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일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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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1년 일본 시리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난카이 호크스의 대결로, 요미우리가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우천으로 인해 1차전과 2차전이 연기되었다.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요미우리가 승리했으며, 미야모토 도시오가 MVP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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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일본 시리즈 | |
---|---|
1961년 일본 시리즈 | |
국가 | 일본 |
연도 | 1961 |
우승 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우승 팀 리그 | CL |
우승 횟수 | 6년 만에 5번째 우승 |
우승 팀 감독 | 가와카미 데쓰하루 |
우승 팀 시즌 성적 | 71승 6무 53패 (시즌 1위) |
준우승 팀 | 난카이 호크스 |
준우승 팀 리그 | PL |
준우승 팀 감독 | 쓰루오카 가즈토 |
준우승 팀 시즌 성적 | 85승 6무 49패 (시즌 1위) |
경기 기간 | 1961년 10월 22일 – 11월 1일 |
시리즈 MVP | 미야모토 도시오 (요미우리) |
파이팅 스피릿 상 | 조 스탠카 (난카이) |
우승 횟수 | 4회 |
준우승 횟수 | 2회 |
우승 팀 시즌 게임 | 71–53–6, .569, GA: 1 |
준우승 팀 시즌 게임 | 85–49–6, .629, GA: 2.5 |
2. 감독
1961년 일본 시리즈는 1959년 이후 2년 만에 6번째로 요미우리와 난카이가 맞붙은 시리즈이다. 요미우리가 난카이를 4승 2패로 꺾고 1955년 이후 6년 만에 일본 제일의 자리에 올랐다.[2] MVP는 타율 4할 9리, 1홈런, 9득점을 기록한 요미우리의 미야모토 도시오가 차지했다.
1961년 10월 28일, 가와카미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마가와 구장에서 연습을 하도록 지시했다.[7][8] 가와카미는 2군 선수에게 전화로 연습 지시를 전달했지만, "이런 폭우 속에 어떻게 연습을 하라는 거냐"[8]라며 반문했다. 그럼에도 가와카미는 "어쨌든 연습을 해라"라고 명령했다.
선수들은 처음에는 "이런 비 속에서 도대체 어디서 연습을 하려는 건가"(모리 마사히코[8]), "비가 그치거나 보슬비가 되기를 기대했는데, 계속 왔지"(히로오카 타츠로[8]), "감독이 '연습한다'라고 말했을 때는 이미 미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오 사다하루[8])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2시간 가까이 우중 연습을 마치자, "이런 속에서 연습을 해냈다는 만족감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모리[8]), "나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잖아,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히로오카[8])라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가와카미는 이 우중 연습에 대해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는 듯이 생각을 바꿨다"[8]라고 설명했다.
3. 경기 일정
회차 일시 홈 팀 결과 원정 팀 구장 경기 시간 관중 수 1차전 10월 2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0 - 6 난카이 호크스 오사카 구장 2:19 30,720명[1] 2차전 10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6 - 4 난카이 호크스 오사카 구장 2:41 26,845명[1] 3차전 10월 26일 난카이 호크스 4 - 5 요미우리 자이언츠 고라쿠엔 구장 2:23 30,878명[1] 4차전 10월 29일 난카이 호크스 3 - 4 요미우리 자이언츠 고라쿠엔 구장 2:18 33,186명[1] 5차전 10월 30일 난카이 호크스 6 - 3 요미우리 자이언츠 고라쿠엔 구장 2:28 30,135명[1] 6차전 11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3 - 2 난카이 호크스 오사카 구장 2:45 21,565명[1]
4. 경기 결과
