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학
1. 개요
현영학은 192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하여 2004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신학자이다. 간사이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목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유학 후 귀국하여 이화여대에서 신학을 가르치며,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민중신학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적 신학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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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종교학자 -
탁명환
탁명환은 한국의 종교 연구가이자 저술가로, 신흥종교 및 기독교 이단 연구와 비판 활동, 특히 오대양 집단자살사건 진실 규명에 힘썼으나 평강제일교회 신도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그의 삶과 죽음은 종교 문제와 진실 규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
대한민국의 종교학자 -
서정범
서정범은 1926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어, 한글의 어원을 연구하고 한국어원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1958년 수필가로 등단하여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민속학자 -
손진태
손진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로, 조선민속학회 설립, 《조선민속》 창간 등 활발한 학문 활동을 펼쳤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및 문교부 차관보를 역임하고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제 강점기 친일 활동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
민속학자 -
정병욱
정병욱은 한국 국문학자이자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 보관, 한국 고전문학 연구 및 판소리 보존·대중화 기여, 하버드·파리대학교 초빙교수 활동 등 한국 문학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여러 상을 수상하고 그의 가옥은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
함흥시 출신 -
김흥수 (화가)
김흥수는 모자이크 기법과 하모니즘 미술을 통해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추구한 대한민국의 화가이며, 하모니즘 미술을 선언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에 사망했다. -
함흥시 출신 -
박충권
박충권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 책임연구원을 거쳐,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미래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이다.
2. 생애
현영학은 1921년 1월 6일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목사 현원국과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이자 대한애국부인회 회원이던 신애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8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간사이학원 신학부에 입학하여 목사 자격을 취득했다. 1943년 일본의 한국인교회 목사로 활동하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징용 대상자가 되어 서울로 돌아와 철광회사에서 일하였다.
1945년 해방 후, 가족들을 이끌고 월남하여 1946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성서신학교와 뉴욕 유니언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55년 유니언 신학대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복귀, 문리과대학 기독교학과장 등을 지냈다. 박정희의 군정 연장에 반대하였고, 1964년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최신 신학을 공부하였다. 니버, D.본회퍼 등의 신학자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A.리처드슨의 《과학 역사 신앙》(1958) 등의 신학서를 번역, 출간하였다.
1960년대 말 '신에게 솔직히'를 번역 출간해 한국 종교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에 충격받아 박정희 퇴진 운동에 동참했다. 서남동, 안병무 등과 함께 민중신학 운동을 주관하였고, 탈춤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1979년 10.26 사건 직후 교수 134인 시국선언문에 서명했던 그는 신군부에 의해 1980년부터 4년간 강제 퇴직당했다.
1972년 박정희가 유신을 선언하자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사회운동과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97년 논문집 '예수의 탈춤'을 냈다. 2004년 1월 14일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84세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1921~1945)
현영학은 1921년 1월 6일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목사 현원국과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이자 대한애국부인회 회원이던 신애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이화여전의 음악과 교수로 있던 윤치호의 여섯째 딸 윤보희와 결혼했다. 윤보희는 후에 이화여자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의 동생은 후일 6.25 전쟁에 참전했고, 해군 소장을 지낸 현시학이었다.
1938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으로 유학, 간사이학원(關西學院, 지금의 간사이가쿠인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였다. 이후 목사 자격을 취득하고 1943년 일본의 한국인교회 목사로 활동하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징용 대상자가 되어 서울로 돌아와 철광회사에서 일하였다.
2.2. 해방 직후와 미국 유학 (1945~1955)
8·15광복 뒤에 철광회사를 그만두고 이화여전의 강사로 임용, 1945년 해방 정국에서 현시학 등 가족들을 이끌고 월남했다. 1946년 이화여자전문학교(뒤에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의 조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장인 윤치호는 친일파로 몰려 규탄받고 자결했으나 그는 친일파도 아니었고, 친일 활동에 가담하지도 않았으므로 연좌되지 않았다.
이화여전의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성서신학교(Biblical Seminary)에서 공부하였고, 1949년 뉴욕 유니언신학교에서 R.니버(Reinhold Niebuhr)의 가르침을 받았다.
