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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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승엽은 대한민국 야구 선수로, KBO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했다. KBO 리그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9시즌 동안 뛰며 1999년 54홈런으로 한 시즌 50홈런을 돌파했고, 2003년에는 56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일본에서는 지바 롯데 마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활동하며 2005년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으며, 2017년 은퇴할 때까지 KBO 리그 통산 467홈런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KBO 홍보대사, 해설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22년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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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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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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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승엽 |
한자 표기 | 李承燁 |
로마자 표기 | I Seungyeop |
매큔-라이샤워 표기 | Ri Sŭngyŏp |
공식 표기 | Lee Seung-yuop |
출생일 | 1976년 8월 18일 |
출생지 | 대구광역시 |
포지션 | 1루수 / 감독 |
타격 | 좌 |
투구 | 좌 |
등번호 | 77 |
선수 경력 | |
프로 입단 연도 | 1995년 |
첫 출장 (KBO) | 1995년 4월 15일 |
첫 출장 (NPB) | 2004년 3월 27일 |
최종 출장 (KBO) | 2017년 10월 3일 |
최종 출장 (NPB) | 2011년 10월 18일 |
KBO 팀 | 삼성 라이온즈 (1995–2003) 삼성 라이온즈 (2012–2017) |
NPB 팀 | 지바 롯데 마린스 (2004–2005)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0) 오릭스 버펄로스 (2011) |
감독 경력 | |
감독 팀 | 두산 베어스 (2022–현재) |
국가대표 경력 | |
올림픽 | 2000년 2008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2013년 |
아시안 게임 | 2002년 |
KBO 기록 | |
타율 | .302 |
안타 | 2,156 |
홈런 | 467 |
타점 | 1,498 |
KBO 첫 출장 | 1995년 4월 15일 (삼성 라이온즈) |
KBO 마지막 출장 | 2017년 10월 3일 (삼성 라이온즈) |
NPB 기록 | |
타율 | .257 |
안타 | 686 |
홈런 | 159 |
타점 | 439 |
NPB 첫 출장 | 2004년 3월 27일 (지바 롯데 마린스) |
NPB 마지막 출장 | 2011년 10월 18일 (오릭스 버펄로스) |
수상 | |
KBO MVP | 5회 (1997, 1999, 2001–2003) |
KBO 골든 글러브 | 10회 (1997–2003, 2012, 2014–2015) |
KBO 올스타 | 11회 (1997–2003, 2013, 2015–2017) |
KBO 홈런왕 | 5회 (1997, 1999, 2001–2003) |
KBO 타점왕 | 4회 (1997, 1999, 2002–2003) |
KBO 통산 홈런 1위 | true |
한국시리즈 우승 | 4회 (2002, 2012–2014) |
한국시리즈 MVP | 2012 |
NPB 일본시리즈 우승 | 2회 (2005, 2009)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올스타 | 2006 |
메달 | |
올림픽 | 2008 베이징 금메달 2000 시드니 동메달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 샌디에이고 동메달 |
아시안 게임 | 2002 부산 금메달 |
2. 선수 경력
이승엽은 1995년 KBO 리그의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9시즌 동안 활약했다.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56홈런으로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세웠다.[77]
2004년 이승엽은 일본 퍼시픽 리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30] 일본에서의 시작은 다소 부진했는데, 10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40, 14홈런, 50타점에 그쳤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11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0, 30홈런,[31] 82타점을 기록하며 크게 성장했다.
2006년 시즌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금 5천만 엔을 포함한 총액 2억 1천만 엔의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4번 타자 겸 1루수로 출전했다. 2006년 8월 1일, 이승엽은 만 30세 이전에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세 번째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다른 선수는 오 사다하루와 알렉스 로드리게스).[3] 2006년 시즌 그의 성적은 타율 0.323, 41홈런이었다.
2007년부터 등번호를 '''25'''번으로 변경했다. 7월에는 일본 통산 100홈런 달성을 기념하여 기아자동차로부터 뉴 오피러스를 증정받았다.[32]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타율 0.333을 기록했고, 5홈런 10타점으로 대회 최다 홈런을 기록했다.
2006년 8월 3일, XM 위성 라디오의 MLB 라디오 보도에 따르면, 뉴욕 양키스와 이승엽이 2006년 정규 시즌 종료 후 오프시즌에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일간지 조선일보는 7월 19일 양키스가 이승엽에게 관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4]
2006년 시즌 종료 후, 이승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재계약을 맺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4강전인 일본전에서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2점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83][84] 그러나 그 해 일본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7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2009년 제2회 WBC 출전을 사퇴했다. 77경기에서 2년 만에 두 자릿수(16개) 홈런을 쳤지만 타율 .229로 전년보다 더욱 낮은 성적에 그쳤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좋은 컨디션으로 적시타와 홈런을 치는 등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에 기여했고, 또한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활약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56경기 출전에 타율 .163, 홈런 5개, 타점 11개로 자기 최저 성적에 그쳤다. 11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2010년 12월, 일본 퍼시픽 리그의 오릭스 버펄로즈에 합류했다.
2011년 이승엽은 주로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122경기에서 타율 .201, 15홈런, 51타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이승엽은 외국인 선수로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 가정적인 문제, 그리고 자신의 부진 등을 이유로 2년 계약을 해지하고[40] 팀을 떠났다.[41]
2011년 12월 5일, 이승엽은 1년 계약을 맺고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5]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MVP로 선정되는 활약을 펼치며 삼성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약 4년 반 만에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2014년 팀 내 최다인 32홈런(KBO 4위), 101타점(5위 타이)을 기록했고, 타율도 3할을 넘겼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4연패에 기여했다.
2015년 6월 3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구승민을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2016년 9월 1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24호 홈런을 쳐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했다.[43]
2017년 시즌 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5월 2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50호 홈런을 달성했다.[92] 7월 29일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93] 10월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은퇴 경기에 출전했다. 2타석 연속 홈런으로 자신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홈런 기록을 467개로 늘리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44] 경기 후 은퇴식을 가졌고, 삼성은 등번호 36번을 구단 역사상 세 번째 KBO리그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 1. 아마추어 시절
중앙초등학교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해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66]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으며, 특히 좌완 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66]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67][68]
2. 2. 한국 프로야구 시절
1995년 KBO 리그의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9시즌 동안 활약했다.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56홈런으로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세웠다.[77]- 1995년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하며 장거리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였고, 백인천 감독에게 '외다리 타법'을 전수받아 홈런 타자로 성장했다.[76]
- 1997년 홈런(32개), 타점(114개), 최다 안타(170개) 1위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 1998년 38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타이론 우즈와 홈런 경쟁을 벌였으나 2위에 그쳤다.
