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제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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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팻 제닝스는 북아일랜드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11세에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뉴리 타운, 왓퍼드, 토트넘 홋스퍼, 아스널 등에서 뛰었다. 토트넘 소속으로 FA컵, 풋볼 리그 컵, UEFA컵 등에서 우승했으며, 아스널에서도 FA컵 우승을 경험했다. 1964년 북아일랜드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986년까지 A매치 119경기에 출전했으며, 1982년과 1986년 월드컵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으며,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또한 축구 기여를 인정받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2023년에는 동상이 세워졌다.

팻 제닝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패트릭 앤서니 "팻" 제닝스
원어 이름Patrick Anthony "Pat" Jennings
출생일1945년 6월 12일
출생지뉴리, 북아일랜드
신장1.83m
포지션골키퍼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섐록 로버스 (1956)
뉴리 타운 (1961–1963)
클럽왓퍼드 (1963–1964): 48경기, 0골
토트넘 홋스퍼 (1964–1977): 472경기, 0골
아스널 (1977–1985): 237경기, 0골
토트넘 홋스퍼 (1985–1986): 0경기, 0골
에버턴 (1986): 0경기, 0골
총 출장 경기 수757경기
총 득점 수0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북아일랜드 (1964–1986): 119경기, 0골
수상
훈장CBE
기타
코치 경력토트넘 홋스퍼 (GK 코치, 199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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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16세 때인 1961년 지역 축구팀인 뉴리 타운 FC 유스팀에 입단하며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963년 당시 잉글랜드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던 왓퍼드로 이적했으며, 첫 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964년 6월, 27의 이적료로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토트넘에서 13년간 활약하며 팀의 FA컵 1회 우승(1967년), 풋볼 리그 컵 2회 우승(1971년, 1973년), UEFA컵 1회 우승(1972년)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73년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고, 1976년에는 골키퍼로는 최초로 PF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77년 토트넘이 2부 리그로 강등되자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널로 이적했다. 아스널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1979년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하는 등 꾸준한 기량을 선보였다. 1985년 아스널에서 은퇴를 선언했으나, 1986년 FIFA 월드컵 출전을 위해 잠시 토트넘 홋스퍼에 복귀하여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2.1. 초기 경력

11세에 뉴리에 있는 지역 18세 이하 팀(샴록 로버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이후 게일 축구에 집중했다. 16세 때인 1961년 고향 팀인 뉴리 타운 FC 유스팀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 복귀했다. 1963년 4월, 북아일랜드 U-18 대표팀 소속으로 UEFA U-18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하자, 잉글랜드 3부 리그왓퍼드 FC 스카우트 Bill McCracken영어의 눈에 띄었다.

1963년 5월, 그는 5의 이적료로 왓퍼드에 입단했으며, 같은 달 화이트 시티에서 열린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잉글랜드에서의 첫 시즌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소속팀의 모든 리그 경기에 출전했으며, 시즌 중 두 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64년 6월, 27의 이적료로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했다.

2.2. 왓퍼드 FC

11세 때 샴록 로버스 FC의 U-18 팀에서 뛰었으나, 이후 게일릭 풋볼에 전념했다. 1961년 16세 때 고향 팀인 뉴리 타운 FC 유스팀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1963년 4월, 북아일랜드 U-18 대표팀 소속으로 UEFA U-18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잉글랜드 3부 리그왓퍼드 FC에서 스카우트를 맡고 있던 빌 맥크라켄의 눈에 띄었다. 1963년 5월, 5000GBP의 이적료로 왓퍼드 FC에 입단했으며, 같은 달 화이트 시티에서 열린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왓퍼드에서의 첫 시즌 동안 모든 리그 경기에 출전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이 기간 동안 국가대표로 두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64년 6월, 27000GBP의 이적료로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했다.

2.3. 토트넘 홋스퍼 FC

1963년 왓퍼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후, 빌 니콜슨 감독의 권유를 받아 1964년 6월 27의 이적료로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1964년 8월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2-0 승리를 거두었다.

