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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카타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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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라카타우산은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 위치한 화산으로, 1883년 대폭발로 유명하다. 이 화산은 여러 차례 분화했으며, 특히 1883년 폭발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폭발로 인해 쓰나미가 발생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화산재는 전 세계로 퍼져 기후 변화를 일으켰다. 1883년 이후, 크라카타우 산 주변에는 아낙 크라카타우라는 새로운 섬이 형성되어 현재까지도 활동 중이다. 크라카타우는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대중문화에서도 다양한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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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카타우산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1883년 크라카타우 산의 분화를 그린 그림
1883년 크라카타우 산의 분화
원주민 이름인도네시아어: Krakatau
영어 이름Krakatoa
위치인도네시아
좌표6.102° S, 105.423° E
지질학적 정보
종류칼데라
산계수마트라섬-자바섬
마지막 분화1883년
기타 정보
특별 리스트스페시알 리부
라카타 봉우리 높이813m

2. 명칭

크라카타우산(Krakatoa)이라는 이름은 15세기 말 서부 자바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순다어 텍스트 부장가 마니크(Bujangga Manik)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여기에서 크라카타우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라카타 섬, 산"으로 언급되었다.[8] 루카스 얀손 바게나르(Lucas Janszoon Waghenaer)가 1611년에 제작한 지도에서 섬에 "Pulo Carcata"라고 표기한 것이 서구 세계에서 크라카타우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된 것이다. "Crackatouw," "Cracatoa," "Krakatao" 등 약 20개의 변형이 발견되었다. ''Krakatau''라는 철자가 처음 나타난 것은 1658년 10월에 "크라카타우의 높은 나무로 덮인 섬"을 지나간 바우터 스호턴(Wouter Schouten)에 의해서였다.

인도네시아어 이름 ''Krakatau''의 기원은 불확실하며, 주요 이론은 다음과 같다.


  • 산스크리트어 ''karka'', ''karkaṭa'', ''karkaṭaka''에서 유래되었으며, "바닷가재" 또는 "게"를 의미한다.
  • 의성어로, 이 섬에 서식했던 코카투('Kakatoes')가 내는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 가장 가까운 말레이어 단어는 ''kelakatu''로, "흰 날개 개미"를 의미한다.
  • 방문한 배의 선장이 지역 주민에게 섬의 이름을 물었고, 그 주민은 "나는 모른다"라는 뜻의 자카르타/베타윈어 속어 문구인 "''Kaga tau''"(''Aku enggak tahu'')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스미소니언 협회의 세계 화산 활동 프로그램은 인도네시아어 이름인 ''Krakatau''를 정확한 이름으로 인용하지만, ''Krakatoa''도 종종 사용된다고 말한다.[1][9] 크라카타우(Krakatau)와 크라카토아(Krakatoa) 두 가지 명칭이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의 명칭은 크라카타우가 일반적이다.

크라카토아라는 명칭은 1883년분화했을 때, 영국 언론이 실수로 표기했다는 설이 있다. "크라카타우"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58년순다 해협을 통과한 네덜란드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3. 지리적 환경

순다 해협


인도네시아는 130개가 넘는 활화산을 보유하고 있으며,[10]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이다. 이 화산들은 인도네시아 섬 호 시스템의 중심축을 이루며, 이는 북동쪽으로 향하는 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의 섭입으로 생성되었다. 이 화산들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의 두 주요 섬인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을 따라 위치해 있다. 이 두 섬은 섬 호의 굴곡점에 위치한 순다 해협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크라카타우는 유라시아 판과 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의 섭입대 바로 위에 위치해 있으며, 판 경계가 급격한 방향 변화를 보이는 곳으로, 이 지역의 지각이 유난히 약할 수 있다.[11]

