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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 공동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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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15 남북 공동선언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 데 큰 의의를 두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의 공통성 인정, 이산가족 문제 해결, 경제 협력 및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등이 담겼다. 선언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정권 교체에 따른 대북 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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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 공동선언
기본 정보
2000년 6월 15일 남북 공동 선언
대한민국 파주시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 전시된 복제품
다른 이름북한 이름: 북남 공동 선언
날짜2000년 6월 15일
장소평양
서명자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목표한반도 평화와 통일
체결2000년 6월 15일
주요 내용
핵심 합의 사항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이 된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0년 8월 15일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상의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배경
역사적 배경분단 이후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
영향
긍정적 영향남북 교류 활성화 및 6자 회담 등 국제 협력 강화
같이 보기
관련 문서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 기본합의서
10·4 남북 정상 선언
판문점 선언
한반도 평화 과정
관련 정보한국 전쟁 휴전 협정 (1953년 7월 27일)
7·4 남북 공동 성명 (1972년 7월 4일)
남북 유엔 동시 가입 (1991년 8월 8일)
남북 기본합의서 (1991년 12월 13일)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2000년 6월 13일-15일)
6·15 남북 공동 선언 (2000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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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북미 정상 회담 (2019년 6월 30일)

2. 배경

6.25 전쟁 이후 남북 간에는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없었으며, 냉전 시대의 긴장과 대립이 지속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이는 북한의 호응을 얻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졌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 등 기존의 남북 간 합의는 있었으나, 실질적인 이행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3.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주요 내용

대한민국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6·15 남북 공동선언은 전문과 5개 항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1]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1]

3. 1.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갖고 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올해 8·15 광복절에 즈음하여 이산가족·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1]

2000년 6월 15일

(서명)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

(서명)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3. 2. 본문

〈6·15 남북 공동선언〉은 대한민국대통령 김대중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사이의 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선언문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합의안 두 번째 안에서 보듯 남측의 연합 단계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공통점이 있다며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남한 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 중 1단계인 ‘남북연합’은 남과 북이 독립국가로서 협력기구를 제도화하는 것이 골자다. 남북연합 정상회의, 남북연합회의(국회), 남북연합 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를 넓혀 가는 단계를 말하며, 국방 및 외교권은 남북이 각각 소유하는 ‘1민족 2국가 2체제 2정부’를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북조선은 ‘느슨한 연방제’를 주창하며 ‘완전한 고려연방제’달성 앞서서 잠정적으로 지역 정부에 국방과 외교권 등까지 부여하는 것으로 북한의 연방제는 ‘1민족 2체제 2정부’는 같으나 ‘1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이 안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북연합과 일정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온 민족의 평화적 조국 통일 염원을 받들어 대한민국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방위원회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을 가졌다.

남과 북의 지도자는 이번 상봉과 회담이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데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남과 북은 나라의 주인인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통일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

# 통일을 위하여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러한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한다.

# 남과 북은 8·15 광복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및 친척들의 방문을 추진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주의적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하기로 한다.

#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한다.

# 남과 북은 이상의 합의 사항들을 조속히 이행하기 위하여 가까운 시일 안에 당국 간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서울에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한다.

(서명)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

(서명)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족대헌장의 폭 61.5미터는 6·15 남북 공동선언을 참조했다.


2000년 6월 15일

다음은 재일 한국인 단체에 의한 일본어 번역이다.

'''남북 공동선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갖고, 수뇌회담을 가졌다.

남북 수뇌는 분단의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올해 8·15를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주의적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당국 간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대중 김정일[1]

'''남북 공동선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열망하는 온 민족 동포의 숭고한 뜻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수뇌 회담을 가졌다.

남북 수뇌는 분단의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만남과 회담이, 서로의 이해를 깊게 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고,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만으로,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완만한 연방제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올해 8월 15일에 맞춰, 헤어진 가족과 친척의 방문단을 교환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해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신속히 실행에 옮기기 위해 조기에 당국자 간의 대화를 개최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대중 김정일[2]

북한의 국영 출판사인 외국문종합출판사에 의한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6·15 남북 공동선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민족의 숭고한 의사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가지고 최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남북 양 정상은 분단 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상호 이해를 깊게 하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데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하였다.

