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스 브로스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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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어스 브로스넌은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이다. 1974년 배우 커샌드라 해리스와 결혼하여 1983년 아들 션을 낳았고, 1982년 텔레비전 시리즈 《레밍턴 스틸》로 인기를 얻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영화 《007 골든아이》를 시작으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마타도어》, 《맘마 미아!》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2001년부터 유니세프 아일랜드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사회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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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브로스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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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피어스 브렌던 브로스넌 |
출생일 | 1953년 5월 16일 |
출생지 | 아일랜드 라우시주 드로이다 |
국적 | 아일랜드, 미국 |
직업 | 배우, 영화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75년 - 현재 |
학력 | |
출신 학교 | 드라마 센터 런던 |
가족 | |
배우자 | 캐산드라 해리스 (1980년 결혼, 1991년 사별) https://en.wikipedia.org/wiki/Keely_Shaye_Smith (2001년 결혼) |
자녀 | 5명 |
수상 | |
골든 라즈베리 상 | 최저 조연 남우상 (2009년 맘마 미아!) |
유럽 영화상 | 세계적 공헌상 (2016년) |
기타 수상 | 새턴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199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1998년) 엠파이어상 최우수 남우상 (2000년) 대영 제국 훈장 수훈 (2003년) |
대표 작품 | |
영화 | 버추얼 워즈 미세스 다웃파이어 007 시리즈 맨해튼 랩소디 화성 침공! 단테스 피크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다이아몬드 인 파라다이스 더 스나이퍼 맘마 미아! 시리즈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 고스트 라이터 리멤버 미 새벽의 끝에서 스파이 레전드 안녕, 나의 맨해튼 더 포리너 블랙 아담 |
텔레비전 드라마 | 탐정 렘밍턴 스틸 |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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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브로스넌은 1974년 영화 배우 커샌드라 해리스를 만나 1980년 결혼했다. 커샌드라는 리처드 해리스의 친척으로, 이전 결혼으로 두 아이를 두고 있었고 브로스넌은 초혼이었다. 1983년 아들 션을 출산했고, 커샌드라의 두 아이는 브로스넌의 성씨를 따랐다.[175]
결혼 후 1982년 텔레비전 시리즈 《레밍턴 스틸》의 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얻었다. 1985년부터 제임스 본드 역으로 거론되었지만 《레밍턴 스틸》의 연장 방송으로 1995년에야 《007 골든아이》로 5대 제임스 본드에 발탁되었다.[176] 이후 《007 네버다이》, 《007 언리미티드》, 《007 어나더데이》에 출연하며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디오 게임 《James Bond 007: Everything or Nothing》에서는 브로스넌의 모습과 목소리가 사용되기도 했다.
1991년 아내 커샌드라가 난소암으로 사망한 뒤, 브로스넌은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를 포함해 세 명의 자녀들을 길렀다.[175] 1993년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스튜' 역할을 맡았고, 199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로덕션 회사 ''아이리시 드림(Irish Dream)''을 세웠다. 1997년에는 영화 《단테스 피크》에서 '해리 달턴'을 연기했다.
2001년 TV기자 킬리 셰이 스미스와 재혼했으며,[177] 1997년 아들 딜런과 2001년 아들 패리스를 출산했고, 200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본드 역에서 물러난 후 《마타도어》, 《세러핌 폴스》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뮤지컬 영화 《맘마 미아!》에서 '샘 카마이클'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2001년 UNICEF 아일랜드 대사로 임명되었고, 비핵화 운동, 동성결혼 지지 등 다양한 사회 운동을 하고 있다.
