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선수협 파동 사건
1. 개요
2000년 선수협 파동 사건은 2000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창립 과정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갈등을 의미한다. 1차 파동은 선수협 창립에 대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반발로 선수들의 자유계약선수(FA) 방출 결의로 시작되었고, 2차 파동은 선수협 재결성에 대한 구단 측의 반발과 주요 선수들의 방출 조치로 심화되었다. 이후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선수협과 구단 측이 합의하면서 2차 파동은 종결되었으며, 파동 이후 선수협 집행부 변화와 선수들의 보복성 트레이드 등 후폭풍이 있었다. 2009년에는 선수 노조 설립을 추진했으나 구단과 KBO의 반대, 내부 분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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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의 역사 -
2004년 대한민국 병역 비리 사건
2004년 대한민국 병역 비리 사건은 2004년 9월 프로 야구 선수들의 병역 비리에서 시작되어 연예계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 사건으로, 병역 브로커들이 개입하여 다양한 수법으로 병역 면탈을 도와 다수의 프로 야구 선수들과 연예인들이 연루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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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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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야구 -
2000년 한국프로야구
2000년 한국프로야구는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하고 매직리그와 드림리그로 나뉘어 정규시즌이 진행되었으며, 현대 유니콘스가 통합 1위를 기록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패해 준우승했다. -
2000년 야구 -
2000년 월드 시리즈
2000년 월드 시리즈는 뉴욕 양키스가 뉴욕 메츠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했으며, 양키스의 데릭 지터가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
2000년 대한민국 -
2000년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2000년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와 유럽 정상들의 다자회의로,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인사가 대표로 참석하여 양 대륙의 협력 관계를 논의했다. -
2000년 대한민국 -
2000년 전국체육대회
2000년 전국체육대회는 "새천년, 새출발, 한민족 힘찬 도약"이라는 구호 아래 부산광역시에서 개최된 제81회 대회로, 21,887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여 경기도가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부비'를 마스코트로 활용하고 소프트볼과 트라이애슬론이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2. 선수협 파동
2000년 1월 22일,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를 초대 회장으로 하여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협에 서명한 선수 전원을 자유계약선수(FA)로 방출하기로 결의하면서 제1차 선수협 파동이 발생했다.
2000년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인 12월 18일, 선수협 집행부가 재결성을 시도하자 각 구단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제2차 선수협 파동이 발생했다. 12월 20일, KBO는 송진우, 양준혁 등 선수협 주도 선수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했다. 이에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를 제외한 6개 구단 선수들이 집단으로 선수협 가입에 나섰다. 구단들은 이사회를 통해 '사태 미해결 시 다음 시즌 경기 중단'이라는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2001년 1월 4일,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이 선수협 가입을 선언했고, 이후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선수협과 구단 측은 극적으로 합의하여 2001년 1월 20일 파동은 마무리되었다.
2.1. 제1차 선수협 파동 (2000년)
2000년 1월 22일 새벽, 선수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하여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를 초대 회장으로 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 총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날 오전 한국야구위원회 측은 선수협에 서명한 선수 전원을 자유계약선수(FA)로 방출하기로 결의했고, 이에 따라 약 2개월간 제1차 선수협 파동이 발생하였다. 이후 2000년 프로야구 시즌 시작을 전후로 파동은 다소 사그라들었다.
