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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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퍼시픽 그랑프리는 1960년부터 1963년까지 미국 라구나 세카에서, 1994년과 1995년에는 일본 TI 서킷에서 개최된 자동차 경주 대회이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는 USAC 로드 레이싱 챔피언십의 일부로, 이후 1994년과 1995년에는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의 일부로 열렸다. 1994년과 1995년 대회에서는 미하엘 슈마허가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내 F1 붐의 침체, 서킷의 접근성 문제, 그리고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이 1990년대 이후 대회 개최가 중단된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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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그랑프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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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그랑프리 | |
개최 서킷 | |
![]() | |
랩 수 | 83 |
최초 개최 | 1960 |
마지막 개최 | 1995 |
총 개최 횟수 | 6 |
서킷 길이 (km) | 3.703 |
서킷 길이 (mi) | 2.300 |
레이스 길이 (km) | 307.349 |
레이스 길이 (mi) | 192.093 |
드라이버 최다 우승 | |
컨스트럭터 최다 우승 | |
현재 시즌 | 1995 |
우승 드라이버 | M. 슈마허 |
우승팀 | 베네통-르노 |
우승 시간 | 1:48:49.972 |
2위 | D. 쿨타드 |
2위 팀 | 윌리엄스-르노 |
2위 시간 | +14.920 |
3위 | D. 힐 |
3위 팀 | 윌리엄스-르노 |
3위 시간 | +48.333 |
폴 포지션 드라이버 | 데이비드 쿨타드 |
폴 포지션 팀 | 윌리엄스-르노 |
폴 포지션 랩타임 | 1:14.013 |
패스티스트 랩 드라이버 | 미하엘 슈마허 |
패스티스트 랩 팀 | 베네통-르노 |
패스티스트 랩 | 1:16.374 |
2. 역사
퍼시픽 그랑프리는 1994년과 1995년 두 차례 개최되었다. F1은 원칙적으로 연간 1개국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하지만, 인기가 있는 국가나 수익이 기대되는 국가의 경우 동일 국가 내에서 2~3개의 레이스가 개최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두 번째 이후의 레이스에는 해당 지역이나 인접 국가 등의 명칭을 붙이게 되는데, 일본의 경우에는 태평양을 의미하는 "퍼시픽"이 붙여졌다.
1994년, TI 서킷 에이다(현재의 오카야마 국제 서킷)의 경영 모체인 타나카 인터내셔널 사장 타나카 하지메가 버니 에클스톤에게 요청하여 퍼시픽 그랑프리가 처음 개최되었다. 하지만 일본 내 F1 붐의 침체, 서킷의 입지 및 교통 접근성의 불편함, 1995년 1월에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영향으로 인한 개최일 변경 등의 요인으로 1995년 관객 동원이 부진했고, 타나카 인터내셔널의 자금난까지 겹쳐 두 번의 개최로 중단되었다.
개최 당시 서킷 주변 도로망은 미비했다. 개최를 위해 오카야마 현의 협력 하에 급하게 도로 정비가 이루어졌지만 부분적인 정비에 그쳤다.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한 피스톤 수송을 실시하여 교통 체증을 유발했지만, 관객들에게 큰 혼란은 없었다.
서킷은 산간 지역에 위치해 주변에 상업 시설, 숙박 시설, 레스토랑이 없었다. 레이스 관계자들은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유노고 온천의 여관이나 중규모 호텔 등에 숙박해야 했다.
서킷 자체는 콤팩트하고 전장이 짧아 추월 지점이 적었기 때문에, 참가한 F1 드라이버들로부터 "미니 모나코 서킷"이라고 평가받았다.
이 레이스로 인해 일본은 같은 해에 여러 그랑프리를 개최한 9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나머지는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그리고 시즌의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한 긴급 일정 재조정 결과 오스트리아와 바레인).
2. 1. 1994년
1994년 첫 번째 챔피언십 레이스에서 미하엘 슈마허는 아일톤 세나가 미카 하키넨 및 니콜라 라리니와 첫 코너 사고에 휘말린 후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슈마허는 첫 코너에서 세나를 추월했고, 그 이후 선두 자리를 위협받지 않았다. 슈마허는 레이스 마지막 3분의 1 지점에서 2위를 달리고 있던 게르하르트 베르거를 랩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장 빠른 랩은 3랩에서 기록되었다. 이 레이스는 조던 팀과 루벤스 바리첼로가 3위로 F1에서 처음으로 포디움에 오른 것으로 유명했다.개막 2차전으로 4월에 개최되었다. 3차전 산마리노 GP에서 사고로 사망한 롤랜드 라첸버거와 아일톤 세나의 일본에서의 마지막 레이스였다.[1]
2. 2. 1995년
1995년 퍼시픽 그랑프리는 원래 4월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같은 해 1월에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영향으로 10월로 연기되었다.[1] 그 결과, 일본 그랑프리와 2주 연속으로 개최되는 드문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양쪽 관람객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이 레이스에서 미하엘 슈마허는 전략적인 승리로 두 번째 월드 챔피언십을 확정지었다. 슈마허는 당시 최연소 더블 월드 챔피언이었으나, 이후 페르난도 알론소와 제바스티안 페텔에게 기록이 경신되었다.
2. 3. 1996년 이후
F1영어은 1996년에도 퍼시픽 그랑프리 개최를 예정했으나, FIA와 서킷 측의 일정 조율 실패로 캘린더에서 삭제되었다.[1] 서킷 측은 전년과 같은 가을(9월~10월) 개최를 희망했지만, FIA는 기존 예정대로 봄(3월 말~4월) 개최를 원했기 때문이다.199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두 번째 F1 개최로 오토폴리스에서 "아시아 그랑프리" 개최가 계획되었으나, 관리 회사인 일본 트라이트러스트의 파산으로 무산되었다.[1]
2007년부터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일본 그랑프리가 개최되면서, 계속 개최를 원했던 스즈카 서킷은 "퍼시픽 GP"로 개최를 FIA에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즈카 서킷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2009년부터 후지 스피드웨이와의 격년 개최가 발표되었다.[4] 그러나 후지 스피드웨이가 2010년 이후 F1 개최에서 철수하면서,[5] 2010년 이후에는 스즈카 서킷에서 일본 그랑프리가 계속 개최되고 있다.
3. 개최 결과
1960년부터 1963년까지 라구나 세카에서 열린 '몬테레이 그랑프리'(en)를 '퍼시픽 그랑프리'라고 칭했다. 1960년부터 1962년까지는 미국 국내 스포츠카 레이스인 USAC 로드 레이싱 선수권(en)의 한 경기였으며, 1963년에는 선수권 종료로 비선수권 레이스로 개최되었다.[8] [9] [10] [11] [12] [13]
3. 1. 연도별 우승자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