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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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트누아는 2012년 치피 리브니가 창당한 이스라엘의 정당이다. 자유주의, 세속주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 재개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2013년 총선에서 6석을 얻어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에 참여했으나,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과 연합하여 시오니스트 연합을 결성했다. 2019년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해산되었다.

하트누아 - [정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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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누아 로고
지도자치피 리브니
본부텔아비브, 이스라엘
웹사이트https://web.archive.org/web/20130302032128/http://www.hatnua.org.il/%7C하트누아 공식 웹사이트 (보관됨)
국가이스라엘
로마자 표기Hatnua
창립일2012년 11월 27일
해산일2019년 2월 18일
분할 대상카디마
포지션중도에서 중도좌파
색상파랑, 하양
이념
주요 이념자유주의
두 국가 해법
세속주의
환경주의
제3의 길
자유주의 시온주의
정치적 위치
정치적 스펙트럼중도에서 중도좌파
의석 정보
최대 의석수8석 (2012년)
최소 의석수5석 (2016년)
참여 연합
전국시온주의자 연합 (20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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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당 배경 및 과정

2012년 11월, 치피 리브니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 재개와 이스라엘의 국제적 지지 유지를 목표로 하트누아를 창당했다. 야이르 라피드와 셸리 야키모비치에게서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비사회주의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독자 창당을 결심했다.

창당 직후, Ynetnews의 여론조사에서 리브니는 야키모비치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네타냐후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2013년 총선을 앞두고 리브니는 야키모비치, 라피드와 연합하여 리쿠드 베이테누에 맞설 것을 제안했으나, 라피드는 극우 정당의 연정 참여를 막기 위해 네타냐후 정부 합류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견 차이를 보였다.

2.1. 창당 선언

2012년 11월 27일 치피 리브니는 공식적으로 하트누아의 창당을 발표했다.
2012년 11월 27일 치피 리브니는 공식적으로 하트누아의 창당을 발표했다.

치피 리브니는 2012년 11월 27일 텔아비브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하트누아 창당을 발표했다. 리브니는 하트누아를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이며, 민주적인 정당"으로 묘사하며, 리쿠드노동당의 "가장 훌륭한 인물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리브니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의 평화 회담이 진행되지 않는 동안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에 들어간 정부를 비판하며 정당 창당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후 예루살렘 포스트 기고를 통해 "나는 평화를 위해 싸우러 왔다. ... 나는 안보를 위해 싸우러 왔다. ... 나는 유대 국가를 위해 싸우러 왔다. ... 나는 민주주의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러 왔다."라고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또한, 리브니는 초정통파의 징병을 추진하고 이스라엘 청소년을 위한 사회 정의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며, 당시 최근 리쿠드 예비 선거가 정당의 강경 우파 파벌을 더욱 강화했다고 언급했다.

2.2. 초기 구성

하트누아는 헤츠(Hetz) 정당의 남은 조직을 인수하여 만들어졌으며, 헤츠의 은행 계좌에 있던 1800을 상속받았다. 카디마에서 탈당한 7명의 크네세트 의원들이 하트누아에 합류했다.

2.3. 주요 인사 영입

2013년 이스라엘 입법 선거에서 하트누아는 6석을 얻었다. 주요 인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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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이름
1치피 리브니
2암람 미츠나
3아미르 페레츠
4엘라자르 스턴
5데이비드 추르
6메이르 시트리트


아미르 페레츠는 이후 노동당으로 복귀했다.

3. 이념 및 정책

하트누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평화 협상 재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힘썼다.

3.1. 외교 정책

치피 리브니는 이스라엘의 수석 평화 협상가로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며,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하트누아는 외교 정책 문제,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회담 재개와 국제 사회, 그중에서도 미국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리브니는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세 단계 절차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미국과의 조율, 두 번째는 유럽 연합(EU)의 협상 지원 활용, 세 번째는 팔레스타인과의 직접 협상이다. 또한 하마스가 테러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하마스와의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3.2. 사회 정책

하트누아는 환경과 사회권을 보호하는 이스라엘 기본법 통과를 약속했다. 차등 부가가치세를 지지했으며, 서안 지구 정착촌과 초정통파 부문별 이익에 대한 기존 보조금을 취소하고 천연 자원 채굴에 대한 수수료를 인상하는 것을 지지했다. 리브니는 오랫동안 여성 권리와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해 왔으며, 하트누아는 이스라엘의 동성 결혼을 지지했다.

하트누아는 다른 중도 좌파 정당들과 유사한 사회적 의제를 가졌다. 리브니는 진보주의 성향이며, 카디마 지도자로서 종교 정당들의 연립 조건을 거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트누아는 종교와 국가 문제에 대해 자유주의적이었다. 예쉬 아티드와 마찬가지로, 개종 개혁을 지지했다.

