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병기
1. 개요
홍병기는 1869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인물로, 무관으로 복무하다가 동학에 입교하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일본에서 갑진개화운동에 참가했으며, 3·1 운동에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참여했다. 고려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광복 후에는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1949년 사망 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이름 | 홍병기 |
|---|---|
| 원어명 | 洪秉箕 |
| 출생일 | 1869년 11월 5일 |
| 사망일 | 1949년 1월 26일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별명 | 도호(道號)는 인암(仁菴) |
| 본관 | 남양(南陽) |
| 종교 | 유교(성리학) → 천도교 |
| 직책 | 왕세자익위사 계방 관원 |
|---|---|
| 군주 | 조선 고종 이형 |
| 대표 | 왕세자 이척 |
| 임기 | 1887년 12월 1일 ~ 1890년 12월 1일 |
| 소속 정당 | 무소속 |
|---|---|
| 경력 | 고려혁명위원회 위원장 고려혁명당 고문 한국독립당 고문 |
| 부모 | 홍익룡(부), 한익화(모) |
|---|---|
| 친인척 | 홍승로(9촌 삼종질) |
| 서훈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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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혁명당 -
현익철
현익철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
고려혁명당 -
오동진 (1889년)
오동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교육 계몽 운동을 하다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협력했으며,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사,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 -
손병희
손병희는 조선 말 동학의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종교인, 독립운동가로서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며 인내천 사상을 강조했다. -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 -
권동진
권동진은 조선 말기 개화파 관료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을미사변 가담 후 천도교에 입교, 3·1 운동 민족대표, 신간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
남양 홍씨 (토홍) -
홍사용
홍사용은 노작, 소아, 백우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민족주의적 낭만파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일제강점기 친일 활동을 하지 않았고, 휘문의숙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 문예지 창간, 극단 활동, 희곡 창작 등의 활동을 했다. -
남양 홍씨 (토홍) -
홍의락
2.1. 동학 농민 운동과 천도교 입문
1892년 동학에 입교하여, 1894년 손병희 휘하에서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박인호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 망명해 있던 손병희로부터 진보회를 창설하여 머리를 자르게 하라는 지시를 직접 받고 갑진개화운동에도 참가했다.
2.2. 3.1 운동과 민족대표 33인
1919년 손병희가 주도한 3·1 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측 대표로 참여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했다.
2.3. 만주 망명과 독립운동
손병희 사망 이후, 천도교 내에는 최린의 신파와 이에 대항하는 구파 외에 소장파를 중심으로 반일 항쟁을 기도하는 파벌이 생겨났다. 1922년 경성부에서 고려혁명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홍병기는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가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천도교 연합회라는 공동체를 설립하여 절대적 평등과 개인의 수양을 지향하며 공동 경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4년 4월 5일 천도교 최고비상혁명위원회를 재조직하기도 했다.
1926년 지린에서 최동희, 김봉국 등 천도교 혁신파가 정의부와 연합하여 양기탁을 위원장으로 한 고려혁명당을 창당할 때 고문으로 참가했다가 검거되어 또다시 징역 2년형을 받아 복역했다.
2.4. 광복 이후
해방 이후 홍병기는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김구 등 임정 요인들이 충칭에서 환국하자 그는 삼일동지회의 일원으로 독립총성 선서식을 거행하였으며, 임정 계열 인사들이 참여한 한국독립당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