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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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6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1982년부터 시행된 전후기 리그에서 한 팀이 통합 우승할 경우, 전기 2위와 후기 2위가 플레이오프를 치러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가리는 방식으로 변경되어 진행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OB 베어스를 3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삼성 라이온즈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했다.
1982년부터 시행된 전후기 리그제는 유지되었으나,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그해 한국시리즈가 무산되자,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시리즈가 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KBO는 한 팀이 전후기 통합우승을 할 경우, 전기 2위와 후기 2위가 플레이오프를 치러 전후기 통합우승 팀과 한국시리즈를 치르도록 포스트시즌 운영 방침을 변경하였다.
1986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는 5전 3선승제로, 삼성 라이온즈와 OB 베어스가 맞붙었다. 삼성은 OB를 3승 2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 플레이오프 제도 변화 (1986년)
변경된 규정에 따르면,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한 번만 2위 안에 들어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그 결과 두 번 모두 2위를 한 해태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였고, 전기에만 1위를 하고 후기에는 4위에 그친 삼성 라이온즈와 전기에는 5위에 그쳤지만 후기에 1위를 한 OB 베어스는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3. 플레이오프
회차 구장 승리팀 패전팀 결과 1차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1:0 2차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5:3 3차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2:0 4차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2:1 5차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7:3
3. 1. 경기 결과
1차전 (10월 11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2차전 (10월 12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3차전 (10월 15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4차전 (10월 16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5차전 (10월 17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삼성 라이온즈가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3. 2. 주요 선수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권영호가 승리 투수가 되었고, 이해창, 장효조는 홈런을 기록했다.[1] OB 베어스에서는 박노준이 패전 투수가 되었다.[1]4.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는 1승 2패로 뒤진 상태에서 3승 2패로 승부를 뒤집어 1986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처음으로 맞붙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의 혈투 탓인지 1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편, 3차전 종료 후 해태 구단 버스가 전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1]
4. 1. 해태 버스 방화 사건
1986년 한국시리즈 3차전이 끝난 후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 버스가 방화로 전소되는 사건이 1986년 10월 28일 대구구장에서 발생했다. 이는 당시 극심했던 지역감정의 표출로 여겨진다.[1]5. 시즌 후
1986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는 코칭 스태프에 변화가 있었다. 유백만 코치가 MBC 청룡으로 옮기면서 투수 코치 자리에 공백이 생겼고, 이를 메우기 위해 황규봉이 투수 코치로 승격되었다.[6] 하지만 김일융의 일본 복귀,[7] 성준의 방위 복무[8] 등으로 투수진이 약화되어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5. 1. 삼성 라이온즈 코칭 스태프 변화
1983년 5월 김동엽 감독이 MBC 청룡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야구 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팀을 떠났던 유백만 코치가 1986년 MBC 코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투수코치 구인난에 시달리게 되었다.[2][3][4] 이에 1985년부터 정동진 수석코치가 투수코치를 겸임하게 되었다.[5]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1986년 시즌 후에는 원년 개막전 선발투수였던 황규봉을 투수코치로 승격시켰다.[6]하지만, 황규봉의 코치 승격,[6] 김일융의 일본 복귀,[7] 성준의 방위복무[8] 때문에 투수진이 부실해졌고, 결국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에 삼성은 1988년 2월 16일, 장명부 전 빙그레 투수를 2군 투수코치(1년 전속계약)로 영입했다.[9]
5. 2. 1987년 한국시리즈 결과
삼성 라이온즈는 1승 2패로 뒤진 상태에서 3승 2패로 승부를 뒤집어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처음으로 맞붙었다. 그러나 3차전 종료 후 해태의 구단 버스가 전소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의 혈투 탓인지 1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1]삼성은 황규봉 코치 승격,[6] 김일융의 일본 복귀,[7] 성준의 방위 복무[8] 때문에 투수진이 부실해져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참조
[1]
뉴스
최(崔)일언,사자 벼랑으로 몰았다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2020-07-27
[2]
뉴스
청룡팀 감독대행 유백만씨 사표내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7-27
[3]
뉴스
삼성의 투수코치로 유백만 전청룡코치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7-27
[4]
뉴스
"「타석」에 들어선'85프로야구 國內外(국내외)서 힘찬「스윙」"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0-07-27
[5]
뉴스
삼성 황규봉, 코치로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7-27
[6]
뉴스
삼성 황규봉, 코치로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7-27
[7]
뉴스
프로야구 '87전훈을가다<2>-저공마운드 삼성 "야망의 계절"선언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7-27
[8]
뉴스
프로야구 '87전훈을가다<2>-저공마운드 삼성 "야망의 계절"선언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0-07-27
[9]
뉴스
張明夫(장명부) 삼성2군 투수코치로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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