날짜 경기 방문 구단 (선공) 점수 홈 구단 (후공) 개최 구장 개시 시각 경기 시간 관중수 10월 21일(토) 1차전 우천 취소 오사카 구장 - 10월 22일(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0 - 6 난카이 호크스 13시 00분 2시간 19분 30,720명[1] 10월 23일(월) 2차전 우천 취소 - 10월 24일(화) 요미우리 자이언츠 6 - 4 난카이 호크스 12시 59분 2시간 41분 26,845명[1] 10월 25일(수) 이동일 10월 26일(목) 3차전 난카이 호크스 4 - 5 요미우리 자이언츠 고라쿠엔 구장 13시 01분 2시간 23분 30,878명[1] 10월 27일(금) 4차전 우천 취소 - 10월 28일(토) 10월 29일(일) 난카이 호크스 3 - 4 요미우리 자이언츠 13시 00분 2시간 18분 33,186명[1] 10월 30일(월) 5차전 난카이 호크스 6 - 3 요미우리 자이언츠 13시 00분 2시간 28분 30,135명[1] 10월 31일(화) 이동일 11월 1일(수) 6차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3 - 2 난카이 호크스 오사카 구장 13시 07분 2시간 45분 21,565명[1]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 (6년 만에 5번째)
1961년 일본 시리즈는 잦은 우천으로 경기 일정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6] 10월 2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가와카미 데쓰하루 감독은 폭우 속에서도 다마가와 구장에서 선수들에게 연습을 하도록 지시했다.[7][8] 선수들은 처음에는 불만을 표했지만, 훈련 후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8]
10월 29일에 열린 4차전 9회에는 여러 논란이 발생하며 경기가 과열되었다.[9] 난카이 호크스는 9회 초 2사에서 히로세 노리미의 2점 홈런으로 역전했으나, 테라다 요스케의 실책과 조 스탄카 투입 후 엔조지 미쓰루 구심의 볼 판정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미야모토 토시오의 적시타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끝내기 승리를 거두었지만, 경기 종료 후 난카이 선수들이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10][11][12] 이로 인해 커미셔너가 관계자들을 소집하여 상황을 청취했고, 6차전은 심판 발표 지연으로 경기 시작이 늦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14]
5. 상세 경기 결과
난카이는 에이스 스기우라 타다시가 페넌트레이스 후반 팔 저림 증세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시리즈에 결장했다. 요미우리 역시 팀 최다승 투수가 나카무라 미노루의 17승으로, 양 팀 모두 20승 투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언론은 이를 "에이스 부재의 시리즈"(아사히 신문[3]), "에이스 없는 일본 시리즈"(요미우리 신문[4]) 등으로 표현했다.
당초 시리즈 일정은 10월 21일 토요일 퍼시픽 리그 우승 팀의 홈 구장에서 1차전을 시작하여, 7차전까지 갈 경우 10월 29일 일요일에 퍼시픽 리그 우승 팀 홈 구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5] 그러나 이 해 시리즈는 오사카와 도쿄 모두 잦은 비로 인해 우천 중단이 4번이나 발생했고[6], 7차전 예정일이었던 10월 29일에 4차전이 열리는 등 일정이 크게 지연되었다.
10월 29일에 열린 4차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란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커미셔너 이노우에 노보루는 관계자들을 불러 상황을 청취했다. 판정 관련 문제로 인해 6차전은 심판단 발표가 늦어져 경기 시작도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14]
요미우리가 일본 시리즈에서 끝내기 승리를 거둔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며, 일본 시리즈 전체로는 5차전의 이나오 가즈히사 (니시테쓰, 홈런) 이후 처음이었다.
결국 요미우리는 6차전을 3-2로 승리하며 1955년 이후 6년 만에 일본 제일에 올랐고, 가와카미 데쓰하루 감독은 취임 첫 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5. 1. 1차전
10월 22일 - 오사카 구장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득점 | 안타 | 에러 | |
---|---|---|---|---|---|---|---|---|---|---|---|---|
요미우리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3 | 1 |
난카이 | 0 | 2 | 0 | 1 | 1 | 1 | 1 | 0 | X | 6 | 10 | 0 |
- '''승리 투수''': 조 스탠카(1-0)
- '''패전 투수''': 나카무라 미노루(0-1)
- '''홈런''':
- * 난카이: 노무라 가쓰야(2회 1점), 아나부키 요시오(4회 1점), 데라타 요스케(7회 1점)
1차전은 원래 10월 21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로 연기되어 다음 날인 10월 22일 오사카 구장에서 오후 1시에 시작되었다. 경기 시간은 2시간 19분이 소요되었다.
