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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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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치 레슬링은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한 프로레슬링의 한 스타일이다. 랭커셔 레슬링의 영향을 받아 "캐치 애즈 캐치 캔"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알려졌으며, 서브미션을 통해 승리하는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캐치 레슬링은 인도 페흘와니 레슬링의 영향을 받았으며, 1920년대에는 프로레슬링의 형태로 변화했다. 캐치 레슬링은 1960년대부터 일본 프로레슬링에 영향을 미쳤으며, 격투기 선수들에게도 주요 기술로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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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레슬링
기본 정보
다른 이름캐치-애즈-캐치-캔 (CACC)
랭커셔 레슬링
루스 홀드
후킹
러프 앤드 텀블
페어 파이트
슛 레슬링
종류레슬링, 그래플링
국가영국
명칭캐치 레슬러
캐처
후커
슈터
피스톨
기원영어 레슬링 (주로 랭커셔 스타일, 컴벌랜드, 웨스트모얼랜드, 코니시, 데번셔 레슬링의 영향)
인도 팔레바니
아일랜드 칼라 앤드 엘보, 그리스 판크라티온, 미국 러프 앤드 텀블
유명 수련자(참고: 주목할 만한 수련자)
파생 무술프리스타일 레슬링
프로레슬링
슛 레슬링
브라질 유술
폴크스타일 레슬링
루타 리브레
삼보
종합격투기 (MMA)
올림픽예 (아마추어 프리스타일 레슬링으로 1904년부터)
역사
미국으로의 전파19세기 후반, 캐치 레슬링은 미국으로 전파되어 프로 레슬링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캐치 레슬러들이 프로 레슬링 무대에서 활약했으며, 캐치 레슬링 기술은 프로 레슬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20세기 이후20세기 이후, 캐치 레슬링은 아마추어 레슬링과 프로 레슬링 모두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리스타일 레슬링은 캐치 레슬링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많은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캐치 레슬링 기술을 훈련하고 있다. 또한, 캐치 레슬링은 루타 리브레, 삼보, 브라질 유술 등 다양한 무술에 영향을 주었다.
기술
기술의 특징다양한 잡기 및 던지기 기술
서브미션 기술 (관절 꺾기, 조르기)
핀 (pin) 기술
주요 기술더블 레그 테이크다운
힙 토스
암바
길로틴 초크
앵클 락
문화적 영향
프로 레슬링캐치 레슬링은 프로 레슬링의 기술적 토대를 형성했으며, 많은 프로 레슬러들이 캐치 레슬링 기술을 사용한다.
종합격투기캐치 레슬링 기술은 종합격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많은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캐치 레슬링을 훈련한다.
주목할 만한 수련자
주요 인물조르주 드 레리아
프랭크 고치
칼 고치
빌 로빈슨
요아킴 한센
조시 바넷
사쿠라바 카즈시
미노와 이쿠히사
스즈키 미노루
히카르도 아로나
오카미 유신
쿠니요시 히로시
후쿠다 리키
댄 핸더슨
랜디 커투어
다니엘 브라이언
잭 세이버 주니어
마크 플레밍
네이트 디아즈
코너 맥그리거
같이 보기
관련 항목프리스타일 레슬링
프로레슬링
슛 레슬링
브라질 유술
루타 리브레
삼보
종합격투기

2. 역사

19세기 후반, 프로레슬링은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9] 특히 영국의 랭커셔 레슬링은 캐치 레슬링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7] 미국에서는 "캐치 애즈 캐치 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9] "캐치 애즈 캐치 캔"은 엄격한 규칙 없이 어떤 기술이든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주로 서브미션을 통해 승리했다. 1840년까지 미국에서는 그들의 거친 난투 싸움을 묘사하기 위해 "캐치 애즈 캐치 캔"[9]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엄격한 규칙이 없고 승리를 위해 어떤 전술이든 사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개척지에서 발견되었다.

