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다로
1. 개요
고노 다로는 1963년생의 일본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다. 그는 가나가와현 제15구에서 9번 당선되었으며, 외무대신, 방위대신, 행정개혁담당대신, 디지털 담당 장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원자력 정책에 비판적이며, 탈원전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재가동 용인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외교, 안보, 행정 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성 결혼 지지, 간접흡연 문제 해결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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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고노 다로 |
|---|---|
| 원어 이름 | 河野 太郎 |
| 로마자 표기 | Kōno Tarō |
| 출생일 | 1963년 1월 10일 |
| 출생지 |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 |
| 배우자 | 가오리 고노 |
| 자녀 | 1명 |
| 정당 | 자유민주당 |
| 아버지 | 고노 요헤이 |
| 학력 | 조지타운 대학교 (이학사) |
| 웹사이트 | konotaro.org |
| 친척 | 고노 이치로 (할아버지) 고노 겐조 (대숙부) 고노 지헤이 (증조할아버지) 다가와 헤이자부로 (증조할아버지)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미야자와파 → 아소파) |
|---|---|
| 학력 | 조지타운 대학교 국제학부 비교정치학과 졸업 |
| 전직 | 후지 제록스(현 후지필름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직원 일본단자 직원 |
| 직책 | 디지털행정개혁담당대신 디지털전원도시국가구상담당대신 |
| 내각 |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일 | 2023년 9월 13일 |
| 임기 종료일 | 2024년 10월 1일 |
| 직책2 | 행정개혁담당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규제개혁) |
| 내각2 |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스가 요시히데 내각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일2 | 2015년 10월 7일 2020년 9월 16일 2023년 9월 13일 |
| 임기 종료일2 | 2016년 8월 3일 2021년 10월 4일 2024년 10월 1일 |
| 직책3 | 제4대 디지털 대신 |
| 내각3 |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 내각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일3 | 2022년 8월 10일 |
| 임기 종료일3 | 2024년 10월 1일 |
| 직책4 | 국가공무원제도담당대신 |
| 내각4 |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스가 요시히데 내각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 내각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일4 | 2015년 10월 7일 2020년 9월 16일 2022년 8월 10일 |
| 임기 종료일4 | 2016년 8월 3일 2021년 10월 4일 2024년 10월 1일 |
| 직책5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디지털개혁) |
| 내각5 |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일5 | 2022년 8월 10일 |
| 임기 종료일5 | 2023년 9월 13일 |
| 기타 직책 1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소비자 및 식품안전) |
| 임기 시작일6 |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2015년 10월 7일)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 내각 (2022년 8월 10일) |
| 임기 종료일6 | 2016년 8월 3일, 2023년 9월 13일 |
| 기타 직책 2 | 백신접종추진담당대신 |
| 임기 시작일7 | 스가 요시히데 내각 (2021년 1월 18일) |
| 임기 종료일7 | 2021년 10월 4일 |
| 기타 직책 3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
| 임기 시작일8 | 스가 요시히데 내각 (2020년 9월 16일) |
| 임기 종료일8 | 2021년 10월 4일 |
| 기타 직책 4 | 제20대 방위대신 |
| 임기 시작일9 | 제4차 아베 제2차 개조 내각 (2019년 9월 11일) |
| 임기 종료일9 | 2020년 9월 16일 |
| 기타 직책 5 | 제145-146대 외무대신 |
| 임기 시작일10 | 제3차 아베 제3차 개조 내각 제4차 아베 내각 제4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2017년 8월 3일) |
| 임기 종료일10 | 2019년 9월 11일 |
| 기타 직책 6 | 제90대 국가공안위원회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재) |
| 임기 시작일11 |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2015년 10월 7일) |
| 임기 종료일11 | 2016년 8월 3일 |
| 기타 직책 7 | 중의원 의원 (가나가와 15구 당선 10회) |
| 임기 시작일12 | 1996년 10월 21일 |
| 임기 종료일12 | 현재 |
| 기타 직책 8 | |
| 임기 시작일13 | 2021년 10월 1일 |
| 임기 종료일13 | 2022년 8월 10일 |
| 직책 (과거) | 방위대신 외무대신 국가공안위원회위원장 |