- 1999년 홈런(54), 타점(123), 득점(128), 출루율(0.458), 장타율(0.733)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 2002년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펼쳐 47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LG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동점 3점 홈런을 쳐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 2003년 6월 22일 SK 투수 김원형을 상대로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26세 10개월 4일)을 기록했다. 10월 2일 롯데전에서 이정민을 상대로 56호 홈런을 쳐내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으나, 2022년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타이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일본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하며 "국민 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3년 6월 22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김원형을 상대로 통산 300호 홈런을 기록하며, 오 사다하루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보다 빠른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세웠다.[22] 같은 경기에서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자신의 첫 사요나라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22] 55호 홈런 이후 "팬들이 잠자리채로 홈런볼을 잡는 일화"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24] 최종전에서 56호 홈런을 기록하며 이 공은 구단에 기증되었다.[25]
2. 2. 1.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5년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삼성에 입단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팔꿈치 부상으로[69][70] 투수 대신 타자로 전향했다.[71] 김성래의 부상과 양준혁의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72][73] 이만수 외에 1루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1루수로 뛰게 되었다. 입단 동기 김승관은[74]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로 트레이드된 후 2007년 은퇴했다. 이동수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프로 3년차인 1997년부터 최고의 타자로 성장했다.[75]- 1995년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하며 장거리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였고, 백인천 감독에게 '외다리 타법'을 전수받아 홈런 타자로 성장했다.[76]
- 1997년 홈런(32개), 타점(114개), 최다 안타(170개) 1위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 1998년 38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타이론 우즈와 홈런 경쟁을 벌였으나 2위에 그쳤다.
- 1999년 홈런(54), 타점(123), 득점(128), 출루율(0.458), 장타율(0.733)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 2002년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펼쳐 47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LG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동점 3점 홈런을 쳐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 2003년 6월 22일 SK 투수 김원형을 상대로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26세 10개월 4일)을 기록했다. 10월 2일 롯데전에서 이정민을 상대로 56호 홈런을 쳐내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으나, 2022년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타이기록을 이루게 되었다.[77]
1995년부터 9시즌 동안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하며 1999년 54홈런으로 KBO 리그 최초 50홈런을 돌파했고, 2003년에는 56홈런으로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세웠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일본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하며 "국민 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3년 6월 22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김원형을 상대로 통산 300호 홈런을 기록하며, 오 사다하루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보다 빠른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세웠다.[22] 같은 경기에서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자신의 첫 사요나라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22] 55호 홈런 이후 "팬들이 잠자리채로 홈런볼을 잡는 일화"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24] 최종전에서 56호 홈런을 기록하며 이 공은 구단에 기증되었다.[25]
2.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2004년 이승엽은 일본 퍼시픽 리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30] 일본에서의 시작은 다소 부진했는데, 10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40, 14홈런, 50타점에 그쳤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11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0, 30홈런,[31] 82타점을 기록하며 크게 성장했다.2006년 시즌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금 5천만 엔을 포함한 총액 2억 1천만 엔의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4번 타자 겸 1루수로 출전했다. 2006년 8월 1일, 이승엽은 만 30세 이전에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세 번째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다른 선수는 오 사다하루와 알렉스 로드리게스).[3] 2006년 시즌 그의 성적은 타율 0.323, 41홈런이었다.
2007년부터 등번호를 '''25'''번으로 변경했다. 7월에는 일본 통산 100홈런 달성을 기념하여 기아자동차로부터 뉴 오피러스를 증정받았다.[32]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4강전인 일본전에서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2점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83][84] 그러나 그 해 일본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7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2009년 제2회 WBC 출전을 사퇴했다. 77경기에서 2년 만에 두 자릿수(16개) 홈런을 쳤지만 타율 .229로 전년보다 더욱 낮은 성적에 그쳤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좋은 컨디션으로 적시타와 홈런을 치는 등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에 기여했고, 또한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활약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56경기 출전에 타율 .163, 홈런 5개, 타점 11개로 자기 최저 성적에 그쳤다. 11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2010년 12월, 일본 퍼시픽 리그의 오릭스 버펄로즈에 합류했다.