# 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과 남측의 연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 북과 남은 올해 8·15를 계기로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단을 교환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주의적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하기로 하였다.

# 북과 남은 경제 협력으로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며, 사회, 문화, 스포츠, 보건, 환경 등 각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상호 간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기로 하였다.

# 북과 남은 이상의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간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일 김대중[3]

4.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의의와 한계

6.15 남북 공동 선언은 대한민국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남북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하여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장기수 문제 해결 등 인도적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그리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 활성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다지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 불이행, 대한민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대북 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공동 선언의 이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4. 1. 의의

6.15 남북 공동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김정일 위원장의 호응으로 성사된, 6.25 전쟁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이 선언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함께 한반도 남북 대화의 기본적인 합의 문서로 평가받는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조국 평화 통일 원칙을 재확인하고, 한국 측의 '연합제'와 북한 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보아, 그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선언 이후, 이산가족 재회, 경제 협력 및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촉진하기로 합의했다. 2000년 8월에는 이산가족 재회가 실제로 성사되었고,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업지구 사업 등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이 추진되었다.

4. 2. 한계

6.15 남북 공동 선언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남북 관계는 경색되었고, 공동 선언의 이행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김정은 통치하의 북한에서 이루어진 2016년 2월의 미사일 발사 실험은 개성공업지구 가동 중단으로 이어졌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 답방 약속은 2011년 김정일 사망에 이르기까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이는 남북 관계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대북 정책의 기조가 변화하면서,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정신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5.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남북 관계

6·15 남북 공동 선언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함께 한반도 남북 대화의 기본적인 합의 문서이다.

이 선언에서 합의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조국 평화 통일 원칙을 재확인하고, 통일 방안으로 한국 측의 '연합제'와 북한 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점이 있다고 보아 그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

이후 남북 간의 주요 현안인 이산가족 재회, 경제 협력 및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를 촉진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졌다.

김정일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 방문은 2011년 김정일 사망에 이르기까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5. 1. 긍정적 변화

2000년 8월 15일, 6·15 남북 공동선언의 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금강산 관광 사업, 개성공업지구 사업 등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이 추진되었다. 체육, 문화,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간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5. 2. 부정적 변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2016년 2월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자, 개성공업지구 가동이 중단되고 한국 측 인원도 철수했다. 2007년을 마지막으로 이산가족 재회 사업이 중단되었으며, 2016년과 2019년에는 금강산에서의 재회 사업을 위한 한국 측 시설도 철수되었다.

6. 각계 반응

재일 한국인 단체들은 대체로 6.15 남북 공동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일본어 번역문을 제공하고 있다.[1][2]

7. 결론 및 전망

6·15 남북 공동선언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함께 한반도 남북 대화의 기본 합의 문서이다. 본 선언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조국 평화 통일 원칙을 재확인하고, 통일 방안으로 한국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점이 있다고 보아 그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

선언 이후 이산가족 재회, 경제 협력 및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교류가 촉진되었고, 2000년 8월 이산가족 재회가 성사,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업지구 사업 등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김정일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 방문은 2011년 김정일 사망 때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김정은 집권 하의 북한에서 2016년 2월 미사일 발사 실험 이후 개성공업지구 가동 중단 및 한국 인원 철수, 2007년 이후 이산가족 재회 사업 중단, 2016년과 2019년 금강산 한국 측 시설 철수 등 남북 관계는 경색 국면을 맞았다.

참조

[1] 웹사이트 「南北共同宣言」(全文) http://www.korea-htr[...] 在日韓国民主統一連合 2023-02-28
[2] 웹사이트 「南北共同宣言」(全文) https://www.mindan.o[...] 民団新聞 2023-02-28
[3] 웹사이트 6・15北南共同宣言 http://www.naenara.c[...]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外国文出版社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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