2. 1. 어린 시절
브로스넌은 1953년 5월 16일 아일랜드 라우 주 드로헤다에서 목수인 아버지 토마스 브로스넌과 어머니 메이 사이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4] 그의 이름은 할아버지 피어스 브로스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할아버지의 이름은 그의 어머니인 마가렛 피어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5] 그는 12년 동안 미스 주 나반에서 살았으며, 1999년에 나반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6]브로스넌이 유아였을 때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그가 네 살이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때부터 그는 주로 외조부모인 필립과 캐슬린 스미스에게 길러졌다. 외조부모가 사망한 후, 그는 이모와 삼촌과 함께 살았지만, 이후에는 일레인이라는 여성이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나중에 "어린 시절은 상당히 고독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 어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돌아오셨습니다."라고 회상했다.[7]
브로스넌은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고,[8][9][10] 제대 시중을 드는 사제(altar boy)로 일하는 동안 드 라 살레 형제회가 운영하는 지역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10] 그는 1964년 8월 12일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로 가서 롱니드리에서 어머니와 새 아버지인 윌리엄 카마이클과 재회했다.[11][12] 카마이클은 브로스넌이 11살 때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드핑거'')를 보여주었다.[13] 그들은 나중에 런던으로 다시 이사했고, 브로스넌은 풋니에 있는 엘리엇 스쿨(현재 아크 풋니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7][14] 그의 학교 별명은 "아일랜드인"이었다.[15]
16세에 학교를 떠난 후, 브로스넌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런던의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에서 상업 일러스트레이션 교육을 시작했다.[16][17] 오발하우스에서 워크숍 리허설에 참석하는 동안, 그는 불 먹는 사람을 보고 함께하기로 결정했다.[18] 그는 런던 드라마 센터에서 3년 동안 배우로 수련했다.[19]
2. 2. 연기 경력
1975년 드라마 센터를 졸업하고 요크 극장 로열(York Theatre Royal)에서 연기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어둠을 기다리며(Wait Until Dark)''로 연기 데뷔를 했다.[20] 6개월 만에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에게 발탁되어 ''붉은 악마 배터리 사인(The Red Devil Battery Sign)'' 영국 초연에서 맥케이브 역을 맡았다.[20] 그의 연기는 런던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브로스넌은 윌리엄스가 보낸 "감사합니다, 제 사랑하는 소년"이라고 적힌 전보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21] 1977년에는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 감독의 ''필루메나(Filumena)''에 조안 플라이트(Joan Plowright), 프랭크 피널리(Frank Finlay)와 함께 출연했다.[22]''긴 좋은 금요일(The Long Good Friday)''(1980), ''거울이 깨어졌다(The Mirror Crack'd)''(1980) 등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프로페셔널(The Professionals)'', ''머피의 발작(Murphy's Stroke)'', ''오늘을 위한 연극(Play for Today)'' 등 초기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아메리카의 매니언(Manions of America)''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미국에서 TV 스타로 떠올랐다.[23] 1982년에는 BBC의 9부작 미니시리즈 ''낸시 애스터(Nancy Astor)''에서 로버트 굴드 쇼 2세(Robert Gould Shaw II)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상(Golden Globe Award)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24]
1982년, 남부 캘리포니아(Southern California)로 이주하여 NBC의 로맨틱 코미디 형사 시리즈 ''레밍턴 스틸(Remington Steele)''에 주연을 맡으며 인기를 얻었다.[2][11] 같은 해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는 브로스넌이 "젊은 제임스 본드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25] ''레밍턴 스틸'' 종영 후, 냉전(Cold War) 스릴러 ''제4의 프로토콜(The Fourth Protocol)''(1987), ''사기꾼들(The Deceivers)'', 미니시리즈 제임스 클라벨(James Clavell)의 ''노블 하우스(Noble House)''(이상 1988년), ''잔디 깎는 사람(The Lawnmower Man)''(1992) 등에 출연했다. 1992년에는 NBC에서 ''러닝 와일드(Running Wilde)''라는 파일럿을 촬영했지만 방영되지는 않았다.[26] 1993년에는 코미디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사랑의 희생자(Victim of Love)''(1991), ''데스 트레인(Death Train)''(1993), ''나이트 워치(Night Watch)''(1995) 등 여러 TV 영화에도 출연했다. 2003년에는 아일랜드 영화 및 텔레비전 아카데미(Irish Film and Television Academy)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27]
1986년 로저 무어(Roger Moore)가 본드 역에서 은퇴한 후, 드라마 ‘탐정 레밍턴 스틸’을 마친 브로스넌은 본드 역 제안을 받았다.[138] 그러나 NBC가 브로스넌과의 계약 옵션을 행사하면서 ‘탐정 레밍턴 스틸’이 재개되어, 브로스넌은 본드 역을 거절해야 했다.[139]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브로스넌을 프로듀서 앨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에게 추천한 사람은 당시 그의 아내였던 캐산드라 해리스(Cassandra Harris)였다.[140] 결국 브로콜리는 브로스넌 기용을 포기했고, 본드 역은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에게 돌아갔다. 달튼 주연으로 두 편의 작품이 제작되었지만, 두 번째 작품인 『007 살인 라이선스』는 흥행에 실패했다. 1991년 007 시리즈 저작권 분쟁으로 제작이 중단되었고, 1994년 4월 12일 달튼은 하차를 발표했다. 1994년 6월 7일, 브로스넌이 본드 역을 맡게 되었다.[141]
브로스넌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며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을 우려하여, 본드 역과 함께 다른 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도록 이온 프로에 요청했다. 그래서 ‘007’ 시리즈 외에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등 다양한 영화에 참여했다.