약 6만 년 전까지, 이 해역에는 "고(古) 크라카타우"라고 불리는 직경 15km 정도의 화산섬이 있었다. 그 중앙에 해발 1800m에 가까운 성층 화산이 있었지만, 대분화로 인해 소멸되어 해중에 칼데라 (초승달 모양의 네 개의 작은 섬)를 남겼다. 그 군도의 동쪽에는 길이 5km 정도의 푼자브 섬, 서쪽에는 길이 6km 정도의 세르툰 섬이 있으며, 이 두 섬 사이에 낀 형태로 북쪽 (북단)에는 작은 바위 덩어리 같은 폴리시 하트 섬이 해수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남쪽 섬에는 해발 800m 정도의 라카타 산, 그 북쪽 (섬의 중앙)에는 작은 분화구를 가진 다난 산, 그 북쪽 (섬의 북단)에는 뾰족한 모양의 페르보에와탄이라는 산이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항해 탐험가 제임스 쿡은 1771년 1월과 6년 후인 1777년 두 번 본섬을 방문했다.

1883년 이전의 크라카타우는 '''라카타 섬''', Verlaten Island|세르툰 섬영어, Lang Island|랑 섬영어 (현 라카타 케실 섬)의 총칭이었다. 세르툰 섬과 랑 섬은 이 칼데라의 외륜산에 해당한다. 또한 라카타 섬은 칼데라의 남동쪽 가장자리에서 중앙 부근에 걸쳐 성장한 3개의 화산 (Rakata|라카타영어, Danan|다난영어, Perboewatan|페르보에와탄영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의 두 배 이상의 크기였다. 최고봉은 800m 정도의 라카타로, 뾰족한 산세가 항해의 표지로 이용되었다. 페르보에와탄과 랑 섬 사이에는 Poolsche Hoed|폴리시 하트영어라고 불리는 암초가 있었다.

크라카타우는 1883년 이전 2천 년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비교적 큰 분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535년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 외의 해에도 분화했다는 기록은 다수 남아 있지만, 어느 것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가장 새로운 기록은 1680년이다. 사람이 살았던 적은 있었지만, 1883년 당시에는 무인도가 되어 있었다.

4. 역사

크라카타우산은 기록된 역사에서 여러 차례 격렬한 분화를 일으켰다.

1883년에는 화산 폭발 지수(VEI) 6에 해당하는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 원자폭탄의 약 13,000배,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핵무기인 차르 봄바의 4배에 달하는 위력이었다.[2] 폭발음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인도양의 로드리게스 섬에서도 들릴 정도였다.[4] 이 폭발로 발생한 쓰나미는 자와섬수마트라섬을 덮쳐 3만 6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1883년 폭발 이후, 크라카타우 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몇백 년 후 식물이 자라나 다시 녹색빛으로 부활했다. 1927년에는 해저에서 새로운 화산 활동이 시작되어 아낙 크라카타우(크라카타우의 아이)라는 새로운 화산섬이 생겨났다. 아낙 크라카타우는 현재도 주기적으로 분화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대규모 붕괴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섬들은 도서 생물지리학과 거의 완전히 파괴된 환경에서 처음부터 구축되는 생태계에서 창시자 개체군에 대한 주요 사례 연구가 되었다.[31]

1883년 10월 2일, 화산 폭발 5주 후, 세랑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네덜란드 군인이 담배 값을 지불하던 중 수염을 기르고 흰 가운을 입은 남자에게 여러 차례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암살 시도범은 체포되지 않았지만, 6주 후 비슷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주둔지의 보초를 공격하며 네덜란드가 이 지역에 신의 징벌을 가져왔다고 비난했다. 이 남자의 "극단적인 종교적 열정"은 널리 퍼져 있었고,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이슬람 보수주의자들과 반식민지 지도자들(예: 압둘 카림 암룰라)에 의해 1888년 반텐 농민 반란을 선동하고, ''막스 하벨라르''의 폭로로 불안해진 네덜란드의 양심을 이용하기 위해 악용되었다고 추정한다.[28][29]

4. 1. 1883년 이전

선사 시대에 칼데라를 형성하는 분화가 일어나 Verlaten(또는 ''Sertung'')과 랑(Rakata Kecil 또는 Panjang이라고도 함), 풀스 호드(Polish Hat),[12] 라카타의 기저부가 남았다. 이후 최소 두 개의 원뿔형 화산 (퍼보에와탄과 다난)이 더 형성되어 결국 라카타와 합쳐져 크라카토아의 주요 섬을 형성했다.[13] 1883년 분화 당시 크라카토아 그룹은 랑, Verlaten, 그리고 크라카토아 자체로 구성되었으며, 이 섬은 9km 길이와 5km 너비를 가졌다. 랑 근처의 나무가 우거진 작은 섬(풀스 호드)과 크라카토아와 Verlaten 사이에 몇 개의 작은 암석 섬 또는 둑도 있었다.

