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성
1. 개요
홍낙성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 6촌 오빠이자 정조의 외가 7촌 아저씨이며, 정조의 세손 시절 홍봉한, 홍국영과 함께 세손을 지원했다. 1797년 80세에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청렴하고 정사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글을 잘 지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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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년 출생 -
마리아 아녜시
마리아 가에타나 아녜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미적분학 교과서를 출판하여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아녜시의 마녀" 곡선으로 알려졌으며, 아버지 사망 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
1718년 출생 -
계황후
청나라 건륭제의 황후인 계황후는 휘발나랍씨로, 황귀비에서 황후가 되었으나 강남 순행 중 머리를 자른 사건으로 폐위되어 시호도 받지 못했으며, 그녀의 성씨, 생년, 폐위 경위 등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
1798년 사망 -
조지 밴쿠버
조지 밴쿠버는 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로서, 쿡 선장의 항해 경험을 바탕으로 북미 태평양 연안을 탐험하고 측량하며, 영국 지배를 확고히 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그의 탐험은 지리적 지식 확장과 밴쿠버와 같은 지명에 그의 이름을 남겼지만, 원주민 관계와 주요 강 발견 실패에 대한 평가도 존재한다. -
1798년 사망 -
리가스 페레오스
리가스 페레오스는 18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 치하 그리스에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민중 그리스어로 애국심을 고취하고 공화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발칸 반도 봉기를 꾀한 혁명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로, 그의 사상은 그리스 독립 전쟁과 필리키 에테리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풍산 홍씨 -
홍명희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정치인으로, 장편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하며, 독립운동 참여, 언론 및 교육계 활동 후 해방 후 남북협상 참여, 월북하여 북한에서 요직을 역임하며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풍산 홍씨 -
홍진
홍진은 대한제국 시기 법관, 변호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내무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비상국민회의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2. 생애
홍낙성은 풍산 홍씨 명문가 출신으로, 사도세자빈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이다. 고모 중 한 명은 청풍 김씨 김치만과 혼인했는데, 그 아들들이 학자 김종후와 노론 청류파, 청명파 지도자 몽오 김종수로, 홍낙성에게 고종사촌이 된다.
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시강원 사서, 지평, 사간 등을 역임했다. 1757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승지를 거쳐 대사성이 되었다. 이후 이조참의, 강화부유수, 가선대부 이조참판, 형조판서, 1768년 이조판서, 우참찬, 산릉도감제조, 전라도관찰사,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공조판서, 수어사, 좌참찬, 지경연사 등을 역임했다. 세손 모해사건 당시 세손을 지원했다. 정조 즉위 후 의정부우의정, 의정부좌의정을 거쳤다. 1784년 사은사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왔다. 1793년 영의정에 올랐다. 1797년 80세에 궤장을 하사받고 중추부영사로 전직, 기로소에 들어갔다.
정조의 외가 7촌 아저씨로, 《이재난고》에 따르면 홍낙성의 첩이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친언니였다고 한다. 정조의 차남 순조와 차녀 숙선옹주 탄생 시 약원의 도제조를 맡았으며, 훗날 홍낙성의 손자 홍현주와 숙선옹주가 혼인한다.
2.1. 가계 배경
홍낙성은 명문가인 풍산 홍씨 가문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홍석보이고, 종조부 홍현보는 혜경궁 홍씨의 할아버지이다. 따라서 사도세자빈 혜경궁 홍씨의 친정 6촌 오빠가 된다. 고모 중 1명은 청풍 김씨 김치만과 혼인했는데, 그들의 아들은 학자 김종후와 노론 내 청류파, 청명파의 지도자 몽오 김종수로, 이들은 홍낙성에게 고종사촌이 된다.
2.2. 관직 생활
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시강원 사서, 지평, 사간 등을 거쳤다. 통정대부로 승진, 승지를 거쳐 1757년 대사성이 되었다. 그 후 이조참의,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 가선대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를 거쳐 1768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이후 우참찬, 산릉도감제조, 전라도관찰사,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공조판서, 수어사, 좌참찬, 지경연사 등을 역임했다. 세손 모해사건 당시 당숙 홍봉한, 족질 홍국영과 함께 세손을 지원하였다. 정조 즉위 후 의정부우의정을 거쳐 의정부좌의정에 등용되었다. 1784년 사은사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왔다. 1793년 영의정이 되었다. 1797년 80세에 궤장을 하사받고 중추부영사로 전직, 기로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