2011년 이승엽은 주로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122경기에서 타율 .201, 15홈런, 51타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이승엽은 외국인 선수로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 가정적인 문제, 그리고 자신의 부진 등을 이유로 2년 계약을 해지하고[40] 팀을 떠났다.[41]
2. 3. 1.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1995년 KBO 리그의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9시즌 동안 활약한 이승엽은 2004년 일본 퍼시픽 리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30]; 2004년
: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보비 발렌타인 감독 밑에서 개막전 4번 타자로 출전했다. 개막전 세이부 라이온스전(세이부 돔)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松坂)를 상대로 첫 타석 첫 안타 첫 타점을 기록했고, 4월 4일 후쿠오카 다이에이 호크스전에서는 신가키 나기사(新垣渚)를 상대로 일본 첫 홈런을 지바 마린 스타디움 라이트 후방 관중석까지 날리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점차 낙차 큰 변화구에 대처하지 못하는 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쪽 높은 코스에 몸을 일으켜 공을 치도록 유도한 후 다음 공은 바깥쪽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패턴이 확립되면서 일본 야구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개막 한 달 만에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2군행을 통보받아 컨디션 조절에 힘써야 했다. 2군에서 복귀한 후 9월 21일 세이부전(세이부 돔)에서는 베니 아그바야니, 맷 프랑코와 함께 장즈자(張誌家)를 상대로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 3명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결국 시즌 성적은 귀국 전 목표였던 "타율 .290, 30홈런, 100타점"에는 훨씬 못 미치는 100경기 출전, 규정 타석 미달, 타율 .240, 14홈런, 50타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2005년
: 오픈전에서 타율 .050의 부진에 빠지며 벌 퍼스쿠치에게 외국인 선수 자리를 빼앗겨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1군으로 콜업되자마자 로테의 하위 타선에 자리를 잡았고, 이 시즌 11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0, 30홈런[31], 82타점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7경기 16타수 3안타로 부진했지만, 한신 타이거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이가와 게이(井川慶)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2차전에서도 홈런을 기록했고, 3차전에서는 선발에서 제외되었지만 4차전에서는 선제 홈런을 치는 등 시리즈 통산 3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MVP는 이마에 도시아키(今江敏晃)). 이어진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친정팀 삼성과의 대결이 성사되었고, 1차전에서는 5번 타자, 결승전에서는 3번 타자로 중심 타선을 맡았지만 2경기에서 무안타에 그쳤다. "시즌을 통해 컨디션의 기복이 심하다", "좌완 투수에게 약하다"는 이유로 상대 선발 투수가 좌완인 경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등 로테 시절에는 끝까지 고정된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보비 발렌타인 감독이 플래툰 시스템을 채택한 감독이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마린건 타선 참조). 수비 포지션 또한, 이승엽은 원래 1루수였지만, 같은 좌완 투수인 후쿠우라 카즈야(福浦和也)가 1루수였기 때문에 지명타자(DH)나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좌익수로도 출전하는 등 수비 기회가 불안정했다. 로테 잔류 보도도 있었지만, 로테에서의 기용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2. 3. 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82]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4강전인 일본전에서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2점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83][84] 그러나 그 해 45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OPS 0.755,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7경기에서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2007년 부터 등번호를 '''25'''번으로 변경했다. 전년에 수술한 왼쪽 무릎 외에도 왼쪽 어깨와 왼쪽 엄지손가락에도 염증을 일으키는 등 부상이 많아 2군 강등과 7번 타자 출전을 경험하는 등 타율 .274, 홈런 30개, 타점 74개로 전년보다 성적이 저하되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7월에는 일본 통산 100홈런 달성을 기념하여 기아자동차로부터 뉴 오피러스를 증정받았다.[32] 클라이맥스 시리즈 2단계에서는 3경기에서 3안타를 쳤지만 0타점이었다.
2008년 수술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스프링 캠프를 2월 중순에 조기에 마치고, 3월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세계 최종 예선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여 타율 .478, 홈런 2개, 타점 12개의 활약으로 한국 대표팀을 2대회 만에 본선 진출로 이끌었다.[33]
그러나 그 여파로 오픈전에는 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조정이 늦어져 개막 후 14경기에서 타율 .135, 홈런 0개, 타점 2개로 크게 부진하여 4월 14일에 일찍 등록 말소되었다. 베이징 올림픽 파견 직전인 7월 25일에 1군에 승격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타율 .141로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했지만 시즌 부진을 이어받아 타율 1할대로 부진했고, 예선 최종전에서는 선발에서 제외될 정도로 부진에 빠졌다. 그러나 준결승 일본전에서는 역전 2점 홈런[34], 결승 쿠바전에서도 선제 결승 홈런을 치며 한국 야구 사상 첫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종료 후 8월 28일에 출전 선수 등록되었다. 외국인 선수 쿼터(알렉스 라미레스, 마크 크룬, 세스 그라이싱거 + 이승엽으로 4명이 가득 찬 상황에서 에이드리언 번사이드의 등판 예정이 있었던 관계로 9월 4일에 일시적으로 2군으로 내려갔지만, 9월 14일에 1군에 승격한 이후에는 회복하여 최종전까지 5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시즌 통틀어 45경기 출전에 타율도 2할 5푼을 밑돌았고, 홈런도 일본 진출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8개)에 그쳤다.
한신과의 최대 13게임 차를 뒤집고 리그 2연패(메이크 레전드)에 기여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6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18타수 2안타 12삼진의 대부진에 빠지며 팀의 일본 시리즈 탈락의 큰 요인이 되었다. 시리즈 12삼진은 잭 하웰이 1992년에 기록한 16삼진에 이은 기록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로서는 팀 신기록이었다. 12삼진 중 5개는 이 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고 MVP를 획득한 키시 고우스케로부터 얻어맞은 것이었다. 이후 일본 진출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둔 이 시즌을 "야구 인생에서 최악의 1년이었다"고 회고하며 다음 해에 집중하기 위해 제2회 WBC 한국 대표팀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35]
2009년 제2회 WBC 출전을 사퇴했다. 컨디션을 조절하여 오픈전에서는 타율 .302, 홈런 8개, 17타점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지만 개막과 동시에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에드가르도 알폰소와 번갈아가며 우완 투수 등판 시 중심으로 기용되었다. 홈런은 나왔지만 찬스에서 결과를 남기지 못했고, 한때 타율이 .300을 넘었지만, 그 이후 무안타가 이어지면서 타율이 크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1루 수비에서도 실책이 눈에 띄어 1군과 2군을 오갔다. 마지막에는 요통을 발병하여 출전 선수 등록을 말소된 채 시즌을 마쳤다. 77경기에서 2년 만에 두 자릿수(16개) 홈런을 쳤지만 타율 .229로 전년보다 더욱 낮은 성적에 그쳤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좋은 컨디션으로 적시타와 홈런을 치는 등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에 기여했고, 또한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활약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요통에서 회복한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1루수로 기용되는 등 선발 출전 기회가 적어 출전 56경기, 타율 .163, 홈런 5개, 타점 11개로 자기 최저 성적에 그쳤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쓰네오가 거액의 복수년 계약에 걸맞는 성적을 이승엽이 남기지 못한 것을 통렬히 비판했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36]
11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이승엽은 "이대로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 일본 팀에서 현역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고 공언하며 일본 야구계에서의 활동을 희망했다. 천지일보(대한불교조계종의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버린 요미우리는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37]
2. 3. 3.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
2010년 12월 2일, 이승엽은 연봉 1억 5천만 엔에 성과급을 더하는 조건으로 오릭스에 입단했다. 등번호는 '''3'''번을 받았고, 유니폼에는 "'''LEE S.Y.'''"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이는 2005년까지 뛰었던 롯데 이후 6년 만의 일본 퍼시픽 리그 복귀였다. 오릭스는 이승엽에게 중심 타자 역할을 기대했고, 개막 2차전에서 이적 후 첫 홈런을 교세라 돔 오사카 상단에 꽂아 넣으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삼진을 많이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결국 5월 8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5월 22일 다시 1군에 복귀하여 친정팀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7월 9일 세이부전에서는 일본 통산 150호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9월 16일 롯데전(QVC 마린필드)에서는 경기 전 유니폼이 든 짐을 제때 제출하지 못해 가모시다 타카시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39]이 해 이승엽은 주로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122경기에서 타율 .201, 15홈런, 51타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득점권 타율은 .265를 기록했고, 8월 14일 세이부전에서는 10회말 마키타 카즈히사에게서 5년 만에 끝내기 2점 홈런을 치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린 최종전에서 3삼진을 당하고 마지막 타석에서 1루 땅볼로 물러나며 팀은 3년 만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이승엽은 외국인 선수로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 가정적인 문제, 그리고 자신의 부진 등을 이유로 2년 계약을 해지하고[40] 팀을 떠났다.[41] 기자 회견에서 그는 시즌 내내 부진했던 점에 대해 বারবার 사과하며 "정신력, 몸, 기술, 그 모든 면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라고 8년간의 일본 생활을 회고했고, 마지막으로 일본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42]
2. 4. 한국 프로야구 복귀
2011년 12월 5일, 이승엽은 1년 계약을 맺고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5]|thumb|2017년 이승엽(李承燁)
; 2012년
2011년 12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금 3억원, 연봉 8억원의 1년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이전에 사용했던 36번을 다시 달았다. 2003년 56홈런을 기록한 이후 9년 만의 한국 프로야구, 삼성 복귀였다.
