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통의후는 고려 숙종의 일곱째 아들로, 예종의 동생이다. 1097년에 태어나 총명하고 학문을 즐겼다. 1106년에 통의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관직을 더해 1115년에는 추인찬화봉절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보 수태위 상주국에 임명되었다. 1119년 2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호는 통의후, 시호는 영장이다. 딸을 두었으며, 딸은 숙부의 아들과 혼인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119년 사망 - 교황 젤라시오 2세
교황 젤라시오 2세는 1118년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와 대립하여 로마에서 추방당했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1119년에 사망하였다. - 1097년 출생 - 교황 루치오 3세
루치오 3세는 1181년부터 1185년까지 재임한 제171대 교황으로, 로마 시민들의 반대로 로마를 떠나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신성 로마 제국과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이단 문제에 대응하였다. - 1097년 출생 - 후지와라노 다다미치
후지와라노 다다미치는 헤이안 시대 말기의 공경이자 가인으로, 섭정, 관백, 태정대신 등의 요직을 역임하며 스토쿠, 고노에, 고시라카와 천황 3대에 걸쳐 섭관정치의 중심에 섰고, 시와 서예에도 능해 호쇼지류라는 서예 유파를 창시했으며, 그의 가계는 고노에 가, 마츠도노 가, 구조 가 등으로 이어져 섭관가로서 번성하였다. - 고려의 사공 - 윤관
고려 시대 윤관은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한 무신이자 정치가로, 숙종 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여진 정벌을 주도하여 동북 9성을 축조했으나, 정치적 음모로 실각한 후 그의 묘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고려의 사공 - 김부식
신라 왕족 후예인 김부식은 고려 중기 문신이자 학자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진압에 공을 세웠으며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통의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작위 | 후 |
시호 | 영장(英章) |
휘 | 왕교(王僑) |
왕조 | 고려 |
출생일 | 1097년 |
사망일 | 1119년 음력 4월 19일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숙종 |
어머니 | 명의왕후 |
친척 | 문종(조부), 순종(숙부), 선종(숙부), 헌종(사촌), 예종(장형), 인종(조카) 등 |
자녀 | 왕씨 |
2. 생애
통의후 zh는 1097년(숙종 2년) 숙종과 명의왕후의 7남으로 태어났다. 성은 왕, 이름은 교(僑), 본관은 개성이다. 예종의 친동생이며, 순종, 선종의 조카이자 헌종과는 친사촌 간이다. 또 인종의 숙부이기도 하다. 왕교는 성격이 총명하고 예리하였으며, 학문을 즐겼고, 선비를 매우 좋아하였다.[1]
1103년(숙종 8년) 정식으로 작위를 받고 예물을 하사받았다. 예종 즉위 후인 1106년(예종 원년) 음력 2월 2일 추인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상서령 수사공 상주국 통의후에 임명되었고[4], 1110년(예종 5년) 음력 12월 봉절공신 수사도가 더해졌으며[5], 1114년(예종 9년) 음력 12월 16일 추성공신 검교태보 수태위가 더해졌다[6]. 1115년(예종 10년) 음력 1월 19일 최종적으로 추인찬화봉절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보 수태위 상주국에 임명되었다.[1][7] 이 때마다 많은 식읍을 받았다.[1]
2. 1. 가계
1097년(숙종 2년) 숙종과 명의왕후의 7남으로 태어났다. 성은 왕, 이름은 교(僑), 본관은 개성이다. 예종의 친동생이며, 순종, 선종의 조카이자 헌종과는 친사촌 간이다. 또 인종의 숙부이기도 하다. 왕교는 성격이 총명하고 예리하였으며, 학문을 즐겼고, 선비를 매우 좋아하였다.[1]명의왕후는 문하시중을 지낸 정주 유씨 유홍의 딸로, 숙종의 유일한 부인이었다. 당시 왕비들이 대개 인천 이씨 출신이던 때에 태조의 신혜왕후, 정덕왕후에 이어 오랜만에 탄생한 정주(지금의 경기도 개풍군[2]) 출신의 왕비이다.[3]
2. 2. 왕자 시절
1103년(숙종 8년) 정식으로 작위를 받고 예물을 하사받았다. 예종 즉위 후인 1106년(예종 원년) 음력 2월 2일 추인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상서령 수사공 상주국 통의후에 임명되었고[4], 1110년(예종 5년) 음력 12월 봉절공신 수사도가 더해졌으며[5], 1114년(예종 9년) 음력 12월 16일 추성공신 검교태보 수태위가 더해졌다[6]. 1115년(예종 10년) 음력 1월 19일 최종적으로 추인찬화봉절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보 수태위 상주국에 임명되었다[1][7]. 또 새로운 관직을 부여받을 때마다 많은 식읍을 받았다[1].3. 가족 관계
왕교는 혼인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며, 딸은 숙부인 대방공의 아들 왕유와 혼인하였다. 왕유와 왕교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왕공은 인종의 딸 영화궁주와 혼인하여 소성후로 책봉되었다[9].
3. 1. 가계도
겸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