북한은 거부하고 있다.
최수일 (193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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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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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6년 |
사망 | 2013년 12월 21일 (향년 77세) |
직업 | 정치인 군인 |
정치 경력 | |
정당 | 민주정의당 |
국회의원 | 제11대, 제12대 |
주요 경력 |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 교통부 차관 |
학력 | |
학교 | 육군사관학교 졸업 국방대학원 졸업 |
상훈 | |
훈장 | 보국훈장 |
2. 생애
최수일은 평안북도 삭주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1] 1955년 조선인민군 해군에 입대하여 황해에서 복무했으며, 1980년에는 김일성이 직접 그가 복무하던 경비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1965년 공작원으로 남파되었으나 체포되어 약 34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1] 출소 후 대한민국에서 공공근로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다.[2]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조국통일상을 받고,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으로 활동했다.[3]
2.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성장과 군 복무
평안북도 삭주군 출신이다.[1] 어린 시절 일제강점기에 끼니를 잇기 어려울 만큼 힘겹게 생활했으나,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후 경제 발전을 체험하면서 김일성의 정치를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1955년 9월 조선인민군 해군에 입대하였다. 황해의 경비정에서 복무하면서 조선로동당에 대한 충실성을 인정받아 직책이 점차 올라갔다. 1980년에는 김일성이 현지지도를 통해 최수일이 복무하던 경비정을 찾아와 직접 만난 일도 있었다.
2. 2. 남파와 수감 생활
1965년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 최수일은 대한민국에서 체포된 후 전향을 거부하여 비전향 장기수가 되었다. 1999년 3월 출소할 때까지 총 수감 기간은 약 34년이다.[1]최수일은 고향이 북측이라 대한민국에 지인이 없었다. 출소 당시 60대로 다른 비전향 장기수에 비해 젊은 나이였기에, 공공근로 사업 등에 참여해 모은 돈으로 대학생, 독거노인, 생활보호 대상자들을 돕기도 했다.[2]
2. 3. 출소 후 대한민국에서의 삶
최수일은 고향이 북측이라 대한민국에 지인이 없었다. 출소 당시 60대로 다른 비전향 장기수에 비해 젊은 나이였기에, 공공근로 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모은 돈으로 대학생, 독거노인, 생활보호 대상자들을 도와주기도 했다.[2]2.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송환과 이후의 삶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고 조국통일상을 받았다.[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아내가 생존해 있어 다시 만났으며,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으로 활동하였다.[3] 조선로동당 창건 59주년을 축하하는 시 〈당비를 바치며〉를 발표하기도 했다.[4]참조
[1]
뉴스
통일애국투사들이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안았다
조선중앙통신
2006-05-29
[2]
뉴스
뒷모습이 아름다운 장기수들
http://www.hani.co.k[...]
한겨레
2008-09-17
[3]
뉴스
북송된 ‘비전향장기수’들… 어떻게 살고있을까
http://www.hani.co.k[...]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8-09-17
[4]
뉴스
북송 장기수, 黨창건 59주년 축하시 발표
http://www.chosun.co[...]
조선일보 (연합뉴스 인용)
200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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