19세기 후반, 랭커셔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에 의해 랭커셔 스타일이 미국에 전파되었다. 1880년대에는 이미 '아메리칸 CACC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존재했다. 이 시기의 저명한 레슬러로는 톰 코너스와 조 액턴이 있다. 특히 코너스는 '컬러 앤 엘보 스타일' 선수였던 마틴 번즈에게 랭커셔 스타일 기술을 전수하여 20세기 프로레슬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마틴 번즈의 서신 강좌에서 보여주는 해머록(hammerlock), 1913년


번즈는 현역 은퇴 후 코치로서 많은 레슬러들을 육성했는데, 그중에는 프랭크 고치와 같은 강호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J. 와놉과 같은 프로모터들은 컴벌랜드 웨스트모어랜드, 콘월 및 데번과 랭커셔를 통합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7] "캐치 애즈 캐치 캔" 원칙에 따른 레슬링은 많은 관중들에게 새로운 것이었지만, 바닥에서의 몸싸움과 다리 잡기, 팔 비틀기, 손가락 탈구 및 랭커셔 레슬링의 특징인 기타 공격 및 방어 항목과 같은 여러 가지 반감을 일으키는 전술을 포함하는 느슨한 홀드 시스템에 비해 큰 발전으로 일반적으로 승인되었다.[7]

1904년 하계 올림픽에서의 캐치 (또는 프리스타일 소급 적용) 레슬링


캐치 레슬링은 인도의 페흘와니 레슬링에서 영향을 받았다.[10][11] 톰 캐논은 1892년 영국령 인도를 방문했다가 카림 벅쉬에게 패배했는데, 이는 런던에서의 경쟁을 위해 그레이트 가마와 이맘 박쉬 파할완과 같은 인도 선수들을 초청하는 계기가 되었다.[11] 프랭크 고치, 조지 해켄슈미트 등은 이 시기 대표적인 프로레슬링 스타들이다.

1920년대까지 대부분의 캐치 레슬링 경기는 미리 결정된 프로레슬링이 되기 시작했다. 골드 더스트 트리오는 현대적인 형태의 안무된 액션이 가득한 레슬링을 "슬램뱅 웨스턴 스타일 레슬링"이라고 부르며 도입하고, 이 트리오가 전국적으로 대규모 쇼를 홍보하고 장기 계약에 따라 레슬러를 유지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프로레슬링을 유사 경쟁 전시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12]

2. 1. 초기 역사

19세기 후반, 프로레슬링은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9] 특히 영국의 랭커셔 레슬링은 캐치 레슬링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7] 미국에서는 "캐치 애즈 캐치 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9] "캐치 애즈 캐치 캔"은 엄격한 규칙 없이 어떤 기술이든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주로 서브미션을 통해 승리했다. 1840년까지 미국에서는 그들의 거친 난투 싸움을 묘사하기 위해 "캐치 애즈 캐치 캔"[9]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엄격한 규칙이 없고 승리를 위해 어떤 전술이든 사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개척지에서 발견되었다.

19세기 후반, 랭커셔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에 의해 랭커셔 스타일이 미국에 전파되었다. 1880년대에는 이미 '아메리칸 CACC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존재했다. 이 시기의 저명한 레슬러로는 톰 코너스와 조 액턴이 있다. 특히 코너스는 '컬러 앤 엘보 스타일'[30] 선수였던 마틴 번즈에게 랭커셔 스타일 기술을 전수하여 20세기 프로레슬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번즈는 현역 은퇴 후 코치로서 많은 레슬러들을 육성했는데, 그중에는 프랭크 고치와 같은 강호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J. 와놉과 같은 프로모터들은 컴벌랜드 웨스트모어랜드, 콘월 및 데번과 랭커셔를 통합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7] "캐치 애즈 캐치 캔" 원칙에 따른 레슬링은 많은 관중들에게 새로운 것이었지만, 바닥에서의 몸싸움과 다리 잡기, 팔 비틀기, 손가락 탈구 및 랭커셔 레슬링의 특징인 기타 공격 및 방어 항목과 같은 여러 가지 반감을 일으키는 전술을 포함하는 느슨한 홀드 시스템에 비해 큰 발전으로 일반적으로 승인되었다.[7]

캐치 레슬링은 인도의 페흘와니 레슬링에서 영향을 받았다.[10][11] 톰 캐논은 1892년 영국령 인도를 방문했다가 카림 벅쉬에게 패배했는데, 이는 런던에서의 경쟁을 위해 그레이트 가마와 이맘 박쉬 파할완과 같은 인도 선수들을 초청하는 계기가 되었다.[11] 프랭크 고치, 조지 해켄슈미트 등은 이 시기 대표적인 프로레슬링 스타들이다.

