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세 요시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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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로세 요시노리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54년 난카이 호크스에 투수로 입단하여 야수, 외야수를 거쳐 1977년 은퇴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며 '프로 야구의 속도감을 바꾼 남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63년에는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다. 1964년에는 타율 .366, 72도루로 수위 타자와 도루왕을 석권했고, 통산 596도루로 일본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난카이 호크스 감독을 역임했고,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활동하며 1999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히로세 요시노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히로세 요시노리
원어 이름広瀬 叔功
로마자 표기Hirose Yoshinori
출생1936년 8월 27일, 히로시마현 사에키군 오노정 (현 하쓰카이치시)
사망알 수 없음
신장176cm
체중72kg
포지션외야수, 유격수
투구/타석우투/우타
프로 입단 년도1955년
드래프트 순위알 수 없음
첫 출장1956년 4월 26일
마지막 출장1977년 9월 25일
경력난카이 호크스 (1955 ~ 1977)
감독 및 코치 경력
난카이 호크스 (1978 ~ 1980)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1 ~ 1992)
국가대표
선출 국가일본
선출 연도1999년
득표율알 수 없음
선출 방법경기자 표창
선수 정보
타율.282
안타2,157
도루596
홈런131
타점705
수상 내역
수상 내역1964년 NPB 타격왕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 링크http://english.baseball-museum.or.jp/baseball_hallo/detail/detail_127.html
유형일본
날짜1999
방법선수 선정 위원회
기타 정보
고등학교히로시마현립 오타케 고등학교
별명チョロ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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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시절

히로세 요시노리는 히로시마현립 오타케 고등학교 시절 투수였지만,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한 후 팔꿈치 부상으로 야수로 전향했다.

1956년 7월 29일 다카하시 유니온즈와의 경기에서 4타수 4안타와 첫 도루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석부터 7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1957년부터 유격수로 발탁되어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1958년에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웠다. 1959년에는 타율 .310(4위)을 기록했고, 유격수로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61년 코이케 켄지가 입단하자, 히로세는 쓰루오카 가즈토 감독에게 직접 제안하여 중견수로 전향했다. 그해 42도루로 처음 도루왕에 올랐고, 1965년까지 5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스기우라 다다시, 노무라 가쓰야, 미나가와 무쓰오 등과 함께 난카이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으며, "프로 야구의 스피드감을 바꾼 남자"로 불렸다.

1963년에는 187안타를 기록하여 당시 퍼시픽 리그 기록을 세웠고, 1994년 이치로가 경신할 때까지 31년 동안 유지되었다. 1964년에는 타율 .366, 72도루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사상 최초로 수위 타자와 도루왕을 동시에 획득했다.

1965년에도 39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리그 2연패에 기여했으나, 왼손목 부상 이후 건초염에 시달리면서 이후 성적이 점차 떨어졌다. 1970년 8월 2일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480도루를 기록하며, 팀 선배 키즈카 타다스케의 일본 기록을 갱신했다.

1972년 7월 1일 니시테츠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히가시오 오사무를 상대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1977년 은퇴했으며, 통산 도루 수는 596개로 일본 역대 2위이며, 시즌 최다 도루사는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다. 통산 도루 성공률 82.9%(596도루 123도루사)는 300도루 이상 선수 중 역대 1위이다. 1964년 3월부터 5월까지 31연속 도루 성공1968년에 기록한 시즌 도루 성공률 .957(성공 44, 실패 2)는 모두 일본 기록이다.

2.1. 프로 입단 전

히로세 요시노리는 히로시마현립 오오타케 고등학교 재학 시절 투수였다. 이때부터 빠른 발을 활용하여 마운드에서 2루 주자를 잡아냈다는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 후배로는 미노다 고지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선배인 모리우치 가쓰미의 권유로 히로시마 카프의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함께 합격했으나, 히로세는 장난삼아 응시했기 때문에 입단하지 않았다. 모리우치는 졸업과 동시에 히로시마에 입단하여 2년간 재적하였다. 히로세가 재학했던 오타케 고등학교는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도 승리하기 어려운 약소 고등학교였다.