| 유튜브 채널 | KonoTaroGomame |
| 유튜브 활동 시작 | 2009년 |
| 유튜브 구독자 | 16.1만 명 |
| 유튜브 조회수 | 약 765만 회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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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지헤이가 -
고노 요헤이
고노 요헤이는 14선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총재, 중의원 의장, 부총리 겸 외무상을 역임한 일본 정치인으로, 특히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하여 과거사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고노 지헤이가 -
고노 겐조
고노 겐조는 가나가와현 선거구에서 5선 참의원 의원을 지낸 일본 정치인으로, 참의원 의장과 일본체육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참의원 개혁과 스포츠 진흥에 기여했고, 그의 가문은 일본 정계의 명문가로 알려져 있다. -
일본의 방위대신 -
우노 소스케
우노 소스케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일본 정치인으로, 외무대신 등 요직을 거쳐 제7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나 여성 스캔들로 인해 69일 만에 사임하며 최단명 내각 중 하나를 이끌었고,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
일본의 방위대신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일본의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쇼리키 마쓰타로
쇼리키 마쓰타로는 일본의 언론 재벌이자 정치가로서 요미우리 신문을 인수하고 니혼TV를 설립했으며, 일본 프로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일본의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후쿠다 하지메
후쿠다 하지메는 도메이 통신 기자 출신으로 중의원 의원을 거쳐 통산상, 자치상, 법무상 등 주요 각료직과 중의원 의장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86년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후지제록스에 입사하여 조사통계부, 기획부, 국제사업부에서 근무했다. 1991년에는 후지제록스 아시아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겨 싱가포르에서 근무했다. 1993년에는 도요타, 제너럴 모터스, 파나소닉 등의 기업에 전기 부품을 공급하는 니폰 탄시(日本端子)에 합류했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민당 공천으로 가나가와현 제15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1. 어린 시절
1963년 1월 10일 일본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에서 고노 요헤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예로부터 가나가와현 지역의 유지로 통해 왔으며, 조부와 부친 모두 유력 정치인 출신이다. 히라쓰카 시립 하나미즈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학재단 게이오기주쿠 산하 게이오기주쿠 중등부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육상부 주장을 맡기도 했다. 1981년 4월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했으나 2개월 만에 중퇴했고,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매사추세츠주 앤도버에 있는 서머스쿨에 들어간 후 코네티컷주에서 기숙학교와 어학원을 전전하다가 1982년 9월 조지타운 대학교 국제학부에 입학, 비교정치학을 전공했다. 1984년 폴란드 중앙계획통계대학교(현 바르샤바 경제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건너갔다가 1985년 1월 조지타운 대학에 복학한 뒤 동년 12월 졸업했다.
조지타운 대학교 재학 시절, 훗날 빌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장관이 되는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세미나에 참가했다.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앨런 크랜스턴 상원의원의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리처드 셸비 하원의원 밑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다. 폴란드 교환학생 시절에는 당시 가택연금 상태였던 레흐 바웬사 '연대' 의장의 자택을 방문했다가 체포되어 다음 날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유치장에 구금되기도 했다. 당시 폴란드는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였는데, 고노는 폴란드 교환학생 시절에 대해 "대학 기숙사의 식사는 거의 매끼 감자와 초절임 양배추 뿐이었다"라고 회고했다.
2.2. 회사원 시절
조지타운 대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귀국한 고노는 1986년 2월 후지 제록스에 입사하여 조사통계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기획부를 거쳐 국제사업부로 옮긴 뒤에는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사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993년 1월에는 고노 가문이 대대로 경영해온 회사인 일본단자에 들어가 자동차 및 전자기기 부품의 개발과 생산, 해외 수출 업무를 담당했다.