토트넘에서 13년 동안 활약하며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리그 472경기를 포함하여 모든 대회를 통틀어 총 591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967년 FA컵 우승, 1971년과 1973년 리그 컵 우승, 그리고 1972년 UEFA컵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1967년 FA 커뮤니티 실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자신의 골문 앞에서 펀트 킥으로 공을 길게 찼는데, 이 공이 바운드되어 상대 골키퍼 알렉스 스텝니의 머리 위를 넘어 골망을 흔들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1973년 풋볼 작가 협회(FWA)에서 선정하는 FWA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1976년에는 프로 축구 선수 협회(PFA)가 시상하는 PFA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골키퍼로서는 최초였으며 현재까지 피터 실턴과 함께 단 두 명뿐이다.

그러나 1976-77 시즌 토트넘은 리그 최하위로 세컨드 디비전으로 강등되었다. 그는 1977년 아스널로 이적했으며, 훗날 이적 당시를 "축구 인생에서 최악의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2.4. 아스널 FC

1977년 8월 6일, 토트넘은 제닝스가 선수 경력의 말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여 그를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널로 이적시켰다. 그러나 제닝스는 아스널에서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며 8년 더 활약했다. 하이버리에서 뛰는 동안 그는 아스널을 3년 연속 컵 결승(1978년, 1979년, 1980년 FA컵)과 1980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결승까지 총 4번의 결승으로 이끌었다. 이 중 아스널은 1979년 FA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으로 제닝스는 토트넘과 아스널 양 팀 소속으로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선수가 되었고, 아스널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제닝스는 1977년부터 1985년까지 아스널 소속으로 총 327경기에 출전했으며, 이 중 리그 경기는 237경기였다. 1983년 2월 26일, 그는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과의 리그 경기에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로 1군 통산 1,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의 아스널에서의 마지막 리그 경기는 1984년 11월 25일 셰필드 웬즈데이전이었고, 이후 존 루키치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넘겨주었다. 제닝스를 위한 고별 경기는 1985년 5월 8일 하이버리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열렸으며, 이 경기를 끝으로 아스널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5. 은퇴 후 복귀

은퇴를 발표한 후, 제닝스는 1986년 FIFA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토트넘 홋스퍼로 복귀했다. 그는 주로 리저브 팀에서 경기를 뛰며 북아일랜드 대표팀 합류를 위한 경기 감각을 유지했다. 토트넘 소속으로 뛴 마지막 공식 경기는 1986년 1월 풋볼 리그 슈퍼컵의 리버풀전이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에버튼과 단기 계약을 맺기도 했는데, 이는 주전 골키퍼 네빌 사우스올이 웨일스 대표팀 차출 중 부상을 당하자 1986년 FA컵 결승전을 대비하기 위한 영입이었다.

3. 국가대표 경력

1976년 197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네덜란드전에서 선방하는 모습
1976년 1978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네덜란드전에서 선방하는 모습

1963년 4월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북아일랜드 U-18 대표로 데뷔했다. 결승에서 잉글랜드에 0-4로 패했지만, 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경험은 그의 왓퍼드 FC 이적에 영향을 주었다.

18세이던 1964년 4월 15일, 영국 홈 챔피언십의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북아일랜드는 3-2로 승리했으며, 조지 베스트 역시 같은 날 데뷔했다. 이후 20년 이상 북아일랜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1966년부터 1986년까지 총 6번의 FIFA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는 북아일랜드의 2차 리그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1차 조별 리그 세 경기에서 단 한 골만 내주었고, 특히 개최국 스페인을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차 조별 리그에서는 프랑스에게 4골을 실점했다.

1985년 클럽 축구에서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1986년 FIFA 월드컵 참가를 위해 현역으로 복귀했다. 그는 자신의 41번째 생일에 열린 브라질과의 조별 예선 경기에 출전하며 당시 월드컵 역사상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이후 1994년 로제 밀라(42세), 2014년 파리드 몬드라곤(43세), 2018년 에삼 엘 하다리(45세)에 의해 차례로 경신되었다. 북아일랜드가 브라질에 0-3으로 패한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그는 총 119번의 A매치에 출전했으며, 이는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86년 12월 3일, 윈저 파크에서 제닝스 일레븐과 북아일랜드 대표팀 간의 은퇴 경기가 열렸다.

