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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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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용명은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중국 베이징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하여, 1945년 이화여자중학교 피겨 특기생으로 귀국했다.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전국선수권대회 및 동계체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57년 선수 은퇴 후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며 제자를 양성했고,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제자 장명수를 이끌고 출전했다. 1980년 지도자에서 은퇴한 후 강원도 삼척에서 거주하며, 2010년 4대륙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 원로 자격으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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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명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홍용명
로마자 표기Hong Yong-myeong
출생일1932년
국적대한민국
경력1948년 전국여자피겨선수권대회 우승
직업피겨 스케이팅 선수
활동 기간1940년대 ~ 1957년
참고자료
출판사연합뉴스
날짜2010-02-16

2. 생애

한국 피겨 스케이팅 1세대 선수이자 지도자이다.[2][3]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2] 일제강점기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하여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1][3]

1945년 8·15 광복 이후 귀국하여 이화여자중학교 피겨 특기생으로 입학했고,[3][4]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피겨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5] 한국 전쟁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전쟁 후 복귀하여 실내 빙상장조차 없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6][7] 훈련을 이어가며 여러 차례 전국 대회 정상에 올랐다.[3][8]

1957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3] 이후 1980년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며 장명수를 비롯한 후배 양성에 힘썼다.[3][4][10] 지도자 은퇴 후에는 1991년부터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하여 거주하고 있으며,[4] 한국 피겨계의 원로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3][4]

2. 1. 유년 시절

홍용명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2] 일제강점기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했다.[3] 베이징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피겨 스케이팅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듣고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1]

2. 2. 선수 시절

1945년 8·15 광복 직후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자중학교에 피겨 특기생으로 입학했다.[3] 같은 해 창단된 이화여자중학교 피겨 스케이팅부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4]

선수 시절 초기에는 겨울이면 서울 덕수궁이나 창경원 (현 창경궁) 연못의 빙판에서 피겨 스케이팅 연습을 했다.[2] 당시 연습할 때 부츠 끈을 묶어주려는 남학생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2]

1948년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린 '전국 여자 피겨 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한국 최초의 여자 피겨 선수권 대회 우승자가 되었다.[5]

그러나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 전쟁(1950년~1953년)이 발발하면서 잠시 피겨 스케이팅을 중단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주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하여 다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3]

홍용명이 선수로 활동하던 1950년대 한국에는 실내 스케이트장이 전혀 없을 정도로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6][7]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열정으로 매년 겨울 한강덕수궁 등지에서 연습을 이어갔다.[3] 날씨가 따뜻해져 서울에서 얼음이 녹으면 멀리 강원도 철원이나 화천까지 가서 연습했지만, 그곳 역시 정식 빙상장이 아닌 얼어붙은 연못이었기에 1년에 약 3개월 정도만 훈련할 수 있었다.[3]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훈련을 계속할 수 있었던 동기는 가끔 열리는 전국 선수권 대회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홍용명은 인터뷰에서 "그때는 대회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죠. 얼음이 얼면 한강에서 선수 몇 명이 대회를 치렀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고, 코치도 없이 잡지책 보고 포즈 몇 번 잡아보면서 익힌 기술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박수쳐주던 사람들이 고마웠을 따름이었어요."라고 회고했으며,[3] "당시에는 1회전 점프만 뛰어도 대단한 일이었다"라고 덧붙였다.[2]

1948년 첫 우승 이후에도 1955년부터 1957년까지 3년 연속으로 전국선수권대회 및 동계체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8]

1953년에는 제자 5명과 함께 일본 삿포로로 전지 훈련을 다녀오기도 했다.[2]

1957년 전국여자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3]

2. 3. 선수 은퇴 후 후배 양성

1957년 선수 생활을 마친 후, 1980년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피겨 스케이팅 지도자로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3][4]

1967년에는 제자인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선수 장명수를 데리고 오스트리아 에서 열린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참가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11세였던 장명수 선수가 나이 제한에 걸려 정식 출전은 하지 못했다.[9] 하지만 홍용명은 주최 측의 허가를 받아 장명수 선수가 시범 경기에 특별 출연할 수 있도록 했고, 이때 한국에서 가져간 색동저고리를 입고 연기한 모습이 유럽 전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8]

이후 1972년에는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제자 장명수 선수를 이끌고 참가했다.[10]

2. 4. 지도자 은퇴 이후

1980년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피겨 스케이팅 지도자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91년부터는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4]

2010년 2월 26일 김연아 선수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자, 홍용명은 한 인터뷰를 통해 "2005년부터 연아의 재능을 알고 큰 일을 할 것으로 믿었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기쁜 날을 맞게 됐다"고 기쁨을 표현했다.[4] 같은 해 2월 27일에는 대한민국 전주에서 개최된 4대륙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 원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3]

3. 수상


  • 1948년 전국여자피겨선수권대회 우승[5]
  • 1955년~1957년 전국선수권대회 및 동계체전에서 1위[8]

참조

[1] 뉴스 "연아가 정말 자랑스럽고..눈물이 난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0-02-16
[2] 뉴스 한국 피겨 1호 할머니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http://article.joins[...] 중앙 일보 2010-08-11
[3] 뉴스 한국피겨여성1호가 본 김연아와 4대륙대회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0-01-28
[4] 뉴스 국내 1호 피겨소녀의 눈물 http://www.kwnews.co[...] 강원일보 2010-02-27
[5] 뉴스 "<올림픽> 한국 피겨 100년, 새 역사 맞이"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0-02-26
[6] 뉴스 한국 여성피겨 1호 "김연아 자랑스럽다!" http://www.ytn.co.kr[...] YTN 뉴스 2010-02-27
[7] 문서 최초의 실내스케이트장은 1964년 개장된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다.
[8] 뉴스 한국 최초 女피겨스타, 그의 죄목은 ‘풍기문란’ http://news.khan.co.[...] 경향뉴스 2009-04-03
[9] 문서 한국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국제 대회 출전 1968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이며 참가자는 이광영(남) 김혜경(여) 이현주(여)이다.
[10] 뉴스 "[2010밴쿠버]한국,102년 만에 올림픽 피겨 金 따기까지"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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