2회말 노무라 가쓰야의 선제 솔로 홈런과 2사 만루 상황에서 한다 하루오의 3루수 내야 안타로 난카이가 2점을 먼저 얻었다. 4회말 아나부키 요시오의 솔로 홈런, 5회말과 6회말에 각각 1점씩을 추가했다. 7회말에는 데라타 요스케의 솔로 홈런으로 6-0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난카이 선발 조 스탠카는 요미우리를 상대로 3안타 1볼넷만을 허용하며 완봉승을 거두었다. 특히 허용한 4번의 출루를 모두 병살타로 연결시키며, 단 27명의 타자만을 상대하는 효율적인 투구를 선보였다.[15][16]
5. 2. 2차전
2차전은 비로 인해 하루 연기되었다. 난카이의 선발 하라가와 마사토시는 1회와 2회에 주자를 2명씩 내보내는 어려운 투구를 했다. 쓰루오카 가즈토 감독은 3회에 하라가와를 포기하고 미나가와 무쓰오를 투입했지만, 요미우리는 3회에 패스트볼로 1점을 잃었고, 4회에는 히로오카 다쓰로와 시오하라 아키라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추가했다. 6회에는 다카바야시 쓰네오의 적시타로 1점, 8회에도 2점을 더하여 1차전과는 반대로 6대 0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난카이는 8회말 아나부키 요시오의 홈런을 시작으로 3점을 올렸고, 9회에도 노무라 가쓰야의 적시 2루타로 2점 차까지 따라갔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호리모토 리쓰오와 나카무라 미노루의 이어 던지기로 위기를 넘겼다.[2]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이 2차전 승리로 1958년 4차전부터 이어지던 일본 시리즈 연패를 9에서 멈췄다. 9연패는 현재도 일본 시리즈 최다 연패 기록으로 남아 있다.[2]
구분 | 내용 |
---|---|
경기 일시 | 1961년 10월 24일 화요일 - 오후 12시 59분 |
경기 장소 | 오사카 구장 |
경기 시간 | 2시간 41분 |
승리 투수 | 호리모토 리쓰오 (1승) |
패전 투수 | 미나가와 무쓰오 (1패) |
홈런 | 아나부키 요시오(8회 1점) |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득점 | 안타 | 에러 |
---|---|---|---|---|---|---|---|---|---|---|---|---|
요미우리 | 0 | 0 | 1 | 2 | 0 | 1 | 0 | 2 | 0 | 6 | 14 | 1 |
난카이 | 0 | 0 | 0 | 0 | 0 | 0 | 0 | 3 | 1 | 4 | 7 | 3 |
5. 3. 3차전
移動日|이동일일본어을 거쳐 장소를 고라쿠엔 구장으로 옮겨 치른 3차전. 1점을 뒤지고 있던 3회, 난카이는 히로세 노리요시와 스기야마 코헤이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뽑아 역전하며, 요미우리 선발 후지타 모토시를 강판시켰다. 결국 이 회에 4점을 냈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4회에 미야모토 도시오의 솔로 홈런으로 따라붙었고, 7회에는 사카자키 가즈히코의 적시타로 1점을 만회한 후, 나가시마 시게오와 미야모토의 연속 안타로 역전했다. 상대 전적은 요미우리의 2승 1패가 되었다. 이 경기 3회말에 스탄카는 나가시마를 상대로 위험한 공을 던졌다. 나가시마는 스탄카에게 항의하는 데 그쳤지만, 이후 벌어질 큰 파란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3]5. 4. 4차전
10월 27일과 10월 28일은 비로 인해 경기가 순연되어, 4차전은 10월 29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렸다.4차전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최종 | 안타 | 에러 |
---|---|---|---|---|---|---|---|---|---|---|---|---|
난카이 | 0 | 1 | 0 | 0 | 0 | 0 | 0 | 0 | 2 | 3 | 3 | 1 |
요미우리 | 0 | 0 | 2 | 0 | 0 | 0 | 0 | 0 | 2X | 4 | 8 | 0 |
난카이는 1-2로 뒤진 9회초 2사에서 히로세 요시노리의 2점 홈런으로 역전했다. 하지만 9회말, 스탱카가 등판한 후 요미우리의 연속 안타와 난카이의 실책으로 2사 만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미야모토 토시오의 적시타로 요미우리가 2점을 얻어 4:3으로 승리했다.[18] [10] [14]
이 경기에서 나온 심판 판정 논란은 시리즈의 분기점으로, "엔조지 저게 볼인가 가을 하늘"이라는 이름없는 시인의 구절이 읊어졌다.[19] [10]
이 경기의 패전 투수는 당시 규칙에 따라 선취점을 허용한 모리나카가 되었다.
5. 5. 5차전
10月30日일본어 - 고라쿠엔 구장난카이는 5차전에 선발로 조 스탠카를 등판시켰다. 1회초, 모리시타 세이신과 히로세가 연속 안타를 치자 가와카미 감독은 선발 후지타 대신 이토를 구원 투수로 투입했다. 이토는 폭투를 범했고, 느린 땅볼 사이에도 주자가 득점하여 난카이가 2점을 먼저 얻었다. 그 이닝에서 요미우리는 미야모토가 적시타를 쳤지만, 2회초에는 데라타 요스케가 2호 홈런을 쳤다. 5회에도 노무라 가쓰야의 2점 홈런으로 점수를 추가하며 요미우리를 따돌렸다. 요미우리도 나가시마 시게오의 홈런 등으로 추격했지만, 결국 스탠카가 완투승을 거두었다. 난카이는 이 승리로 2승 3패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스탠카가 미야모토에게 빈볼에 가까운 공을 던져 화가 난 미야모토가 배트를 든 채 스탠카에게 달려들었고,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켜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1]
구분 | 내용 |
---|---|
경기 일시 | 1961년 10월 30일 월요일 오후 1시 |
