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선
1. 개요
하응선은 1883년 김옥균, 윤웅렬 등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 도야마 육군학교에서 신식 군사 교육을 받았다. 1884년 조련국 부장에 임명되었으나 청나라 교관 초빙으로 파직되었고, 그해 갑신정변에 참여하여 병조의 군사 일부를 지휘하며 왕을 호종하다가 청나라 군에게 살해되었다. 사후 복권 및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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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
김홍집
김홍집은 조선 말기 온건 개화파 정치가로서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후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주도했으나, 친일 정책과 단발령으로 민심을 잃고 아관파천 때 살해당하며 조선 근대화에 기여했으나 일본 간섭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갑신정변 -
유길준
유길준은 조선 후기 개화 사상가이자 정치가, 언론인으로, 서구 문물을 접한 후 갑신정변 연루, 갑오개혁 참여, 아관파천 이후 망명, 애국계몽운동 전개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나, 근대화에 기여했음에도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도 있는 인물이다. -
육군 군인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육군 군인 -
샤를 드골
샤를 드골은 프랑스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자유 프랑스 운동을 이끌고 전후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프랑스 해방과 재건에 기여했으나, 독단적인 성격과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
조선의 무신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무신 -
김응우
김응우는 김일성의 고조부로 평안도 대동 출신이며, 북한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격침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고, 김일성 가문으로 이어진 전주 김씨이다.
2. 생애
하응선은 1883년(고종 20년) 김옥균, 윤웅렬 등 개화파 인사들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 도쿄로 갔다. 그해 조선 개화파의 부탁으로 신문 간행을 위해 초빙되었던 일본인 우시바(牛場皁藏) 등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조선인 유학생 17명을 동반하였는데, 이때 하응선도 그중 한 명이었다. 1884년 1월 서재필, 이규완, 신응희, 임은명(林殷明), 신중모(申重模), 윤영관(尹泳寬), 정행징(鄭行徵) 등 13명과 함께 도야마 육군 학교(戶山陸軍學校)에 입교하여 신식 군사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도야마 육군하사관학교의 7개월 단기 과정을 마치고 서재필, 서재창 등 수료생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1884년 12월 조련국 부사관장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하여 병조의 군사 일부를 인솔, 지휘하고 사관생도 출신들과 함께 왕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청나라 군의 개입으로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하면서, 민씨 척족과 청나라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왕을 호종하던 홍영식, 박영교, 사관생도 7명과 함께 살해되었다.
1895년 3월 1일 법무대신 서광범의 건의로 복권되었다가 김홍집 내각의 실각으로 추탈되었다. 1910년(융희 4년) 조선 건국 이후 각종 정변과 개혁 시 참화를 당한 인물들을 신원, 사면복권시키고 관직을 추증하자, 그해 7월 18일 순종의 특명으로 서재창, 윤영관(尹泳觀), 백낙운(白樂雲) 등과 함께 증 통정대부 규장각부제학에 추증되었다.
2.1. 일본 유학
1883년(고종 20년) 김옥균, 윤웅렬 등 개화파 인사들의 주선으로 일본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 도쿄로 갔다. 그해 조선 개화파의 부탁으로 신문 간행을 위해 초빙되었던 일본인 우시바(牛場皁藏) 등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조선인 유학생 17명을 동반하였는데, 하응선은 이때 유학생의 한 사람이었다. 1884년 1월 서재필, 이규완, 신응희, 임은명(林殷明), 신중모(申重模), 윤영관(尹泳寬), 정행징(鄭行徵) 등 13명과 함께 도야마육군학교(戶山陸軍學校)에 입교하여 신식 군사 교육을 받았다.
그해 7월 토야마 육군하사관학교의 7개월 단기 과정을 마치고 서재필, 서재창 등 수료생들과 함께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