히로세는 히로시마 입단 테스트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히로시마 대회 예선에서 패배한 후, 난카이 호크스 감독 쓰루오카 가즈토의 지인이자 히로시마 상업고등학교 시절 동기였던 우에하라 세이지의 강력한 권유로 난카이 호크스의 입단 테스트를 보았다. 우에하라는 히로시마 현 내의 유망한 고등학생들을 난카이로 보내고 있었고, 히로세의 활약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테스트에서는 나카모즈 구장에서의 2군 연습에 참가, 다음날 오사카 스타디움에서 열린 킨테쓰 펄스 (2군)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동안 1피홈런 3실점으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넷 뒤에서 지켜본 쓰루오카는 "별 볼 일 없는 투수구만. 호세이 (쓰루오카의 모교)에 가도록 해"라고 말했지만, 우에하라의 추천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난카이 입단 테스트 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육상 경기에도 참여하여 멀리뛰기에서 히로시마현 2위를 기록하고, 원반던지기·포환던지기에서도 표창장을 받았다. 와세다 대학·준텐도 대학으로부터 육상 선수로 권유를 받았지만,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난카이 호크스는) 그 쓰루오카 감독님이 감독을 맡고 있는 명문 팀이니까"라며 입단을 권유받았다.

2.2. 난카이 호크스 시절

広瀬 叔功일본어1955년 난카이 호크스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야수로 전향했다. 1956년 7월 29일 다카하시 유니온즈와의 경기에서 4타수 4안타와 첫 도루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석부터 7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1957년 시즌 도중부터 유격수로 발탁되어 114경기에 출전, 타율 .284, 25도루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1958년에는 120경기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웠고, 타율 .288(리그 7위), 33도루를 기록했다. 1959년에는 타율 .310(4위)을 기록했고, 유격수로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61년 코이케 켄지가 입단하자, 히로세는 감독 쓰루오카 가즈토에게 직접 제안하여 8월부터 중견수로 전향했다. 그해 42도루로 처음 도루왕에 올랐고, 1965년까지 5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스기우라 다다시, 노무라 가쓰야, 미나가와 무쓰오 등과 함께 난카이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으며, "프로 야구의 스피드감을 바꾼 남자"로 불렸다.

1963년에는 187안타를 기록하여 당시 퍼시픽 리그 기록을 세웠고, 1994년 이치로가 경신할 때까지 31년 동안 유지되었다. 1964년에는 타율 .366, 72도루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사상 최초로 수위 타자와 도루왕을 동시에 획득했다.

1965년에도 39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리그 2연패에 기여했으나, 왼손목 부상 이후 건초염에 시달리면서 이후 성적이 점차 떨어졌다. 1970년 8월 2일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480도루를 기록하며, 팀 선배 키즈카 타다스케의 일본 기록을 갱신했다.

1972년 7월 1일 니시테츠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히가시오 오사무를 상대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1977년 은퇴했다.

2.3. 은퇴

広瀬 叔功일본어1972년 7월 1일 니시테쓰 라이온스 전에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고(사상 6번째), 1977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통산 도루 수는 596개로 일본 역대 2위이며, 시즌 최다 도루사는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다. 통산 도루 성공률 82.9%(596도루 123도루사)는 300도루 이상 선수 중 역대 1위이다. 1964년 3월부터 5월까지 31연속 도루 성공1968년에 기록한 시즌 도루 성공률 .957(성공 44, 실패 2)는 모두 일본 기록이다.

3. 지도자 시절

히로세 요시노리는 난카이 호크스에서 1955년부터 1977년까지 선수로 활동하였다.

4. 은퇴 후

히로세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난카이 호크스 감독을 맡았으며, 1991년부터 1992년까지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수비 및 주루 코치로 활동했다.

5. 플레이 스타일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하며 "매의 발톱" , "초로"라는 별명으로 불린 히로세 요시노리는 뛰어난 주루, 타격, 수비 능력을 겸비한 선수였다. 통산 도루 및 도루 성공률 2위, 시즌 626타수 1위, 퍼시픽 리그 최초 외야수 부문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수상 등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아라마키 준은 히로세를 "야구 혁명가"라고 칭송했고, 스포츠 라이터 콘도 타다유키는 "홈런 혁명가는 오시타 히로시, 발의 혁명가는 히로세"라고 평가했다. 요시다 요시오, 노무라 카츠야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도 히로세의 주루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오사와 케이지는 히로세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루를 성공시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평가했고, 오카무라 코지, 스기우라 타다시 등도 히로세의 뛰어난 도루 능력을 언급했다.

히로세는 왼쪽 무릎을 깊숙이 넣는 독특한 타격 폼으로 타율 3할 전후를 기록했으며, 1964년에는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속구에 타이밍을 맞추고 변화구에 대응하는 "A형" 타자였으며, 노무라 가쓰야는 히로세를 나카시마 시게오와 더불어 야구 천재로 꼽았다. 벳토 가오루는 히로세를 일본 최고의 선수라고 단언했다.