크라카토아 섬에는 세 개의 화산 원뿔이 있었다. 남쪽의 라카타 (820m), 중앙 근처의 다난 (450m), 북쪽의 퍼보에와탄 (120m)이 있었다.

자바어의 19세기 역사적 전통 모음집인 ''푸스타카 라자''(Pustaka Raja)는 샤카력 338년(서기 416년)에 관한 기록을 남겼지만, 1차 자료를 활용하지 않아 역사적 신뢰성은 매우 의심스럽다.[15] 따라서 이 분화에 대한 묘사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지질학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16] 데이비드 키스, 켄 윌렛츠 등은 535년에 크라카타우의 격렬한 화산 폭발이 535-536년의 세계적인 기후 변화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지만,[17] 순다 해협에서 진행된 시추 프로젝트를 통해 서기 535년에 분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배제되었다.[18][19]

토튼은 크라카타우가 자바의 샤일렌드라 왕조 시대에 "불의 산"으로 알려졌으며, 9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7번의 분화 기록이 있다고 언급했다.[20] 이 분화들은 대략 850년, 950년, 1050년, 1150년, 1320년, 그리고 1530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1680년 분화가 18세기 네덜란드 에칭에 묘사되었다고 주장한다.


1681년 2월, 요한 빌헬름 포겔은 수마트라 (현 파당 근처) 살리다의 네덜란드 광산 기사는 바타비아(현재 자카르타)로 가는 길에 순다 해협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일기에 크라카타우 섬이 완전히 타버렸다고 썼다. 포겔은 바타비아에서 몇 달을 보냈고 1681년 11월 수마트라로 돌아오는 길에 작가 엘리아스 헤세를 포함한 여러 네덜란드 여행객과 동행했다. 헤세는 자신의 일지에 크라카투 섬의 솟아오르는 연기 기둥을 수 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벵골 해상 선장도 분화를 보고했지만, 당시에는 선박 일지에 기록하지 않았다. 포겔이나 헤세는 다른 구절에서 크라카토우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고, 당시 다른 여행자들도 분화나 그 증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1681년 11월, 주민들이 후추 작물을 판매하고 있었다.)[22]

사이먼 윈체스터는 2003년 저서 ''크라카토아: 세상을 폭발시킨 날: 1883년 8월 27일''에서 1680년 분화가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얀 반 쉴레이가 그린 "불타는 섬"이라는 제목의 18세기 에칭에 묘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1880년, 베르베크는 페르부아탄 북쪽 해안에서 풍화되지 않은 신선한 용암류를 조사했는데, 그는 이 용암류가 2세기 이상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23]

1780년 2월, 제임스 쿡 선장의 하와이 사망 후 귀국길에 HMS 호와 HMS 호의 선원들은 크라카타우에서 며칠간 정박했다. 그들은 섬에서 담수와 온천을 발견했다. 당시 섬에 살던 원주민들을 "우호적"이라고 묘사했으며, 여러 스케치를 남겼다. (존 레디야드는 그의 일기에 이 섬을 "코코테라"라고 부른다.)