『다이 어나더 데이』 출연 후에도 본드 역을 계속하고 싶어 했지만,[142][143][144][145] 2004년 7월 하차를 제안했고,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6대 본드로 기용되었다.[146][147] 브로스넌은 코네리에 이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출연 시리즈는 4편으로 역대 세 번째로 적었다.[148]
영화 외에도 『머펫 쇼』에 본인 역으로 출연하여 코믹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2. 3. 제임스 본드
브로스넌은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 해리스(Cassandra Harris)가 007 유어 아이스 온리 촬영장에서 제임스 본드 영화 제작자인 앨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를 처음 만났다. 브로콜리는 본드 역을 로저 무어(Roger Moore)에게서 물려받을 사람으로 브로스넌을 점찍으며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그는 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25]1986년 NBC는 ''레밍턴 스틸''을 취소했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 역을 제안받자 이러한 홍보는 ''레밍턴 스틸''의 시청률을 높였고 계약상 브로스넌이 다시 프로그램에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갱신되었다.[25] 이로 인해 이온 프로덕션은 새로운 007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25] 제작진은 대신 ''007 살인면허''(1987년)과 ''007 라이센스 투 킬''(1989년)에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을 고용했다.[29]
본드 제작자들과 스튜디오 간의 배급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인해 1991년 세 번째 달튼 영화 제작이 취소되었고,[31] 몇 년간 본드 시리즈가 중단되었다. 법적 문제가 해결된 후, 달튼은 세 번째 영화에 출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994년 6월 7일, 브로스넌이 다섯 번째 본드 배우로 발표되었다.[25]
브로스넌은 네 번째 영화 옵션을 포함한 세 편의 본드 영화 계약을 체결했다. 첫 번째 영화인 1995년작 ''골든아이''는 전 세계적으로 3.5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32] 1995년 영화 중 전 세계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으며,[33]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문레이커'' 이후 가장 성공적인 본드 영화였다.[34] 로튼 토마토에서 78%의 평점을 받았고,[35] 메타크리틱에서는 65점을 받았다.[36]

1996년, 브로스넌은 제작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인 보 센클레어와 함께 아일랜드 드림타임이라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했다.[2] 브로스넌과 센클레어는 1998년 아일랜드 드림타임의 첫 작품인 ''조카''를 개봉했다.[39] 1년 후, 이 회사의 두 번째 스튜디오 작품인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가 개봉되어 비평적 및 흥행적 성공을 거두었다.[40]
브로스넌은 1997년 ''네버 다이''와 1999년 ''007 언리미티드''에도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2002년, 브로스넌은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네 번째로 본드 역을 맡았는데, 이전 두 편과 마찬가지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브로스넌 자신은 이후 자신의 네 번째 본드 영화의 여러 측면을 비판했다. 홍보 기간 동안 그는 제임스 본드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다른 작품도 하고 싶습니다. 코네리는 여섯 편을 했습니다. 여섯 편을 하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죠."[41] 브로스넌은 본드 영화 사이에 다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이온 프로덕션에 요청했다. 이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브로스넌은 본드 영화마다 그가 제작한 몇몇 영화를 포함하여 적어도 두 편의 다른 주류 영화에 출연했다.[15]
