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리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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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리 리네커는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방송인이다. 레스터 시티, 에버턴, FC 바르셀로나, 토트넘 홋스퍼 등에서 활약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80경기 48골을 기록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했고, 1990년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은퇴 후 BBC의 축구 프로그램 'Match of the Day' 진행을 맡고 있으며, 사회 운동 및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게리 리네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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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리네커
출생 이름게리 윈스턴 리네커
출생일1960년 11월 30일
출생지레스터, 잉글랜드
신장1.77m
포지션축구 공격수 (스트라이커)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연도: 1976–1978
클럽: 레스터 시티
프로 클럽연도: 1978–1985
클럽: 레스터 시티
출장: 194
득점: 95
연도: 1985–1986
클럽: 에버턴
출장: 41
득점: 30
연도: 1986–1989
클럽: 바르셀로나
출장: 103
득점: 42
연도: 1989–1992
클럽: 토트넘 홋스퍼
출장: 105
득점: 67
연도: 1992–1994
클럽: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출장: 18
득점: 4
전체 클럽 경력출장: 461
득점: 238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 B팀연도: 1984
국가대표팀: 잉글랜드 B
출장: 1
득점: 0
국가대표팀연도: 1984–1992
국가대표팀: 잉글랜드
출장: 80
득점: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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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리네커는 청과상의 아들로 태어나 1974년 지역 클럽팀인 레스터 시티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978-79 시즌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며, 레스터 시티에서 점차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1984-85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24골을 기록하며 앨런 스미스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1985-86 시즌 에버턴으로 이적하여 30골로 다시 한번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에버턴에서는 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86-87 시즌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시즌에는 리그 20골을 포함해 총 21골을 기록했으며,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2 승리를 이끌었다. 1988년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89년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1988-89 시즌 도중 요한 크라위프 감독이 부임하면서 주 포지션이 아닌 윙어로 기용되었고,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리그 103경기에 출전하여 42골을 기록했다.

1989년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했다. 1989-90 시즌 24골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세 번째 1부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0-91 시즌에는 FA컵 결승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에서의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1-92 시즌에는 리그 28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에 올랐고, 두 번째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2년,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시 J리그 최고 연봉(추정 3억 엔)을 받으며 큰 기대를 모았으나, 고질적인 발가락 부상 등으로 인해 두 시즌 동안 리그 18경기 출전 4골에 그치는 등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994년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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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시즌 및 대회별 출전 및 골 기록
클럽시즌리그국내 컵리그 컵대륙 대회기타합계
디비전출장출장출장출장출장출장
레스터 시티1978-79세컨드 디비전7171
1979-80세컨드 디비전19310203
1980-81퍼스트 디비전9211103
1981-82세컨드 디비전391752304719
1982-83세컨드 디비전402610204326
1983-84퍼스트 디비전392210104122
1984-85퍼스트 디비전412443324829
합계|95||13||6||9||2||colspan="2"|—||colspan="2"|—||216||103
에버턴1985-86퍼스트 디비전41306553525740
바르셀로나1986-87라리가412011805021
1987-88라리가361652824920
1988-89라리가2664184103811
합계|42||10||4||colspan="2"|—||24||6||1||0||138||52
토트넘 홋스퍼1989-90퍼스트 디비전382410624526
1990-91퍼스트 디비전321563514319
1991-92퍼스트 디비전3528204582105035
합계|67||9||3||15||8||8||2||1||0||138||80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1993J리그710054125
1994J리그1130010123
합계|4||0||0||6||4||colspan="2"|—||colspan="2"|—||24||8
총합|238||38||18||35||17||32||8||7||2||573||283

표 설명:
* 국내 컵: FA컵, 코파 델 레이, 천황배 포함
* 리그 컵: 풋볼 리그 컵, J리그 컵 포함
* 에버턴 기타: FA 채리티 실드 1경기, 풋볼 리그 슈퍼 컵 4경기 2골 포함
* 바르셀로나 대륙 대회: UEFA컵(16경기 2골), UEFA 컵 위너스 컵(8경기 4골) 출장
* 바르셀로나 기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경기 출장
* 토트넘 대륙 대회: UEFA 컵 위너스 컵 8경기 2골 출장
* 토트넘 기타: FA 채리티 실드 1경기 출장

2.1. 레스터 시티 (1978-1985)

리네커는 1977년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 클럽 레스터 시티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78-79 시즌에 프로 선수로 전환했다. 그는 1979년 1월 1일 필버트 스트리트에서 열린 올덤 애슬레틱과의 세컨드 디비전 경기에서 성인 무대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2-0으로 승리했다.