2.2. 제2차 선수협 파동 (2000년 ~ 2001년)
2000년 프로 야구 시즌이 종료된 후인 12월 18일, 선수협 집행부는 28명의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재결성을 시도했다. 그러나 각 구단 측이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제2차 선수협 파동이 일어났다. 12월 20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협 집행부 주도자인 송진우,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박충식, 최태원 등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하는 강경 조치를 취했고, 양측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KBO의 방출 조치에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를 제외한 6개 구단 선수들은 집단으로 선수협에 가입하며 반발했다. 각 구단들은 12월 26일 이사회를 열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 경기를 중단하겠다'는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며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2001년 1월 4일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까지 선수협 가입을 선언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선수협 참가 선수가 없어 여론의 비난을 받자, 이승엽 1인을 가입시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후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선수협과 구단 측은 극적으로 합의를 이루어 2001년 1월 20일, 두 번째 선수협 파동은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2.2.1. 양측 합의 사항
2001년 1월, 문화관광부 중재 하에 선수협과 구단 측은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 구단 대표 6명 방출 조치 철회
* 송진우, 양준혁, 마해영의 집행부 사퇴
* 선수들의 자율에 따른 새 집행부 구성
* 선수협 사무국은 새 집행부에서 구성
* 선수협 참여 선수에 대한 불이익 금지
3. 파동 이후
1차 선수협 파동과 2차 선수협 파동을 주도했던 1, 2기 집행부가 전원 사퇴하고, 이호성이 회장으로 선출되고 장종훈, 김태균 등이 포함된 3기 집행부가 구성되었다.
선수협 파동 이후, 선수협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선수들은 각 구단에 의해 대부분 트레이드되었다. 양준혁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LG 트윈스로, 마해영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심정수는 두산 베어스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강병규는 두산 베어스에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는 등 선수협 결성의 후폭풍은 작지 않았다.
3.2. 선수들에 대한 영향
선수협 파동 이후, 선수협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선수들은 각 구단 측에 의해 대부분 트레이드되는 보복성 조치를 당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양준혁]]: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 [[마해영]]: 롯데 자이언츠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삼성 라이온즈의 김주찬, 이계성(현재 KBO 심판)과의 2:1 맞트레이드였다.
* [[심정수]]: 심재학과 트레이드되어 두산 베어스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였다.
* [[강병규 (1972년)|강병규]]: 선수협 1기 집행부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두산 베어스에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처럼 선수협 결성의 후폭풍은 작지 않았다.
3.3. 선수 노조 설립 추진
선수협은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대표성은 갖고 있으나 정식 노조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단체였기 때문에 그 활동 범위에 근본적인 제약이 있었다. 이에 2009년 4월 28일 손민한 선수협회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노조 설립을 공식 선언했으며, 5월에는 각 구단 대표 선수 10여 명이 두 차례에 걸쳐 노조 설립 추진위원회 회의를 가졌다.
3.3.1. 노조 설립 찬반 투표
2009년 12월 2일 선수협은 선수 노조 설립 찬반 투표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91%의 압도적인 지지로 설립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나 선수협의 노조 설립 움직임에 대해 8개 구단 측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강력히 반대하여 갈등이 고조되었다. 각 구단 측이 선수 노조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투표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한, 선수 노조 설립이 시기상조라는 일부 여론과 삼성, LG 등 대기업을 구단주로 둔 일부 구단 소속 선수들이 노조 설립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내부적인 분열의 조짐도 있어 노조 설립까지는 험로가 예상되었다. 앞선 12월 투표에서 삼성과 LG측 선수들은 투표에 불참했다.
3.3.2. 노조 설립 관련 갈등
2009년 4월 28일 손민한 선수협회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노조 설립을 공식 선언했으며, 이어서 5월에는 각 구단 대표 선수 10여 명이 두 차례에 걸쳐 노조 설립 추진위원회 회의를 갖고 본격적으로 선수 노조 설립을 위한 행보에 들어갔다. 같은 해 12월 2일 선수협은 선수 노조 설립 찬반 투표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91%의 압도적인 지지로 설립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선수협의 노조 설립 움직임에 대해 8개 구단측과 한국야구위원회는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고조되었다.
각 구단측이 선수 노조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노조 설립 투표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선수 노조 설립이 시기상조라는 일부 여론과 삼성, LG 등 대기업을 구단주로 둔 일부 구단 소속 선수들이 노조 설립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내부적인 분열의 조짐도 있어 노조 설립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앞선 12월 투표에서 삼성과 LG측 선수들은 투표에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