4월 7일,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개막전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4월 15일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삼성 복귀 후 첫 홈런을 기록했다. 5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한일 통산 2000안타를, 7월 29일 넥센전에서는 한일 통산 500홈런을 달성했다. 같은 해 3할 21홈런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MVP로 선정되는 활약을 펼치며 삼성의 우승에 기여했다.
;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약 4년 반 만에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1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전했지만, 2차전과 3차전에서는 3번 타순에 선발 출전하여 3경기 10타수 4안타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팀은 1차전 네덜란드전 대패의 여파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시즌에서는 6월 15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홈런 기록과 동률인 351호 홈런을 기록했고, 6월 20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윤희상을 상대로 352호 홈런을 쳐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전년도보다 성적이 저조했다.
; 2014년
전 시즌 장타력과 정교함이 부족했던 것과 달리, 팀 내 최다인 32홈런(KBO 4위), 101타점(5위 타이)을 기록했고, 타율도 3할을 넘겼다. 38세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끌었고, 삼성의 한국시리즈 4연패에 기여했다.
; 2015년
6월 3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구승민을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 2016년
4월 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로서는 해당 구장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다. 8월 24일 SK 와이번스전(대구)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양준혁을 제치고 한국 프로야구 신기록인 개인 통산 1390타점을 기록했다. 9월 7일 KT 위즈전(대구)에서 이창재를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8번째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9월 1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24호 홈런을 쳐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했다.[43]
; 2017년
시즌 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5월 2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50호 홈런을 달성했다.[92] 7월 29일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93] 10월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은퇴 경기에 출전했다. 2타석 연속 홈런으로 자신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홈런 기록을 467개로 늘리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44] 경기 후 은퇴식을 가졌고, 삼성은 등번호 36번을 구단 역사상 세 번째 KBO리그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 4. 1.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11년 10월 21일 기자 회견을 열어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구 귀국했다.[86]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했다.[87]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원, 플러스 옵션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5]|thumb|2017년 이승엽(李承燁)
; 2012년
2011년 12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금 3억원, 연봉 8억원의 1년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이전에 사용했던 36번을 다시 달았다. 2003년 56홈런을 기록한 이후 9년 만의 한국 프로야구, 삼성 복귀였다.
4월 7일,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개막전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4월 15일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삼성 복귀 후 첫 홈런을 기록했다. 5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한일 통산 2000안타를, 7월 29일 넥센전에서는 한일 통산 500홈런을 달성했다. 같은 해 3할 21홈런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MVP로 선정되는 활약을 펼치며 삼성의 우승에 기여했다.
;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약 4년 반 만에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1차전에서는 대타로 출전했지만, 2차전과 3차전에서는 3번 타순에 선발 출전하여 3경기 10타수 4안타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팀은 1차전 네덜란드전 대패의 여파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시즌에서는 6월 15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홈런 기록과 동률인 351호 홈런을 기록했고, 6월 20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윤희상을 상대로 352호 홈런을 쳐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전년도보다 성적이 저조했다.
; 2014년
전 시즌 장타력과 정교함이 부족했던 것과 달리, 팀 내 최다인 32홈런(KBO 4위), 101타점(5위 타이)을 기록했고, 타율도 3할을 넘겼다. 38세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끌었고, 삼성의 한국시리즈 4연패에 기여했다.