경기 장소 | 고라쿠엔 구장 |
승리 투수 | 조 스탠카 (2승 1패) |
패전 투수 | 후지타 모토시 (1패) |
홈런 | 난카이: 데라타 요스케 (2회 1점), 노무라 가쓰야 (5회 2점) 요미우리: 나가시마 시게오 (6회 1점) |
경기 시간 | 2시간 28분 |
5. 6. 6차전
1961年일본어 11월 1일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6차전은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요미우리가 난카이를 3-2로 꺾고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2회 초, 요미우리는 오 사다하루의 일본 시리즈 1호 2점 홈런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난카이는 2회 말 노무라 가쓰야의 홈런과 8회 말 데라타 요스케의 2경기 연속 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10회 초, 요미우리는 사카자키의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았다. 이 타구는 난카이 2루수 모리시타, 중견수 오사와 마사요시, 우익수 스기야마 사이로 떨어졌는데, 이는 이번 시리즈에서 자주 드러난 난카이 수비의 허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22] 한편, 난카이의 스탠카는 7회부터 이번 시리즈에서만 5번째 등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승리로 요미우리는 1955년 이후 6년 만에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가와카미 데쓰하루 감독은 취임 첫 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편, 이날 경기는 심판진 발표 지연으로 예정보다 7분 늦게 시작되었다.[22] 당초 구심을 맡기로 했던 타키노 미치노리 심판의 기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커미셔너 측에서도 구심 교체를 검토했지만 심판 기피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변경하지 않았다.[14]
구분 | 내용 |
---|---|
경기일 | 1961년 11월 1일 |
구장 | 오사카 구장 |
경기 결과 | 요미우리 3 - 2 난카이 (연장 10회) |
승리 투수 | 나카무라 미노루 (1승 1패) |
패전 투수 | 조 스탠카 (2승 2패) |
홈런 | 요미우리: 오 사다하루 (2회 2점, 1호) 난카이: 노무라 가쓰야 (2회 1점, 3호), 데라타 요스케 (8회 1점, 3호) |
경기 시간 | 2시간 45분 |
6. 수상 선수
- 최우수 선수상(MVP)·수위 타자 : 미야모토 도시오(요미우리)[2]
- 감투상 : 조 스탠카(난카이)[2]
- 기능상 : 나카무라 미노루(요미우리)[2]
- 우수 선수상 : 시오바라 아키라(요미우리)[2]
- 최우수 투수상 : 호리모토 리쓰오(요미우리)[2]
7. 논란
이 시리즈는 여러 논란을 낳았다. 특히 4차전에서 나온 판정 논란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9회 초, 난카이 호크스는 히로세 노리미의 2점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조 스탄카가 릴리프로 등판했지만, 2사 상황에서 1루수 테라다 요스케의 실책이 나왔다. 이 실책이 없었다면 난카이 호크스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이후 2사 만루 상황에서 스탄카는 타자 미야모토 토시오를 상대로 2-1의 유리한 볼 카운트를 잡았다. 그러나 4구째에 대한 구심엔조지 미츠루의 볼 판정에 난카이 측은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미야모토는 스탄카의 5구째를 쳐서 우익수 앞 안타를 만들었고, 주자 2명이 홈으로 들어오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역전 사요나라 승리를 거두었다.[13]
스탄카는 본루로 백업을 들어갔지만, 이때 엔조지 구심과 충돌했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난카이 선수들과 코치진은 엔조지 구심을 에워싸고 밀치고 발로 차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다.[10][11][12]
이 사건으로 커미셔너 이노우에 노보루는 관계자들을 불러 상황을 청취했다. 또한 판정 논란에 대한 대처와 관련하여 6차전은 심판단 발표 지연으로 경기 시작이 늦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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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1961 Japan Series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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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2]
뉴스
巨人、6年ぶり選手兼 坂崎が幸運な決勝打 延長10回 南海の反撃実らず
朝日新聞
1961-11-0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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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野球 日本選手権の展望 圧倒的な南海の打線 巨人、投手リレーにカギ
朝日新聞
196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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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ースなき日本シリーズ あす第1戦 最後は気力の勝負 カギ・両軍の投手起用
読売新聞
196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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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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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新聞
196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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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日順延の新記録 第四戦 両監督の手腕に注目
読売新聞
196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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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人、びしょぬれの打撃練習 長島だけ15本 若手はボールふきに懸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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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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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の背番号は16だった
朝日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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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宮本、劇的なサヨナラ打 南海、土壇場でまた大エラー
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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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日本の審判に「戦力外通告」がある一方で… アメリカで物議を醸す「AIの厳格すぎストライク判定」とは〈佐々木朗希の件以外に今季退場3回〉
https://number.bunsh[...]
Sports Graphic Number
2024-08-26
[11]
뉴스
南海選手、審判に暴行 判定が偏りすぎると
朝日新聞
1961-10-30
[12]
뉴스
試合後、南海選手が円城寺球審に乱暴 きょう コミッショナー戒告
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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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鶴岡『私の履歴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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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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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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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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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으로는 장신의 삼안이 되어, 사찰과 달리 코이케에는 실책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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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eb.archive.[...]
201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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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usiness.nikk[...]
201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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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ponichi[...]
201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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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読売新聞
1969-10-31
[22]
뉴스
読売新聞
196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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