1920년대까지 대부분의 캐치 레슬링 경기는 미리 결정된 프로레슬링이 되기 시작했다. 골드 더스트 트리오는 현대적인 형태의 안무된 액션이 가득한 레슬링을 "슬램뱅 웨스턴 스타일 레슬링"이라고 부르며 도입하고, 이 트리오가 전국적으로 대규모 쇼를 홍보하고 장기 계약에 따라 레슬러를 유지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프로레슬링을 유사 경쟁 전시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12]

2. 2. 한국 프로레슬링의 역사

한국 프로레슬링은 일본 프로레슬링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특히, 칼 갓치는 역도산 사후 일본 프로레슬링의 코치로 초빙되어 많은 선수들을 지도했다.[36] 갓치의 제자들은 CACC 기술을 바탕으로 UWF, 판크라스 등을 설립하며 활동을 이어갔다.[36] 빌 로빈슨 또한 국제 프로레슬링의 계약 선수로 일본에서 활동하며 CACC 기술을 전파했다.[36]

2. 3. 20세기 프로레슬링 붐

2. 4. 현대 프로레슬링

1914년 주목할 만한 시합은 각자 분야의 대표 선수들 간에 벌어졌다. 독일계 미국인 캐치 레슬러 애드 산텔(Ad Santel)은 캐치 레슬링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었고, 유도 5단이었던 이토 도쿠고로(Tokugoro Ito)는 자신을 유도 세계 챔피언이라고 주장했다. 산텔은 이토를 물리치고 자신을 유도 세계 챔피언이라고 선포했다. 가노 지고로(Jigoro Kano)의 고도칸(Kodokan)은 또 다른 도전자, 4단인 다이스케 사카이를 보냈지만, 산텔은 고도칸 유도(Kodokan Judo) 대표를 물리쳤다. 고도칸은 5단인 나가타 레이지로(Reijiro Nagata)와 같은 선수들을 보내 산텔을 막으려 했지만 산텔은 그를 TKO로 이겼다. 산텔은 5단인 쇼지 히코(Hikoo Shoji)와도 비겼다. 산텔이 1921년에 유도 세계 챔피언이라는 주장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프로레슬링(professional wrestling) 경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면서 도전 시합은 중단되었다.[20]

카를 고치(Karl Gotch)는 랭커셔(Lancashire) 위건(Wigan)에 있는 빌리 라일리(Billy Riley)의 "스네이크 핏(The Snake Pit)" 체육관에서 수련한 캐치 레슬링 선수였다. 고치는 1960년대부터 수년간 일본 프로레슬러들에게 캐치 레슬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안토니오 이노키(Antonio Inoki), 후지나미 다쓰미(Tatsumi Fujinami), 히로 마츠다(Hiro Matsuda), 키도 오사무(Osamu Kido) 등을 처음으로 훈련시켰고, 이후 사야마 사토루(Satoru Sayama)(타이거 마스크) , 마에다 아키라(Akira Maeda), 후지와라 요시아키(Yoshiaki Fujiwara) 등도 훈련시켰다. 1976년부터 이들 중 한 명인 이노키는 다른 종목의 챔피언들과 격투기 경기를 여러 차례 개최했는데, 여기에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와의 혼합 룰 경기인 무하마드 알리 vs. 안토니오 이노키 경기도 포함된다. 그의 경기에서는 슬리퍼 홀드, 크로스 암 브레이커, 시티드 암바, 인디언 데스락, 키락 등의 캐치 레슬링 기술이 선보였다.

고치의 제자들은 1984년 마에다 아키라(Akira Maeda), 사야마 사토루(Satoru Sayama), 후지와라 요시아키(Yoshiaki Fujiwara)를 최고의 레슬러로 하여 일본 유니버설 레슬링 연맹(Universal Wrestling Federation (Japan))을 결성했다. UWF 운동은 캐치 레슬러들이 주도했으며, 일본에서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 위건 출신의 빌리 로빈슨(Billy Robinson)은 그 후 MMA 베테랑 사쿠라바 카즈시(Kazushi Sakuraba)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루 테즈(Lou Thesz)는 MMA 베테랑 다무라 기요시(Kiyoshi Tamura)를 훈련시켰다. 캐치 레슬링은 일본의 격투기인 슈트 레슬링의 기반을 형성한다. 일본 프로레슬링과 팬크라시(Pancrase), 슈토(Shooto), 그리고 현재는 해체된 링스(RINGS)의 일본 선수 대다수는 캐치 레슬링과 관련이 있다. 랜디 쿠투어(Randy Couture), 사쿠라바 카즈시(Kazushi Sakuraba), 카말 샬로러스(Kamal Shalorus), 후나키 마사카쓰(Masakatsu Funaki), 고미 다카노리(Takanori Gomi), 아오키 신야(Shinya Aoki), 조쉬 바넷(Josh Barnett) 등 많은 격투기 선수들은 캐치 레슬링을 주요 서브미션 기술로 연구한다.[21]