''다이 어나더 데이'' 개봉 직후, 언론에서는 브로스넌이 다섯 번째로 본드 역할을 재연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당시 브로스넌은 50세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브로스넌은 팬들과 비평가들이 모두 로저 무어가 57세까지 그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했던 것을 기억했지만, 그는 다섯 번째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과 프랜차이즈 팬들 모두로부터 긍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의 역할을 재연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열정적이었다.[42] 2004년 10월, 브로스넌은 자신이 그 역할에서 해고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43] 2005년 2월에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그 역할을 끝냈다고 게시했다.[44]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5년 10월 14일 그 역할을 인수했다.[45]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의 그의 임기 동안,[49] 브로스넌은 제임스 본드 비디오 게임에도 참여했다. 2002년, 브로스넌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 비디오 게임 ''007 나이트파이어''에서 본드의 얼굴로 사용되었고 (맥스웰 콜필드가 목소리를 연기했다). 2004년, 브로스넌은 본드 게임 ''제임스 본드 007: 에브리싱 오어 낫씽''에 출연하여 자신의 모습을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음성 작업도 했다.[50]
2. 4. 본드 이후
1996년, 브로스넌은 제작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인 보 센클레어와 함께 아일랜드 드림타임이라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했다.[2] 1998년 아일랜드 드림타임의 첫 작품인 ''조카''를 개봉했다.[39] 1년 후, 이 회사의 두 번째 스튜디오 작품인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가 개봉되어 비평적 및 흥행적 성공을 거두었다.[40]2002년, 브로스넌은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네 번째로 본드 역을 맡았는데, 이전 두 편과 마찬가지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브로스넌 자신은 이후 자신의 네 번째 본드 영화의 여러 측면을 비판했다. 그는 제임스 본드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고 언급하며, 코네리는 여섯 편을 했다고 말했다.[41] 브로스넌은 본드 영화 사이에 다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이온 프로덕션에 요청했고, 요청은 받아들여졌다.[15] 이후 팀 버튼의 ''마스 어택!''에서 과학자 역할부터 캐나다 최초의 환경 운동가 중 한 명인 영국인 아치볼드 스탠스필드 벨러니의 삶을 다룬 ''그레이 아울''의 주인공 역할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다이 어나더 데이'' 개봉 직후, 브로스넌이 다섯 번째로 본드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당시 브로스넌은 50세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팬들과 비평가들이 모두 로저 무어가 57세까지 그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워했던 것을 기억했지만, 그는 다섯 번째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42] 2004년 10월, 브로스넌은 자신이 그 역할에서 해고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43] 2005년 2월에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그 역할을 끝냈다고 게시했다.[44]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5년 10월 14일 그 역할을 인수했다.[45] 브로스넌은 "[크레이그는] 기억에 남는 본드가 되는 길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47] 브로스넌은 나중에 자신의 임기가 끝난 것에 상처를 받았다고 인정했다.[48]
제임스 본드 영화 임기 동안,[49] 브로스넌은 제임스 본드 비디오 게임에도 참여했다. 2002년, 브로스넌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 비디오 게임 ''007 나이트파이어''에서 본드의 얼굴로 사용되었고 (맥스웰 콜필드가 목소리를 연기했다). 2004년, 브로스넌은 본드 게임 ''제임스 본드 007: 에브리싱 오어 낫씽''에 출연하여 자신의 모습을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음성 작업도 했다.[50] 그는 2001년 ''파나마의 재단사''에서 제이미 리 커티스와 제프리 러시와 함께 출연했고, ''심슨 가족'' 에피소드 "트리하우스 오브 호러 XII"에서 기계 역할로 목소리 연기를 했다.