; 2015년
6월 3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구승민을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 2016년
4월 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로서는 해당 구장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다. 8월 24일 SK 와이번스전(대구)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양준혁을 제치고 한국 프로야구 신기록인 개인 통산 1390타점을 기록했다. 9월 7일 KT 위즈전(대구)에서 이창재를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8번째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9월 1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24호 홈런을 쳐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했다.[43]
; 2017년
시즌 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5월 2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450호 홈런을 달성했다.[92] 7월 29일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93] 10월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은퇴 경기에 출전했다. 2타석 연속 홈런으로 자신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홈런 기록을 467개로 늘리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44] 경기 후 은퇴식을 가졌고, 삼성은 등번호 36번을 구단 역사상 세 번째 KBO리그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3. 야구선수 은퇴 후
2018년부터 KBO 홍보대사[45],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회 위원, SBS 및 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2월 9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여, 태극기 입장 시 기수 중 한 명을 맡았다.[46][47] 4월에는 장학재단 발족식을 개최했다.[48] 2019년부터 SBS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에 지도자 연수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었으나[96]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97]
2022년 10월 14일, 두산 베어스 감독에 취임하며 프로야구 현장에 복귀했다.[51] 계약 기간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이다.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2021–2022 | 골프 배틀: 버디 버디스(Golf Battle: Birdie Buddies) | 출연진 | 시즌 1–4 |
2022 | 스트롱게스트 베이스볼(Strongest Baseball) | 출연진 |
4. 국가대표 경력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06년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3년 제 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한국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다.[7]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승엽은 왼쪽 엄지 손가락 부상으로 예선에서 22타수 3안타(.136) 2타점으로 부진했다.[7] 그러나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8회말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2점 역전 홈런을 쳐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고, 쿠바와의 금메달 결정전에서는 1회초 노르베르토 곤살레스에게 2점 홈런을 뽑아내며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7]
5. 수상
- 고교 청룡기 대회 - 우수 투수상 (1993년)
-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최다 홈런상, 최다 타점상 (1994년)[100]
-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0년)
-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2년)
- WBC 우수 선수 (2006년, 1루수 부문) & 초대 홈런왕 및 타점왕
-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8년)[101]
시상식 | 연도 | 부문 | 후보/작품 | 결과 | |
---|---|---|---|---|---|
청룡시리즈어워즈 | 2022 | 남자 신인 연기상 | 골프 배틀: 버디 버디 | [12] | |
SBS 연예대상 | 2021 | 신인상 (쇼·스포츠 부문) | [13] |
;KBO
- 홈런왕: 5회 (1997년, 1999년, 2001년-2003년)
- 타점왕: 4회 (1997년, 1999년, 2002년-2003년)
- 최다안타: 1회 (1997년)
;KBO
;NPB
- 일본시리즈 우수선수상:1회 (2005년)
- 월간 MVP: 1회 (2006년 6월)
- 도쿄돔 MVP: 1회 (2006년)
- 올스타 게임 우수선수상:1회 (2005년 제2차전)
;WBC
- 제1회 WBC 베스트나인 1루수 부문 (2006년)
5. 1. KBO 리그
이승엽은 KBO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1997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총 5회 MVP를 수상했으며, 골든글러브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회 연속, 그리고 2012년에 1회를 더하여 총 8회 수상했다. 2012년에는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홈런왕은 5회 (1997년, 1999년, 2001년-2003년), 타점왕은 4회 (1997년, 1999년, 2002년-2003년), 최다 안타는 1회 (1997년)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득점왕 5회 (1998년, 1999년, 2000년, 2002년, 2003년), 최고 출루율 1회 (1999년), 최고 장타율 3회 (1998년, 1999년, 2002년)를 기록하는 등 KBO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2021년에는 SBS 연예대상에서 신인상 (쇼·스포츠 부문)을 수상했고,[13] 2022년 제1회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는 ''골프 배틀: 버디 버디''로 남자 신인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12]
5. 2. 일본 프로 야구
이승엽은 일본 프로 야구에서 2005년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1회 수상하였다. 2006년 6월에는 월간 MVP, 같은 해 도쿄 돔 MVP를 1회 수상하였다. 2005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제2차전 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6. 통산 기록
이승엽은 KBO 리그 통산 15시즌 동안 1906경기에 출장하여 7132타수 2156안타, 467홈런, 1498타점, 1355득점, 타율 .302, 출루율 .389, 장타율 .572, OPS .960을 기록했다. 2루타(464개)와 루타(4077개)는 KBO 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신인으로서 13홈런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1997년에는 32홈런과 114타점을 기록하며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했고,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1999년에는 54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최초로 50홈런 시대를 열었다. 2003년에는 56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 활약하며 8시즌 통산 797경기, 2668타수 686안타, 159홈런, 439타점, 타율 .257, 출루율 .324, 장타율 .494, OPS .818을 기록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뛰었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2017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복귀 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팀의 중심 타자 역할을 수행했다. 2015년에는 역대 최고령 20홈런-100타점을 달성하였고, 2016년에는 600개의 2루타, 4000루타, 10000타수를 달성했다.
연 도 | 소 속 | 나 이 | 출 장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타 점 | 도 루 | 도 실 | 볼 넷 | 삼 진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루 타 | 병 살 타 | 몸 맞 | 희 타 | 희 플 | 고 4 |