"노 홀즈 바드(no holds barred)"라는 용어는 원래 19세기 후반 캐치 레슬링 토너먼트에서 유행했던 레슬링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어떤 레슬링 기술도 금지되지 않았다. 이 용어는 나중에 격투기 경기, 특히 궁극 투쟁 챔피언십(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의 등장과 함께 사용되었다.[22]

일본 프로레슬러들이 CACC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칼 갓치(カール・ゴッチ)였다. 갓치는 1950년대위건의 빌리 라일리 체육관에서 CACC를 배운 후, 1959년 몬트리올(モントリオール)에서 활동하다가 10월부터 오하이오주(オハイオ州)로 이동했다.[36] 갓치는 역도산(力道山) 사후인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일본 프로레슬링(日本プロレス)의 코치로 초빙되었다. 갓치는 이후에도 신일본 프로레슬링(新日本プロレス)에서 코치 활동을 계속하며 안토니오 이노키(アントニオ猪木), 기도 슈(木戸修), 후지나미 타츠미(藤波辰爾/藤波辰巳), 후지와라 요시아키(藤原喜明), 마에다 히로아키(前田日明), 니시무라 오사무(西村修), 후나키 마사카츠(船木誠勝), 스즈키 미노루(鈴木みのる), 이시카와 유키(石川雄規) 등을 지도했다. 갓치의 제자들은 특히 CACC 기술에 집착하여, 마에다1984년 UWF(UWF)를, 후나키스즈키1993년 판크라스(パンクラス)를 설립했고, 후지나미니시무라는 드라디션(ドラディション)을 주재하는 등 CACC 기술을 앞세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빌 로빈슨(ビル・ロビンソン)도 1969년부터 1970년까지 국제 프로레슬링(国際プロレス)의 계약 선수로 일본에 체류했으며, 1999년부터 다시 일본으로 이주하여 미야토 유코(宮戸優光)와 함께 고엔지(高円寺)의 레슬링 체육관인 U.W.F. 스네이크피트 재팬(U.W.F.スネークピットジャパン)의 코치로서 CACC 기술을 가르쳤다.

3. 주요 개념 및 스타일

19세기 랭커셔 스타일은 후대의 프로레슬링과 달리, 서브미션 홀드(관절기, 조르기 등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기술)가 사용되었으며, 핀폴 외에 서브미션에 의한 승리로 경기가 결정되기도 했다.[25]

1931년의 저서 『레슬링』에 따르면, 프로페셔널 랭커셔 스타일(정식 명칭은 "캐치·애즈·캐치·캔")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랐다. 조르기는 양자가 합의했을 때만 허용되었고, 팔로 상대의 목을 누르는 경우 다른 한쪽 팔은 상대의 머리나 목에 닿아서는 안 되었다. 핀폴 외에 한쪽 선수가 계속을 거부한 경우 상대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판정승도 있었다. 반칙은 할퀴는 것과 물어뜯는 것이었다. 프로페셔널 그레코로만 스타일(프렌치 스타일)도 하체 공방을 제외하고는 동일했다.[26]

「레슬링과 신체 문화에 관한 교훈」에서 프랭크 고치가 보여주는 토홀드. 프리스타일 레슬링에서 인정되는 앵클홀드와 달리 발목 관절을 공략하고 있다.


1898년 뉴욕 애슬레틱 클럽의 레슬링 코치였던 휴 레오나르드는 저서 "A hand-book of wrestling"에서 그레이프바인 락(코브라 트위스트), 사이드 찬슬리(헤드락), 크로스 바톡(허리던지기) 등의 기술을 소개했다.[27] 1912년 마틴 파머 번즈의 저서 「레슬링과 신체 문화에 관한 교훈」에는 각종 넬슨 홀드, 각종 레그 다이브, 찬슬리 홀드(프런트 넥 찬슬리), 하프 넬슨 앤드 크로치 홀드 픽업(바디슬램), 암 앤드 리스트 홀드(암 드래그), 암 앤드 레그 픽업(파이어맨즈 캐리) 등 아마추어 레슬링에서도 사용되는 기술 외에, 아마추어 레슬링에서는 금지된 토홀드나 암 홀드(스트레이트 암바), 해머록과 같은 관절기, 조르기 기술인 스트랭글 홀드(누드 초크) 등의 기술이 스트레칭과 덤벨을 이용한 체조와 함께 소개되었다.[28]

