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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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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디마는 2005년 아리엘 샤론에 의해 창당된 이스라엘의 정당이다. 샤론의 리쿠드당 탈당과 함께 팔레스타인과의 분리 계획 추진을 목표로 출범했으며, 에후드 올메르트, 치피 리브니, 샤울 모파즈 등이 당 대표를 역임했다. 2006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었으나 이후 분열과 연립 정부 구성 실패를 겪으며 2015년 해산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평화 로드맵과 두 국가 해법을 지지했으며, 중도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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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마 - [정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정당 이름카디마
로마자 표기Kadima
창당일2005년 11월 24일
해산일2015년
분당 전 정당리쿠드, 노동
본부페타티크바, 이스라엘
당원 수96,000명
당원 수 집계 연도2012년
국제 조직세계 시온주의 기구
민주주의자 연합
색상네이비 블루, 빨간색, 하얀색
웹사이트Kadima
국가이스라엘
정치
이념자유주의
시온주의
양국 방안
정치적 위치중도주의
주요 지도자아리엘 샤론
에후드 올메르트
치피 리브니
샤울 모파즈
아크람 하손
의회
최대 의석수29석 (2006년)
최소 의석수2석 (2013년)

2. 역사

아리엘 샤론이 2005년 11월 21일 리쿠드를 탈당하여 카디마를 창당했다. '카디마'는 히브리어로 '전진'을 의미하며, 초기 시온주의 운동과 유대인 군단의 모토로 사용되기도 했다. 창당 초기에는 '국가 책임'이라는 당명이 고려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카디마'로 결정되었다.

시몬 페레스
는 노동당을 떠나 카디마에 합류했다.

창당 직후, 에후드 올메르트, 치피 리브니 등 리쿠드 출신 정치인들과 시몬 페레스 등 노동당 출신 정치인들이 합류하며 세를 불렸다. 그러나 2006년 1월 샤론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올메르트가 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2006년 총선에서 카디마는 제1당이 되었고, 올메르트는 노동당, 샤스 등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올메르트 정부는 레바논 전쟁, 부패 스캔들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2008년 올메르트의 사임 이후 치피 리브니가 당 대표가 되었으나 연정 구성에 실패하여 2009년 조기 총선이 치러졌다.

2009년 총선에서도 카디마는 제1당을 유지했지만, 리쿠드베냐민 네타냐후에게 정권을 내주고 야당이 되었다. 2012년 샤울 모파즈가 당 대표가 된 후, 리쿠드와의 연립정부에 참여했으나, 극단적 정통파 유대교도의 병역 면제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연정이 붕괴되었다.

이후 당내 분열이 심화되어 치피 리브니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탈당하여 하트누아를 창당했다. 2013년 총선에서 카디마는 2석만을 얻는 참패를 겪었고, 2015년 총선에는 불참하며 사실상 해체되었다.

2. 1. 창당

아리엘 샤론 총리는 2005년 11월 21일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이스라엘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팔레스타인 국가와의 국경을 확정하는 분리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카디마를 창당했다.

2005년 카디마 이스라엘 로고


'카디마'(히브리어: קדימה, 직역하면 '앞으로')라는 이름은 분당 직후 며칠 만에 결정되었으며 샤론이 선호하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 사법부 장관이 제안하고 샤론의 측근인 레우벤 애들러가 지지한 '국가 책임'(히브리어: אחריות לאומית|Ahrayaut Leumithe)으로 명명되었다.[11] '국가 책임'은 임시 명칭으로 고려되었으나, 조사 결과 카디마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5년 11월 24일, 당은 카디마로 정식 등록되었다.

'카디마'라는 명칭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전진'이라는 히브리어 전투 구호와 연관되어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을 수 있다. 초기 시온주의 지도자 나탄 비른바움이 사용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보틴스키와 요세프 트럼펠도르가 결성한 유대인 군단의 모토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누이 당수 요세프 라피드는 이 명칭을 베니토 무솔리니의 신문 '아반티'(이탈리아어로 '전진')에 비유하며 비판했다.[12]

창당 다음 날, 카디마는 거의 150명에 달하는 당원을 확보했는데, 대부분 리쿠드당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다.[13] 에후드 올메르트, 치피 리브니, 메이르 시트릿, 기드온 에즈라, 아브라함 히르쇼손 등 각료들을 포함하여 노동당, 리쿠드당 및 기타 정당의 여러 크네셋 의원들이 카디마에 합류했다. 루하마 아브라함, 마잘리 와하비, 엘리 아플랄로, 마리나 솔로드킨, 제에브 보임, 야코브 에드리 등 차관들과 로니 바-온, 옴리 샤론 등 리쿠드당 크네셋 의원들도 합류했다. 노동당 출신의 전 히스타드루트 회장 하임 라몬도 합류를 결정했다.