---|---|---|---|---|---|---|---|---|---|---|---|---|---|---|---|---|---|---|---|---|---|---|---|---|---|
1995 | 삼성 | 19 | 121 | 411 | 365 | 55 | 104 | 29 | 1 | 13 | 73 | 0 | 3 | 33 | 54 | .285 | .345 | .477 | .822 | 174 | 4 | 4 | 2 | 7 | 1 |
1996 | 20 | 122 | 504 | 459 | 57 | 139 | 32 | 6 | 9 | 76 | 4 | 1 | 34 | 42 | .303 | .354 | .458 | .811 | 210 | 10 | 5 | 1 | 5 | 4 | |
1997 | 21 | 126 | 577 | 517 | 96 | 170 | 37 | 3 | 32 | 114 | 5 | 2 | 49 | 79 | .329 | .391 | .598 | .988 | 309 | 10 | 6 | 1 | 4 | 4 | |
1998 | 22 | 126 | 568 | 477 | 100 | 146 | 32 | 2 | 38 | 102 | 0 | 2 | 78 | 97 | .306 | .404 | .621 | 1.024 | 296 | 4 | 5 | 1 | 7 | 10 | |
1999 | 23 | 132 | 614 | 486 | 128 | 157 | 33 | 2 | 54 | 123 | 10 | 2 | 112 | 114 | .323 | .458 | .733 | 1.190 | 356 | 7 | 12 | 0 | 4 | 6 | |
2000 | 24 | 125 | 544 | 454 | 108 | 133 | 33 | 0 | 36 | 95 | 4 | 5 | 80 | 113 | .293 | .404 | .604 | 1.008 | 274 | 5 | 7 | 0 | 3 | 7 | |
2001 | 25 | 127 | 574 | 463 | 101 | 128 | 31 | 2 | 39 | 95 | 4 | 2 | 96 | 130 | .276 | .412 | .605 | 1.017 | 280 | 6 | 12 | 1 | 2 | 11 | |
2002 | 26 | 133 | 617 | 511 | 123 | 165 | 42 | 2 | 47 | 126 | 1 | 2 | 89 | 109 | .323 | .436 | .689 | 1.125 | 352 | 11 | 15 | 0 | 2 | 5 | |
2003 | 27 | 131 | 596 | 479 | 115 | 144 | 23 | 0 | 144 | 7 | 0 | 101 | 89 | .301 | .428 | .699 | 1.127 | 335 | 11 | 10 | 0 | 6 | 9 | ||
2004 | 지바 롯데 | 28 | 100 | 382 | 333 | 50 | 80 | 20 | 4 | 14 | 50 | 1 | 2 | 42 | 88 | .240 | .328 | .450 | .779 | 150 | 6 | 3 | 1 | 3 | 0 |
2005 | 29 | 117 | 445 | 408 | 64 | 106 | 25 | 2 | 30 | 82 | 5 | 4 | 33 | 79 | .260 | .315 | .551 | .866 | 225 | 9 | 1 | 0 | 3 | 3 | |
2006 | 요미우리 | 30 | 143 | 592 | 524 | 101 | 169 | 30 | 0 | 41 | 108 | 5 | 1 | 56 | 126 | .323 | .389 | .615 | 1.003 | 322 | 5 | 5 | 0 | 7 | 3 |
2007 | 31 | 137 | 583 | 541 | 84 | 148 | 29 | 2 | 30 | 74 | 4 | 3 | 38 | 119 | .274 | .322 | .501 | .823 | 271 | 8 | 1 | 2 | 1 | 0 | |
2008 | 32 | 45 | 170 | 153 | 21 | 38 | 4 | 0 | 8 | 27 | 1 | 0 | 11 | 37 | .248 | .324 | .431 | .755 | 66 | 3 | 6 | 0 | 0 | 0 | |
2009 | 33 | 77 | 257 | 223 | 33 | 51 | 9 | 0 | 16 | 36 | 1 | 2 | 28 | 65 | .229 | .327 | .484 | .811 | 108 | 1 | 5 | 0 | 1 | 4 | |
2010 | 34 | 56 | 108 | 92 | 13 | 15 | 1 | 0 | 5 | 11 | 1 | 0 | 12 | 26 | .163 | .280 | .337 | .617 | 31 | 0 | 3 | 1 | 0 | 0 | |
2011 | 오릭스 | 35 | 122 | 432 | 394 | 28 | 79 | 20 | 0 | 15 | 51 | 0 | 0 | 32 | 121 | .201 | .257 | .365 | .622 | 144 | 8 | 0 | 0 | 6 | 1 |
2012 | 삼성 | 36 | 126 | 556 | 488 | 84 | 150 | 28 | 2 | 21 | 85 | 6 | 0 | 59 | 101 | .307 | .384 | .502 | .886 | 245 | 10 | 4 | 1 | 4 | 4 |
2013 | 37 | 111 | 483 | 443 | 62 | 112 | 24 | 0 | 13 | 69 | 3 | 1 | 30 | 94 | .253 | .298 | .395 | .693 | 175 | 8 | 2 | 0 | 8 | 2 | |
2014 | 38 | 127 | 548 | 506 | 83 | 156 | 30 | 0 | 32 | 101 | 5 | 1 | 40 | 77 | .308 | .358 | .557 | .915 | 282 | 10 | 0 | 0 | 2 | 3 | |
2015 | 39 | 122 | 522 | 470 | 87 | 156 | 28 | 1 | 26 | 90 | 2 | 1 | 40 | 71 | .332 | .387 | .562 | .949 | 264 | 10 | 6 | 0 | 6 | 2 | |
2016 | 40 | 142 | 623 | 542 | 91 | 164 | 32 | 2 | 27 | 118 | 5 | 2 | 65 | 89 | .303 | .380 | .518 | .899 | 341 | 7 | 8 | 0 | 8 | 1 | |
2017 | 41 | 135 | 533 | 472 | 65 | 132 | 30 | 5 | 24 | 87 | 1 | 1 | 47 | 85 | .280 | .347 | .517 | .864 | 244 | 7 | 6 | 0 | 8 | 6 | |
KBO 통산 : 15년 | 1906 | 8270 | 7132 | 2156 | 28 | 1498 | 57 | 25 | 953 | 1344 | .302 | .389 | .960 | 120 | 102 | 7 | 76 | 75 | |||||||
NPB 통산 : 8년 | 797 | 2969 | 2668 | 394 | 686 | 138 | 8 | 159 | 439 | 18 | 12 | 252 | 661 | .257 | .324 | .494 | .818 | 1317 | 40 | 24 | 4 | 21 | 11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는 아시아 최고 기록(한 시즌 56홈런),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 기록
7. 트리비아
2016년 2월 25일 팀의 새로운 홈 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준공되면서 대구광역시 도시철도공사 홍보대사로 선정되어,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의 특별 안내방송을 맡았다.[99]
본관은 광주 이씨이다.[59]
일본 진출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기 때문에 영화 『라이온 킹』을 본따 "라이온 킹"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카츠동을 좋아해 일본 시절 자주 먹었으며, 한국에서는 육류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육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어에 능숙하여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60][61]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경기 승리 인터뷰에서도 일본 언론에 일본어로 답변했다. 그러나 미디어나 히어로 인터뷰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했는데, 이는 "외국인 선수는 통역을 통해 코멘트한다"는 구단 방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 타석 등장 음악은 2008년까지 조앤 제트 & 더 블랙하츠의 『I Love Rock n'Roll』, 2009년에는 윤도현의 『엄마의 노래』, 오릭스 시절에는 드렁큰 타이거의 『Monster』를 사용했다.
"국민 타자"라는 칭호에 대해 은퇴 경기에서 "정말 무거웠습니다. 유명인으로 사는 것은 행복이면서도 불행이기도 합니다. '국민적'이라는 수식어는 누구에게나 붙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있었기에 말과 행동에 신중했습니다. 그 말이 있었던 것이 저를 성장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62] 일본 시절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2군에서 보낸 시간도 길었고, 제가 생각했던 모습, 한국에서 뛰었을 때와 같은 폭발력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23년 동안 뛸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의 실패 속에서 '태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시절은) 성공이 아닙니다."라고 회고했다.[63]
경북고등학교 시절, 한국 4대 고교 야구 전국대회 중 하나인 ‘청룡기 대회’에서 우승 투수를 기록했다. 투타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백인천은 그의 타자로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타자의 길을 권유했다. 이는 그의 우상인 왕정치와 유사한 과정이다. WBC 당시 왕정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집에 걸어두고 있다.