3. 1. 경기 규칙 및 용어

캐치 레슬링의 규칙은 초기 민속 스타일 및 그레코로만 스타일보다 개방적이었다.[15] 캐치 레슬링 선수는 서브미션이나 핀으로 경기를 이길 수 있으며, 대부분의 경기는 3판 2선승제로 최대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15] 조르기는 금지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후크와 눈찌르기 같은 반칙은 항상 금지되었다.[15]

핀은 주된 승리 방법이었으며, 어떤 경기는 서브미션 없이 진행되기도 했다.[4] 서브미션 기술은 통제를 위해 사용되었고, 상대를 핀으로 몰아넣기 위해 활용되었다.[16] 빌리 라일리의 제자인 토미 헤이스에 따르면, 서브미션으로 승리한 고전적인 캐치 레슬러는 없다고 한다.[16] 레그락과 넥 크랭크가 강조된 이유는, 이것들이 좋은 기반 없이는 마무리 기술로 사용하기 어렵지만, 움직임을 강제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16] "엉클!"을 외치는 것뿐만 아니라 뒤로 구르는 것도 패배를 의미했는데, 이는 핀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프랭크 고치는 발가락 걸기의 위협으로 상대를 뒤로 넘어뜨려 많은 경기를 승리했다.[17]

"후크"는 관절이나 사지를 늘이거나, 벌리거나, 비틀거나, 압박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캐치 레슬러는 "후커"라고 불렸으며, 숙련된 후커는 "슈터"라고 불렸다.[18][19]

캐치 레슬링 기술에는 암바, 리스트락, 키무라(유도에서는 역 우데가라미), 오모플라타(코일락), 헤드 시저스, 바디 시저스, 체스트락, 복근락, 복근 스트레치, 레그락, 니바, 앵클락, 힐훅, 토 홀드, 하프 넬슨, 풀 넬슨 등이 있다.

캐치 레슬링의 규칙은 장소에 따라 달랐다. 탄광이나 벌목장에서의 경기는 서브미션 승리를 선호했고, 전문적인 경기와 아마추어 대회는 핀을 선호했다. 아마추어 레슬링에 대한 캐치 레슬링의 영향은 잘 알려져 있으며, 댄 게이블은 아마추어 레슬링을 배우던 당시 그 스타일이 아이오와주 워털루 지역에서 캐치 애즈 캐치 캔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아이오와주의 레슬링 전통은 캐치 레슬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파머 번스와 그의 제자 프랭크 고치는 아이오와 레슬링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랭커셔 스타일은 서브미션 홀드가 사용되었으며, 핀폴 외에 서브미션에 의한 승리로 경기가 결정되기도 했다.[25] 1931년 저서 『레슬링』에 따르면, 프로페셔널 랭커셔 스타일(캐치 애즈 캐치 캔)은 조르기가 합의된 경우에만 허용되었고, 팔로 목을 누를 때 다른 팔은 머리나 목에 닿아서는 안 되었다. 핀폴 외에 한쪽 선수가 계속을 거부하거나 판정승도 있었다. 반칙은 할퀴기와 물어뜯기였다. 프로페셔널 그레코로만 스타일(프렌치 스타일)도 하체 공방을 제외하고는 동일했다.[26] 레슬링의 자유형은 공식 명칭이 "캐치 애즈 캐치 캔 스타일"이었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까지 사용되었다.[37]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는 "자유형"으로 변경되었다.[38]

프로 경기 프랭크 고치와 조지 해켄슈미트 사이의 경기, 1908년

3. 2. 기술 체계

캐치 레슬링의 기술은 매우 다양하며, "잡을 수 있는 곳 어디든 잡아라"라는 모토에 걸맞게 개방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15] 핀은 주된 승리 방법이었으며, 서브미션은 통제와 핀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었다.[4][16] 프랭크 고치는 발가락 걸기(토 홀드)를 활용하여 상대를 뒤로 넘기는 방식으로 많은 경기를 승리했다.[17]

캐치 레슬러는 "후커"라고도 불렸으며, 이들은 관절을 비틀고 압박하는 기술에 능숙했다.[18][19] 주요 기술로는 암바, 레그락, 하프 넬슨, 풀 넬슨 등이 있다.

