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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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6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의 3선 불가능에 따라 치러진 선거로, 아베 신조가 당선되었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후보로 나섰으며, 아베는 702표 중 464표를 얻어 51세의 나이로 자민당 최연소 총재가 되었다. 이 선거는 아베의 우경화 정책, 한일 관계 악화, 북한 정책 등 다양한 평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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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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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개요 | |
선거 이름 | 2006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국가 | 일본 |
선거 종류 | 총재 선거 |
이전 선거 | 2003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이전 선거 연도 | 2003년 |
다음 선거 | 2007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다음 선거 연도 | 2007년 |
선거일 | 2006년 9월 20일 |
선거 제도 | 총재 공선 규정에 따른 총재 선거 |
공시일 | 2006년 9월 8일 |
투표 결과 | |
후보 1 | 아베 신조 |
후보 1 득표 - 의원 투표 | 267 |
후보 1 득표 - 당원 산정 투표 | 197 |
후보 1 득표 - 합계 | 464 |
![]() | |
후보 2 | 아소 다로 |
후보 2 득표 - 의원 투표 | 69 |
후보 2 득표 - 당원 산정 투표 | 67 |
후보 2 득표 - 합계 |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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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3 | 다니가키 사다카즈 |
후보 3 득표 - 의원 투표 | 66 |
후보 3 득표 - 당원 산정 투표 | 36 |
후보 3 득표 - 합계 |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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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 |
직책 | 총재 |
선거 전 총재 | 고이즈미 준이치로 |
선거 후 총재 | 아베 신조 |
2. 선거 배경
자유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자유민주당 총재는 3회 연속 선출될 수 없으므로, 이미 2회 연속 선출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는 이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이즈미를 이을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로 언론 등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아소 다로, 다니가키 사다카즈, 후쿠다 야스오, 아베 신조의 출마가 예상되었다.[1]
2006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는 아베 신조, 다니가키 사다카즈, 아소 다로 3명이 입후보했다. 이들은 각각 내각관방장관, 재무대신, 외무대신을 역임하고 있었다.
2005년 9월 11일에 실시된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을 압승으로 이끈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우정 관련 법안이 가결될 때까지 과도 내각으로 제2차 고이즈미 개조 내각의 각료를 전원 재임명한 제3차 고이즈미 내각을 발족했다. 약 1개월 후인 10월 31일, 자신에게 마지막 내각인 제3차 고이즈미 개조 내각을 조각했다. 그 때부터 포스트 고이즈미 인사가 미디어 등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6년 3월 말, 고이즈미 내각은 "다양한 기회가 있는 사회 추진 회의(통칭: 재도전 추진 회의)"를 설치하고, 동 회의 의장에는 아베 신조가 취임했다.[1][2] 같은 해 6월 2일, 의원 연맹 "재도전 지원 의원 연맹"이 발족되었는데, 이는 재도전 추진 회의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실질적으로 아베를 지원하기 위한 단체였다.[3][4][5]
이처럼 유력 후보로 아소, 다니가키, 후쿠다, 아베 4명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모리 요시로는 이들의 성을 따서 "아소, 타니가키, 고이즈미, 아베"라는 단어를 명명하여 자주 사용하였다.
당초부터 당시 내각관방장관을 맡고 있던 아베가 유력하다고 보여졌고, 대항마로 후쿠다가 위치했다. 아베와 후쿠다는 같은 모리 파벌 출신이며, 모리 파벌은 과거 아베·후쿠다의 아버지가 영수였던 파벌이었던 점도 주목받았다. 아베와 후쿠다가 입후보하면 안후쿠 전쟁이 되어, 제1파벌인 모리 파벌의 분열도 예상되었다. 그러나, 7월 21일에 후쿠다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6] 후쿠다 지지 진영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눈사태처럼 아베 지지로 기울었다.
3. 후보자
이들 외에도 후쿠다 야스오와 고노 다로가 출마를 고려했으나, 후쿠다 야스오는 아베 신조와의 표 분열을 우려하여 불출마를 선언했고,[6] 고노 다로는 추천인 20명을 확보하지 못해 출마를 포기했다.[9]
3. 1. 주요 후보
내각관방장관처음 다니가키 사다카즈 타니가키 파벌 중의원 의원 (9선 · 교토 5구)
재무대신처음 아소 다로 고노 그룹 중의원 의원
외무대신2번째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