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주
1. 개요
홍현주는 1807년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에 봉해진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그의 조부 홍낙성이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였기에 부마로 간택되었으며, 정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조를 섬겼다. 문장가로서 시문과 서화에 능했으며,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저서로 《해거시집》이 있으며, 숙선옹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홍우철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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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홍씨 -
홍명희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정치인으로, 장편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하며, 독립운동 참여, 언론 및 교육계 활동 후 해방 후 남북협상 참여, 월북하여 북한에서 요직을 역임하며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풍산 홍씨 -
홍진
홍진은 대한제국 시기 법관, 변호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내무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비상국민회의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부마 -
윤사로
윤사로는 세조의 계유정난 공신으로 의정부 좌찬성 등 요직을 역임하며 세조 정권에 기여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등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조선왕조실록에 영민함과 청렴함이 기록됨과 동시에 재산 축적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시된 조선 전기의 인물이다. -
조선의 부마 -
심종
심종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청원군에 봉해지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회안군 이방간과 내통한 죄로 폐서인되어 사망했다.
2. 생애
1807년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永明尉)에 봉해졌다. 부마 간택은 조부 홍낙성이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1815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1817년 형 홍석주가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순조에게 상소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정조부터 고종까지 다섯 왕대를 섬겼으며, 1865년 사망하자 대왕대비 조씨가 장례 비용으로 1000냥, 포(布)와 목(木) 각 5동(同)을 내렸다. 사가 외당(外堂)에는 순조의 어필전서로 〈금옥당(金玉堂)〉이라는 편액(扁額)이, 원정(園亭)에는 익종의 어필로 〈시림정(市林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2.1. 왕실과의 인연과 관직 생활
1807년 숙선옹주와 혼인하여 영명위(永明尉)에 봉해졌다. 홍현주가 부마로 간택된 이유는 조부 홍낙성이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1815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1817년 형 홍석주가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순조에게 상소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정조부터 고종까지 다섯 왕대를 섬겼으며, 1865년 사망하자 대왕대비 조씨가 장례 비용으로 1000냥, 포(布)와 목(木) 각 5동(同)을 내렸다. 사가 외당(外堂)에는 순조의 어필전서로 〈금옥당(金玉堂)〉이라는 편액(扁額)이, 원정(園亭)에는 익종의 어필로 〈시림정(市林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시문과 서화, 차를 즐겼는데 청의 문인 오숭량, 옹수곤 등과 시문을 통해 교류했다. 저서로 《해거시집》(海居詩集)이 있다.
2.2. 문화 예술 활동과 청나라와의 교류
홍현주는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시문과 서화, 차를 즐겼다. 청의 문인 오숭량, 옹수곤 등과 시문을 통해 교류했다. 《해거시집》(海居詩集)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3. 가족 관계
홍현주는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인 홍낙성(1718년~1798년)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홍인모이며, 어머니는 영수합 서씨이다. 홍석주, 홍길주는 홍현주의 형이고, 홍원주는 여동생이다. 부인은 정조의 서차녀인 숙선옹주이며, 아들은 홍우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