에드먼드 로버츠는 자신의 일기에 이 섬을 "크로카토아"라고 칭했다. 1832년 9월 8일, 미국 군함 ''피콕''은 북쪽 끝에 정박했으며, 랑 섬을 방문하여 주민, 담수, 그리고 얌을 찾았다. 험한 파도와 해안에서 상당한 거리까지 뻗어 있는 산호로 인해 어디에든 상륙하기가 어려웠다. 크라카타우 동쪽 해안에서 약 45.72m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패덤 깊이의 물 속에서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온천이 발견되었다. 로버츠, 가이징어 선장, 그리고 해병대 중위 파울러는 메뚜기 울음소리를 흐르는 물소리로 착각하여 포세이큰 섬을 방문했다. 보트는 수정처럼 맑은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고, 광대하고 아름다운 수중 정원을 지나갔다. 해바라기와 버섯을 닮은 산호, 지름이 약 2.54cm에서 약 91.44cm인 양배추를 닮은 산호, 그리고 장미와 매우 흡사한 산호 등, 모든 모양과 색상의 산호가 있었다. 언덕은 열대 기후를 연상시켰다;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 앵무새 떼, 야생 망고와 오렌지 과수원 — 보라색, 빨간색, 파란색, 갈색, 녹색의 선명한 색상으로 빛나는 모든 종류의 식물과 꽃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풍경— 그러나 물이나 식량은 없었다.[24]

1620년, 네덜란드인들은 이 섬들에 해군 기지를 건설했고, 다소 늦게 조선소가 세워졌다. 17세기 후반 어느 시점에 크라카타우에 후추 농장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섬들은 일반적으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무시되었다. 1809년에는 특정되지 않은 위치에 교도소가 세워졌으며 약 10년 동안 운영되었다. 1880년대까지, 섬에는 영구적인 거주자가 없었고, 가장 가까운 정착지는 약 12km 떨어진 인근 섬인 세베시 섬으로 인구는 3,000명이었다.

여러 측량해도가 만들어졌으며, 섬은 거의 탐사되거나 연구되지 않았다. 1854년 섬의 지도가 영국 해도의 사용되었는데, 이는 1874년에 만들어진 네덜란드 지도와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1880년 7월, 로히어 베르베크는 섬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를 실시했지만, 단 몇 시간만 그곳에 머물 수 있었다. 그는 여러 곳에서 표본을 수집할 수 있었고, 그의 조사는 나중에 1883년 화산 폭발의 지질학적 영향을 판단하는 데 중요했다.[25]

약 6만 년 전까지, 이 해역에는 "고(古) 크라카타우"라고 불리는 직경 15킬로미터 정도의 화산섬이 있었다. 그 중앙에 해발 1800미터에 가까운 성층 화산이 있었지만, 대분화로 인해 소멸되어 해중에 칼데라 (초승달 모양의 네 개의 작은 섬)를 남겼다. 그 군도의 동쪽에는 길이 5킬로미터 정도의 푼자브 섬, 서쪽에는 길이 6킬로미터 정도의 세르툰 섬이 있으며, 이 두 섬 사이에 낀 형태로 북쪽 (북단)에는 작은 바위 덩어리 같은 폴리시 하트 섬이 해수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남쪽 섬에는 해발 800미터 정도의 라카타 산, 그 북쪽 (섬의 중앙)에는 작은 분화구를 가진 다난 산, 그 북쪽 (섬의 북단)에는 뾰족한 모양의 페르보에와탄이라는 산이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항해 탐험가 제임스 쿡은 1771년 1월과 6년 후인 1777년 두 번 본섬을 방문했다.

1883년 이전의 크라카타우는 '''라카타 섬''', 세르툰 섬, 랑 섬(현 라카타 케실 섬)의 총칭이었다. 세르툰 섬과 랑 섬은 이 칼데라의 외륜산에 해당한다. 또한 라카타 섬은 칼데라의 남동쪽 가장자리에서 중앙 부근에 걸쳐 성장한 3개의 화산 (라카타, 다난, 퍼보에와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의 두 배 이상의 크기였다. 최고봉은 800m 정도의 라카타로, 뾰족한 산세가 항해의 표지로 이용되었다. 페르보에와탄과 랑 섬 사이에는 폴리시 하트라고 불리는 암초가 있었다.

