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1. 개요
현영철은 1966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북한의 군인이다. 2009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2010년 김정은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4월 말,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현영철이 반역죄로 공개 처형되었다고 발표했으나, 북한은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 이름 | 현영철 |
|---|---|
| 한자 표기 | 玄永哲 |
| 로마자 표기 | Hyeon Yeongcheol |
| 출생일 | 1949년 1월 11일 |
| 출생지 | 함경북도 경성군 (현재 어랑군) |
| 사망일 (추정) | 2015년 4월 30일 |
| 사망지 (추정) | 북한 |
| 소속 | 조선인민군 |
|---|---|
| 복무 기간 | 1966년 - 2015년? |
| 최종 계급 | 대장(강등) (최고 계급은 차수) |
| 충성 | 북한 |
| 직책 | 국방상 |
|---|---|
| 임기 시작 | 2014년 6월 12일 |
| 임기 종료 | 2015년 4월 |
| 전임 | 장정남 |
| 후임 | 박영식 |
| 최고 지도자 | 김정은 |
| 직책 1 |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
| 임기 시작 1 | 2012년 7월 26일 |
| 임기 종료 1 | 2013년 5월 24일 |
| 전임 1 | 최룡해, 리영호 |
| 후임 1 | 최룡해 |
| 직책 2 |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
| 임기 시작 2 | 2012년 7월 26일 |
| 임기 종료 2 | 2013년 5월 24일 |
| 전임 2 | 리영호 |
| 후임 2 | 김격식 |
| 국방부 장관 | 김정각, 김격식, 장정남 |
| 사망 원인 | 사형 (총살형) (추정) |
|---|---|
| 형제자매 | 현영도(동생, 인민군 중좌)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역죄 사형수 -
박남기
박남기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 관료로 활동하며 국가계획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1990년대에는 경제에 능통했으나 2009년 화폐 개혁 실패로 2010년 처형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역죄 사형수 -
장성택
장성택은 김일성 사위이자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핵심 실세였으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려 처형당한 북한 정치인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사에 관한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사에 관한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2. 경력
현영철은 1966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10년 9월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된 다음 날 조선인민군 차수로 승진했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2014년 6월에는 인민무력부장이 되면서 황병서에 이어 북한 군 서열 2위에 올랐다.
2015년 4월 16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차 국제안보회의에 참석해 미국과 대한민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논의를 비판하며,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도발과 침략전쟁을 강요하는 길로 나오면 공화국(북조선을 지칭) 군대는 (중략) 상용 무력에 의한 전쟁이든 핵전쟁이든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2.1. 군 경력
1966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2002년 중장으로 진급했다. 2010년 9월, 김정은, 김경희, 김경옥, 최룡해, 최부일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했다.
2012년 7월 17일,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된 다음 날 차수로 승진하며 며칠 후 총참모장에 취임했다. 2012년 10월에서 11월경, 군에 대한 대규모 검열 당시 군 병사의 탈북 증가 등 군 기강 해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되었다.
2013년 5월 총참모장에서 해임되었고, 같은 해 6월 동부전선을 관할하는 제5군단장에 임명되며 상장으로 강등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6월 25일, 장정남을 대신하여 인민무력부장에 취임했으며, 이때 현영철은 대장으로 소개되었다.
2.2. 정치 경력
현영철은 1966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다.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10년 9월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된 다음 날 조선인민군 차수로 승진했고, 같은 달 26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6월에는 인민무력부장이 되었고, 같은 해 9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선거에서는 선출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이는 숙청으로 인한 지위 박탈로 추정된다.
3. 처형 및 의혹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2015년 5월 13일 현영철이 4월 말 반역죄로 공개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현영철은 졸지 않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으나 과다 복용으로 역효과가 났고, 군 행사에서 졸게 되었다. 이를 김정은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음에도 잠에서 깨지 않아 김정은을 분노하게 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현영철은 김정은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해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나, 그 명령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석가들은 북한에서 관리들의 재배치는 흔한 일이지만, 김정은과 가까운 인물인 현영철의 처형은 놀라운 일이며, 국가 안정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조선 공사는 2016년 12월 19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현영철이 자택 도청 중 말을 잘못하여 처형당했다고 숙청 사실과 이유를 밝혔다. 2016년 8월 런던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망명한 태영호는 현영철의 처형이 그의 집에서 도청된 대화 때문이며, 고위 관리들의 도청이 일반화되었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미국에 본부를 둔 북한인권위원회는 지난 10월 처형을 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고사포가 늘어선 사격장을 보여주는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7월, 북한 공식 매체는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지명했지만, 현영철의 해임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변인은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영철 처형 보도를 루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4년 현재, 그의 처형설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3.1.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발표
2015년 5월 13일,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은 현영철이 4월 말 반역죄로 평양 강건군관학교에서 고사포로 공개 처형되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현영철은 김정은의 지시에 대꾸하고, 박수 쳐야 할 때를 놓쳐 가만히 있거나, 군 행사에서 조는 모습이 적발되어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핵심 간부들에 대한 불신과 숙청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의 발표 시점까지 북한 측은 현영철의 처형 사실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국정원은 2015년 5월 12일 현영철이 2015년 4월 말 평양 근처 강건 군사훈련장에서 숙청되어 공개 처형당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특히 2015년 4월 말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현영철이 졸고 있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되었는데, 이러한 공식 군사 집회 중 무례한 행동을 하고 졸았다는 이유로 고사포로 처형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 보도 몇 시간 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성명을 수정하여 현영철이 처형되었다는 정보는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3.2. 북한의 반응 및 의혹 제기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2015년 5월 13일 현영철이 4월 말 반역죄로 공개 처형되었다고 발표했지만, 북한 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확인을 하지 않았다. 처형 발표 이후에도 북한 매체에서 현영철의 모습이 삭제되지 않아 생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현영철이 처형되었다고 알려진 날짜에 북한 신문 노동신문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어 처형 시점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는 그가 같은 날 체포되어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한다.
2015년 5월 17일, 북한은 한국 국가정보원의 발표에 대해 한국 언론이 북한 체제를 공포정치로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뿐, 현영철 숙청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3.3. 처형의 영향 (대한민국 언론 분석)
대한민국 언론은 현영철 처형이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를 강화하고 군부 및 엘리트층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현영철이 러시아와의 협상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의 숙청은 북러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