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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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주 정씨는 신라 건국 6부족 중 하나인 진지촌의 지백호를 원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진주 정씨는 진주8정으로 불리며, 정예, 정자우, 정장, 정헌을 시조로 하는 4개 파가 주류를 이룬다. 고려 시대에는 정예가 광록대부,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고, 정자우의 후손은 진양부원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정척이 판윤을 역임하는 등 주요 인물을 배출했다. 2015년 기준 약 32만 명으로, 인종의 후궁 혜빈 정씨 등을 배출하여 조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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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정씨 - 정원식
정원식은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대학교수, 정무직공무원, 정치인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서리 및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논란과 대학생 계란 투척 사건을 겪었고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낙선하기도 했다. - 진주 정씨 - 정호준
정호준은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 그래픽커뮤니케이션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삼성전자, 열린우리당,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활동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부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진주 정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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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 | 진주 정씨 |
| 이칭 | 진양 정씨 |
|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 시조 | 정예 정자우 정장 정헌 정중공 정온 정신 정안교 |
| 집성촌 |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남도 남해군 경상남도 하동군 전라남도 영광군 전라남도 화순군 전라남도 광양시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충청남도 서산시 평안북도 녕변군 |
| 인물 | 정온 정이오 정척 정분 정경세 정일형 정헌주 정원식 정일성 정철기 정균환 정대철 정홍원 정화원 정상용 정병석 정성호 |
| 년도 | 2015 |
| 인구 | 324,521명 |
| 나라 | 한국 |
2. 역사
진주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거렬성이었다. 663년(문무왕 3) 신라에 편입되어 거타주가 설치되었으며, 685년(신문왕 5)에 청주로 변경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강주도독부로 개칭되었다. 혜공왕 때 다시 청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에 강주로 환원되었고, 983년(성종 2)에 12목의 하나인 진주목으로 개편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이라 불리며 절도사가 파견되어 산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012년에 안무사로 바뀌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 건국 후 진양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상도 진주목의 토성(土姓)으로 정(鄭)·하(河)·강(姜)·소(蘇) 4성이 기록되어 있다.[1]
1896년 경상남도 진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은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2. 1. 시조 및 기원
신라 건국 6부족의 하나인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를 원시조로 한다. 지백호 이후의 계대가 밝혀진 바가 없어 이를 증명할 수 없어 진주 정씨에는 뿌리가 다른 여덟 계통의 정씨가 있다. 이를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그중 4개 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으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통설이다.- 시조 정예(鄭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光祿大夫)·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 平章事)를 지냈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 시조 정자우(鄭子友)는 호장(戶長)을 지냈다. 정자우의 6세손으로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에 봉해진 정신열(鄭臣烈)을 중조(中祖)로 하는 파(派)와 7세손 정중공(鄭仲恭)을 중조로 하는 파, 8세손인 좌우위보승중랑장(左右衛保勝中郞將) 정보경(鄭普卿)을 중조로 하는 파로 나누어진다.
- 시조 정장(鄭莊)은 고려 말엽에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지냈다. 정장의 4세손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判尹)을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파도 있다.
- 시조 정헌(鄭櫶)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둘째 아들 정택(鄭澤)은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어사공파(御史公派)도 있다.
2. 2. 고려 시대
신라 건국 6부족의 하나인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를 원시조로 한다. 지백호 이후의 계대가 밝혀지지 않아 이를 증명할 수 없어 진주 정씨에는 뿌리가 다른 여덟 계통의 정씨가 있다. 이를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그중 4개 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으로 크게 구분하는 것이 통설이다.- 시조 정예(鄭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光祿大夫)·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 平章事)를 지냈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 시조 정자우(鄭子友)는 호장(戶長)을 지냈다. 정자우의 6세손으로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에 봉해진 정신열(鄭臣烈)을 중조(中祖)로 하는 파(派)와 7세손 정중공(鄭仲恭)을 중조로 하는 파, 8세손인 좌우위보승중랑장(左右衛保勝中郞將) 정보경(鄭普卿)을 중조로 하는 파로 나누어진다.
- 시조 정장(鄭莊)은 고려 말엽에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지냈다. 정장의 4세손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判尹)을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파도 있다.
- 시조 정헌(鄭櫶)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둘째 아들 정택(鄭澤)은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어사공파(御史公派)도 있다.
2. 3. 조선 시대
진주 정씨는 신라 건국 6부족 중 하나인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를 원시조로 한다. 지백호 이후의 계대가 밝혀지지 않아, 진주 정씨에는 뿌리가 다른 여덟 계통, 즉 진주8정(晋州八鄭)이 있다. 그중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이 주류를 이룬다.- 정예(鄭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光祿大夫)·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 平章事)를 지냈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 정자우(鄭子友)는 호장(戶長)을 지냈다. 정자우의 6세손으로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에 봉해진 정신열(鄭臣烈)을 중조(中祖)로 하는 파(派)와 7세손 정중공(鄭仲恭)을 중조로 하는 파, 8세손인 좌우위보승중랑장(左右衛保勝中郞將) 정보경(鄭普卿)을 중조로 하는 파로 나누어진다.
- 정장(鄭莊)은 고려 말엽에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지냈다. 정장의 4세손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判尹)을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파도 있다.
- 정헌(鄭櫶)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둘째 아들 정택(鄭澤)은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어사공파(御史公派)도 있다.