2.3. 중의원 의원 시절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버지 고노 요헤이의 지역구가 분할되면서 가나가와현 제15구에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민당 내에서 무파벌로 활동하다가 아소 다로의 권유로 굉지회에 들어갔지만, 1999년 아버지와 함께 탈퇴하여 고노 그룹(대용회)으로 옮겼다. 2000년과 2003년 총선거에서도 연이어 당선되었다.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총무대신 정무관, 제3차 고이즈미 개조내각에서는 법무 부대신을 역임했다. 2006년에는 자민당 정조부회장(법무 담당)에 취임했다. 호세이 대학 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도 활동했다.
2002년에는 가와구치 요리코 외무대신을 비판하며 중의원 외무위원회 이사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2008년 9월에는 중의원 외무위원장에 취임했다. 2009년 9월에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다니가키 사다카즈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2010년 4월에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되었고, 동년 9월 22일 자민당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에서 행정개혁 담당대신 자리에 올랐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카츠마타 코이치로를 누르고 당선되었지만, 처음으로 비례대표 부활을 허용했다.
한국의 전 한나라당 의원이자 주고베 총영사였던 이성권한국어을 과거 비서로 두었었다.
2.4. 국가공안위원장 겸 행정개혁 담당대신 시절
2015년 10월 7일,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 다로를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겸 행정개혁 담당대신 등으로 임명하여, 고노는 처음으로 내각에 합류하였다. 소비자청의 도쿠시마현 이전을 추진했으나, 국회와의 업무 연계 등의 문제로 인해 이전을 연기하였다. 이후 2016년 8월 개각을 통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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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는 제3차 아베 내각(제1차 개조)에서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행정개혁담당대신, 국가공무원제도담당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규제개혁, 방재, 소비자 및 식품안전)을 맡았다.
소비자청의 도쿠시마현 이전을 추진했으나, 국회 대응 및 위기 관리 등의 어려움으로 전면 이전을 연기했다. 고노가 소비자대신직에서 물러난 후 3년간의 검토를 거쳐 소비자청의 전면 이전 중단이 발표되었다.
2016년 8월 3일, 내각 개편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 제29회 일본 안경 베스트 드레서상 정치 부문을 수상하였다.
2.5. 외무대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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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일, 제3차 아베 제3차 개조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8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에서 비준되지 않고 있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의 조기 비준을 요청하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뛰어난 영어 실력과 국제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고노 다로를 외무대신으로 선택했다. 고노 다로는 직설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외신들은 그가 아베 총리에 비해 온건한 외교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2017년 11월 1일, 제4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재임되었다. 외무대신으로서 고노 다로는 2017년 북한 위기에 대한 일본의 대응을 조율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북한과의 외교 및 경제적 관계 단절을 공개적으로 촉구했으며, 이란 외무장관에게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2일, 제4차 아베 개조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유임되었다.
2018년 1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쿠릴 열도를 러시아령으로 인정하는 것이 평화조약의 전제이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것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 질문을 받겠다"며 답변을 거부했고, 러시아 측 주장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2018년 12월 20일, 한일 해상 군사 분쟁이 발생했다. 고노는 한국 외교부 소식통을 통해 대응했다.
2019년 3월 22일, 신우신염임을 공표하고 요양하였다. 25일에 업무에 복귀하였다.
2019년 4월 26일, 외무대신 취임 후 100번째 외국 방문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전임 기시다 후미오가 약 4년 8개월 동안 93개국을 방문한 것과 비교했을 때 이례적인 속도이며, 중동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퇴임까지 외국 방문 횟수는 59회, 총 123개국 및 지역을 방문하여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재임 중 외국 출장에 사용한 기간은 무려 291일로, 3일에 1일 이상 해외 순방을 했다. 한편 “스탬프 랠리 외교”라고 비꼬는 시각도 있었다.