5.1. 주루

1956년 7월 29일에 1군에서 선발 출전하여 첫 타석에서 프로 데뷔 안타가 되는 좌익선상 3루타를 날렸다. 이 데뷔전에서 4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다음 경기에서도 3타석 3안타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석부터 7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1957년부터 1군에 정착해 114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284를 기록했다. 1958년에도 유격수로 120경기에 출장해 타율 .288, 1959년에는 타율 .310을 기록하는 등 선배인 기쓰카 주스케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강견을 가졌지만 악송구가 많아 1961년에 감독 쓰루오카 가즈토의 권유로 외야수로 전향했다. 같은 해 42도루로 도루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65년까지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며 스기우라 다다시, 노무라 가쓰야, 미나가와 무쓰오 등과 함께 난카이의 황금 시대에 크게 공헌했다. 다이아몬드 일주에 13초 9, 100미터를 11초 4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호수비로 "프로 야구의 속도감을 바꾼 남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63년(1963년과 1964년에는 퍼시픽 리그가 150경기 제)에는 187안타를 터뜨리며 최다 안타를 기록했다. 이는 1994년 스즈키 이치로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31년간 퍼시픽 리그 기록이었다. 개막 이후 100안타 도달 경기가 61경기로 1994년 이치로의 60경기 경신 전까지 일본 기록이었다. 같은 해 676타석은 퍼시픽 리그 기록(원래는 일본 기록이었으나 2005년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경신하면서 퍼시픽 리그 기록으로 내려감), 626타수는 일본 기록이다.

1964년에는 89번째 경기에서 타율 4할을 유지(1989년 워렌 크로마티가 경신하기 전까지 프로 야구 최장 기록),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지며 타율 .366, 72도루라는 자체 최고 성적으로 수위 타자와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타율 .366은 1985년오치아이 히로미쓰에게 경신되기 전까지 우타자 역대 최고 타율이었다. 풀스윙하는 호쾌한 타격으로 종종 3번으로 들어서 1경기 2홈런 포함 5타수 5안타 7타점을 기록한 경기도 있다. 하지만 그 해 시즌 오자키 유키오의 속구를 타격하던 중 손목에 맞아 이후 골수염에 시달리게 되었다.

통산 도루 수는 일본 역대 2위인 596개로 시즌 최다 도루사는 한 번도 기록하지 않고 통산 도루 성공률 82.9%(596도루 123도루사)는 300도루 이상 선수로서는 역대 1위의 기록이다. "근소한 차이가 있는 장면에서만 달린다", "타자가 2스트라이크에 몰린 후에는 달리지 않는다" 등 유용한 장면에서만 도루를 시도했던 장인으로 높은 도루 기술을 자랑했으며 1964년 3월부터 5월까지 31연속 도루 성공과 1968년에 기록한 시즌 도루 성공률 .957(성공 44, 실패 2)는 모두 일본 기록이다. 1루에서 3미터 75의 뛰어난 리드폭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해서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2루까지 전력으로 달려 짧은 슬라이딩으로 2루에 안착했다. 1964년 시즌에는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고 도루도 많이 했기 때문에 일본 야구 기구는 도루왕을 같은 해부터 연맹 표창했다. 이때까지 일본에서는 도루가 별로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에 히로세는 도루를 인식시킨 최초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도루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질 높은 기록을 남기는 결과가 되었지만 더 욕심을 냈다면 도루 수를 더 늘려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현역 마지막 해에 눈 앞에서 후쿠모토 유타카에게 경신되는 사태를 초래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다. 파나소닉 시절에 감독에게 "너는 아마추어의 히로세가 될 것"이라며 등번호 12번을 받아 히로세를 자주 보러 갔다는 후쿠모토는 "히로세 씨는 신 같아요. 프로에 들어서도 그것은 함께 해요. 여전히 구름 위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다.

이나오 가즈히사와의 순간을 둘러싼 대결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올스타전에서도 도루를 7번 모두 성공시키고 있다. 센터에서 좌우 양익까지 달려가 포구할 수 있을 정도의 수비 범위를 자랑했던 만능 선수였다. 외야수로 시즌 353수비 기회의 일본 기록과 한 경기 10수비 기회, 1경기 10척살의 퍼시픽 리그 기록을 가지고 있다.