2.3. 귀국 후 교수 활동과 신학 연구 (1955~1970)
1955년 미국 뉴욕의 유니언 신학대(STM)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복귀하였고,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기독교학과장, 문리대 교양학부장, 학무처장 등을 지냈다. 박정희의 군정 연장에 반대하였고, 1964년 연구원 자격으로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최신 신학을 공부하였다. 신학자로 활동하며 니버, D.본회퍼 등의 신학자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그들의 저서를 번역하여 출간하였으며, A.리처드슨의 《과학 역사 신앙》(1958), S.케이브의 《신약성서와 윤리문제》(1959), P.틸리히의 《존재에의 용기》(1960) 등의 신학서를 번역, 출간하였다.
1960년대 말 서구 신학계의 문제작 ‘신에게 솔직히’를 번역 출간해 한국 종교계에 파문을 일으켰으며, 한국과 아시아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신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신학 논문을 수 차례 발표해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2.4. 민주화 운동과 민중신학 (1970~1984)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에 충격받아 독재에 맞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다. 종교인 강원룡, 김수환, 사촌 처남인 윤보선 등과 함께 박정희 퇴진 운동에 동참했다.
1970년대에는 강의활동 외에 쪽방과 오지를 돌아다니며 소외된 민중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서남동, 안병무 등과 함께 민중으로서의 예수를 부각하고 한국 기독교회의 갱신과 ‘하나님 나라 정치’를 구현하는 민중신학 운동을 주관하였다. "한국 고유의 신명난 탈춤에서 살아 있는 예수를 발견했다"며 탈춤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1979년 10.26 사건 직후 교수 134인 시국선언문에 서명했던 그는 신군부에 의해 1980년부터 4년간 강제 퇴직당했다.
2.5. 생애 후반 (1984~2004)
1997년 논문집 '예수의 탈춤'을 냈다. 1972년 10월 박정희가 유신을 선언하자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사회운동과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또한 탈놀이 등 전통민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전통문화의 보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밖에 후학 양성에도 관심을 갖고 여러 후학들을 양성했고, 가난한 고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학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2004년 1월 14일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 84세였다. 바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다.
3. 신학 사상
현영학은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에 충격받아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다. 1970년대 서남동, 안병무 등과 함께 민중으로서의 예수를 부각하고 한국 기독교회의 갱신과 ‘하나님 나라 정치’를 구현하는 민중신학 운동을 주관하였다. 또한 강의활동 외에 쪽방과 오지를 돌아다니며 소외된 민중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한국 고유의 신명난 탈춤에서 살아 있는 예수를 발견했다"며 탈춤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3.1. 민중신학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에 충격받아 독재에 맞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다. 1970년대에는 강의활동 외에 쪽방과 오지를 돌아다니며 그늘에서 소외된 민중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서남동, 안병무 등과 함께 민중으로서의 예수를 부각하고 한국 기독교회의 갱신과 ‘하나님 나라 정치’를 구현하는 민중신학 운동을 주관하였다. 고인은 "한국 고유의 신명난 탈춤에서 살아 있는 예수를 발견했다"며 탈춤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3.2. 탈춤과 민중의 예수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에 충격받아 독재에 맞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다. 강원룡, 김수환, 사촌 처남인 윤보선 등과 함께 박정희 퇴진 운동에 동참했다.
1970년대에는 강의활동 외에 쪽방과 오지를 돌아다니며 소외된 민중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서남동, 안병무 등과 함께 민중으로서의 예수를 부각하고 한국 기독교회의 갱신과 ‘하나님 나라 정치’를 구현하는 민중신학 운동을 주관하였다. "한국 고유의 신명난 탈춤에서 살아 있는 예수를 발견했다"며 탈춤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4. 저서 및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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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와 기독교윤리:현대의지성 24》
* James Cone영어 저, 《눌린 자의 하느님》 (역서)
* A. Richardson영어 저, 《과학 역사 신앙》 (1958) (역서)
* S. Cave영어 저, 《신약성서와 윤리문제》 (1959) (역서)
* P. Tillich영어 저, 《존재에의 용기》 (1960) (역서)
* 《민중 속에 성육신해야》
* 《민중, 고난의 종, 희망》
* 《예수의 탈춤》(1997.11)
4.1. 저서 및 역서
* 《한국문화와 기독교윤리:현대의지성 24》
* James Cone영어 저, 《눌린 자의 하느님》 (역서)
* A. Richardson영어 저, 《과학 역사 신앙》 (1958) (역서)
* S. Cave영어 저, 《신약성서와 윤리문제》 (1959) (역서)
* P. Tillich영어 저, 《존재에의 용기》 (1960) (역서)
4.2. 논문
* 《민중 속에 성육신해야》
* 《민중, 고난의 종, 희망》
* 《예수의 탈춤》(19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