외무대신으로서 처음 방문한 국가는 동티모르, 부탄, 몰디브, 팔라우,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에콰도르, 아이슬란드, 아르메니아, 조지아, 슬로베니아, 바레인, 남수단, 모잠비크이다.
2.6. 방위대신 시절
2019년 9월 11일, 제4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취임했다.
2020년 6월 15일 이지스 어쇼어의 배치 작업을 중단할 것을 발표했고, 6월 24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정식으로 배치 중단을 결정했다. 고노는 이지스 어쇼어 배치 작업 중단 결정 전에 NHK와 요미우리 신문의 관련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비난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허위 보도인지는 지적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해당 보도는 사실로 밝혀졌다.
2.7. 행정쇄신담당대신 시절
2020년 9월 16일, 스가 내각이 출범하면서 행정쇄신담당대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임 바로 다음 날, 고노는 '행정개혁 신문고'를 자신의 공식 사이트에 개설하고 모든 민원을 읽어볼 것이라고 밝혔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참여로 하루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이후 9월 25일, 내각부 홈페이지에 '규제개혁·행정개혁 핫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설치했으나, 쇄도하는 민원으로 인해 11월 27일에 또다시 중단되었다. 이 기간 동안 군마현 지사인 야마모토 이치타의 민원을 통해 구급차의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가 이루어지는 성과도 있었지만, 각 부처의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닛케이 신문은 고노를 스가의 "관료주의 타파를 위한 핵심 인물"로 묘사했으며, 스가는 고노 팀이 정부의 낭비와 부처 이기주의를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1년 1월 18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고노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접종추진 담당대신'에 추가 임명했다. 이에 따라 고노는 후생노동성 등 소관 부처 외에 제약회사, 의사회, 의약품 도매업자, 물류업자 등 관계자들 사이의 조율을 맡게 되었다. 1월 20일에는 화이자와 백신 수급 계약을 맺었다.
2.8. 디지털 대신
2022년 8월 10일, 제2차 기시다 내각(제1차 개조)에서 제4대 디지털 장관에 취임했다.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소비자 및 식품안전 담당)은 처음 입각했을 때부터, 국가공무원제도 담당 장관은 스가 내각 이후 다시 맡게 되었다. 각 부처 장관 취임 기자회견은 "기자를 기다리게 하고 심야 회견을 하는 것은 본의가 아니다"라며 취소했다.
같은 해 9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COVID-19 앱,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접촉 확인 앱(COCOA)의 기능을 중지할 것을 발표했다.
3. 정책 및 주장
고노 다로는 미국과 굳건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아시아 중심주의를 표방하며, 특히 한국과의 동맹 강화를 강력히 지지한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 변화하는 세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며, 양국 간 경제 및 사업 관계 확대를 희망한다.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김포국제공항과 하네다 국제공항 간 직항편 개설 법안을 공동 발의하고, 한국인 대상 단기 비자 연장, 한국어 웹페이지 운영, 한국인 인턴 채용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한국인 인턴 중 한 명은 고베 주재 한국 총영사가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이용을 인정한 아버지 고노 요헤이의 고노 담화에 대해서는 옹호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자위대의 전쟁 참여를 허용하는 일본 헌법 제9조 개정을 지지하며, 미일안전보장조약은 지지하지만 주둔군 지위 협정(SOFA) 개정을 추진한다.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 해병대 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에 대한 개발 원조 기부에 반대하며, 2023년 5월에는 일본의 AUKUS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동성 결혼 합법화와 부부 별성 사용을 지지하며, 1997년에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GMO)에 관한 중의원 소위원회를 설립하고 새로운 라벨링 규정을 지지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수상이 되면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전쟁에서 사망한 친척이 있어 현재는 참배하고 있다. 그는 주변국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신사 건립을 지지하며, "전몰자를 기리는 새로운 국가 추모 시설 건립을 통해 천황과 총리가 더 쉽게 참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월, 고노는 일본식 이름을 외국어로 표기할 때 서양식(이름 다음에 성) 대신 일본 전통 방식(성 다음에 이름)으로 되돌릴 것을 제안했다. 그는 레이와 연호 시작과 2020년 하계 올림픽이 이러한 전환의 적기라고 보았다.