5.2. 타격

히로세는 프로 1년 차 캠프에서 팔꿈치 부상으로 유격수로 전향했다. 1956년 7월 29일 1군 선발 출전하여 첫 타석에서 3루타를 기록했고, 이 데뷔전에서 4타수 4안타를 기록, 다음 경기에서도 3타수 3안타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석부터 7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1957년부터 1군에 정착하여 114경기에 출장, 타율 .284를 기록했다. 1958년에는 120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88, 1959년에는 타율 .310을 기록하는 등 기쓰카 주스케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1961년, 쓰루오카 가즈토 감독의 권유로 외야수로 전향했다. 같은 해 42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65년까지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1963년(1963년과 1964년 퍼시픽 리그는 150경기 체제)에는 187안타로 최다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1994년 스즈키 이치로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31년간 퍼시픽 리그 기록이었다. 같은 해 676타석은 퍼시픽 리그 기록(2005년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경신), 626타수는 일본 기록이다.

1964년에는 89번째 경기에서 타율 4할을 유지했고(1989년 워렌 크로마티가 경신하기 전까지 프로 야구 최장 기록), 타율 .366, 72도루로 수위 타자와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타율 .366은 1985년에 오치아이 히로미쓰에게 경신되기 전까지 우타자 역대 최고 타율이었다. 풀스윙하는 호쾌한 타격으로 1경기 2홈런 포함 5타수 5안타 7타점을 기록한 경기도 있다. 하지만 그 해 시즌 오자키 유키오의 속구를 타격하던 중 손목에 맞아 골수염에 시달리게 되었다.

1972년 7월 1일 니시테쓰 라이온스 전에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통산 도루 수는 일본 역대 2위인 596개이며, 통산 도루 성공률 82.9%(596도루 123도루사)는 300도루 이상 선수 중 역대 1위이다. 1964년 3월부터 5월까지 31연속 도루 성공과 1968년에 기록한 시즌 도루 성공률 .957(성공 44, 실패 2)는 모두 일본 기록이다.

일본 야구 기구는 히로세의 활약에 힘입어 도루왕을 1964년부터 연맹 표창했다. 히로세는 도루를 인식시킨 최초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니시테쓰의 에이스 이나오 가즈히사와의 대결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올스타전에서도 도루를 7번 모두 성공시켰다.

5.3. 수비

히로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가진 선수였다. 프로 1년 차에 팔꿈치 부상으로 유격수로 전향했고, 뛰어난 주루 플레이와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다. 1961년에는 외야수로 전향하여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며 난카이 호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프로 야구의 속도감을 바꾼 남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활약은 일본 야구 기구가 최다 도루를 공식 표창 항목으로 신설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64년에는 31연속 도루 성공과 시즌 도루 성공률 .957(44도루, 2실패)이라는 일본 기록을 세웠다. 통산 도루 성공률은 .829(596도루, 123도루사)로 300도루 이상 선수 중 역대 1위이다. "필요한 경우에만 도루한다"는 신념으로 높은 도루 기술을 자랑했으며, 1루에서 3미터 75의 뛰어난 리드폭을 가지고 빠른 슬라이딩으로 2루에 안착했다.

올스타전에서도 7번의 도루를 모두 성공시켰고, 센터에서 좌우 양익까지 커버하는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다. 외야수로서 시즌 353수비 기회(일본 기록), 한 경기 10수비 기회 및 10척살(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음은 히로세 요시노리의 주요 수비 관련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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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종류기록 내용비고
시즌 도루 성공률.957 (44도루, 2실패)1968년, 30도루 이상 일본 기록
시즌 연속 도루 성공311964년, 일본 기록
통산 도루 성공률.829 (596도루, 123도루사)300도루 이상 일본 기록
시즌 수비 기회3531963년, 외야수 일본 기록
시즌 척살3531963년, 외야수 퍼시픽 리그 기록
1경기 수비 기회101971년 9월 19일, 외야수 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
1경기 척살101971년 9월 19일, 외야수 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

6. 평가와 영향

히로세 요시노리는 난카이 호크스가 퍼시픽 리그 강팀으로 군림하던 1950년대 후반~1960년대에 "매의 발톱"이라 불린 뛰어난 리드오프 선수였다. 통산 도루 수 및 성공률 역대 2위, 시즌 626타수는 역대 1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퍼시픽 리그 최초로 외야수 부문 다이아몬드 글러브상(현재의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히로세의 타격 폼은 왼쪽 무릎을 깊숙이 안쪽으로 넣는 독특한 자세였다. 동시대 선수였던 토요다 야스미츠는 "보통 사람은 왼쪽 무릎을 깊게 넣으면 칠 수 없다"라고 해설하며, 히로세만의 독창적인 폼이라고 언급했다. 이 폼으로 히로세는 전성기에 타율 3할 전후를 기록했으며, 타율 순위에서도 항상 상위권이었다. 베스트 5에 5번 선정되었다.