2004년부터 브로스넌은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아내인 케이틀린 맥나마라에 관한 영화 제작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51] 브로스넌의 본드 이후 첫 번째 역할은 2004년 영화 ''끌어당김의 법칙(Laws of Attraction)''에서 다니엘 라퍼티 역이었다. entertainment.ie의 가레스 머피는 브로스넌의 연기를 "놀랍도록 효과적"이라고 평했다.[52] 같은 해 브로스넌은 살마 하예크와 우디 해럴슨과 함께 ''석양 후(After the Sunset)''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53] 브로스넌의 다음 영화는 2005년 ''매타도르(The Matador)''였다. 그는 지친 신경증적인 암살자 줄리안 노블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54] 브로스넌은 골든 글로브의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앙코르(Walk the Line)''의 호아킨 피닉스에게 패했다.[56] 2006년에는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2006 FIFA 월드컵 공식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았다.[57]
2007년에는 리엄 니슨과 함께 영화 ''세라핌 폴스(Seraphim Falls)''에 출연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의 케빈 크러스트는 브로스넌과 니슨이 "훌륭한 적수"라고 언급했다.[58] 같은 해 브로스넌은 ''나비 효과(Butterfly on a Wheel)''에서 톰 라이언 역을 맡았다.
2008년 브로스넌은 메릴 스트립과 함께 아바(ABBA) 뮤지컬 ''맘마미아!''의 영화판에 출연했다.[61] 그는 소피(어맨다 사이프리드)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세 남자 중 한 명인 샘 카마이클 역을 맡았다.[62] 영화에서 브로스넌의 노래는 비평가들로부터 대체로 혹평을 받았다.[65][66][67] 브로스넌은 ''토마스와 친구들(Thomas & Friends)'' 영화 ''위대한 발견(The Great Discovery)''(2008)의 내레이션을 맡았다.[68]

로만 폴란스키의 2010년 정치 스릴러 ''고스트 라이터''에서 브로스넌은 몰락한 영국 총리를 연기했다. 그는 같은 해에 개봉된 ''리멤버 미''에서 찰스 호킨스 역과 ''퍼시 잭슨과 괴물의 바다(Percy Jackson & the Olympians: The Lightning Thief)''에서 키론 역을 맡았다. 2012년에는 덴마크 로맨틱 코미디 ''사랑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전부(Love Is All You Need)''에서 필립 역을 맡았다.[69]
2013년 브로스넌은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Trinity College Dublin)의 더블린 대학교 연극단(Dublin University Players) 명예 후원자로 임명되었다.[70] 그는 또한 ''노 이스케이프''에서 오언 윌슨과 함께 "영웅적인 정부 요원" 역을 맡았다.[71]
2013년 브로스넌은 아일랜드에서 스카이 브로드밴드(Sky Broadband) 출시를 홍보하기 위해 자신을 풍자적으로 연기한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했다.[73] 2014년 브론슨(Bronson)은 ''11월의 남자(The November Man)''에서 은퇴한 CIA 요원 드버로 역을 맡았고, 올가 쿠릴렌코가 조연으로 출연했다.[74] 이 영화는 로튼 토마토에서 34%, 메타크리틱에서 38/100을 기록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77][78] 2015년에는 밀라 요보비치와 함께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서바이벌''에 출연했다.[79] 브로스넌은 나중에 ''I.T.''(2016)라는 복수 스릴러 영화에 출연했고,[80]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를 통해 제한적으로 개봉되었다.[81]
브로스넌은 필립 마이어(Philipp Meyer)의 소설 ''더 선''의 텔레비전 각색에서 엘리 맥컬로 역을 맡았으며,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두 시즌 동안 방영되었다.[82] 2017년에는 재키 찬과 함께 ''더 포리너''에 출연하여 전 아일랜드 공화군(IRA) 출신 정부 관리 리암 헤네시 역을 맡았다.
2018년 브로스넌은 가이 피어스와 미니 드라이버와 함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스피닝 맨(Spinning Man)''에 공동 출연했다.[87] 그는 나중에 ''맘마미아!'' 속편인 ''맘마미아! 다시 한번(Mamma Mia! Here We Go Again)''에서 샘 카마이클 역을 첫 번째 영화의 다른 배우들과 함께 다시 맡았다.[88] 그는 또한 데이브 바티스타가 주연을 맡은 액션 스릴러 ''파이널 스코어''에서 조연을 맡았다.[89]
2021년 브로스넌은 강도극 ''미스핏츠''에서 제작 총괄과 주연을 맡았다.[90][91][92][93]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94] 그는 또한 A24의 공포 영화 ''폴스 포지티브''에서 공동 각본과 제작을 맡은 일라나 글레이저와 함께 출연했다.
