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호 (군인)
1. 개요
리영호는 1942년 함경남도 통천군에서 태어난 북한의 군인이다.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사단 참모장, 군단 작전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었으며, 2010년 차수로 승진하여 당 정치국 상무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원을 겸임했다. 2012년 7월 모든 당 직책에서 해임되었으며,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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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리영호 |
|---|---|
| 한글 | 리영호 |
| 한자 | 李英浩, 李英鎬 |
| 로마자 표기 | Ri Yeong-ho |
| 출생일 | 1942년 10월 5일 |
| 사망일 | 2012년 7월경 (69세)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강원도 통천군(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통천군) |
| 사망지 | 알 수 없음 |
| 거주지 | 알 수 없음 |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 직책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
| 취임일 | 2010년 9월 28일 |
| 퇴임일 | 2012년 7월 15일 |
| 원수 | 김정일, 김정은 |
| 최종 계급 | 조선인민군 차수 |
| 복무 기간 | 1959년 - 2012년 |
| 소속 군 | 조선인민군 육군 |
| 참전 | 한국 전쟁 연평도 포격 사건 |
| 출신 학교 | 김일성군사종합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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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 -
박재훈 (음악가)
대한민국의 음악가, 교육자, 목회자인 박재훈은 동요 "구슬비", "어머님 은혜" 등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해군 군악대 하사로 한국 전쟁에 참전, 영락교회 장로,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교회 음악 발전과 후학 양성에 기여했고, 캐나다 이민 후에는 목회 활동을 병행하며 음악과 신앙을 융합한 삶을 살았다. -
강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 -
이종우 (1903년)
대한민국의 철학자, 교육자, 정치인인 이종우는 교토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과 서울대학교에서 철학 및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대학원장, 총장을 역임하고 문교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
조선인민군 차수 -
최룡해
최룡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
조선인민군 차수 -
김정각
김정각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한 북한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김정은 체제 초기 권력 공고화에 기여했으나 부침을 겪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등을 지냈다. -
1942년 출생 -
시어도어 카진스키
미국 수학자이자 "유나바머"로 알려진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으로 대학 조교수를 지냈으나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18년간 우편 폭탄 테러를 감행, 체포되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
1942년 출생 -
우근민
우근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총무처 공무원 요직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역임하며 민자당,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등 다양한 정당 활동을 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성희롱 소송 패소, 새누리당 입당 논란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2. 생애 및 경력
강원도통천군 출신인 리영호는 1959년 8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2002년 4월 13일 중장으로 승진했으며, 평양방어사령부 사령관 등을 거쳐 2009년2월 11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에 취임했다.
2010년 9월 27일, 국방위원회 결정에 따라 인민군 차수로 승진했으며, 다음 날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어 당내 서열 5위가 되었다. 또한 김정일 총비서의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은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군내에서 젊은 김정은을 돕는 핵심 인물로 여겨졌음을 의미하며,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2010년 조명록,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영구차에 동행하는 등 중요한 위치를 유지했지만, 2012년 7월 15일 정치국 회의에서 모든 당 직책에서 해임되었고, 총참모장 직책도 해임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병을 이유로 들었지만, 해임 직전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2년 7월 20일, 조선일보는 해임 과정에서 리영호 호위병의 반발로 교전이 발생하여 리영호가 부상 또는 사망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해임 직후 평양 자택에 연금되었다가 함경북도 온천 시설 내 요양소로 옮겨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군부가 독점해 온 대외 무역 이권을 당이 지배하는 내각으로 이관하려는 과정에서 리영호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가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실각이 발생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NHK 스페셜은 리영호가 김정은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는 조선인민군 기밀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2003년 9월 제11기 대의원을 지냈으며, 2009년 4월 이후 제12기 대의원을 지냈다. 2013년 불분명한 이유로 실각했고, 모든 공직에서 해임됨에 따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일부 보도에 따르면, 실각 후 2015년에 조선인민군 참모부 작전국 1처 부서장으로 평양에 복귀, 2017년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전술부 학장으로 이동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리영호는 1942년 10월 5일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통천군 (현재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1959년 8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리영호는 사단 참모장, 군단 작전국장, 훈련소장,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 부총참모장, 조선인민군 훈련소장 등을 역임했다. 2002년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2003년부터 2009년까지 평양방어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수도 평양과 김씨 일가를 경호하는 군부대의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2003년에 급부상했다.
2.2.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및 정치 활동
2009년 2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대표자회 직전에 원수 칭호를 받았다.
2010년 조명록,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사 열병식에서 기조 연설을 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 이후 평양 시내를 관통하는 장례 행렬을 김정은과 함께 이끌었다. 2012년 4월 25일에는 북한군 창설 8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지휘했다.
2.3. 해임 및 이후
2012년 7월 16일, 북한 관영 매체는 리영호가 질병을 이유로 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모든 당 직위에서 해임되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 통일부는 이 조치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리영호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직에서 현영철로 교체되었다.
2012년 7월 20일, 리영호가 정치국 병력과의 교전에서 사망했거나 부상을 입었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었다. 2012년 11월, 한국 언론은 리영호가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2015년에는 리영호가 2012년에 처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언론은 리영호가 김정은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는 조선인민군의 기밀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리영호의 실각이 군부의 대외 무역 이권을 내각으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 한국 언론은 실각 이후 리영호가 평양에 복귀하여 조선인민군 참모부 작전국 1처 부서장,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전술부 학장으로 이동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