1979-80 시즌에는 19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세컨드 디비전 우승에 기여했지만, 1980-81 시즌에는 리그 9경기 출전에 그쳤고 레스터 시티는 1부 리그에서 한 시즌 만에 다시 강등되었다.

리네커는 1981-82 시즌부터 주전 선수로 도약하여 모든 대회를 통틀어 19골을 기록했다. 비록 레스터 시티는 승격에 실패했지만, FA컵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듬해인 1982-83 시즌에는 리네커가 세컨드 디비전에서 26골을 터뜨리며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1983-84 시즌, 처음으로 1부 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22골을 기록해 리그 득점 2위에 올랐으나, 팀은 리그 상위권에 오르지 못했다. 1984-85 시즌에는 24골을 기록하며 앨런 스미스와 함께 1부 리그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리네커는 여러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의 이적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2.2. 에버턴 (1985-1986)

1985년 채리티 실드에서 우승했다.

1985년 오프 시즌, 이전 시즌 리그 우승팀이었던 에버턴은 리네커를 800에 영입했다. 그는 1985-86 시즌 동안 새로운 팀 소속으로 57경기에 출전하여 40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리네커의 에버턴 데뷔전은 레스터 시티 원정 경기였는데, 하프타임에 실수로 친정팀인 레스터의 드레싱룸으로 들어가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이 시즌에 리네커는 30골(해트트릭 3회 포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1부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에버턴은 리그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에버턴은 3년 연속 FA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지역 라이벌인 리버풀에게 3-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경기에서 리네커는 앨런 한센을 제치고 선제골을 넣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리그에서도 리버풀에게 승점 2점 차이로 밀려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리네커는 에버턴 시절을 회상하며 "머지사이드에 있었던 기간은 총 9개월에서 10개월 정도로 짧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프로 선수로서도 내 경력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고 말했으며, "나는 여전히 에버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은퇴 후 자신이 뛰었던 클럽 팀 중 이 시기의 에버턴 팀이 최고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리네커는 에버턴 소속으로 총 세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 1985년 8월 31일, 버밍엄 시티와의 리그 경기 (4-1 승리)
* 1986년 2월 11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 (4-0 승리)
* 1986년 5월 3일, 시즌 마지막 홈 경기였던 사우스햄튼과의 경기 (6-1 승리). 이 승리로 리그 우승 희망을 이어갔다.

그의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로,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같은 날 리버풀첼시와의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에버턴과 리네커는 리그 우승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2.3. 바르셀로나 (1986-1989)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골든 부트를 수상한 후, 리네커는 2.8에 바르셀로나와 계약을 맺었다.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은 전 퀸즈 파크 레인저스 감독이었던 테리 베나블스였으며,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일스의 공격수 마크 휴즈도 함께 영입했다. 리네커는 레스터 시티 소속으로는 유럽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없었고, 에버턴 시절에는 헤이젤 참사 이후 잉글랜드 클럽의 유럽 대회 출전이 금지되어 1985–86 시즌 유러피언컵 출전이 무산되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유럽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했다.

월드컵 골든 부트 수상으로 인해 캄 노우에서의 성공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리네커는 첫 시즌인 1986-87 시즌에 41경기에 출전하여 21골을 기록하는 등 기대에 부응했다. 특히 1987년 1월 31일, 숙적인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라싱 산탄데르와의 데뷔전에서도 두 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두 번째 시즌인 1987-88 시즌에도 리그 16골을 포함하여 총 20골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는 리네커와 함께 1988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고, 1989년에는 UEFA 컵 위너스 컵 정상에 올랐다. 리네커는 1988-8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결승에서 CSKA 소피아를 상대로 1차전과 2차전에서 각각 골을 기록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고, 결승전에서는 삼프도리아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UEFA컵에서는 던디 유나이티드에게 홈 앤 어웨이로 패배하는 경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1988-89 시즌 도중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리네커의 입지에 변화가 생겼다. 크루이프 감독은 그를 중앙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드 오른쪽 윙어로 기용했고, 이로 인해 점차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리네커는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라리가에서 총 103경기에 출전하여 42골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라리가 역사상 영국 선수가 기록한 최다 골이었으나, 2016년 3월 가레스 베일에 의해 기록이 경신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세 시즌 동안 공식 경기 총 138경기에 출전하여 52골을 기록했다.

