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카를로스 아르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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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안 카를로스 아르테체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라싱 산탄데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주장을 맡아 1984-85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컵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4경기에 출전했으며, 1988년 유럽 선수권 예선 경기에 참여했다. 32세에 은퇴했으며, 2010년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후안 카를로스 아르테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후안 카를로스 아르테체 고메스
출생일1957년 4월 11일
출생지말리아뇨, 스페인
사망일2010년 10월 13일 (53세)
사망지마드리드, 스페인
신장1.88m
포지션DF (CB)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1974–1975: 라싱 산탄데르
클럽 경력1975–1978: 라싱 산탄데르 (48경기, 2골)
1975–1976: → 힘나스티카 (임대) (25경기, 0골)
1978–198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08경기, 18골)
통산 출전 및 득점381경기, 20골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국가대표1986: 스페인 U-23 (1경기, 0골)
국가대표1986–1987: 스페인 (4경기, 1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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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칸타브리아 주 말리아뇨 출신인 아르테체는 라싱 산탄데르에서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6-77 시즌라리가 데뷔전을 치렀고, 라싱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1978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그는 11시즌 동안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1984-85 시즌 리그 준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고, 1985-86 시즌에는 컵위너스컵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나 디나모 키이우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아르테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리그 308경기에 출전하여 구단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리그 출전 기록을 남겼다.

1988-89 시즌에는 당시 헤수스 힐 구단 회장과의 심각한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단 2경기 출전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32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라싱 산탄데르 (1976-1978)

칸타브리아 주 말리아뇨 출신인 아르테체는 어린 시절 농구테니스를 즐겨 했으나, 결국 축구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17세에 지역 축구팀인 라싱 산탄데르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프로 초기인 1975-76 시즌에는 경험을 쌓기 위해 짐나스틱 타라고나로 임대되었다.

1976-77 시즌, 당시 스페인 1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라싱 산탄데르로 복귀하여 프로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이 시즌에 그는 라리가 16경기에 출전했으며, 소속팀 라싱 산탄데르는 리그 15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강등을 피했다.

다음 시즌인 1977-78 시즌에는 팀이 초반부터 부진하며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아르테체는 유소년팀 시절부터 함께한 동료 마르코스 알론소, 키케 세티엔 등과 힘을 합쳐 팀의 강등을 막아내는 데 기여했다. 이 두 선수는 훗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아르테체와 함께 뛰게 된다.

2.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78-1989)

라싱 산탄데르에서 1년을 더 보낸 아르테체는 1978년, 21세의 나이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1시즌 동안 부동의 주전이자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선수 경력 후반에는 주장도 역임했다.

1984-85 시즌, 아르테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같은 해 코파 델 레이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에 기여했다. 이듬해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전 진출을 이끌었으며,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디나모 키이우에 0-3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아르테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리그 308경기에 출전하여, 아데랄도 로드리게스(401경기), 토마스 레뇨네스(367경기), 엔리케 콜라르(338경기)에 이어 구단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리그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1988-89 시즌에는 당시 논란이 많았던 헤수스 힐 회장과의 심각한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단 2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시즌 종료 후 32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아르테체는 3개월 동안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1986년 11월 12일에 열린 루마니아와의 UEFA 유로 1988 예선전이었다.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마드리드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상대 팀 게리 리네커에게 4골을 허용하며 2-4로 패배했다.

4. 사망

혈액의 일종인 백혈병으로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아르테체는 2010년 10월 13일, 마드리드에서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수상 내역

5.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78년, 21세의 나이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1시즌 동안 클럽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선수 경력 후반에는 주장도 맡았다. 1985년에는 코파 델 레이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듬해에는 UEFA 컵 위너스 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FC 디나모 키예프에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또한 1986-87 코파 델 레이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르테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리그 308경기에 출전하여, 아데랄도 로드리게스(401경기), 토마스 레뇨네스(367경기), 엔리케 콜라르(338경기)에 이어 구단 역사상 4번째로 많은 리그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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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우승준우승
코파 델 레이1984–851986–87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1985
UEFA 컵 위너스 컵198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