2020년 8월, 고노는 모계 계승 천황도 황위 계승 안정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코 공주(나루히토 천황의 딸)를 포함한 황녀가 차기 천황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며, 현행 계승 규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자민당 일부 보수 의원들의 전 황족 가계 구성원 복귀 제안에 대해서는 "600년 전에 황실에서 분리된 사람들을 일본 국민이 정말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3.1. 경제 및 에너지
고노 다로는 2015년 제3차 아베 내각에서 국가안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취임하여 2016년 주요 7개국 정상회의 보안 조정을 담당했다. 소비자청을 도쿠시마현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국회 대응 및 위기 관리 문제로 완전 이전은 연기되었다.
2022년, 아베 신조 피살 사건 이후 야마가미 데쓰야가 통일교에 대한 원한과 아베의 연관성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히면서, 기시다 후미오는 내각을 개조했다. 고노는 디지털 담당 장관 등에 임명되어, 마이넘버 카드 시스템을 추진했다. 건강보험증을 2024년에 폐지하고 마이넘버 카드와 통합하려 했으나, 개인 정보 유출 문제로 프로그램이 일시 중단되었다. 2023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 후 고노는 국회에 사과하고, 세 달 치 보수를 반납했다.
2022년, 정부 현대화의 일환으로 플로피 디스크 사용 중단을 추진, 2024년 "승리"를 선언했다. 한코 도장과 팩스 사용 중단도 추진하고 있다.
고노는 "작은 정부와 큰 연금"을 주장하며, 기초연금은 소비세를 재원으로 하고 후생연금은 민간 개인연금과 같은 적립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정 재건에 대해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전제로 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라고 말한다. 경감세율 제도에는 반대한다.
규제 완화를 통해 국내 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TPP 참가에 찬성한다. 규제 완화로 어린이집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전부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해왔다. 자민당 내에서 원전 추진파 의원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2년부터는 공산당, 사민당 의원들과 함께 탈원전 의원 연맹을 결성해 활동했다.
그러나 2015년 사가현 지사 선거에서는 겐카이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을 용인한 후보를 지지했다. 입각 후에는 원전에 대한 질문에 "소관 외"라고 답하며 "탈원전" 주장을 봉인했다.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전에는 안전이 확인된 원전 재가동을 용인하는 발언을 했다.
3.2. 노동 정책
고노 다로는 고용 문제에 대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실현, "신졸일괄채용" 폐지, "연령차별" 금지(이력서의 생일·나이 란 삭제)를 주장한다. 또한, "고도프로페셔널제도"에 찬성한다.
외국인노동자 수용을 일관되게 지지하지만, 기존 연수제도는 "현대의 노예제도"라며 비판하며 폐지를 주장한다.
2006년 9월 22일 법무성 프로젝트팀 주사로서 일본어 능력과 특정 기술, 일본 기업과의 고용 계약 등을 조건으로 외국인노동자 수용 확대를 제안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2008년 자민당 "외국인노동자문제프로젝트팀" 사무국장으로서 기능실습제도를 폐지하고, 직종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단순 노동자 취업을 최장 3년간 인정하는 "외국인노동자 단기취업제도"를 제안했다. 이는 입국 수속을 간소화하고 3년 후 외국인을 귀국시키는 책임을 수용 기업에 부여하는 내용이다.
2015년 12월 10일,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자민당은 2016년 3월 외국인노동자 확대 및 실질적인 이민 도입 논의를 시작했고, 2019년 새로운 체류 자격인 특정기술 제도가 시행되었다.
