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홍낙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관직을 역임했다. 175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조카 홍국영이 세도 정치를 펼치다 실각하면서 함께 파직되어 관직에서 쫓겨났다.

홍낙순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홍낙순
원래 이름洪樂純
출생일1723년
본관풍산
사망일?
자(字)백효(伯孝)
아호(雅號)대릉(大陵)
시호(諡號)문헌(文憲)
배우자경주 김씨 부인
정당무소속(골수 비당파 세력)
종교유교(성리학)
학력1757년 정시문과 병과 급제
관직 정보
직책조선국 의정부 좌의정
임기1779년 ~ 1780년
군주정조 이산
섭정도승지 홍국영
가족 관계
형제홍낙춘(아우)
홍낙빈(아우)
친인척홍국영(조카)
원빈 홍씨(조카딸)
정조(조카사위)
상계군(양외종손자)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풍산 홍씨 - 홍명희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정치인으로, 장편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하며, 독립운동 참여, 언론 및 교육계 활동 후 해방 후 남북협상 참여, 월북하여 북한에서 요직을 역임하며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풍산 홍씨 - 홍진
    홍진은 대한제국 시기 법관, 변호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내무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비상국민회의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정치인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정치인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2. 생애

1757년 (영조 때)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설서, 사서, 수찬을 지내고 진위 사진 어사를 거쳐 사진 어사, 영남 어사, 양진 어사를 지냈다. 이후 교리, 부수찬, 문사 낭청, 부응교, 사간, 응교를 거쳐 의주부윤으로 특채되었다.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지내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우부승지를 지내고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홍봉한 세력에 의해 이조참의를 거쳐 동지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공조판서로 비변사제조를 겸하고 공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를 하였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강화유수로 외직에 나갔다가 정조에 의해 우의정이 되고, 곧 좌의정까지 되었다.

17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조카 홍국영이 조정에서 퇴출되면서 함께 파직되었다. 1780년 삭탈되고 관직에서 쫓겨났다.

2.1. 가계 및 배경

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홍창한이고, 어머니는 기계 유씨(杞溪兪氏)로 유두순(兪斗純) 혹은 유두기(兪斗基)의 딸이다. 그는 선조와 인목왕후 소생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이다. 홍주원의 장남 홍만용은 홍봉한, 홍인한, 홍용한, 홍준한 4형제와 홍상한의 고조부가 되고, 홍주원의 차남이자 홍만용의 동생 홍만형은 홍낙순의 5대조가 된다.

홍봉한, 홍인한, 홍상한 등은 9촌 아저씨가 되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와도 10촌간이 된다. 그런데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의하면 홍낙순은 9촌 아저씨인 홍인한과 원수가 져서 서로 죽이려고 할 정도였다 한다. 왜 원한을 품게 되었는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혜경궁의 한중록에 의하면 홍국영홍인한을 싫어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로 홍인한과 홍낙순이 서로 원수처럼 여긴 것을 지목했다.

2.2. 관직 생활

1757년 영조 때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설서, 사서, 수찬을 지내고 진위 사진 어사를 거쳐 사진 어사, 영남 어사, 양진 어사를 지냈다. 이후 교리, 부수찬, 문사 낭청, 부응교, 사간, 응교를 거쳐 의주부윤으로 특채되었다.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지내며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우부승지를 지내고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홍봉한 세력에 의해 이조참의를 거쳐 동지의금부사에 제수되었다. 대사헌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을 지내다 공조판서로 비변사제조를 겸하고 공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를 하였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강화유수로 외직에 나가있다가 정조에 의해 우의정이 되고, 곧 좌의정까지 되었다.

1779년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조카 홍국영이 조정에서 퇴출되면서 함께 파직에 처해졌다. 1780년 삭탈되고 관직에서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