2005년 11월 30일, 전 총리 시몬 페레스는 60년 이상 몸담았던 노동당을 떠나 샤론의 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카디마에 합류했다. 샤론의 건강 악화로 인해 페레스가 카디마 당수를 맡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카디마 고위 지도자들은 전 리쿠드당원이었고, 샤론의 후계자로 (전 리쿠드당원) 올메르트를 지지했다.

2. 2. 샤론의 와병과 올메르트의 승계

2005년 12월 18일, 아리엘 샤론 총리는 경미한 뇌졸중으로 입원했다.[14] 이는 샤론 총리와 카디마당 지지자들에게 큰 불확실성을 안겨주었다. 샤론 총리는 심장에 작은 구멍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며,[14] 2006년 1월 5일에 심장 카테터 검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6년 1월 4일, 샤론 총리는 대규모 뇌출혈을 일으켜 예루살렘의 하다사 힌 케렘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뇌수술을 받았다.

에후드 올메르트는 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샤론 총리의 부재로 당의 미래는 불투명해졌으나, 샤론 총리의 병환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카디마당은 여전히 다른 정당들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15] 이후 여론조사에서는 카디마당이, 특히 과거 샤론 총리에게 반대했던 좌파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세를 더욱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 3. 올메르트 정부 (2006-2009)

2006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에후드 올메르트를 대표로 선출한 카디마는 29석을 획득하여 대통령 모셰 카차브로부터 정부 구성을 요청받았다.[16] 노동당, 샤스, 길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2006년 5월 4일 정부가 출범했다.

2006년 10월에는 이스라엘 베이테이누가 연정에 참여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의 협상에 반발하며 2008년 1월 탈퇴했다.

카디마의 정책은 아리엘 샤론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계승했다. 가자 지구에서는 이주민과 군대를 완전히 철수시키고, 요르단 강 서안 지구의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인 아리엘과 마알레 아두밈은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올메르트는 분리벽 내부의 대규모 정착촌을 병합하고, 소규모 정착촌은 철수하여 분리벽을 국경으로 삼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요르단 계곡과 주변 정착지 유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2006년 9월, 올메르트는 국회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요르단 강 서안에서의 추가 철수를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권 공약의 사실상 파기로 여겨졌으며, 2006년 레바논 침공으로 실추된 정권의 위신에 더욱 타격을 주었다.

2006년 총선에서 카디마는 제1당이 되었지만, 29석 획득에 그쳐 1999년 노동당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의 결과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참여한 샤론과 달리, 올메르트의 군 경력과 지도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2006년 5월, 올메르트를 총리로 하는 연립정부가 출범하여 노동당, 연금 수급자당, 샤스 등이 참여했다. 10월에는 극우 정당인 이스라엘 베이테이누가 참여하여 5당 연립으로 확대되었고, 국회 의석 120석 중 78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올메르트 정부는 여러 스캔들에 휩싸였다. 2005년 레우미 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지인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2007년 1월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카차브 대통령의 강간 의혹, 국세 당국의 뇌물 수수 의혹 등이 연이어 터졌다. 2006년 레바논 침공에서의 미흡한 대응도 지지율 급락의 원인이 되었다.

올메르트는 은행 부정 행위 혐의를 부인했지만, 2008년 7월 당수 선거 이후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9월 당수 선거에서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이 승리했고, 올메르트의 사퇴를 수용한 리브니는 새 내각 구성을 시도했으나, 예루살렘 귀속 문제 등을 둘러싼 종교 정당 샤스와의 갈등으로 실패하여 국회가 해산되었다.

2009년 2월 총선에서 카디마는 28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했지만, 연정 구성 실패로 리쿠드베냐민 네타냐후에게 정권을 내주고 야당이 되었다.