2.4. 토트넘 홋스퍼 (1989-199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FC 바르셀로나 시절 팀 동료였던 마크 휴스와 공격진을 구성하기 위해 리네커 영입을 시도했으나, 리네커는 1989년 7월 1.1에 토트넘 홋스퍼와 계약했다.

그는 토트넘에서 3시즌 동안 10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67골을 기록했으며, FA컵 우승을 경험했다. 1989-90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24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고, 팀은 리그 3위를 차지했다.

리네커는 1991 FA컵 결승전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2-1로 꺾고 우승하며 마침내 잉글랜드 국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경기에서 리네커는 오프사이드 논란으로 골이 무효 처리되고, 페널티킥은 상대 골키퍼 마크 크로슬리에게 막히기도 했다. 그는 북런던 더비 라이벌인 아스널과의 준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와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1991-92 시즌에는 리그 35경기에서 28골을 기록하여, 29골을 넣은 이안 라이트에 이어 득점 2위를 차지했다. 이 활약으로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리네커의 개인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토트넘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해당 시즌을 리그 15위로 마감했다. 그의 잉글랜드 축구에서의 마지막 골은 시즌 마지막 날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1-3 패배)에서 나왔다.

2.5.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1992-1994)

1991년 11월, 리네커는 J1리그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로부터 2년 계약 제안을 받고 이적을 결정했다. 토트넘 홋스퍼에 지불된 이적료는 2였다. 이적 결정 직전, 철강 재벌 잭 워커가 인수한 블랙번 로버스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1992년 5월 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토트넘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나고야 그램퍼스에 공식 합류했다. 당시 J리그 최고 연봉(추정 3억 엔)을 받으며 큰 기대를 모았다. 1992년에는 J리그 컵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브라질 클럽 코린치앙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나고야 소속으로 첫 경기를 치렀다.

1993년 J리그 개막을 앞두고, 이탈리아 라치오(토트넘 시절 동료 폴 개스코인 소속팀)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브라질 그레미우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지코가 이끄는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J리그 개막전은 큰 주목을 받았으나 팀은 0-5로 대패했고 리네커도 득점하지 못했다. 5월 26일 요코하마 플뤼겔스전에서 J리그 데뷔 골을 기록했지만, 고질적인 발가락 부상과 동료 조르지뉴와의 호흡 문제 등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리그에서는 단 1골에 그쳤다. 다만 J리그 컵에서는 시미즈 에스펄스전 1골,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 2골 등 4골을 기록했다.

1994년 시즌에는 1st 스테이지 대부분을 부상으로 결장했으나, 최종전인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 교체 출전하며 복귀했다. 2nd 스테이지부터 합류한 유고슬라비아의 스타 플레이어 스토이코비치와의 호흡이 기대를 모았으나, 리네커 자신의 계속된 부상 문제와 스토이코비치의 적응 문제 등으로 함께 뛴 경기는 4경기에 불과했다. 8월 13일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시즌 첫 골을 넣었고, 9월 3일 가시마 앤틀러스과 9월 7일 베르디 가와사키전에서 연속 골을 기록했다. 베르디 가와사키전 골이 그의 현역 마지막 골이 되었다.

결국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1994년 9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영국 언론에서는 그가 미들즈브러사우샘프턴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나고야 그램퍼스에서는 두 시즌 동안 부상으로 인해 리그 18경기 출전 4골, 리그컵 6경기 출전 4골을 포함하여 총 24경기에 출전해 8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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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기록
시즌J리그천황배J리그 컵합계
출장출장출장출장
1993710054125
19941130010123
합계|4||0||0||6||4||24||8

3. 국가대표팀 경력

리네커는 1984년 5월 26일 스코틀랜드와의 1983-84년 홈 챔피언십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데뷔했다. 그는 통산 A매치 80경기에 출전하여 48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였던 보비 찰턴의 기록보다 단 한 골 적은 기록이다.