체인 레슬링은 기술 간의 연속적인 전환을 의미하며, 경기 초반에 주로 사용된다.[23] 이는 인도식 레그 레슬링 및 맨발 레슬링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24]

1898년 휴 레오나르드의 저서에는 그레이프바인 락(코브라 트위스트), 사이드 찬슬리(헤드락), 크로스 바톡(허리던지기) 등의 기술이 소개되었다.[27] 1912년 마틴 파머 번즈의 저서에는 토홀드, 암 홀드, 해머록과 같은 관절기, 스트랭글 홀드(누드 초크) 등의 조르기 기술이 소개되었다.[28]

3. 3. 프로레슬링 스타일

카를 고치(Karl Gotch)는 랭커셔(Lancashire) 위건(Wigan)에 있는 빌리 라일리(Billy Riley)의 "스네이크 핏(The Snake Pit)" 체육관에서 수련한 캐치 레슬링 선수였다. 고치는 1960년대부터 수년간 안토니오 이노키(Antonio Inoki), 후지나미 다쓰미(Tatsumi Fujinami), 히로 마츠다(Hiro Matsuda), 키도 오사무(Osamu Kido) 등 일본 프로레슬러들에게 캐치 레슬링을 가르쳤다.[21] 이후 사야마 사토루(Satoru Sayama)(타이거 마스크), 마에다 아키라(Akira Maeda), 후지와라 요시아키(Yoshiaki Fujiwara) 등도 훈련시켰다.[21] 1976년부터 이들 중 한 명인 이노키는 다른 종목의 챔피언들과 격투기 경기를 여러 차례 개최했는데, 여기에는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와의 혼합 룰 경기인 무하마드 알리 vs. 안토니오 이노키 경기도 포함된다.[21] 그의 경기에서는 슬리퍼 홀드, 크로스 암 브레이커, 시티드 암바, 인디언 데스락, 키락 등의 캐치 레슬링 기술이 선보였다.

고치의 제자들은 1984년 마에다 아키라(Akira Maeda), 사야마 사토루(Satoru Sayama), 후지와라 요시아키(Yoshiaki Fujiwara)를 최고의 레슬러로 하여 일본 유니버설 레슬링 연맹(Universal Wrestling Federation (Japan))을 결성했다. UWF 운동은 캐치 레슬러들이 주도했으며, 일본에서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21] 위건 출신의 빌리 로빈슨(Billy Robinson)은 그 후 MMA 베테랑 사쿠라바 카즈시(Kazushi Sakuraba)를 훈련시켰다.[21] 루 테즈(Lou Thesz)는 MMA 베테랑 다무라 기요시(Kiyoshi Tamura)를 훈련시켰다.[21] 캐치 레슬링은 일본의 격투기인 슈트 레슬링의 기반을 형성한다.[21] 일본 프로레슬링과 팬크라시(Pancrase), 슈토(Shooto), 그리고 현재는 해체된 링스(RINGS)의 일본 선수 대다수는 캐치 레슬링과 관련이 있다.[21] 랜디 쿠투어(Randy Couture), 사쿠라바 카즈시(Kazushi Sakuraba), 카말 샬로러스(Kamal Shalorus), 후나키 마사카쓰(Masakatsu Funaki), 고미 다카노리(Takanori Gomi), 아오키 신야(Shinya Aoki), 조쉬 바넷(Josh Barnett) 등 많은 격투기 선수들은 캐치 레슬링을 주요 서브미션 기술로 연구한다.[21]

"노 홀즈 바드(no holds barred)"라는 용어는 원래 19세기 후반 캐치 레슬링 토너먼트에서 유행했던 레슬링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어떤 레슬링 기술도 금지되지 않았다. 이 용어는 나중에 격투기 경기, 특히 궁극 투쟁 챔피언십(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의 등장과 함께 사용되었다.[22]

체인 레슬링(chain wrestling) 또는 체인 레슬링 시퀀스(chain wrestling sequences)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전통적인 그래플링 기술들의 연속으로, 주로 경기 초반에 사용된다. 미국보다는 일본, 영국, 멕시코에서 더 흔하다.[23] 체인 레슬링은 기술 간의 매끄러운 전환과 두 경기자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인도식 레그 레슬링 및 맨발 레슬링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24]

