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시메타로
1. 개요
하라 시메타로는 일본의 의사이자 뜸 연구의 선구자이다. 1882년 후쿠오카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토부립의전을 졸업하고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뜸 연구를 시작했다. 1929년 결핵에 걸린 토끼에게 뜸을 뜨면 저항력이 증가한다는 논문으로 일본 최초의 뜸 박사가 되었으며, 열 충격 단백질 연구의 시초로 여겨진다. 1929년 개업 후 1943년 카시이하라 병원을 설립했으며, 104세까지 진료를 했다. 반딧불이 연구, 쇼와 천황에게 헌상, 시즈오카현 풍토병 병원체 발견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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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의사 -
노구치 히데요
노구치 히데요는 1876년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 화상을 입었지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에서 매독과 황열병 연구를 수행하며 매독 스피로헤타를 발견하는 등 업적을 남겼지만 황열병으로 사망한 세균학자이다. -
일본의 의사 -
시가 기요시
시가 기요시는 메이지 시대의 세균학자이자 면역학자로, 이질균인 시겔라를 발견하여 학명에 그의 이름이 명명되었으며, 결핵 연구와 BCG 백신 도입에도 기여했지만, 경성제국대학 총장 재임 시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일본의 백세인 -
나카소네 야스히로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1918년 군마현 출생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행정 개혁, 국철 민영화 등을 추진하다가 2019년 사망했다. -
일본의 백세인 -
노사카 산조
노사카 산조는 일본의 공산주의 운동가로, 영국 유학 중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하여 일본 공산당 창립에 참여했으며, 제2차 중일 전쟁 기간에는 중국에서 활동했고, 전후 일본 공산당에서 활동하며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과거 동료 살해 연루 의혹으로 제명되었다. -
1991년 사망 -
달머스 라수라라
달머스 라수라라는 흑인 착취 영화와 TV 미니시리즈 《뿌리》에서 활약한 미국의 배우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출연했으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1991년 사망 -
존 바딘
존 바딘은 트랜지스터와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트랜지스터 발명과 BCS 이론 발표를 통해 현대 전자공학과 물리학 발전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다.
2. 생애
후쿠오카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토부립의전(현재의 교토부립의과대학) 졸업.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뜸 연구를 시작함. 1929년에 결핵에 걸린 토끼의 뜸을 뜬 뒤 저항력이 증가하는 걸 규명한 논문으로 일본 최초의 '뜸박사'가 됐다. 1929년에 개업했고, 1943년에는 카시이하라 병원을 설립. 병원장 의자를 장남에게 물려준 뒤에도 104세까지 청진기를 들고 진료했다.
1882년 10월 4일, 하라 타네노리·토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로다번에 속한 무사였으나 메이지 유신을 겪고, 현청의 관리로 일했지만 실업과 불우한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아이"는 필요 없다며 "조여" 시메타로라고 이름 지었지만 호적 담당자의 실수로 "郎(랑)"이 더해져 "시메타로"가 되었다.
고등소학교 졸업 후, 부모 곁을 떠나 후쿠오카시 오하마 3초메(현 하카타구다이하쿠마치)의 하라 산신의 의학생이 되어 독학했다. (후에 하라 일족의 사위가 된다.) 검정 자격을 취득하고 교토부립의전(현 교토부립의과대학)에 입학, 졸업했다. 규슈 제국 대학 의학부에서 미야이리 게이노스케 교수 및 오히라 토쿠조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뜸" 연구에 매진, 1929년, 결핵에 감염된 토끼에게 뜸을 뜨니 저항력이 증가한다는 것을 밝힌 논문으로 일본 최초의 "뜸 박사"가 되었다. (열 충격 단백질 연구의 시초라고도 한다.) 1929년 개업, 1943년 카시이하라 병원을 설립, 원장 자리를 장남에게 물려준 후에도 104세까지 청진기를 들고 "생애 한결같은 의사"를 관철했다.
104세까지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한 것, 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인 것, 반딧불이가 일본 주혈흡충의 숙주, 미야이리 조개의 천적임을 밝혀내는 등 반딧불이의 생태·사육 연구, 1961년 6월에는 쇼와 천황에게 반딧불이의 알, 유충을 헌상한 것, 시즈오카현의 풍토병의 병원체를 발견한 것 등, 업적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사망 약 2개월 전에 남성 장수 일본 제일이 되었지만, 하라 시메타로의 사망으로 인해 남성 장수 일본 제일은 오카 기헤이가 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하라 시메타로는 1882년 10월 4일, 후쿠오카번에서 무사였던 하라 타네노리와 토에 부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시메타로(조여)'라고 이름 지어졌으나 호적 담당자의 실수로 '시메타로(郎)'가 되었다.
고등소학교를 졸업한 후, 후쿠오카시에서 하라 산신의 의학생으로 독학했다. 검정 자격을 취득하고 교토부립의전(현 교토부립의과대학)을 졸업했다.
2.2. 의학 연구 및 업적
규슈 제국 대학 의학부에서 미야이리 게이노스케 교수 및 오히라 토쿠조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뜸 연구를 시작했다. 1929년, 결핵에 감염된 토끼에게 뜸을 뜨면 저항력이 증가한다는 것을 밝힌 논문으로 일본 최초의 '뜸 박사'가 되었다. 이는 열 충격 단백질 연구의 시초라고도 한다. 같은 해 개인 의원을 개업했고, 1943년에는 카시이하라 병원을 설립했다. 반딧불이가 일본 주혈흡충의 중간 숙주인 미야이리 조개의 천적임을 밝혀냈다. 1961년 6월, 쇼와 천황에게 반딧불이 알과 유충을 헌상했다. 시즈오카현 풍토병의 병원체를 발견하는 등, 업적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2.3. 말년
병원장 자리를 장남에게 물려준 후에도 104세까지 청진기를 들고 진료하며 '평생 의사'의 길을 걸었다. 사망 약 2개월 전에는 일본 남성 최고령자가 되었지만, 하라 시메타로의 사망으로 인해 남성 최고령자는 오카 기헤이가 되었다.
3. 뜸 연구와 의학적 공헌
3.1. 뜸 연구의 선구자
3.2. 결핵 치료 연구
3.3. 열 충격 단백질 연구의 시초
4. 저서
* 하라 시메타로/原志免太郎일본어 1927년 『뜸의 혈색소량 및 적혈구수에 미치는 영향』
* 하라 시메타로/原志免太郎일본어 1929년 『뜸법의 의학적 연구 : 국민 보건의 새로운 제창 : 결핵 치료의 새로운 복음』
* 하라 시메타로/原志免太郎일본어 1933년 『만병에 효과가 있는 뜸 요법』
* 하라 시메타로/原志免太郎일본어 1940년 『반딧불이』
* Hara Shimetarō영어 Medical Researches on Moxibustion (1941년)
* 하라 시메타로/原志免太郎일본어 1941년 『최신 뜸 치료 보전』
* 하라 시메타로/原志免太郎일본어, 하라 히로시/原寛일본어 1981년 『새로운 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