브로스넌은 2022년 DC 확장 유니버스(DC Extended Universe) 영화 ''블랙 아담''에서 닥터 페이트/켄트 넬슨을 연기했다.[95] 그는 타일러 스핀델 감독의 넷플릭스 액션 코미디 영화 ''아웃로스''(2023)에서 애덤 디바인과 함께 출연했다.[96] 또한 같은 해에 브로스넌은 1997년 소설 ''달과 태양(The Moon and the Sun)''을 원작으로 한 가족 모험 영화 ''왕의 딸''에서 루이 14세 역을 맡았다.[97]
브로스넌은 필립 노이스 감독의 2023년 킬러 스릴러 영화 ''패스트 찰리(Fast Charlie)''에서 주연을 맡았다.[98]
3. 개인사
브로스넌은 드라마 센터 런던(Drama Centre London영어)에서 3년간 연기 훈련을 받았다.[19] 1980년 영화 배우 커샌드라 해리스와 결혼했다.[175] 커샌드라는 배우 리처드 해리스의 친척의 전 부인으로, 이미 두 번의 결혼으로 두 아이가 있었고 브로스넌은 초혼이었다. 1983년 아들 션을 출산했고, 커샌드라의 두 아이는 브러스넌의 성씨를 따랐다.[175]
1991년 아내 커샌드라가 난소암으로 사망한 뒤, 브로스넌은 세 명의 자녀들을 길렀다.[175] 2001년 TV기자 킬리 셰이 스미스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으며,[177] 1997년 아들 딜런, 2001년 아들 패리스를 출산했고, 200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2001년 UNICEF 아일랜드의 대사로 임명되었다.[159][160][161] 또한 비핵화 운동, 동성결혼 지지 등 다양한 사회 운동을 하고 있다.
브로스넌은 두 번 결혼했으며 한 번은 배우자를 잃었고, 다섯 명의 자녀와 네 명의 손주가 있다.[115][116] 그는 연극 학교를 졸업한 직후 리처드 해리스의 조카인 데이비드 해리스를 통해 호주 여배우 캐서린 해리스를 만났다.[2] 그들은 데이트를 시작하여 윔블던에 집을 샀다. 1980년 12월에 결혼하여 1983년 9월 13일에 아들 션을 낳았는데, 션은 후에 배우가 되었다. 또한 해리스의 전 남편과의 두 자녀인 샬롯(1971–2013)과 크리스도 키웠다. 브로스넌은 1986년 그들의 아버지 더멋 해리스가 사망한 후 그들을 입양했고, 그들은 그의 성을 따랐다.[2][117]
1987년 해리스는 난소암 진단을 받고 1991년 12월 28일에 사망했다.[118] 그의 입양딸 샬롯도 2013년 6월 28일에 난소암으로 사망했다.[119]
1994년 브로스넌은 미국 언론인 키일리 셰이 스미스를 만났다. 그들은 2001년 아일랜드 밸린터버 수도원에서 결혼했다.[2] 그들에게는 딜런과 파리스라는 두 아들이 있다.[120]
2004년 9월 23일, 그는 아일랜드 시민권을 유지하면서 미국 시민이 되었다.