4. 주요 단체 및 인물

칼 갓치는 1950년대에 위건의 빌리 라일리 체육관에서 캐치 레슬링을 배운 후,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일본 프로레슬링의 코치로 초빙되었다.[36] 갓치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코치 활동을 계속하며 이노키 간지로등을 지도했다. 그의 제자들은 CACC 기술에 집착하여, UWF를 설립하거나, 판크라스를 설립했다.[36] 빌 로빈슨도 국제 프로레슬링의 계약 선수로 일본에서 활동 했으며, 이후 일본에서 U.W.F. 스네이크피트 재팬(U.W.F.スネークピットジャパン)의 코치로서 CACC 기술을 가르쳤다.[36]

진 앤더슨, 아오키 신야, 밥 백런드, 조시 바넷, 샤이나 바즐러 등 많은 선수들이 캐치 레슬링의 발전에 기여했다. 마틴 번스 / 파머 번스, 고코르 치비치얀, 앨런 코에이지, 랜디 쿠투어, 후지와라 요시아키, 후나키 마사카츠, 이마나리 마사카즈, 버니 가그네, 젠틀맨 잭 갈러거 / 잭 갈러거, 프랭크 고치, 칼 고치, 조지 하켄슈미트, 데니스 홀먼, 스튜 하트, 대니 호지, 이노키 간지로, 디미트리우스 존슨, 마티 존스, 카롤 칼미코프, 댄 콜로프, 진 르벨, 에드 "스트랭글러" 루이스, 에반 루이스, 에이브러햄 링컨, 닐 멜란손, 미야토 시게오, 에릭 폴슨, 존 페섹, 윌리엄 리갈, 빌리 라일리, 빌리 로빈슨, 사쿠라바 카즈시, 애드 산텔, 프랭크 샴록, 켄 샴록, 딕 시캣, 데이비 보이 스미스 주니어, 조 스티처, 피터 사우어 / 레이 스틸, 스즈키 히데키, 스즈키 미노루, 타무라 키요시, 루 테즈, 스타니슬라우스 즈비슈코, 블라덱 즈비슈코 등이 있다.

4. 1. 주요 단체

칼 갓치(カール・ゴッチ)는 1950년대에 위건의 빌리 라일리 체육관에서 캐치 레슬링을 배운 후,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일본 프로레슬링(日本プロレス)의 코치로 초빙되었다.[36] 갓치는 신일본 프로레슬링(新日本プロレス)에서 코치 활동을 계속하며 안토니오 이노키(アントニオ猪木)등을 지도했다. 그의 제자들은 CACC 기술에 집착하여, UWF(UWF)를 설립하거나, 판크라스(パンクラス)를 설립했다.[36] 빌 로빈슨(ビル・ロビンソン)도 국제 프로레슬링(国際プロレス)의 계약 선수로 일본에서 활동 했으며, 이후 일본에서 U.W.F. 스네이크피트 재팬(U.W.F.スネークピットジャパン)의 코치로서 CACC 기술을 가르쳤다.[36]

4. 2. 주요 인물

진 앤더슨, 아오키 신야, 밥 백런드, 조시 바넷, 샤이나 바즐러 등 많은 선수들이 캐치 레슬링의 발전에 기여했다. 마틴 번스 / 파머 번스, 고코르 치비치얀, 앨런 코에이지, 랜디 쿠투어, 후지와라 요시아키, 후나키 마사카츠, 이마나리 마사카즈, 버니 가그네, 젠틀맨 잭 갈러거 / 잭 갈러거, 프랭크 고치, 칼 고치, 조지 하켄슈미트, 데니스 홀먼, 스튜 하트, 대니 호지, 이노키 간지로, 디미트리우스 존슨, 마티 존스, 카롤 칼미코프, 댄 콜로프, 진 르벨, 에드 "스트랭글러" 루이스, 에반 루이스, 에이브러햄 링컨, 닐 멜란손, 미야토 시게오, 에릭 폴슨, 존 페섹, 윌리엄 리갈, 빌리 라일리, 빌리 로빈슨, 사쿠라바 카즈시, 애드 산텔, 프랭크 샴록, 켄 샴록, 딕 시캣, 데이비 보이 스미스 주니어, 조 스티처, 피터 사우어 / 레이 스틸, 스즈키 히데키, 스즈키 미노루, 타무라 키요시, 루 테즈, 스타니슬라우스 즈비슈코, 블라덱 즈비슈코 등이 있다.

