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선옹주 (왕녀)
1. 개요
숙선옹주는 조선 정조와 수빈 박씨의 딸로, 순조의 유일한 동복 누이이다. 1804년 홍현주와 혼인하여 1813년 아들 홍우철을 낳았다. 숙선옹주는 깍두기의 유래와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며, 1836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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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의 자녀 -
문효세자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문효세자는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5세에 홍역으로 요절하여 정조에게 큰 슬픔을 안겼고, 그의 죽음은 조정의 정치적 상황에도 영향을 미쳤다. -
조선 정조의 자녀 -
상계군
상계군은 사도세자의 서손자이자 은언군의 장남으로,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의 양자가 되어 왕세자 대우를 받았으나 홍국영 실각 후 상계군으로 작위가 변경되었고 독살 의혹 속에 사망했으며, 철종 때 복작되고 정1품 현록대부에 증작되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전주 이씨 -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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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 -
이상민 (법조인)
2. 생애
1803년(순조 3년), 숙선옹주의 혼례를 위해 금혼령이 내려지고 이듬해 희정당에서 숙선옹주의 부마 초간택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중희당(重熙堂)에서 재간택이 이루어져 전 정랑(正郞) 홍인모(洪仁謨)의 아들이자 홍석주의 동생인 홍현주가 부마로 뽑혔다. 숙선옹주는 순조의 유일한 동복누이로 순조와 사이가 좋았다. 이후 숙선옹주의 후손이 끊어져 남편 홍현주와 같은 풍산 홍씨 일가인 홍명희가 제사를 받들었다.
2.1. 초기 생애 (1793년 ~ 1804년)
숙선옹주는 1793년 4월 11일 수빈 박씨와 정조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이자 외동딸이다. 그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1800년 8월 18일, 아버지 정조가 재위 24년 만에 사망하자, 오빠인 이공이 1800년 8월 23일에 왕위에 올랐다.
2.2. 혼인 (1804년)
1804년(순조 4년) 5월 27일, 숙선옹주는 12세의 나이로 홍현주에게 하가하였다. 숙선옹주는 순조의 유일한 동복 누이로 순조와 사이가 좋았는데, 순조는 옹주의 혼인에 즈음하여 내수사에 명해 쌀 1백 석, 무명 10동(同), 포(布) 5동, 돈 3000냥을 내리게 하고 이는 숙선옹주에 한한 일이니 전례로 삼지 말라고 하교했다. 이후에도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숙선옹주의 집에 임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27일, 11세의 숙선옹주는 홍인모의 막내아들이자 홍석주의 동생인 홍현주와 혼인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영명위(영명위)로 봉해졌다. 혼례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거행되었다.
숙선옹주는 오빠인 순조(조선 순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 그녀의 결혼 후에도 궁궐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조는 계속 그녀를 방문했다.
2.3. 혼인 이후 (1804년 ~ 1836년)
1804년(순조 4년) 5월 27일, 숙선옹주는 12세의 나이에 홍현주에게 하가하였다. 숙선옹주는 순조의 유일한 동복누이로 순조와는 사이가 좋았는데, 순조는 옹주의 혼인에 즈음하여 내수사에 명해 쌀 1백 석, 무명 10동(同), 포(布) 5동, 돈 3천 냥을 내리게 하고 이는 숙선옹주에 한한 일이니 전례로 삼지 말라고 하교했다. 이후에도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숙선옹주의 집에 가기도 했다.
숙선옹주는 오빠인 순조(조선 순조)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궁궐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조는 계속 그녀를 방문했다.
1813년, 숙선옹주는 외아들 홍우철을 낳았다.
홍선표의 저서인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 따르면, 숙선옹주는 무를 깍둑썰기하여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다. 이 음식을 왕족들이 맛보았고, 모두 좋아하여 왕이 그녀를 크게 칭찬했다. 이 음식은 깍두기라고 명명되었는데, 음식 재료를 깍둑썰기하는 것을 한국어로 '깍둑썰기'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후 숙선옹주의 후손이 끊어져 남편 홍현주와 같은 풍산 홍씨 일가인 홍명희가 제사를 받들었다.
숙선옹주는 1836년 6월 7일에 사망했다.
3. 가족 관계
4. 일화
홍선표의 저서 《조선요리학》에 따르면, 숙선옹주가 무를 썰어 만든 요리를 임금에게 올려 크게 칭찬을 받았는데 이것이 깍두기의 시작이라고 한다. 아버지 정조가 승하했을 때 숙선옹주의 나이가 겨우 8세였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임금은 오라버니인 순조로 보인다.
5. 저서
숙선옹주의 저서로는 《의언실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