크라카타우는 1883년 이전 2천 년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비교적 큰 분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535년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 외의 해에도 분화했다는 기록은 다수 남아 있지만, 어느 것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가장 새로운 기록은 1680년이다. 사람이 살았던 적은 있었지만, 1883년 당시에는 무인도가 되어 있었다.

4. 2. 1883년 대분화

1883년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크라카타우산에서 기록된 역사상 가장 격렬한 화산 폭발 사건 중 하나인 대규모 분화가 발생했다. 화산 폭발 지수(VEI)는 6으로, 200MtonTNT에 해당하는 규모였다.[2]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에 사용된 리틀 보이 폭탄의 약 13,000배, 차르 봄바의 4배에 달하는 위력이었다.

1883년 분화로 약 의 암석이 분출되었다.[3] 이 폭발음은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 앨리스 스프링스와 떨어진 모리셔스 인근 로드리게스 섬에서도 들렸다.[4]

네덜란드령 동인도 식민지 공식 기록에 따르면, 크라카타우 인근 165개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었고 132개 마을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최소 36,417명이 사망했으며, 폭발 후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분화로 크라카토아 섬의 3분의 2가 파괴되었다.

1883년 대분화 직전 수년간 화산 주변의 지진 활동이 격렬했으며, 1883년 5월 20일에는 수증기 폭발을 동반한 소규모 분화가 시작되었다. 8월 11일에는 같은 섬의 3개 화산이 분화했다. 8월 27일 월요일 바타비아 시간 오전 10시 02분(현지 시간 9시 58분)에 대폭발이 일어났다.

분화로 발생한 화쇄류는 해상 40km를 넘어 수마트라 섬 람풍 만 동부의 Ketimbang에서 인명을 살상했다. 분화로 발생한 쓰나미는 주변 섬을 휩쓸고 항해 중인 배를 심하게 흔들었다. 사망자는 36,417명에 달했으며, 2004년 수마트라 지진 이전까지 인도양에서 발생한 최대 쓰나미 피해였다.

분화 소리는 너무 커서 이내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 귀가 먹었을 것이라고 보고되었다. 폭발음은 4,776km 떨어진 인도양의 로드리게스 섬까지 도달하여, 인간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소리를 직접 들은 최장 거리 기록이 되었다. 충격파는 15일 동안 지구를 7바퀴 돌았다. 5,863km 떨어진 도쿄에서 1.45hPa의 기압 상승이 기록되었다. 쓰나미는 일본 가고시마시의 고토기 강에도 밀려왔으며, 17,000km 떨어진 프랑스 비스케이 만의 조위 관측소에도 기록되었다.

화산쇄설류, 화산재, 쓰나미의 복합적인 영향은 이 지역과 전 세계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화산 부석 뗏목 위에서 인도양을 건너 분화 후 최대 1년까지 아프리카 동해안으로 밀려온 인간 유골 그룹에 대한 수많은 문서 보고가 있다. 북반구의 여름 기온은 분화 다음 해에 평균 0.4°C 하락했다.[27]

성층권까지 도달한 분연의 영향으로 북반구 전체 평균 기온이 0.5℃에서 0.8℃ 하강했다. 또한, 그 후 수년에 걸쳐 이상한 색의 저녁 노을이 관측되었으며, 영국의 화가 윌리엄 애시크로프트는 이 이상한 저녁 노을을 기록으로 남겼다. 2003년에는 한 천문학자가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가 이 저녁 노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주장했다.[53]

1883년 분화로 인해 원래 크라카토아 섬의 3분의 2가 파괴되었다.

4. 3. 1883년 분화 이후

1883년, 크라카타우산은 지수 6의 폭발을 일으켰다. 이 폭발음은 매우 커서 선원들 중 절반 이상이 고막이 터졌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들릴 정도였다.[28] 이 폭발은 해저 지진을 일으켜 높이 36m의 지진 해일을 발생시켰으며, 자와섬수마트라섬을 강타했다. 이 해일로 3만 6천 명이 사망하여 최악의 화산 폭발 중 하나로 꼽힌다.