리네커는 두 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총 10골을 기록했다. 특히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6골을 넣어 득점왕(골든 부트)을 차지했으며, 이는 잉글랜드 선수 최초의 기록이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4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고, 팀은 최종 4위를 기록했다.

UEFA 유로 1988UEFA 유로 1992 본선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유로 1988 본선에서는 득점에 실패했고, 이후 간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UEFA 유로 1992 조별 리그 스웨덴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에 의해 교체 아웃되었다. 그는 이 대회 직전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하여 찰튼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거나 경신할 기회를 놓쳤고, 결국 48골로 국가대표 경력을 마감했다.

리네커는 20년의 현역 생활 동안 단 한 번의 옐로 카드나 레드 카드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며, 이러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인정받아 1990년 FIFA 페어 플레이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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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및 연도별 출전 및 골 기록
국가대표팀연도출전
잉글랜드198410
198596
1986108
198779
1988103
198993
1990158
1991119
199282
합계8048

3.1. 1986년 FIFA 월드컵

리네커는 1986년 FIFA 월드컵잉글랜드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대회 직전 손목 부상을 입어 깁스를 한 상태로 경기에 나섰다. 조별 리그 최종전이었던 폴란드와의 경기에서는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16강 파라과이전에서도 2골을 추가하며 3-0 승리에 기여했고, 8강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팀이 0-2로 뒤지던 후반 막판 만회골을 넣었으나 팀은 1-2로 패배했다. 리네커는 이 대회에서 총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같은 해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2위에 선정되었다.

3.2. 1990년 FIFA 월드컵

1990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에 출전하여 잉글랜드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조별 리그 아일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했고, 8강전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는 1-2로 뒤지던 후반 막판 페널티킥 동점골과 연장전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준결승전에서는 서독을 상대로 0-1로 뒤지던 후반 3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으나, 팀은 연장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리네커는 이 대회에서 총 4골을 기록했으며, 잉글랜드는 최종 4위를 차지했다. 월드컵 이후 브라이언 롭슨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을 맡게 되었다. 또한, 이 해에 FIFA 페어 플레이 상을 수상했다.

3.3. UEFA 유로 1988 및 1992

리네커는 UEFA 유로 1988UEFA 유로 1992 본선에 잉글랜드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유로 1988 예선에서 리네커는 중요한 득점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1986년 10월 15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었고, 1987년 10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8-0 대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정작 UEFA 유로 1988 본선 무대에서는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1988년 한 해 동안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총 3골을 기록했으나, 이는 모두 본선 이전 또는 이후의 친선 경기 등에서 나온 골이었다.

유로 1992 예선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특히 1991년 11월 13일, 본선 진출을 위해 최소 무승부가 필요했던 폴란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0-1로 뒤지고 있을 때, 리네커는 점핑 발리슛으로 극적인 동점 골을 성공시켜 팀의 1-1 무승부와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UEFA 유로 1992 본선 직전인 1992년 4월 2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독립국가연합과의 친선 경기에서 득점(통산 48호 골)을 기록한 후, 5월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는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었던 보비 찰튼의 49골과 타이를 이룰 기회를 놓쳤다.

UEFA 유로 1992 본선 무대는 리네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 반드시 득점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은 리네커를 경기 도중 교체했다.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며 탈락했고, 리네커는 결국 이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그는 유로 1992 본선에서도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4. 은퇴 후 활동

1999년, 월드 사커지의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 중 36위에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은퇴 후에는 주로 방송 분야에서 활동하며, 영국 BBC의 간판 축구 프로그램인 "Match of the Day"(MOTD) 진행자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또한 신문 등에서 축구 해설가로도 활동 중이다.