2007년부터 대표팀 등번호를 25번으로 변경했다. 이는 삼성 라이온즈 시절 친한 후배인 배영수의 등번호였으며, 베리 본즈를 선수로서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시절 36번은 장종훈을 넘어서겠다는 의미에서 그의 등번호 35번보다 하나 큰 숫자를 선택한 것이다. 삼성 입단 당시에는 고등학교 시절 등번호였던 27번을 원했었다.
류시원과 친분이 있어, 2007년 도쿄돔 개막전에서 류시원이 시구를 맡았다.
2016년 2월 하순부터 2017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의 가장 가까운 역인 대공원역에 대구도시철도공사 2호선 전철이 도착할 때의 안내 방송을 담당했다.
국제 대회에서 후배들의 병역 면제에 여러 번 기여했으며, 자신 또한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64]
이름에 쓰인 '燁'이라는 한자가 일본 상용한자에 포함되지 않아 일본 언론에서는 '이승엽' 또는 '火へんに華' 등으로 표기했다. 오릭스 구단 또한 '火へんに華'를 공식적인 소재로 사용했다.[65]
8. 주요 기록
;KBO
-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등번호 36. 2017년 은퇴 시 지정)
;NPB 첫 기록
- 첫 출전·첫 선발 출전: 2004년 3월 27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차전 (세이부 돔), 4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
- 첫 타석·첫 안타·첫 타점: 상동, 1회초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우월 선제 적시 2루타
- 첫 홈런: 2004년 4월 4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3차전 (지바 마린 스타디움), 4회말 아라가키 나기사로부터 우월 2점 홈런
- 첫 도루: 2004년 5월 5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8차전 (야후!BB 스타디움), 2회초 2루 도루 (투수: 가와고에 히데타카, 포수: 히다카 다케시)
;NPB 주요 기록
- 100홈런: 2007년 7월 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9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2회초 아오키 다카히로로부터 우월 2점 홈런 ※ 역대 250번째
- 150홈런: 2011년 7월 9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8차전 (세이부 돔), 6회초 와쿠이 히데아키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 ※ 역대 155번째
;NPB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전: 2회 (2005년, 2006년. 모두 감독 추천)
8. 1. KBO
이승엽은 KBO 리그에서 여러 기록을 경신하며 활약했다. 1999년 5월 5일 대구 현대전에서 최연소 통산 100홈런(만 22세 8개월 17일)을 달성했고, 2001년 6월 21일 대구 한화전에서는 최연소 통산 200홈런(만 24세 10개월 3일)을 기록했다.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에서는 세계 최연소 및 최단 경기 통산 300홈런(만 26세 10개월 4일/1075경기)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2002년 5월 16일에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대구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최연소(25세 8개월 28일)/최소 경기(914경기) 2000루타를 달성했다.
2003년 10월 2일, 대구 롯데전에서는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최고 기록(56개)을 경신했다. 2012년 7월 29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한·일 통산 500홈런을 달성했고, 2013년 6월 20일 인천 SK전에서는 양준혁의 종전 기록(351개)을 넘어 KBO 리그 통산 최다 홈런(352개) 기록을 세웠다.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으며, 2016년 9월 14일 대구 한화전에서는 한·일 통산 600홈런을 기록했다. 2017년 10월 3일 은퇴 경기에서는 KBO 리그 은퇴 경기 최초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이승엽의 등번호 36번은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8. 2. NPB
이승엽은 2004년 3월 27일 세이부 돔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1차전에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일본 프로야구(NPB) 첫 경기를 치렀다. 같은 경기 1회초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우월 선제 적시 2루타를 기록하며 첫 타석, 첫 안타, 첫 타점을 모두 달성했다. 2004년 4월 4일 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3차전에서는 아라가키 나기사를 상대로 우월 2점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진출 첫 홈런을 신고했다. 2004년 5월 5일 야후!BB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8차전에서는 2회초 2루 도루를 성공하며 첫 도루를 기록했다.2006년 8월 1일, 도쿄 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11차전에서 이가와 게이를 상대로 1회 홈런을 치며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9세 11개월 13일이었다. 2007년 7월 1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9차전에서는 아오키 디카히로를 상대로 2회초 우월 2점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했다. 이는 역대 250번째 기록이었다. 2011년 7월 9일 세이부 돔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8차전에서는 와쿠이 히데아키를 상대로 6회초 우월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통산 150호 홈런을 달성했다. 이는 역대 155번째 기록이었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 마린스 (2005년)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9년)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하며, 일본 양대 리그에서 우승한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05년과 2006년에는 감독 추천으로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9. 별명
이승엽은 '국민 타자', '라이언 킹'등으로 불린다.[98] 일본 진출 이후에는 '승짱'(スンちゃん일본어)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98] 2008년 하계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 면제에 기여하여 '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는 별명도 얻었다.[98] 또한, 8회에 결정적인 역할을 많이 해 '8회의 사나이'라고 불리며, 포항야구장에서 성적이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98]
일본 진출 전에는 소속팀이 삼성 라이온즈였기 때문에 영화 『라이온 킹』을 본따 "라이온 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카츠동을 좋아해 일본 시절 자주 먹었으며, 한국에서는 육류를 좋아하는 점 때문에 "육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민 타자"라는 별명에 대해서 이승엽은 은퇴 경기에서 "정말 무거웠습니다. '국민적'이라는 수식어는 누구에게나 붙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있었기에 말과 행동에 신중했습니다. 그 말이 있었던 것이 저를 성장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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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五輪開会式に李スンヨプさんや朴セリさんらが登場
https://www.daily.co[...]
2018-02-09
[47]
웹사이트
美女軍団も政治人形…平昌初日のハイライトは金正恩の妹
http://www.nikkan-ge[...]
2018-02-10
[48]
웹사이트
「日本時代は最悪だった」元巨人のイ・スンヨプ氏が明かす
http://news.livedoor[...]
2018-04-23
[49]
웹사이트
【巨人】4位・李承ヨプ、韓国帰郷し演劇鑑賞 役者より大きな拍手…G党の心に残る外国人打者ランキング
https://hochi.news/a[...]