1880년부터 2018년까지 크라카타우 제도 진화. 1927년 이후 아낙 크라카타우("크라카타우의 아이")의 지속적인 성장에 주목하십시오.


이 폭발은 해저 통신 케이블 개발 이후, 그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확실하게 느껴지고 그 원인이 알려진 역사상 최초의 자연 재해였다. 윈체스터는 이 재해가 세계적 인식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고 주장한다.[30]

몇백 년 후, 크라카타우섬은 식물이 자라나 녹색빛으로 부활했다. 그 후 바닷속에서 또 다른 화산이 폭발하여 아낙 크라카타우 ("크라카타우의 아이"라는 뜻) 화산이 생겨났다. 베르베크는 화산 폭발 보고서에서 페르부아탄과 다난 사이 지역에서 새로운 활동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는 1927년 12월 29일에 페르부아탄 지역의 해저 용암 돔에서 분화 증거가 나타나면서 실현되었다. 며칠 후 새로운 섬 화산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부석과 화산재를 동반한 분화였고, 섬과 뒤이은 두 섬은 빠르게 침식되었다. 그러나 1930년 8월, 아낙 크라카타우라는 네 번째 섬이 수면 위로 솟아올라 파도가 침식하는 것보다 빠르게 용암류를 생성했다.[29]

1914년, 라카타를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 세워졌다. 1916년, 독일의 경석 수집가 요한 한들은 "강력한 지역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석 채굴 허가를 받았다.[20] 그의 8.7km2 (섬 동쪽 절반)에 대한 임대 계약은 30년이었다. 한들은 라카타 남쪽 해안에 거주하며 집과 정원을 만들고, "유럽인 가족 4명과 약 30명의 쿨리"와 함께 생활했다. 그는 1883년 화산재 퇴적층 아래에서 불에 타지 않은 나무를 발견했고, 약 5.49m 아래에서 담수를 발견했다. 그와 일행은 4년간 그곳에 머물렀지만, "임대 조건 위반"으로 떠났다.[20]

크라카타우산 분연의 높이는 성층권에 달하는 38,000m였다. 폭발음은 4,776km 떨어진 인도양 로드리게스 섬까지 도달하여, 인간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소리를 직접 들은 최장 거리 기록이 되었다. 충격파는 15일 동안 지구를 7바퀴 돌았다. 5,863km 떨어진 도쿄에서 1.45hPa의 기압 상승이 기록되었다. 쓰나미는 가고시마시 고토기 강과 17,000km 떨어진 프랑스 비스케이 만의 조위 관측소에도 기록되었다. 성층권까지 도달한 분연은 북반구 전체 평균 기온을 0.5°C에서 0.8°C 하강시켰다. 이후 수년간 이상한 색의 저녁 노을이 관측되었고, 영국 화가 윌리엄 애시크로프트는 이를 기록했다. 2003년에는 한 천문학자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가 이 저녁 노을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주장했다.[53]

1927년 1월 26일, 라카타 섬 북부(구 다난 부근) 해저에서 분화가 시작되어 아낙 크라카타우 섬(크라카타우의 아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1주일 후 파도에 침식되어 2월 중순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연기, 증기, 재가 솟아올라 상공에 자욱하게 퍼졌다. 때때로 고온 용암이 톱니 모양 알갱이로 해저에서 튀어나왔다. 2개월 후, 2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20m 정도의 원추형 한 쌍이 생겨 새로운 섬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섬도 1928년 5월 파도에 침식되어 해저로 잠겼다. 1928년 2월 3일 정오부터 24시간 동안 폭발 횟수는 11,791회를 기록했다.[56]

아낙 크라카타우는 현재도 분화 활동을 계속하며, 21세기 초에는 해발 400m 이상이었지만, 2018년 12월 하순 대규모 분화로 산체 붕괴가 발생하여 338m에서 110m로 표고가 낮아졌다.[57]

5. 보존

크라카타우는 1921년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IUCN 관리 분류 Ia(엄격한 자연 보호 구역)에 해당한다. 1980년에는 여러 다른 자연 보호 구역과 함께 국립 공원으로 제안되었다. 1991년에는 "우중쿨론 국립 공원과 크라카타우 자연 보호 구역"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자연 기준(vii) 및 (x)을 충족했다. 우중쿨론 국립 공원은 1992년에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으며, 크라카타우를 포함한다.[33][34][35]

6. 대중문화

오른쪽


크라카토아는 100 루피아 지폐에 등장한다.


