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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호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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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영호는 KBO 리그 최초의 전업 마무리 투수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80년대 활약했다.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삼성의 원년 멤버로 활동하며, 1985년 26세이브를 기록하여 팀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삼성, 롯데 자이언츠 등에서 코치와 2군 감독,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통산 56승 49패 100세이브, 평균자책점 3.06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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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호 (야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명권영호
원어명Kwon Yeong-ho
국적대한민국
출생지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생년월일1954년 1월 23일
신장182cm
체중81kg
수비 위치투수
투구
타석
선수 경력
프로 입단 연도1982년
드래프트 순위원년 멤버
첫 출장KBO / 1982년 4월 6일 / 광주 대 해태전
마지막 경기KBO / 1989년 10월 2일 / 대구 대 빙그레전
소속 구단삼성 라이온즈 (1982년 ~ 1989년)
획득 타이틀1985년 세이브왕
코치 경력
코치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1990년 ~ 1997년)
코치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2013년)
코치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2015년 ~ 2017년)
감독 경력
감독영남대학교 야구부 감독 (2000년 ~ 2011년)
감독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13년)
프런트 경력
스카우트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 (2011년 ~ 2012년)

2. 선수 시절

권영호는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면서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로 활약했으며, KBO 리그 사상 첫 전업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다. 직구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체인지업과 제구력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다.[2]

KBO 리그 초창기에는 투수 보직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1984년까지는 선발 투수로 등판하다가, 1985년 26세이브, 1986년 19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1985년과 1986년에는 각각 170이닝, 140이닝을 휴식 없이 소화해 내면서 혹사에 대한 우려가 컸다. 1982년에는 15승(11선발승)을 기록했지만, 선수층이 얇은 현실에서 무리한 투구를 한 탓인지[3] 1983년 6승(5선발승), 1984년 6승(3선발승)으로 원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프로 원년 2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2010년 류현진(1.82)에 의해[4] 경신되었다.

1987년에는 1986년보다 훨씬 적은 이닝(약 90이닝)을 소화하면서 최고의 평균자책점(2.41)을 기록했다. 그러나 1988년에는 노쇠화로 인해 3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과 7세이브를 기록했다. 1989년 19세이브를 끝으로 마무리 보직을 김상엽에게 넘겨주고 은퇴했다.

통산 기록은 56승 49패 100세이브, 평균자책점 3.06이다. 100세이브 달성 당시에는 자신의 별명처럼 '명예 소방수'가 되었으며, 1982년 8월 7일 해태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하여 잠실구장 개장 후 2호 승리투수 겸 1호 완투·완봉승 투수가 되었고,[5] 삼성은 다음 날 경기에서도 승리하여 잠실구장 최초 연승 팀이[6] 되었다.

2. 1.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함에 따라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원년 멤버로 활약하였으며, KBO 리그 사상 첫 전업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였다. 직구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체인지업과 제구력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농락했다.[2]

KBO 리그 초창기에는 보직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1984년까지는 선발로 등판하다가, 1985년 26세이브와 전·후기 통합 우승, 1986년 19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그러나 1985년, 1986년 당시에는 선발에 가까운 170이닝, 140이닝을 휴식 없이 소화해 냈기 때문에 혹사의 우려 또한 심했다. 1982년 15승(11선발승)을 기록했지만 선수층이 옅은 현실에서 무리한 투구를 한 탓인지[3] 1983년 6승(5선발승), 1984년 6승(3선발승)으로 원년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프로 원년 2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나, 2010년 류현진(1.82)에 의해[4] 갱신됐다.

1987년1986년보다 훨씬 적은 이닝(약 90이닝)을 소화해내면서, 최고의 평균자책점(2.41)을 기록했다(전성기는 선발로 15승을 기록한 1982년에 가깝다). 그러나 1988년 노쇠화 때문인지 3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과 7세이브를 기록했다. 1989년 19세이브를 끝으로 마무리 보직을 김상엽에게 물려 주고, 마운드를 떠났다.

통산 기록은 56승 49패 100세이브, 평균자책점 3.06이다. 100세이브 달성 당시에는 자신의 별명답게 '명예 소방수'가 되었으며, 1982년 8월 7일 해태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하여 잠실구장 개장 후 2호 승리투수 겸 1호 완투·완봉승 투수가 됐고,[5] 삼성은 다음 날 경기에서도 승리하여 잠실구장 최초 연승 팀이[6] 됐다.

3.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 코치로 전업했는데 1995년 시즌 후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연수를 떠났다가[7] 다음 해인 1996년 7월 14일 귀국했으며 그 해 8월 초 잔류군 투수코치를 맡았다가 같은 달 12일부터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고[8] 1997년 시즌 뒤 백인천 감독 후임 물망에 올랐으나 소위 '백인천 파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9]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좌절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영남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에 자신의 후임이었던 김상엽투수코치로 맞이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로 활동했다가 2013년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로 영입되었다. 2013 시즌 후 권두조와 보직을 맞바꾸어 2군 감독직에 올랐으나, 부임한 지 1주일 만에 갑작스럽게 경질 통보를 받았다.[10]

4. 의의

KBO 리그 사상 첫 전업 마무리 투수로서, 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 우승과 함께, 마무리 보직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초창기 혹사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분업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5. 출신 학교

6. 통산 기록


도소





리패





책출





















4














W
H
I
P
1982삼성29155.7502.3732216320178.2139185207271157477101.07198330610.3753.2032155070135.011374824961258485561.1919843168.4293.2829182020137.112485735241053505741.3219853266.5003.50541300260174.2170146848131475687461.3619863377.5002.77381031190146.1121125337420647455931.1919873453.6252.413220018089.27473012800127243561.1619883575.5833.73294117072.16154062410132303081.4019893645.4443.634231019086.28363914112039353661.41KBO 통산 : 8년5649.5333.062888618510001020.288577387204212461538834742091.25

참조

[1] 뉴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10월 6일자 경향신문 보도 인용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2-10-06
[2] 뉴스 마무리 투수의 탄생, 원조 소방수 권영호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7-01-26
[3] 뉴스 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15)아쉬운 84년 KS http://news.imaeil.c[...] 매일신문 2020-04-09
[4] 뉴스 2001년 손민한은 했는데 2010년 류현진은 못했다…2024년 이 투수들의 도전, 어쩌면 ‘강제 종료’ https://m.sports.nav[...] 마이데일리 2024-07-04
[5] 뉴스 青龍(청룡),홈런날린 OB에 逆轉勝(역전승) 프로야구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2024-04-13
[6] 뉴스 三星(삼성),해 태 꺾 어 先頭(선두)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2024-04-13
[7] 뉴스 한국과 일본의 야구 아직도 수준차이나 https://web.archive.[...] 매일신문 2020-06-07
[8] 뉴스 권영호코치 1군투수코치에 전격 선임 https://web.archive.[...] 매일신문 2020-06-07
[9] 뉴스 삼성지휘봉 어디로… http://news.imaeil.c[...] 매일신문 2020-02-25
[10] 뉴스 왜 롯데는 권영호 2군 감독을 1주일 만에 경질했을까 http://sports.news.n[...]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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