3.3. 경제 정책

하트누아는 제3의 길 경제 정책을 지지했다. 경제 문제를 국가 안보 및 외교 상황과 연관하여 보았다. 치피 리브니는 평화 협정의 부재가 이스라엘의 경제 성장과 온건한 아랍 국가들과의 동맹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트누아는 차등 부가가치세를 지지했으며, 서안 지구 정착촌과 초정통파 부문별 이익에 대한 기존 보조금을 취소하고 천연 자원 채굴에 대한 수수료를 인상하는 것을 지지했다.

4. 2013년 총선 및 연립 정부 참여

2013년 크네세트 선거에서 하트누아는 6석을 획득했다. 시몬 페레스 대통령에게 총리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의 정부에 합류하기로 서명한 최초의 정당이 되었다. 연정 합의에 따라 치피 리브니가 법무부 장관을, 아미르 페레츠가 환경보호부 장관을 맡게 되었고, 리브니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 수석 협상가로 임명되었다.

연정 협상 과정에는 초정통파 징집 문제도 포함되었는데, 하트누아의 엘라자르 슈테른 의원은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트누아는 연정 파트너인 유대인의 집과 평화 협상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4.1.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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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대표득표수득표율의석+/-상태
2013년치피 리브니189,167 (#7)4.996 / 120-1연립
2015년시온주의 연합의 일원--6 / 1200야당


2013년 이스라엘 입법 선거에서 하트누아는 4.99%의 득표율로 6석을 획득했다.

2015년 이스라엘 입법 선거에서 하트누아는 시온주의 연합 명단에 포함되어 7석을 배정받았고, 시오니스트 연합은 총 24석을 얻었다. 그 결과 하트누아에서는 5명이 선출되었다. 2015년 9월, 하트누아 소속 국회의원 아미르 페레츠가 시오니스트 연합의 자매 정당인 노동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하트누아의 의석수는 4석으로 줄었다. 2015년 11월, 노동당 국회의원 다니 아타르가 유대 민족 기금 의장직을 맡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하면서, 하트누아 후보였던 야엘 코헨 파란이 의원직을 승계받아 하트누아의 의석수는 다시 5석으로 늘었다.

2019년 4월 이스라엘 입법 선거를 앞둔 2019년 1월 1일, 노동당 대표 아비 가바이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시오니스트 연합 정당 회의에서 노동당이 하트누아와 함께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여론 조사 결과 하트누아는 3.25%의 선거 봉쇄 조항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었고, 치피 리브니는 2019년 2월 18일 중도 좌파 표 분열을 막기 위해 하트누아가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4.2. 연립 정부 구성

2013년 크네세트 선거에서 6석을 획득한 하트누아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정부에 합류하기로 서명한 최초의 정당이 되었다. 연정 합의에 따라 하트누아는 법무부와 환경보호부를 배정받았는데, 치피 리브니가 법무부 장관을, 아미르 페레츠가 환경보호부 장관을 맡았다. 또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장관 팀이 구성되었고, 리브니가 수석 협상가로 임명되었다.

페레츠는 환경보호부 장관 재임 기간 동안 "환경 정의와 사회 정의는 분리될 수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는 특히 아랍 도시와 베두인 마을에 폐기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남부 지역 주민들의 환경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45 예산을 승인받고, 식료품점에서 무료 비닐봉투를 없애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2014년 11월, 네타냐후의 정책과 평화 협상 부재에 대한 좌절감으로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리브니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동성 커플에게 동등한 상속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4.3. 연정 내 활동 및 갈등

2013년 크네세트 선거에서 6석을 획득한 하트누아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정부에 합류하기로 서명한 최초의 정당이 되었다. 연정 합의에 따라 하트누아는 법무부(리브니 담당)와 환경보호부(페레츠 담당)를 배정받았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장관 팀이 구성되어 리브니가 수석 협상가로 임명되었다.

연정 협상에는 초정통파 징집 문제도 포함되었다. 하트누아의 국회의원 엘라자르 슈테른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으며, 징집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예시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자 했다.

하트누아는 다른 연정 파트너인 유대인의 집과 자주 충돌했는데, 특히 하트누아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유대인의 집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평화 협상과 관련하여 갈등을 빚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리브니는 또한 동성 커플에게 동등한 상속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5. 2015년 총선 및 시오니스트 연합

2014년 12월, 네타냐후 총리가 리브니 법무부 장관과 라피드 재무부 장관을 해임하자, 하트누아는 노동당과 시오니스트 연합을 결성하여 2015년 3월 총선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리브니와 노동당 대표 이츠하크 헤르조그는 총리직을 번갈아 맡기로 합의했다.

5.1. 연합 결성 배경

2014년 12월, 네타냐후 총리는 리브니 법무부 장관과 라피드 재무부 장관을 해임했다. 하트누아는 곧 있을 2015년 3월 선거에서 야당인 노동당과 공동 출마하기로 합의했다. 총리직은 리브니와 노동당 대표 이츠하크 헤르조그가 번갈아 맡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