4. 사회 운동
브로스넌은 2001년부터 유니세프 아일랜드(UNICEF Ireland)의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리암 니슨(Liam Neeson)과 함께 유니세프의 "아이들을 위한 연대, 에이즈에 맞서는 연대(Unite for Children, Unite against AIDS)" 캠페인에 참여했다.[103]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존 케리(John Kerry)를 지지했으며,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104]
1990년대에는 그린피스(Greenpeace)의 핵실험 반대 캠페인을 지원했고,[2] 영화 ''골든아이(GoldenEye)''의 프랑스 시사회를 보이콧하기도 했다.[105]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자연자원보호협의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NRDC) 및 국제동물복지기금(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 IFAW)과 함께 멕시코 라구나 산 이냐시오(Laguna San Ignacio)의 소금 공장 건설을 반대했다.[2]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안의 카브릴로 항 천연가스(Cabrillo Port Liquefied Natural Gas) 시설 건설도 반대하여 성공했으며,[106] 2007년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주지사가 이 시설 건설을 거부했다.[107]
2007년에는 하와이 카우아이(Kauai) 섬의 놀이터 교체에 100000USD를 기부했다.[108] 라이브 어스(Live Earth) 행사에도 참여했다.[109] 시 셰퍼드 보존협회(Sea Shepherd Conservation Society)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110] 2004년에는 '최고의 복장 환경 운동가'로 선정되었다.[111]
그는 그림 판매 수익금을 환경, 아동 및 여성 건강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으며,[2] 암 인식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여 2006년에는 유방암 모금 행사인 리 네셔널 데님 데이(Lee National Denim Day)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113]
2021년에는 "빅 노이즈(Big Noise)"라는 NFT(Non-fungible token) 디지털 아트 컬렉션을 출시했다.[114]
5. 출연 작품
피어스 브로스넌은 1980년 영화 《롱 굿 프라이데이》와 《거울이 깨어졌다》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유목민》(1986), 《제4의 의정서》(1987), 《기만자들》(1988)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1995년, 브로스넌은 《골든아이》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네버 다이》(1997), 《007 언리미티드》(1999), 《007 어나더 데이(2002)까지 총 4편의 007 시리즈 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007 어나더 데이 이후에도 본드 역을 계속하고 싶어 했지만, 제작사와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2004년에 하차했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본드 배우로 기용되었다.
제임스 본드 역 외에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99), 《맘마미아!》(2008), 《유령 작가》(2010)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1981년 미국에서 방영된 미니시리즈 《아메리카의 매니언(Manions of America)》에 출연하며 텔레비전 스타가 되었다.[23] 1982년에는 BBC의 9부작 미니시리즈 《낸시 애스터(Nancy Astor)》에 출연해 레이디 애스터(Lady Astor)의 삶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로버트 굴드 쇼 2세(Robert Gould Shaw II) 역으로 1985년 골든 글로브상(Golden Globe Award)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24]
같은 해, 남부 캘리포니아(Southern California)로 이주한 브로스넌은 NBC의 로맨틱 코미디 형사 시리즈 《레밍턴 스틸(Remington Steele)》에 주연을 맡아 인기를 얻었다.[2][11]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는 그가 "젊은 제임스 본드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25]
《레밍턴 스틸(Remington Steele)》이 1987년에 종영된 후, 냉전(Cold War) 스릴러 《제4의 프로토콜(The Fourth Protocol)》(1987), 미니시리즈 제임스 클라벨(James Clavell)의 《노블 하우스(Noble House)》(1988) 등에 출연했다. 1993년에는 코미디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에서 조연을 맡았다.
《사랑의 희생자(Victim of Love)》(1991), 《데스 트레인(Death Train)》(1993), 《나이트 워치(Night Watch)》(1995) 등 여러 편의 텔레비전 영화에도 출연했다.
2001년에는 《심슨 가족(The Simpsons)》 에피소드 "트리하우스 오브 호러 XII"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2003년, 아일랜드 영화 및 텔레비전 아카데미(Irish Film and Television Academy)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27]
5. 1. 영화
MTV 무비 어워드 최고의 액션 장면상 후보 (팜케 얀센과 공동)유럽 영화상 세계 영화계의 뛰어난 유럽적 업적 부문 후보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스크린 커플상 후보 (데니스 리차즈와 공동)
새턴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
골든 글로브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
제4회 아일랜드 영화 및 텔레비전 어워드 남우주연상 후보
세인트루이스 게이트웨이 영화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후보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조연상
영국/미국 더빙
비디오 직행
런던 영화 비평가 협회상 영국 최고의 조연상 후보
새틀라이트상 최우수 조연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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