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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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주원은 조선 시대의 인물로, 정명공주와 혼인하여 영안위에 봉해졌다. 그는 이괄의 난 당시 인목대비와 인열왕후를 호종한 공로로 품계가 올랐으며, 청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오기도 했다. 효종 즉위 후 고부청시청승습정사에 임명되었고, 1672년에 사망하여 문의의 시호를 받았다. 그의 가족으로는 선조와 인목왕후가 있으며, 아들 홍만용과 홍만형 등이 있다.
| 이름 | 홍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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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표기 | 洪柱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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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Hong Ju-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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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위 | 영안위 (永安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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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 풍산 홍씨 (豊山 洪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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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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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6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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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1672년 11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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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 건중 (建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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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호 | 문의 (文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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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 무하당 (無何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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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홍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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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연안 이씨 (貞敬夫人 延安 李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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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정명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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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7남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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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청원군에 봉해지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회안군 이방간과 내통한 죄로 폐서인되어 사망했다.
2. 생애
홍주원은 어려서 외조부 이정귀와 김류에게 글을 배웠고, 관례를 치르기 전 향시에 합격했다. 1623년 정명공주와 혼인하여 숭덕대부 영안위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1624년 이괄의 난 때는 인목대비와 인열왕후를 호종한 공로로 품계가 승진했다.
1629년 인조는 인목대비를 위로하기 위해 홍주원의 아버지 홍영을 예조참판에 제수했고, 1631년에는 인목대비의 건강이 좋지 않아 홍주원의 품계를 높였다. 1647년부터 1648년까지 청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왔다.
1649년 효종 즉위 후 고부청시청승습정사에 임명되었고, 1672년 사망하여 문의(文懿)라는 시호를 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혼인
어려서 외조부 이정귀와 김류에게 글을 배웠으며 관례를 치르기 전 향시에 합격하였다. 1623년 9월 26일 간택을 받아 정명공주와 혼인하였고, 그 다음날 숭덕대부(崇德大夫) 영안위(永安尉)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혼인 몇 달 후 인목대비가 어승마를 홍주원에게 하사하자 사간원의 간쟁을 받았다.
홍주원은 정명공주와 혼인하기 전에 약혼녀가 있었지만, 정명공주와의 혼인을 위해 강제로 파혼해야 했다. 당시 신분이 높을수록 혼인 연령이 빨랐기 때문에, 공주와 동갑인 양반 가문의 남자들은 대부분 이미 혼인하였거나 약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홍주원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인을 미루고 있었고, 결국 정명공주의 남편으로 간택되었다.
2.2. 이괄의 난과 정치 활동
어려서 외조부 이정귀와 김류에게 글을 배웠으며 관례를 치르기 전 향시에 합격하였다. 1623년 9월 26일 간택을 받아 정명공주와 혼인하였고, 그 다음날 숭덕대부(崇德大夫) 영안위(永安尉)의 관직을 제수 받았다. 혼인 몇 달 후 인목대비가 어승마를 홍주원에게 하사하자 사간원의 간쟁을 받았다.
1624년(인조 1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우의정 신흠, 서평부원군 한준겸 등과 함께 인목대비와 인열왕후를 호종하였고, 그 공로로 품계가 승진하였다.
1629년(인조 6년), 인조가 인목대비를 위로하기 위해 홍주원의 부친인 홍영의 벼슬을 예조참판에 제수하였고 1631년 인목대비의 건강이 좋지 않자 인조는 대비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홍주원의 품계를 높였다. 1647년 10월 4일에서 1648년 2월 27일까지 청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649년(인조 26년), 효종이 즉위한 후 고부청시청승습정사(告訃請諡請承襲正使)에 임명되었다.
2.3. 사망
1672년 11월 3일(음력 9월 14일)에 사망하였으며, 문의(文懿) 시호를 받았다.
4. 기타
* 2015년 MBC 드라마 《화정》에서 서강준(아역 윤찬영, 최권수)이 홍주원 역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