노무라 가쓰야는 히로세를 나가시마 시게오, 이치로와 함께 야구 인생에서 만난 세 명의 천재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노무라는 "오는 공을 자유자재로 쳐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난카이 호크스에서 선수와 코치를 역임한 호리이 가즈오는 히로세를 "특이해서 다른 선수들은 흉내 낼 수 없다", "발이 빠르고, 어깨가 좋으며, 야구 감각이 뛰어나 다른 사람들이 칠 수 없는 공을 친다"라고 평가했다.

오카모토 이사미는 "처음 상대하는 투수라도 첫 공부터 배트 중심에 맞춰 안타를 칠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스기우라 타다시는 히로세의 타격을 "천재적"이라고 표현했다.

1964년 긴테쓰 버팔로즈 감독이었던 벳토 가오루는 "일본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진정한 의미의 일본 최고는 히로세"라고 단언했다.

7. 개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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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소속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루자희생번트희생플라이볼넷고의4구사구삼진병살타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56년난카이192625410110135200010031.400.423.520.943
1957년11433931747901932121302514421303294.284.318.382.700
1958년120536504821453657212313310212514362.288.326.421.747
1959년126526507861572768220451711211600245.310.331.434.765
1960년1285425217014024101021446254002011389.269.297.411.708
1961년13556753782159337622446426012524459.296.332.417.749
1962년130577515991442161221354509365023574.280.347.414.760
1963년149676626921872781427260457334102454.299.344.435.778
1964년1415054561101673561225058729073943311 .366.420.548 .968
1965년1225244907114633101524455398252423298.298.335.498.833
1966년11039537649981761216339285201611333.261.293.434.726
1967년761671522631214471463121002152.204.262.309.571
1968년12144541273121257517540442142513255.294.339.425.763
1969년110447423551201621117338399081521238.284.310.409.719
1970년12452848363108152714831287423811294.224.282.306.588
1971년12151346681129294417836366323903366.277.337.382.719
1972년1104193745490142010825427253800289.241.311.289.599
1973년4049411110200123421140250.244.340.293.633
1974년651231111631512441762001101102.279.350.396.746
1975년521531261535500401410231211282.278.389.317.707
1976년276456610200124200080064.179.281.214.496
1977년5012511913296103711101230091.244.262.311.573
통산 : 22년219082467637120521573948813131207055961233453482183956493.282.328.409.737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히로세 요시노리의 프로 야구 선수 시절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1963년 187안타: 1994년 스즈키 이치로에게 경신되기 전까지 31년간 퍼시픽 리그 기록.
* 1963년 676타석: 2005년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경신하기 전까지 일본 기록, 이후 퍼시픽 리그 기록.
* 1964년 89경기까지 타율 4할 유지: 1989년 워렌 크로마티가 경신하기 전까지 프로 야구 최장 기록.
* 1964년 타율 .366: 1985년 오치아이 히로미쓰에게 경신되기 전까지 우타자 역대 최고 타율.
* 1964년 개막부터 100안타 도달 경기 61경기: 1994년 이치로가 60경기로 도달할 때까지 일본 기록.
* 1961년 ~ 1965년 5년 연속 도루왕.
* 1964년 3월~5월 31연속 도루 성공: 일본 기록.
* 1968년 시즌 도루 성공률 .957(성공 44, 실패 2): 일본 기록.
* 통산 도루: 596개 (일본 역대 2위).
* 통산 도루 성공률: 82.9% (596도루 123도루사, 300도루 이상 선수 중 역대 1위).
* 통산 3루타: 88개 (역대 5위, 우타자 역대 1위).
* 1972년 7월 1일 니시테쓰 라이온스 전: 통산 2000안타 (사상 6번째).
* 퍼시픽 리그 최초 외야수 부문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현재의 골든 글러브상) 수상.
* 통산 몰아치기: 169회 (역대 9위).
* 통산 끝내기 안타: 14개 (나가시마 시게오와 공동 역대 5위).

8. 등번호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히로세 요시노리' 선수의 등번호에 대한 정보가 없으며, '초로'라는 별명에 대한 유래만 설명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등번호'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이전 답변은 이 점을 명확히 반영하여 작성되었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