スポーツ報知
2020-05-02
[50]
웹사이트
イ・スンヨプ、巨人歴代最高の外国人打者4位に選出
https://s.wowkorea.j[...]
wowkorea.jp
2020-05-02
[51]
Youtube
https://www.youtube.[...]
[52]
서적
野球小僧 世界野球選手名鑑2009
白夜書房
[53]
웹사이트
【コラム】イ・スンヨプの「初恋相手」のために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08-03-01
[54]
웹사이트
<野球>三振リーグ最多の李承ヨプ、フォークボールに対応できず
https://japanese.joi[...]
2011-05-10
[55]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07
アスペクトムック
[56]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10
アスペクトムック
[57]
서적
野球小僧 世界野球選手名鑑2011
白夜書房
[58]
서적
プロ野球選手100人が選ぶ!現役最強ベストナイン 全選手のアンケート回答をすべて公開!
宝島社
[59]
웹사이트
與텃밭 전남 보성에 ‘이준석 축하’ 현수막 걸렸다
https://www.chosun.c[...]
2021-06-17
[60]
웹사이트
<野球>李承?、日本語の実力は?…チームメートと冗談も
https://japanese.joi[...]
2006-07-21
[61]
웹사이트
呉昇桓にスンヨプ太鼓判「絶対大丈夫」
https://www.nikkansp[...]
2014-02-22
[62]
웹사이트
「国民的打者」李承ヨプの集大成 引退試合で見せた2本のアーチ
https://sports.yahoo[...]
2017-10-04
[63]
웹사이트
「国民的打者」李承ヨプの集大成 引退試合で見せた2本のアーチ
https://sports.yahoo[...]
2017-10-04
[64]
웹사이트
決勝弾の李スンヨプ 別名兵役免除ブローカー
https://www.sponichi[...]
2008-08-22
[65]
X
さて、本日Bsツイッター的に新しいファンクラブの立ち上げを宣言いたします!!その名も「火へんに華倶楽部 イ・スンヨプファイティング!」
https://twitter.com/[...]
2010-12-02
[66]
뉴스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
http://news.chosun.c[...]
2010-05
[67]
뉴스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
http://www.osen.co.k[...]
2007-12
[68]
칼럼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10-09
[69]
뉴스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
http://www.munhwa.co[...]
2009-09
[70]
뉴스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
http://news.donga.co[...]
2010-08
[71]
뉴스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http://www1.mydaily.[...]
마이 데일리
2010-08-10
[72]
뉴스인용
‘95 프로야구 팡파르<1>판도분석...전력비슷…춘추전국예상
http://www.kookje.co[...]
국제신문
2019-11-17
[73]
뉴스인용
'94프로야구 韓(한)대화2점홈런에 李(이)만수 역전적시타 5월하늘 노장투혼"활활"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11-17
[74]
뉴스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
http://xportsnews.ha[...]
엑스포츠
2010-07-00
[75]
칼럼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09-12-00
[76]
칼럼
외다리 타법의 창시자, ‘야구는 도(道)이고, 타격은 검(劍)’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10-02-00
[77]
뉴스인용
무라카미, 일본인 최다 56홈런 신기록에 '30억' 집 선물 받는다
https://sports.news.[...]
노컷뉴스
2022-10-04
[78]
뉴스인용
金在博(김재박),프로入團(입단) 포기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23-02-24
[79]
칼럼
일본 프로 야구의 대리인 제도를 말한다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08-09-00
[80]
뉴스인용
[스포츠 10대 해프닝②]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
http://media.daum.ne[...]
조이뉴스24
2008-09-22
[81]
뉴스인용
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
http://media.paran.c[...]
세계일보
2008-06-01
[82]
칼럼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08-04-00
[83]
칼럼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
https://news.naver.c[...]
스포츠 춘추
2008-08-00
[84]
칼럼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
http:///main/read.nh[...]
스포츠 춘추
2008-08-00
[85]
뉴스인용
이승엽 “내 야구 인생에 포기는 없다”
http://news.nate.com[...]
스포츠월드
2009-11-16
[86]
뉴스인용
'국내 복귀' 이승엽, 日서 기자회견 '굿바이, 오릭스'
http://news.sportsse[...]
스포츠서울
2012-11-26
[87]
뉴스
이승엽, 와이프에게 어쩔 수 없는 경상도 남자인가 보다
https://news.naver.c[...]
스포츠조선
[88]
뉴스
삼성 이승엽, 역대 6번째 3,000루타 달성
http://www.newstomat[...]
[89]
뉴스
이승엽 최소 경기 3,000루타
http://www.yeongnam.[...]
[90]
뉴스
이승엽의 무서운 다짐 "내 이름, 꼭 되찾겠다"
http://sports.news.n[...]
노컷뉴스
[91]
뉴스
이승엽, 홈런이 전부가 아니다… 부진 털어낸 동점 적시타 ‘우승 발판’
http://sports.news.n[...]
스포츠월드
[92]
뉴스
'이승엽, 통산 450홈런'삼성, 661일만에 시리즈 스윕(종합)
http://starin.edaily[...]
이데일리
[93]
뉴스
'라이언킹' 삼성 이승엽, KBO리그 최초 4000루타 돌파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94]
뉴스
‘일구대상’ 이승엽 “마지막 1년, 떠날 때 후회없도록”(일구상 시상식)
http://www.newsen.co[...]
[95]
뉴스
이승엽 "은퇴 이후 일? 야구 관련 아니면 안 한다"
http://www.yonhapnew[...]
[96]
뉴스
이승엽, 메이저리그 코치 연수 떠난다…박찬호 추천이 결정적
https://sports.news.[...]
엠스플뉴스
[97]
뉴스
갑작스러운 이승엽 ML 연수 소식, 확인 결과 사실 무근
https://sports.news.[...]
스포츠서울
[98]
뉴스인용
승엽은 병역 브로커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8-08-27
[99]
문서
현재는 방송되지 않는다.
[100]
뉴스인용
300홈런 주인공 이승엽은 누구인가?
http://www.hani.co.k[...]
연합뉴스
2003-06-22
[101]
뉴스인용
'국민 타자' 이승엽, 퍼펙트 金 약속 지켰다
http://www.mydaily.c[...]
마이 데일리
2008-08-23
[102]
문서
이정민은 이후에도 홈런을 하나 더 맞았으나 프로 데뷔 첫 승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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