2. 4. 리브니 정부 (2008-2012)

2008년 당 대표 선거에서 치피 리브니가 샤울 모파즈 등을 누르고 승리했다.[1] 리브니는 샤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연정 구성에 실패했고, 2009년 조기 총선이 치러졌다.[1] 총선에서 카디마는 크네세트에서 28석을 얻어 리쿠드보다 한 석 더 많은 최대 정당이 되었으나, 네타냐후가 정부 구성을 요청받았다.[1]

2009년 2월 10일 총선에서 카디마는 28석을 획득해 제1당을 유지했지만, 연립 정부 협상이 결렬되면서 야당으로 물러났다.[4]

2. 5. 모파즈 정부와 해체 (2012-2015)

모파즈는 2012년 3월 당내 우익을 이끌었다고 여겨져 리브니에게서 카디마 당 대표직을 넘겨받았다.[17][18][19] 같은 해 5월 8일에는 여당 리쿠드와의 연립정부 수립에 합의하여 모파즈가 부총리로 입각하면서 네타냐후 정권의 안정성이 급상승했지만, 이 연립정부에 대해서는 "이란 공격을 위한 포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45] 그러나 극단적 정통파 유대교도의 병역 면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으로 인해 약 2개월 후인 7월 17일에 모파즈는 부총리직에서 사임했고, 연립정부는 해체되었다.

연립정부 참여와 해산을 둘러싼 움직임은 당내에 격렬한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11월, 주로 카디마의 비둘기파 진영의 지지를 받던[20][21][22][23] 리브니가 의원직을 사퇴하고 다른 7명의 카디마 국회의원들과 함께 카디마를 탈당하여 새로운 중도 정당인 하트누아를 창당하면서 당의 분열은 결정적이 되었다.[24]

2013년 총선에서 카디마는 2009년 대비 약 90%의 득표율을 상실했다. 겨우 수백 표 차이로 2% 의회 진입 문턱을 넘겨 간신히 의회 탈락을 면했다. 모파즈와 이스라엘 하손 두 명의 국회의원만 남게 되어 의회 내 12개 정파 중 가장 작은 정파가 되었다. 초정통파 유대교도의 병역 면제 문제로 인해 또 다른 신당 “예시 아티드”에도 지지층을 빼앗기면서, 2013년 1월 22일 총선거에서는 고작 2석만 획득하는 역사적인 참패를 당했다.

2015년 총선을 앞두고 카디마가 시온주의 연합에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모파즈는 정계에서 은퇴했다.[25] 하손은 이미 2013년에 이스라엘 고고학청 청장이 되기 위해 의회를 떠났다.

모파즈의 은퇴 후 아크람 하손이 당 대표로 선출되어 유대교 중심 정당의 첫 번째 드루즈 당 대표가 되었다.[26] 그러나 그의 당 대표직은 오래가지 못했고, 하손은 곧 카디마를 탈당하여 쿨라누 명단에 12번째로 합류했다.[27] 이후 카디마는 총선 불참을 결정했다.[28]

3. 이념 및 정책

카디마는 아리엘 샤론이 창당했을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적·역사적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유대인이 다수인 민주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게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국가이자 고국으로 남는 것을 목표로 하되,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영토 문제에서 타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29]

카디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해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평화 로드맵에 따라 단계적으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예루살렘과 요르단 서안 지구의 주요 정착촌은 이스라엘이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정치 제도와 관련해서는 안정성 확보를 위해 크네셋(이스라엘 국회)과 총리 선거에 변화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미래에 어떤 정당이나 인물과도 연대할 수 있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29]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시장 경제를 지지하며,[30][31] 소득 보조금, 국가 연금, 사회 보장 혜택, 국민 건강 보험 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사회적으로는 소수 민족의 평등을 증진하고, 동성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등 비교적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카디마는 창당 초기부터 중도 정당으로 분류되었으며, 실제로도 중도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의 성격이 변화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3.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카디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하고 두 국가 해법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평화 로드맵을 지지한다. 이는 테러 조직 해체, 무기 수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안보 개혁 시행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테러가 없는 비무장화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29]

카디마는 예루살렘과 요르단 서안 지구의 대규모 정착촌 블록은 이스라엘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엘 샤론은 서안 지구에 있는 유지할 수 없는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철수하는 것을 지지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29]

아리엘 샤론의 정책을 계승한 카디마는 요르단 서안 지구의 대규모 유대인 정착지인 아리엘과 마알레 아두밈을 유지하고, 분리벽 내부의 대규모 정착지를 병합하며, 그 외의 소규모 정착지는 철수시켜 분리벽을 국경으로 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또한, 치안상의 관점에서 요르단 계곡과 그 주변 정착지 유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2006년 9월, 에후드 올메르트는 요르단 서안 지구에서의 추가 철수를 동결할 생각을 표명하면서, 정권 공약은 사실상 파기되었다.[31]