3. 분파
신라 건국 6부족 중 하나인 진지촌(珍支村)의 지백호를 원시조로 한다. 지백호 이후의 계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진주 정씨는 뿌리가 다른 여덟 계통으로 나뉘며, 이를 진주8정(晋州八鄭)이라 한다. 이 중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이 주류를 이룬다.[1]
3. 1. 정예 계통
지백호를 원시조로 하는 진주 정씨는 뿌리가 다른 여덟 계통으로 나뉘며, 이를 진주8정(晋州八鄭)이라 한다. 그중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이 주류를 이룬다.[1]정예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문익공 정시양(鄭時陽)을 일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1]
정예 계통의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다.[1]
| 파명 | 주요 인물 |
|---|---|
| 충장공파 | 정분 |
| 효자공파 (장흥파) | 정광로(鄭光露) |
| 익은공파 (진주파) | 정준(鄭遵) |
| 문영공파 | 정지산(鄭之産) |
| 지평공파 | 정순(鄭蓴) |
| 대사성공파 | 정여(鄭茹) |
| 담계공파 | 정온(鄭蘊) |
| 석성공파 | 정종오(鄭從吾) |
| 목사공파 | 정효안(鄭孝安) |
| 제학공파 | 정천귀(鄭天貴) |
| 화헌공파 | 정결(鄭缺) |
| 충장공파 | 정황(鄭璜) |
| 부원군파 | 정작(鄭作) |
| 내부사공파 | 정안교(鄭安校) |
| 첨정공파 | 정중공(鄭仲恭) |
3. 2. 정자우 계통
정자우(鄭子友)는 호장(戶長)을 지냈다. 정자우의 6세손으로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에 봉해진 정신열(鄭臣烈)을 중조(中祖)로 하는 파와 7세손 정중공(鄭仲恭)을 중조로 하는 파, 8세손인 좌우위보승중랑장(左右衛保勝中郞將) 정보경(鄭普卿)을 중조로 하는 파로 나누어진다.[1]3. 3. 정헌 계통
정헌(鄭櫶)은 고려 말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냈으며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둘째 아들 정택(鄭澤)은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어사공파(御史公派)가 있다. 정헌을 시조로 하는 계통은 다음과 같다.- 우곡공파(愚谷公派): 정온(鄭溫)
- 어사공파(御史公派): 정택(鄭澤)
- 지후공파(祗侯公派): 정신(鄭侁)
3. 4. 정장 계통
고려 말엽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지낸 정장(鄭莊)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정장의 4세손 정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判尹)을 지냈으며, 그를 중조로 하는 파도 있다. 정장을 시조로 하는 공대공파(恭戴公派)가 있다.4. 본관
진주(晉州)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거렬성(居烈城)이었다. 663년(문무왕 3) 신라에 편입되어 거타주(居陀州)가 설치되었으며, 685년(신문왕 5)에 청주(菁州)를 설치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에 다시 강주로 환원되었고, 983년(성종 2)에 12목의 하나인 진주목으로 개편하였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 건국 후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상도 진주목의 토성(土姓)으로 정(鄭)·하(河)·강(姜)·소(蘇) 4성이 기록되어 있다.[1]
1896년 경상남도 진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5. 주요 인물
6. 집성촌
| 지역 |
|---|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 |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구천리 |
|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 정포리 |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성기리 |
| 전라남도 광양시 골약동 중동리 |
|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조양리 |
|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서유리 |
|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 덕산리 |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덕임리 |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 |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면 길곡리 |
7. 항렬자
는 세대 순서에 따라 이름에 사용되는 글자를 말한다. 진주 정씨는 파별로 항렬자를 공유하거나 순서가 다를 수 있다.
- 충장공 효자공파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
| 한(漢) |
- 충장공 익은공파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
| 口현(鉉) | 영(永) | 口식(植) | 대(大) | 口효(孝) | 종(鍾) | 口순(淳) | 동(東) | 口열(烈) | 중(重) | 口석(錫) | 태(泰) | 口상(相) | 용(容) |
- 충장공 문영공파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
| 헌(憲) | 口희(喜) | 종(鍾) | 口순(淳) | 근(根) | 口묵(黙) | 치(致) | 口선(善) | 해(海) | 口래(來) | 대(大) | 口중(中) | 경(庚) | 口구(求) |
- 은열공파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
| 口환(煥) | 재(載) | 口호(鎬) | 원(源) | 口식(植) | 연(然) | 口주(周) | 종(鍾) | 口영(永) | 병(秉) | 口덕(悳) | 균(均) | 口흠(欽) | 호(浩) | 口근(根) | 희(熙) | 口배(培) | 진(鎭) | 口순(淳) | 병(炳) | 口휴(烋) | 시(時) | 口용(鎔) | 제(濟) |
- 공대공파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
| 口화(和) |
- 어사공파
| 20세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
| 동(東) | 口묵(黙) | 재(在) | 口진(鎭) | 영(泳) |
8. 인구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진주 정씨는 74,777가구, 238,505명으로 조사되었다.[1] 2015년 조사에서는 진주 정씨 197,242명, 진양 정씨 127,279명을 합하여 총 324,521명으로 집계되었다.
| 연도 | 총 가구 | 진주 정씨 인구 | 진양 정씨 인구 | 총 인구 |
|---|---|---|---|---|
| 2000년 | 74,777 | 238,505 | - | 238,505 |
| 2015년 | - | 197,242 | 127,279 | 324,521 |
9.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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