4. 은퇴 이후

현역 은퇴 이후에는 축구 지도자로 활동했다. 1993년 오스발도 아르디예스가 토트넘 홋스퍼 FC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골키퍼 코치로 복귀하여 후진 양성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해당 클럽의 아카데미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선수 시절 기록한 업적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아들 또한 팻으로, 골키퍼로 활동했다. 아들 팻은 아일랜드 리그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 데리 시티 FC, 샴록 로버스 FC와 북아일랜드 프리미어십의 글레나본 FC 등에서 활약했다.

제닝스와 그의 가족은 오랫동안 잉글랜드 허트퍼드셔의 브록스본에 거주해왔다. 그의 아들은 토트넘 시절 동료였던 크리스 휴턴, 오스발도 아르디예스, 레이 클레멘스의 아들들과 함께 브록스본 학교에 다녔다. 그는 여전히 토트넘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화이트 하트 레인과 벨파스트의 윈저 파크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딴 관전 공간인 '팻 제닝스 라운지'에서 기업 후원 팬들을 맞이하고 있다.

5. 수상 내역

토트넘 홋스퍼
* FA컵: 1966–67
* 풋볼 리그 컵: 1970–71, 1972–73
* FA 채리티 실드: 1967
* UEFA컵: 1971–72

아스널
* FA컵: 1978–79

북아일랜드
*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1979–80, 1983–84

개인
* 로스만 골든 부츠 어워드 (Rothmans Golden Boots Awards): 1973, 1974
* FWA 올해의 선수: 1972–73
*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1975–76
* PFA 1부 리그 올해의 팀: 1973–74, 1975–76
* 월드 사커 월드 XI: 1973
* FWA 공로상 (FWA Tribute Award): 1986
* 풋볼 리그 100명의 레전드: 1998
* 월드 사커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 1999 (89위)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3

서훈
*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 1976 (축구 기여 공로)
*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 1987 (북아일랜드 축구 기여 공로)
*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2023 (축구 및 자선 활동 기여 공로)

기타
* 2023년 11월 8일, 뉴리 킬데어 가(Kildare Street)에 제닝스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5.1. 클럽

16세 때인 1961년 지역 축구팀인 뉴리 시티 청소년 클럽에 입단했다. 1963년 당시 잉글랜드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던 왓퍼드로 이적했으며, 첫 시즌 동안 왓퍼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964년 6월 27의 이적료와 함께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토트넘에서 뛰는 동안 팀의 FA컵 1회 우승(1967년), 리그컵 2회 우승(1971년, 1973년), UEFA컵 1회 우승(1972년)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뛰어난 활약 덕분에 1973년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고, 1976년에는 PF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77년에는 토트넘의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널로 이적했다. 아스널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1979년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했다. 이후 1979년부터 1986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다시 토트넘 홋스퍼 소속으로 뛰었다.

5.2. 국가대표

1976년 네덜란드 대표팀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선방하는 모습
1976년 네덜란드 대표팀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선방하는 모습

18세 때인 1964년 북아일랜드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같은 해 4월 15일에 열린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북아일랜드는 웨일스에 3-2로 승리했다. 제닝스는 20여 년 동안 북아일랜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특히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북아일랜드의 2차 리그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41세의 나이로 참가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북아일랜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를 맡았다. 브라질과의 조별 예선 경기(북아일랜드는 브라질에 0-3으로 패배)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은퇴할 때까지 A매치 119경기에 출전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북아일랜드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으로 남아 있다.

5.3. 개인

* FWA 올해의 선수: 1973
* PFA 올해의 팀: 1973-74, 1975-76
* PFA 올해의 선수: 1976
* FWA 트리뷰트 어워드: 1986
*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 1999 (89위)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3

6.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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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등급훈장명
1976년5등급(MBE)대영 제국 훈장
1987년4등급(OBE)대영 제국 훈장
2023년3등급(CBE)대영 제국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