3. 2. 국내 정책

카디마는 이스라엘의 정치 제도 개혁을 통해 안정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크네셋(이스라엘 국회)과 총리 선거에 1차, 지역, 개인 선거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29]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시장 경제를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혼합형 경제 정책을 추구했다.[30][31] 구체적으로, 소득세 부과 대신 소득 보조금 지급 제도를 시행하고, 국가 연금을 지급하며, 사회 보장 혜택과 국민 건강 보험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사회 정책 측면에서는 소수 민족의 평등을 증진하고, 동성 커플을 위한 민법상 결혼을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경찰 개혁도 추진했다.[29]

초기 카디마의 정책은 아리엘 샤론의 견해와 정책을 직접적으로 반영했다. 샤론은 중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당을 표방하며, 다른 정당 출신 의원들과 정치인들을 영입하고자 했다.

3. 3. 정치적 스펙트럼

초기 카디마의 정책은 아리엘 샤론의 견해와 공표된 정책을 직접적으로 반영했다.[29] 샤론 진영은 언론을 통해 진정한 "중도"이자 "자유주의" 정당을 설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샤론은 다른 정당의 크네셋 의원들과 유명 정치인들을, 그들의 이전 신념에 관계없이, 자신의 지도력을 수용하고 "온건한" 정치적 의제를 실행할 의향이 있다면 끌어들이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 샤론은 과거 정치적 동반자였던, 세속주의를 지지하고 종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시누이당과 의견을 같이하는 경향을 보였다. 시누이당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정통 유대교 및 하레디 유대교 정당들의 영향력과는 대조적으로 세속적인 시민 의제를 증진하려고 했다.

치피 리브니 사법부 장관은 이스라엘 방송에 카디마가 별도의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열망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샤론은 이스라엘 서안 장벽 건설을 추진한 주요 설계자 중 한 명이었다. 2005년 11월 22일 기자 회견에서 샤론은 서안 지구에 있는 유지할 수 없는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철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언급했지만, 제안된 조치에 대한 실제 일정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제공하지 않았다.[29]

카디마는 적절한 복지(금전적 지원) 혜택을 갖춘 시장 경제를 계속 지지한다.[30][31]

카디마가 정치적 스펙트럼상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어 왔다. 많은 서구 언론들은 카디마를 중도주의적 정당으로 분류한다.[32][33][34][35] 창립자인 아리엘 샤론은 이스라엘 정치의 우익과 좌익을 오가는 경력을 쌓았다. 카디마의 당선 의원 대부분은 전 리쿠드당 당원이지만, 상당수의 전 노동당 국회의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2006년 카디마가 연정 구성을 시도했을 때, BBC는 신생 정당인 카디마가 경제적으로는 중도우파 성향을 보이는 반면, 주요 연정 파트너인 노동당은 중도좌파 성향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당시 노동당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장 마무드 아바스와의 협상을 통한 토지 합의를 지지했지만, 카디마는 하마스의 선거 이후 어떤 팔레스타인 지도자와도 대화를 거부하고 서안 지구에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36]

2009년 선거 이후 카디마는 크네세트에서 야당을 이끌었다. 선거 기간 동안 카디마는 중도좌파 유권자들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였다.[37][38] 시몬 페레스는 2006년 Ynet과의 인터뷰에서 카디마와 노동당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하며 두 정당의 통합을 제안했다.[41] ''하아레츠(Haaretz)''의 외교 담당 기자인 알루프 벤(Aluf Benn)은 2009년 11월 카디마가 노동당과 합병을 막을 만한 이념적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42]

4. 주요 인물

카디마에는 이스라엘의 양대 정당인 리쿠드노동당 출신 의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리쿠드 출신'''


  • 아리엘 샤론: 총리 역임.
  •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대행, 산업·무역·노동부 장관 역임.
  • 샤울 모파즈: 국방부 장관 역임.
  • 치피 리브니: 외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 역임.
  • 자히 하네그비: 리쿠드 당수 대행 역임.
  • 기데온 에즈라: 내무부 장관 역임.
  • 아브라함 허르쇸손: 관광부 장관 역임.
  • 메이르 쉬트릿: 교통부 장관 역임.
  • 옴리 샤론: 아리엘 샤론의 아들.


'''노동당 출신'''

  • 시몬 페레스: 전 총리, 카디마당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카디마당 후보로 이스라엘 대통령에 선출됨.
  • 하임 라몬: 전 장관 역임.
  • 데리아 이티즈크: 전 장관 역임.

