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즙
1. 개요
하즙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1303년 진주에서 출생하였다. 1321년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판도좌랑을 거쳐 삼사의 판관을 역임했고, 132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347년 정치도감의 정치관으로 활동하며 기황후의 친족 기삼만의 불법적인 토지 겸병을 처벌하려다 옥사한 기삼만 사건에 연루되어 장형을 받고 사망했다. 문하찬성사로 치사하고 진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원정이다. 강회백은 하즙을 "도량이 존엄하고 성품이 화순하며 관대하였다"고 평했다.
| 이름 | 진주군 하즙 晉州君 河楫 |
|---|---|
| 출생일 | 1303년 |
| 출생지 | 고려 경상도 진주군 (現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 |
| 사망일 | 1380년 8월 9일 (78세) |
| 국적 | 고려 |
| 본관 | 진양(晉陽) |
| 별명 | 자 득제(得齊) 호 송헌(松軒) 시호 원정(元正) |
| 별칭 | 하집(河楫) |
| 아버지 | 하직의(河直漪) |
|---|---|
| 어머니 | 진주 정씨(晋州 鄭氏) |
| 배우자 | 진한대부인 철성 이씨 |
| 자녀 | 하윤원(아들) |
| 친인척 | 하보(조부), 하자종(손자) |
| 군주 | 충정왕 → 공민왕 |
|---|---|
| 섭정 | 왕태후 덕녕공주 패아지근씨(前) |
| 직책 |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 임기 | 1350년 ~ 1363년 |
| 학력 | 1324년 문과 갑과 3등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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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년 출생 -
호조 다카토키
호조 다카토키는 가마쿠라 막부의 제14대 싯켄으로, 재임 기간 동안 여러 난과 막부 전복 시도를 겪었으며, 정치적 무능과 미흡한 대처로 가마쿠라 막부 멸망에 영향을 주었고 가마쿠라 공방전에서 자결하였다. -
1303년 출생 -
원 영종 (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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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년 사망 -
호유용
호유용은 명나라 초 좌승상으로 권력을 남용하다 홍무제에 의해 역모죄로 처형되었고, 이 사건으로 재상 제도가 폐지되고 황제 중심의 독재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최근에는 사건 조작 가능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
1380년 사망 -
샤를 5세
샤를 5세는 백년 전쟁 시기 섭정으로 즉위하여 에티엔 마르셀의 반란과 자크리의 난을 진압하고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으며, 상비군과 관료층을 확립하여 프랑스 절대왕정의 기초를 다졌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1. 관직 진출
1321년 음서(천거)로 판도좌랑(判圖佐郞)에 임명되었으며, 삼사(三司)의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이후 1324년 문과에 응시하여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였다.
2.2. 정치 활동
1347년 (충목왕 3) 2월에 전민(田民)의 겸병 사태(兼倂事態)를 바로잡기 위해 설치된 정치도감(整治都監)의 정치관(整治官)으로 활동하였다. 사헌부 대관으로 재임시 기황후의 친족인 기삼만의 불법적인 토지 겸병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그가 옥사(獄死)하게 되자, 그 해 10월 원나라에서 온 직성사인(直省舍人) 승가노(僧家奴)에 의해 백문보, 신군평, 남궁민 등의 정치관들과 함께 장형에 처해졌다.
3. 가족
하보(河保)를 할아버지로, 하직의(河直漪)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어머니는 진주 정씨(晋州 鄭氏) 부인이다. 부인은 철성 이씨(鐵城李氏)(진한대부인)이며, 아들은 하윤원(河允源)(대사헌)이다. 하자종(河自宗)(증좌의정)은 손자이다.
3.3. 직계 후손
* 하승무(24세손, 역사신학자, 시인)
* 하경덕(25세손, 사회학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