윌리엄 페네 듀 부아의 1947년 아동 소설 ''스물한 개의 풍선''에서는 1883년 폭발 직전과 그 도중의 크라카토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듀 부아의 이야기에서 25가구가 가상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막대한 부를 얻으며 섬에 정착했지만, 폭발로 인해 주민들이 흩어지고 광산이 파괴된다.

크라카토아는 다양한 텔레비전 및 영화 드라마에서 주제이자 이야기의 일부로 등장했다. 1953년 영화 ''자바 섬으로 가는 순풍''에서 미국 선장과 해적 지도자가 크라카토아에 숨겨진 다이아몬드 보물을 찾기 위해 경쟁하며, 그들이 보물을 찾기 위해 섬을 수색하는 동안 최후의 폭발이 시작된다.[37] 1961년 앤솔로지 시리즈 ''원 스텝 비욘드''의 "아이 위트니스" 에피소드는 크라카토아 폭발 소식이 보스턴의 신문에 전달되기 몇 주 전에 발생한 미스터리한 보도를 드라마화했다. 1966년 어윈 앨런의 텔레비전 시리즈 ''시간 터널''의 에피소드 6 "파멸의 균열"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38] 1969년 영화 ''자바섬 동쪽의 크라카토아''(1970년대 재개봉 당시 ''화산''으로 제목 변경; 제목은 크라카토아가 자바섬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다소 큰 지리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폭발하는 화산에 위험하게 가까이 있는 진주의 귀중한 화물을 구출하려는 노력을 그린다.

스폰지밥 네모바지에서 캐릭터 징징이는 "크라카토아"를 유행어로 사용하는 캡틴 마그마라는 슈퍼히어로의 페르소나를 채택한다.[39] 디키 줄카르나인과 아드벤트 방운이 출연한 인도네시아 무술 액션 영화 ''크라카투'' (1977)는 산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2006년 텔레비전 드라마 ''크라카토아: 파괴의 화산''과 2008년 ''크라카토아''에서도 소재로 다루어졌다.

클라우스 토이버의 보드 게임 ''카탄의 개척자''에서 "크라카토아 변형"은 세 개의 화산 타일로 구성된 섬을 포함하는 시나리오이다.[40] 1973년, 미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스티스는 앨범 ''뱀이 일어나다''에 "크라카토아"라는 스포큰 워드 트랙을 발표했다. 당시 기타리스트 존 큐룰레브스키가 폴 비버, 버니 크라우세와 함께 작사한 이 곡은 크라카토아 폭발과 그 후 섬에 생명체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의 헤비 메탈 밴드 색슨 역시 1883년 크라카토아 폭발에 관한 노래 "크라카토아"를 1985년 앨범 ''무죄는 변명거리가 아니다''의 2010년 재발매 버전에 수록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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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Super Volcano: The Ticking Time Bomb Beneath Yellowstone National Park Voyageur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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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웹사이트 The Resurrection Of Krakatau http://indonesiaexpa[...] Indonesiaexpat.biz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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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서 Note: This spelling has been attributed to a sub-editor at The Times (who may have typographically swapped the 'a' and 'o' of the Portuguese spelling) interpreting telegraphic reporting on the massive eruption of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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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서 Note: apparently because it looked like a hat from the sea
[13] 문서 Note: The dating of these events is currently unknown. The Sunda Strait was first mentioned by Arab sailors circa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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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서 Note: Vogel returned to Amsterdam in 1688 and published the first edition of his journal in 1690.
[22] 문서 Note: Historians Van den Berg and Verbeek both conclude that Vogel must have exaggerated the extent of the eruption he saw. Even so, there must have been an eruption around thi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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