과거 몸담았던 레스터 시티에 대한 애정이 깊어, 2002년 팀이 재정 위기에 처했을 때 사재를 출연하여 구단을 도왔다. 또한 2015-16 시즌 레스터 시티의 극적인 우승 당시, 시즌 전 "레스터가 우승하면 속옷 차림으로 방송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실제로 다음 시즌 첫 MOTD 방송에서 레스터 시티 엠블럼이 새겨진 트렁크 팬츠 차림으로 등장하여 약속을 지켰다.

2023년 3월에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영국 정부의 난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가 BBC로부터 MOTD 진행자 자리에서 잠정 하차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이안 라이트, 앨런 시어러 등 동료 방송인들과 선수들의 지지 및 프로그램 보이콧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커졌고, 결국 BBC는 결정을 번복하고 리네커는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4.1. 방송인

프로 축구 선수 은퇴 후, 리네커는 미디어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BBC에서 라디오 5 라이브 활동 및 축구 해설가로 일했으며,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스포츠 게임 쇼 They Think It's All Over의 팀 주장을 맡았다. 1997년 에인트리에서 열린 그랜드 내셔널 경마 대회가 폭탄 위협으로 중단되었을 때는 런던 스튜디오에서 데스몬드 리넘을 대신해 그랜드스탠드를 임시로 진행하기도 했다.

1999년, 리네커는 데스몬드 리넘의 뒤를 이어 BBC의 간판 축구 프로그램인 Match of the Day를 포함한 주요 축구 중계 진행자가 되었고, BBC 스포츠 내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또한, 수준급 아마추어 골퍼(핸디캡 4)이기도 한 그는 2005년 스티브 라이더가 BBC를 떠나자 BBC 골프 중계의 새로운 진행자로 발탁되어 마스터스와 디 오픈 중계를 맡았다. 일부 동료들의 비판도 있었으나 중계를 계속 이어갔다.

방송 활동 중 몇 차례 논란도 있었다. 2005년에는 더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실린 칼럼 내용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선수 해리 큐얼로부터 명예 훼손 소송을 당했다. 해당 칼럼은 큐얼이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리버풀로 이적하는 과정에 대해 다루었는데, 재판 과정에서 이 칼럼이 실제로는 리네커와의 전화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자가 대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배심원단은 평결에 이르지 못했다. 2010년 5월에는 트리즈먼 남작에 대한 언론의 함정 취재가 잉글랜드의 2018 FIFA 월드컵 유치 활동에 해를 끼쳤다고 항의하며 더 메일 온 선데이의 칼럼니스트직을 사임했다. 트리즈먼은 스페인과 러시아가 2010년 FIFA 월드컵 심판 매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적인 대화가 몰래 녹음되어 공개된 후, 월드컵 유치위원회 위원장과 FA 회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리네커는 BBC 외에서도 활동했다. 중동 지역에서 방송되는 알 자지라 스포츠(현 beIN 스포츠)에서 영어 축구 중계 앵커를 맡았으나 2012년에 떠났다. 2013년부터는 미국 NBCSN의 프리미어 리그 중계에 참여하여 미국판 Match of the Day 제작에 기여했다. 2015년 6월에는 BT 스포츠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중계 메인 진행자로 발표되었다.

리네커는 레스터 시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왔다. 2002년 팀이 재정 위기에 처했을 때 사재를 출연해 구단을 도왔다. 또한, 2015-16 시즌 레스터 시티가 돌풍을 일으키자 2015년 12월 자신의 트위터에 "레스터가 우승하면 다음 시즌 첫 'Match of the Day'에 속옷만 입고 출연하겠다"고 공약했다. 레스터 시티가 실제로 우승하자, 그는 2016-17 시즌 첫 방송인 2016년 8월 13일, 약속대로 레스터 시티 엠블럼이 새겨진 트렁크 팬티만 입고 방송을 진행했다. 일부 팬들이 브리프 차림을 기대했다는 반응에 대해 그는 트위터에 "트렁크 팬츠도 속옷이다. 충분히 민망했다"고 언급했다.