4. 1. 당 대표

#대표취임퇴임총리 재임 기간크네셋 선거대표로 선출/재선출
1아리엘 샤론2005년2006년2001년 ~ 2006년
2에후드 올메르트2006년2008년2006년 ~ 2009년20062006 (임시 대표)[43][44]
3치피 리브니2008년2012년20092008
4샤울 모파즈2012년2015년20132012
5아크람 하손2015년2015년2015



이스라엘 노동당 전 대표 시몬 페레스는 카디마 당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카디마 당 후보로 이스라엘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초대 당대표는 아리엘 샤론 (2005년 ~ 2006년)이었다. 샤론이 뇌졸중으로 의식불명이 된 후 에후드 올메르트(2006년 ~ 2008년), 치피 리브니(2008년 ~ 2012년)가 당대표를 역임했다.

4. 2. 기타 주요 인물

카디마는 리쿠드노동당 양쪽 모두에서 많은 의원들이 참가했다.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아리엘 샤론 (총리)[43][44]
  •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대행, 산업·무역·노동부 장관)[43][44]
  • 샤울 모파즈 (국방부 장관)[43][44]
  • 치피 리브니 (외무부 장관, 법무부 장관)[43][44]
  • 자히 하네그비 (리쿠드 당수 대행)
  • 기데온 에즈라 (내무부 장관)
  • 아브라함 허르쇸손 (관광부 장관)
  • 메이르 쉬트릿 (교통부 장관)
  • 옴리 샤론 (아리엘 샤론의 아들)
  • 시몬 페레스 (전 총리)
  • 하임 라몬 (전 장관)
  • 달리아 이츠크 (전 장관)
  • 이스라엘 하손 (2014년 유발 젤너로 교체)
  • 메나헴 벤-사손 (2006–2009)
  • 제에브 보임 (2005–2011)
  • 도론 아비탈 (2011–2013)
  • 슐로모 브레즈니츠 (2006–2007)
  • 아미라 도탄 (2006–2009)
  • 미카엘 누델만 (2006–2009)
  • 우리엘 라이히만 (2006)
  • 다비드 탈 (2005–2009)
  • 아비그도르 이츠하키 (2006–2008)
  • 차치 하네그비 (2006–2010)

5. 역대 선거 결과

선거당 대표득표수득표율(%)획득 의석의석 수 변화집권 여부
2006년에후드 올메르트690,90122.02 (1위)29 / 12015여당
2009년치피 리브니758,03222.47 (1위)28 / 1201야당
2013년샤울 모파즈79,0812.09 (12위)2 / 12026야당



2006년 총선에서 카디마는 29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으나, 이는 건국 이후 최악의 결과 중 하나였다. 에후드 올메르트를 총리로 하는 연립정부가 구성되었으나, 올메르트의 비리 의혹과 레바논 침공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45]

2009년 총선에서는 치피 리브니가 당 대표로 나섰으나,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며 야당으로 남게 되었다.

2013년 총선에서는 샤울 모파즈가 당을 이끌었지만, 당내 분열과 극단적 정통파 유대교도의 병역 면제 문제 등으로 인해 단 2석만을 얻는 참패를 겪었다.