5. 사회문화적 영향 및 논란

5. 1. 사회문화적 영향

5. 2. 논란

6. 국제 관계

6. 1. 국가 대항전

6. 2. 한국과 다른 나라의 관계

참조

[1] 웹사이트 Freestyle Wrestling http://www.fila-offi[...]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ssociated Wrestling Styles 2008-10-28
[2] 웹사이트 The Olympic History of Catch Wrestling https://www.bloodyel[...] 2021-11-05
[3] 웹사이트 AIGA 2023 & Catch Wrestling US champions crowned https://bloodyelbow.[...] 2024-12-01
[4] 웹사이트 Kayfabe Time Capsule: The Real Techniques of Professional Wrestling http://fightland.vic[...] 2019-10-31
[5] 웹사이트 Catch : l'histoire d'un sport spectacle marié avec la télé du 09 mars 2013 https://www.francein[...] 2013-03-09
[6] 웹사이트 Submission Wrestling http://www.aspulloly[...] 2019-11-19
[7] 서적 Wrestling https://books.google[...]
[8] 서적 Routledge Handbook of Global Sport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20
[9] 간행물 Georgia Scenes
[10] 뉴스 Pitting catch wrestling against Brazilian jiu-jitsu https://www.manilati[...] 2020-01-12
[11] 서적 Routledge Handbook of Global Sport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20-01-03
[12] 서적 WWE Legends https://books.google[...] Simon and Schuster 2019-02-20
[13] 서적 Say Uncle! Catch-as-Catch-Can ECW Press
[14] Youtube Curran Jacobs vs. Erik Hammer: 2018 Catch Wrestling World Championship/Snake Pit U.S.A. https://www.youtube.[...] 2018-07-21
[15] 간행물 Twisted Technique: Catch-as-Catch-Can Wrestling Descended from the Original No Holds Barred Fighting Art 2003-12
[16] 웹사이트 The Continued Catch Wrestling Adventures of Minoru Suzuki http://fightland.vic[...] Vice 2020-06-29
[17] 서적 Frank Gotch: World's Greatest Wrestler William s Hein & Co
[18] 서적 Backlund: From All-American Boy to Professional Wrestling's World Champion
[19] 서적 I'm Sorry, I Love You: A History of Professional Wrestling
[20] 뉴스 Ito threw Santell (sic) around the ring like a bag of sawdust… When Ad gasped for air, the Japanese pounced upon him like a leopard and applied the strangle hold. Santell gave a couple of gurgles, turned black in the face and thumped the floor, signifying he had enough. Los Angeles Times 1917-02-01
[21] 웹사이트 Randy Couture 'Moving Away From a Jiu Jitsu Mentality' http://www.mmafighti[...] MMA Fighting 2010-03-02
[22] DVD catch: the hold not taken http://www.riverhors[...] 2016-02-08
[23] 웹사이트 Grantland Dictionary: Pro Wrestling Edition https://grantland.co[...] 2019-11-11
[24] 웹사이트 Chain Wrestling https://fanaticwrest[...] 2024-11-11
[25] 서적 那嵯
[26] 和書 レスリング {{NDLDC|1215356/55}} 三省堂 1931-11-09
[27] 뉴스 The Art of Wrestling http://query.nytimes[...] 뉴욕 타임스 2010-05-22
[28] 서적 Burns
[29] 서적 那嵯
[30] 서적 アイルランド島の民俗レスリングで、「ランカシャースタイル」同様、現代のプロレスリングの源流の一つとされる。現代のプロレスリングの基礎的な技術の一つであるロックアップはカラー・アンド・エルボーとも呼ばれる。
[31] 서적 那嵯
[32] 서적 1920年に講道館の段位取得
[33] 서적 那嵯
[34] 서적 カール・ゴッチは1951年から1959年までウィガンを本拠地としていたとされるが、斎藤文彦はカール・ゴッチが関節技の技術の基礎を学んだのは、この時期であったと断定している(斉藤文彦『みんなのプロレス』ミシマ社、2008年、113-114ページ)。
[35] 서적 ただし、キッドに関してはレスリングを始めた当初に短期間ライレージムへ通った事があったという程度で、その他のレスラーと比較すればその関係はやや希薄である。
[36] 서적 undefined undefined
[37] 논문 種目めぐり レスリングとその強化 {{NDLDC|1856916/11}} 東京都オリンピック準備局 1961-10-00
[38] 서적 レスリング {{NDLDC|2466735/11}} 旺文社 195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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