리네커는 오랫동안 BBC에서 최고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 진행자였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1.75에서 1.76 사이를 받았고, 2020–21년에는 약 1.35를 받았다. 그의 높은 출연료는 국회 디지털, 문화, 미디어 및 스포츠 위원회 의장인 보수당 소속 줄리안 나이트와 유명 방송인 에스더 란젠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BBC의 팀 데이비 사무총장은 리네커가 제공하는 "분석의 가치"를 고려할 때 정당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2023년 3월, 리네커는 자신의 트위터에 영국 정부의 난민 및 이민자 정책을 1930년대 독일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BBC는 그를 'Match of the Day' 진행에서 잠정 하차시켰다. 그러나 이안 라이트, 앨런 시어러 등 동료 출연자들과 다른 축구 프로그램 관계자, 현역 선수들까지 리네커를 지지하며 BBC 프로그램 출연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제작진이 파업에 돌입하는 등 파장이 커졌다. 결국 BBC는 'Match of the Day'를 스튜디오 진행자 없이 축소 방송하거나 일부 축구 프로그램 편성을 취소해야 했고,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한 끝에 리네커의 프로그램 복귀를 발표했다.

2024년 11월 11일, 1999년부터 'Match of the Day'를 진행해 온 리네커는 2024-25 프리미어 리그 시즌이 끝나는 2025년 5월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캐나다, 미국, 멕시코에서 열리는 2026년 FIFA 월드컵과 2025-26 FA컵 중계를 마지막으로 BBC를 떠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리네커는 다양한 방송 및 미디어 활동을 했다. 1994년 레스터에 본사를 둔 스낵 회사 워커스(Walkers)와 200 규모의 계약을 맺고 1995년 "Welcome Home" 광고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TV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워커스는 한때 리네커의 이름을 따서 소금 식초 맛 감자칩 제품명을 'Salt & Lineker'로 바꾸기도 했다. 2000년에는 그의 워커스 광고가 채널 4 선정 "100대 최고 TV 광고" 9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1987년 에든버러 공작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주최한 자선 TV 쇼 그랜드 녹아웃 토너먼트에 참여했으며, 1991년에는 연극 게리 리네커와의 저녁에 출연하기도 했다(이 연극은 1994년 TV용으로 제작됨). 1998년에는 월드컵 역사를 다룬 6부작 TV 시리즈 Golden Boots를 진행했다. 2006년에는 BBC 어린이 채널 CBeebies의 애니메이션 언더그라운드 어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2008년에는 퀴즈쇼 밀리어네어에 출연해 럭비 선수 오스틴 힐리와 함께 5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2009년에는 당시 아내였던 다니엘과 함께 북아일랜드 지역을 소개하는 BBC 프로그램 Northern Exposure를 진행했다.

영화와 TV 시리즈에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2002년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2014년 BBC TV 영화 마블러스, 그리고 Apple TV+의 축구 코미디 시리즈 테드 래소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13년에는 영국의 족보 추적 프로그램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에 출연하여 자신의 조상 중 밀렵꾼과 법률 사무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1년부터는 ITV의 게임 쇼 Sitting on a Fortune 진행을 맡고 있다.

2014년 5월, 리네커는 전 ITV 임원 토니 페스터와 함께 자신의 제작사 'Goalhanger Films Ltd.'를 설립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이 회사는 "Blahzil"이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들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공개했다. 2015년 5월에는 리네커가 진행하는 FA컵 관련 다큐멘터리 "Gary Lineker on the Road to FA Cup Glory"를 제작하여 BBC에서 방영했다. 그는 또한 Goalhanger Podcasts를 운영하며, Leading, The Rest is History, The Rest is Politics 등의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앨런 시어러, 마이카 리차즈와 함께 축구 팟캐스트 The Rest is Football을 직접 진행한다.

1999년, 월드 사커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 중 36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3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2. 사회 운동 및 정치적 견해

1991년 11월, 리네커의 장남은 아기였을 때 희귀한 형태의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나 런던의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남았다. 이 경험 이후 리네커는 어린이 암 관련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재 어린이 암 자선 단체인 CLIC 서전트를 후원하고 있으며, 헌혈을 장려하는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또한, 1994년부터 2005년까지는 아내 미셸과 함께 백혈병 버스터스의 후원자로 활동했으며, 파이트 포 라이프 및 영국 암 연구소 자선 단체 활동에도 참여했다.