참조

[1] 웹사이트 Members and Activists of Political Parties in Comparative Perspective http://www.partirep.[...] 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World Congress of Political Science – Panel 'What is party membership?' 2015-06-20
[2] 서적 Security and Defensive Democracy in Israel: A Critical Approach to Political Discourse https://books.google[...] Routledge
[3] 서적 Party Members and Activists https://books.google[...] Routledge
[4] 뉴스 Sharon shakes up Israeli politics http://www.cnn.com/2[...] CNN 2010-04-25
[5] 뉴스 Obama ready to press Israeli parties to form unity government https://www.telegrap[...] 2015-06-30
[6] 뉴스 Leader of Israel Centrist Party Kadima Agrees to Join Netanyahu's Coalition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12-05-08
[7] 뉴스 Kadima quits Israel government over conscription law https://www.bbc.com/[...] BBC News 2012-07-17
[8] 뉴스 Kadima's left flank delays schism due to problems in recruiting enough MKs http://www.haaretz.c[...] 2015-06-30
[9] 뉴스 Haim Ramon seeking to form Kadima breakaway faction under Livni's leadership, sources say http://www.haaretz.c[...] 2015-06-30
[10] 뉴스 Kadima not splitting – for now http://www.jpost.com[...] 2015-06-30
[11] 뉴스 'National Responsibility' name of PM's new party; NRP to protest http://www.jpost.com[...] 2015-06-30
[12] 뉴스 Shinui headed for oblivion http://www.jpost.com[...] 2015-06-30
[13] 웹사이트 Ariel Sharon Forms New Political Party https://www.jewishvi[...] Jewish Virtual Library 2005-11-22
[14] 뉴스 Israel's Sharon suffers a stroke http://news.bbc.co.u[...] BBC News 2015-06-30
[15] 뉴스 Israel's Kadima could win under Olmert http://www.angus-rei[...] Angus Reid 2006-01-09
[16] 뉴스 Comatose Sharon 'moves eyelids' http://news.bbc.co.u[...] BBC News 2015-06-30
[17] 뉴스 Rivlin shelves powder keg 'Mofaz Law' http://www.jpost.com[...] 2015-06-30
[18] 뉴스 Likud ministers: PM using Kadima http://www.ynetnews.[...] Ynet 2015-06-30
[19] 뉴스 Mofaz Wins Kadima Leadership, Calls on Livni to Stay http://www.israelnat[...] 2015-06-30
[20] 뉴스 The idiot's guide to Israel's political Rubik's Cube http://www.israelhay[...] Israel Hayom 2015-06-30
[21] 뉴스 When Shaul Mofaz was a settler http://www.israelhay[...] Israel Hayom 2015-06-30
[22] 뉴스 The rise and fall of Kadima http://www.jpost.com[...] 2015-06-30
[23] 뉴스 Kadima may split as MKs take positions in gov't http://www.jpost.com[...] 2015-06-30
[24] 뉴스 Livni secures 7 MKs to split Kadima http://www.ynetnews.[...] Ynet 2015-06-30
[25] 뉴스 Israel election updates / Likud: Livni wrong on Congress' Iran sanctions http://www.haaretz.c[...] 2015-06-30
[26] 뉴스 Mofaz Resigns from Politics http://www.israelnat[...] 2015-06-30
[27] 뉴스 Mofaz: My Biggest Mistake Was Joining Netanyahu's Coalition http://www.israelnat[...] 2015-06-30
[28] 웹사이트 http://www.bechirot2[...] 2015-02-01
[29] 뉴스 PM Sharon: We Are Committed to the Road Map http://www.israelnat[...] 2015-06-30
[30] 웹사이트 Political Party Platforms http://www.israelvot[...] Israelvotes.com 2010-04-25
[31] 뉴스 Israeli political parties http://news.bbc.co.u[...] BBC News 2010-04-25
[32] 뉴스 Can Kadima survive without Sharon? http://news.bbc.co.u[...] BBC News 2015-06-30
[33] 뉴스 Israeli media: Kadima wins at polls http://www.cnn.com/2[...] CNN 2015-06-30
[34] 뉴스 New worldview shapes vote in Israel http://www.csmonitor[...] 2015-06-30
[35] 뉴스 Centrist Cause in Israel Seeks New Leader https://www.washingt[...] 2015-06-30
[36] 뉴스 Analysis: Israel's new coalition http://news.bbc.co.u[...] BBC News 2006-05-03
[37] 뉴스 Elections 2009 / Kadima: Center-left voters will pick us to ensure Likud defeat http://www.haaretz.c[...] 2009-02-09
[38] 뉴스 New Movement-Meretz polls shows it losing undicided women's vote to Livni http://www.haaretz.c[...] 2009-02-04
[39] 뉴스 Lieberman not expected to recommend either PM candidate http://www.haaretz.c[...] 2009-02-18
[40] 뉴스 Likud may offer top spots to Kadima, Lieberman in bid to form quick coalition http://www.haaretz.c[...] 2009-02-12
[41] 뉴스 Peres: Kadima, Labor should unite http://www.ynetnews.[...] Ynet 2006-04-05
[42] 뉴스 For the sake of peace, Labor and Kadima must merge http://www.haaretz.c[...] 2009-02-11
[43] 웹사이트 Acting Israeli leader to head Sharon's party https://www.nytimes.[...] 2006-01-16
[44] 웹사이트 Kadima picks Olmert as interim chief https://www.aljazeer[...] Al Jazeera 2006-01-16
[45] 뉴스 Analysis and opinions on Israel's new government by Haaretz's top writers http://www.haaretz.c[...] ハアレツ 201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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