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88식 소총
1. 개요
한양 88식 소총은 독일 게베어 1888 소총을 모방하여 제작된 소총으로, 청나라 신건육군에 처음 배치되었다. 1895년부터 생산되어 1944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에도 주요 제식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88식 소총은 볼트 액션 방식에 7.92×57mm 마우저 탄을 사용하며, 5발들이 만리허식 탄창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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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소총 -
드라이제 췬트나델게베어
드라이제 췬트나델게베어는 요한 니콜라우스 폰 드라이제가 개발하고 프로이센군에 채택되어 실전에 배치된 최초의 후장식 볼트액션 소총으로, 빠른 연사 속도와 재장전 용이성으로 군사 전술에 영향을 미쳤지만 기술적 한계로 금속 탄피 소총으로 대체되었다. -
국민혁명군 -
노백린
노백린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군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총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무장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한인 비행사 양성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공군력 강화에 기여했다. -
국민혁명군 -
장쉐량
장쉐량은 만주 군벌 장작림의 아들이자 동북군 지휘관으로서 만주사변 당시 부저항 정책과 시안 사건 주도를 통해 국공합작을 이끌어낸 인물이며, 그의 삶과 행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
볼트액션 소총 -
30년식 보병총
30년식 보병총은 무라타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아리스카 소총 계열의 첫 번째 소총으로, 6.5×50mm 아리스카 탄약을 사용하는 볼트액션 소총이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일본 제국 육군의 주력 소총으로 사용되었고, 다양한 전쟁에서 활용되었으며, 신뢰성 문제로 38년식 소총으로 대체되었으나, 수출 및 파생형 모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
볼트액션 소총 -
M24 SWS
M24 SWS는 미군이 개발한 볼트 액션 방식의 저격 소총으로, 7.62 × 51 mm NATO탄을 사용하며 M21 SWS를 대체하고,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대한민국 육상자위대에서도 사용된다.
2. 역사
한양 88식 소총은 독일 게베어 1888을 본떠 만든 소총으로, 청나라 신건육군에 의해 처음 실전 배치되었다. 1895년 생산 시작 후 1904년과 1930년 두 차례 개조되었다. 국민혁명군 창설(1925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1940년대 후반)까지 국민혁명군의 주력 전투소총 중 하나였다.
일본 제국군은 노획한 한양 88식을 2선 부대와 중국 위군에 지급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국공 내전과 한국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민병대나 훈련용으로 사용했고, 일부는 비엣민에 공급되었다.
한양병기공장에서 처음 제조되었으나, 1938년 우한 전투로 우한 함락 후 충칭 제21병기공장에서 생산되었다. 1944년 중정식 소총 생산으로 중단될 때까지 총 110만 정이 생산되었다.
중소 분쟁 시기, 중국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남은 한양 88식을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공급했다.
2.1. 청나라 시기 (1895년 ~ 1911년)
장지동이 설립한 한양병기공장에서 독일 게베어 1888의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생산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신건육군에 배치되었으며, 의화단 운동에서도 사용되었다. 청나라 정부는 88식 소총 생산 중단 및 원년식 소총 (마우저 Gew 1907 또는 하에넬 M1907이라고도 함)의 라이선스 생산을 계획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실행되지 못했고, 88식 소총은 계속 생산되어 신건육군에 배치되었다.
2.2. 중화민국 시기 (1912년 ~ 1949년)
군벌 시대 초기, 베이징 정부는 한양병기공장의 생산 설비를 갱신하여 88식 소총 생산을 계속했다. 금릉병공창도 생산 설비를 갱신하여 88식 소총 생산에 참여했다. 그러나 군벌 할거로 인해 생산 설비 갱신이 어려워지고 생산 경비가 삭감되어, 두 공장 모두 생산이 불안정했다. 1928년 국민혁명군이 우한과 난징을 점령하면서 생산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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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부는 중정식 소총 생산 성공 후, 88식 소총 생산 설비를 중정식 소총 생산용으로 개편하려 했으나, 중일 전쟁 발발로 계획이 연기되었다. 한양과 금릉의 병기공장은 충칭으로 이전되었고, 한양병기공장의 설비는 제21병기창 (구 금릉병공창)으로 통합되어 88식 소총 생산이 집중되었다. 공현병공창 폭격으로 중정식 소총 생산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88식 소총은 중일 전쟁에서 여전히 주요 병기로 사용되었다. 1944년까지 생산이 계속되었으며, 이후 생산 설비가 중정식 소총 생산용으로 완전히 전환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일본 제국은 노획한 88식 소총을 2선 부대 및 친일 중국군에게 지급하였다. 만주국군도 2선 부대에서 88식 소총을 사용했다.
2.3. 중화인민공화국 시기 (1949년 ~ 1980년대)
중국 공산당은 국공 내전 시기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에서도 88식 소총을 사용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은 88식 소총을 주력 소총 중 하나로 사용하였다. 인민해방군 내에서는 민병대 및 훈련용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일부 소총은 비엣민에게 공급되기도 했다. 한국 전쟁 종전 후, 소련으로부터 신형 병기를 대량 공급받으면서 실전 부대에서 물러났으나, 민병대에서는 198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중소 분쟁 시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잉여 88식 소총이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공급되었다.
3. 제원
한양 88식 소총은 게베어 1888을 모방하여 제작되었으며, 몇 가지 사소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제원은 다음과 같다.
| 항목 | 내용 |
|---|---|
| 작동 방식 | 볼트 액션 |
| 탄창 | 만리허식 탄창, 5발의 7.92×57mm 마우저 탄 수용 |
| 장전 방식 | 5발 엔블록 클립 사용, 마지막 탄 소진 시 클립 자동 배출 |
| 총검 | 장착 가능 |
| 개량 | 1904년 총열 덮개 제거 및 나무 추가, Kar98 기반 가늠자 추가 |
| 파생형 | 카빈(단축형) 모델 (정확도 및 사거리 감소) |
3.1. 기본 설계
한양 88식 소총은 기본적으로 게베어 1888 소총을 모방한 것으로, 총검을 꽂을 수 있고 총열 덮개가 없는 등 몇 가지 사소한 차이가 있었다. 이 소총은 발사할 때 공이치기가 당겨지는 볼트 액션 방식 소총이며, 만리허식 탄창에는 5발의 7.92×57mm 마우저 탄을 넣을 수 있었다. 탄창은 5발들이 클립을 사용하여 장전되었고, 마지막 한 발이 약실에 채워지면 클립은 아래쪽 구멍을 통해 자동으로 빠졌다. 이러한 장전 방식은 매우 빠르게 재장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탄창 구멍으로 먼지가 들어가 신뢰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
3.2. 개량형
1904년, 사격수가 화상을 입지 않도록 총열 덮개를 제거하고 그 위에 더 많은 나무를 덧대는 변경이 이루어졌다. Kar98을 기반으로 한 가늠자가 추가되었다. 88식 소총의 5발 엔블록 클립은 새로운 탄을 장전할 수는 있었지만, 스피처 탄약을 사용하기 위한 대량 개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3.4. 성능
한양 88식 소총은 원래 독일의 7.92×57mm I 탄약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무렵에는 이미 구식 탄약이었지만, 중일 전쟁 동안 중국 국민혁명군이 일본군과 교전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된 소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