2002년 10월, 리네커는 당시 파산 위기에 처했던 그의 전 소속 클럽 레스터 시티 FC를 구제하기 위한 5 규모의 컨소시엄을 지지하며 직접 상당 금액(6자릿수 파운드)을 투자했다. 그는 이를 "자선 활동"이라고 표현하며 팬 그룹들과 만나 클럽 구제를 위한 자금 모금 참여를 설득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클럽은 청산 위기를 넘겼으며, 리네커는 현재 레스터 시티 FC의 명예 부회장을 맡고 있다.

2017년 11월, 리네커는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이름이 올랐다. 이는 바베이도스에 소유한 부동산 및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와 관련된 탈세 의혹이었다.

2020년 4월, 영국 내 COVID-19 유행 기간 동안 리네커는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영국 적십자사에 140를 기부했다고 발표했다.

리네커는 종종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혀왔으며, 특히 2023년에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23년 3월, 리네커는 트위터를 통해 영국 정부의 망명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내무부 장관 수엘라 브레이버먼의 이민자 관련 영상 메시지에 대해 "끔찍하다 못해 끔찍하다"고 평했으며, 정부의 정책을 "1930년대 독일이 사용했던 언어와 다르지 않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발언은 브레이버먼 장관을 포함한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비난을 받았고,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 측도 비판 방식에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덥스 남작, 앨러스테어 캠벨, 앤젤라 레이너 등 다른 정치인들은 리네커를 지지했다. 리네커는 자신의 발언을 고수하며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3월 10일, BBC는 리네커의 소셜 미디어 활동이 지침 위반이라며 그가 Match of the Day 진행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이안 라이트, 앨런 시어러, 알렉스 스콧, 제르메인 제나스 등 리네커의 BBC 스포츠 동료 다수가 연대하여 프로그램 출연을 거부하거나 보이콧했다. 이로 인해 BBC는 주말 스포츠 프로그램 편성을 대폭 축소해야 했고, Match of the Day는 진행자나 해설 없이 하이라이트 영상만 방송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한 BBC는 3월 13일, 리네커의 프로그램 복귀를 발표하고 소셜 미디어 지침에 대한 독립적인 검토를 약속했다. 팀 데이비 BBC 사무총장은 리네커가 검토가 완료될 때까지 회사의 편집 지침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리네커는 트위터를 통해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이어갔다. 2023년 11월에는 오웬 존스와 역사학자 라즈 세갈의 인터뷰 영상 링크를 공유하며 "누구든 13분 동안 시간을 내어 볼 가치가 있다"고 썼다. 해당 인터뷰에서 세갈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를 "전형적인 집단 학살 사례"라고 주장했으며, 리네커의 트윗은 세갈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일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2023년 12월에는 망명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려는 영국 정부의 계획을 비판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 이에 국방부 장관 그랜트 섑스, 보수당 부의장 리 앤더슨, 그리고 조나단 굴리스 등 보수당 정치인들은 리네커가 BBC의 공정성 지침을 위반했다고 비판하며 BBC에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5. 수상 내역

클럽

* 레스터 시티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979–80

* 에버턴
FA 커뮤니티 실드: 1985

* FC 바르셀로나
UEFA 컵 위너스컵: 1988–89
코파 델 레이: 1987–88

* 토트넘 홋스퍼
FA컵: 1990–91
FA 커뮤니티 실드: 1991 (공동 수상)

개인

* 발롱도르: 2위 (1986), 5위 (1987), 6위 (1991)
* FIFA 올해의 선수: 3위 (1991)
* 잉글랜드 2부 리그 득점왕: 1982–83
* 잉글랜드 1부 리그 득점왕: 1984–85, 1985–86, 1989–90
* PFA 올해의 선수: 1985–86
* PFA 올해의 팀: 1989–90 1부 리그, 1991–92 1부 리그
* FWA 올해의 축구 선수: 1985–86, 1991–92
* FIFA 월드컵 골든 부트: 1986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1986
* 옹즈 드 브론즈: 1986
* FIFA 페어 플레이상: 1990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OBE): 1992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3
* FWA 트리뷰트 어워드: 1997
* PFA 세기의 팀 (1977–1996): 2007
* FIFA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