3.3. 행정
스가 요시히데는 고노를 내각에 유임시켜 행정개혁 담당상직을 맡겼다. 닛케이 신문은 고노를 스가의 "관료주의 타파를 위한 핵심 인물"로 묘사했으며, 스가는 고노 팀이 정부의 낭비와 부처 이기주의를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가는 고노의 새 직책을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사용했다.
고노는 취임 다음 날 공식 웹사이트에 행정개혁 제안함을 개설했다. 그는 제출된 모든 의견을 "읽겠다"고 밝혔지만, 쇄도하는 의견에 다음 날 제안함을 중단했다. 그는 9월 25일 내각부 웹사이트에 "규제개혁 및 행정개혁 핫라인"으로 제안함을 재개하여 정부를 통해 의견을 제출받았지만, 의견 제출은 멈추지 않았고, 11월 27일 다시 의견 접수를 중단했다.
2021년 1월 18일, 스가는 고노가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관리를 감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노는 후생노동성과 기타 관련 정부 기관, 제약회사, 의료협회, 의약품 도매업체, 물류회사와의 조정을 담당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일본의 "백신 차르(Tsar)"로 알려졌으며, 국회에서 질문을 받을 때 이 이름을 받아들였다. 고노는 1월 20일 일본 정부와 화이자가 백신 공급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임기 말까지 일본 인구의 거의 70%가 백신을 최소 1회 접종했다.
공무원 제도 개혁을 비롯하여 행정 개혁에 열심이며, 현행 관료의 모습에 대해서는 엄격한 자세를 취한다. 특히 외무성에 대해 매우 강한 비판자 중 한 명이다. 한편 관료의 장시간 노동 및 그에 따른 인재 유출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대책으로 "디지털화"를 내걸고 있다.
2008년 자민당의 "낭비 척결 프로젝트팀"을 이끌고, 사업 구조조정 기법으로 이른바 "애니메이션의 전당" 예산 동결 등을 요구했지만, 당시 아소 정권에서는 2009년도 추가경정예산에 반영되었다. 고노는 민주당 정권 하에서 사업 구조조정을 시찰했을 때, "솔직히 부럽다. 더 엄격하게 해라"라고 구조조정 담당자에게 격려를 보내고, "민주당 혼자서는 할 수 없다면, 꼭 저를 참여시켜 달라"고 자신의 참여에도 의욕을 보였다.
행정 절차에서 인감 폐지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장 문화에 대한 이해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업무 효율화를 위해서는 도장을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2020년 4월 27일부터, 방위성 내부 부서, 통합막료감부, 육상막료감부, 해상막료감부, 항공막료감부, 방위장비청, 방위대학교는 내부 결재를 모두 전자 결재로 하고, 부외에서 온 서류에 대해서도 인감 증명이 필요 없는 것은 인감을 필요 없게 했다. 인감 증명에 대체할 증명에 대해서는 총무성이 검토 중인 시스템으로 한다.
3.4. 외교 및 안보
고노 다로는 2017년 8월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임명되어 1년 만에 다시 내각에 합류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과 국제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외무대신으로 발탁되었으며, 아베 신조 총리에 비해 비둘기파적 성향으로 온건한 외교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많은 분석가들은 그가 아버지 고노 요헤이처럼 친중국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취임 후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이 비준하지 않은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의 조기 비준을 촉구하기도 했다.
2017년 북한 위기 상황에서 일본의 대응을 조율하며, 북한과의 외교 및 경제 관계 단절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2018년 4월에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 외교장관의 방일을 주최하여, 중일관계 개선에 힘썼다.
2018년 12월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쿠릴 열도 관련 발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며 러시아 측 주장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같은 해 한일 해상 군사 분쟁 발생 시에는 한국 외교부 소식통을 통해 대응했다.
2019년 4월에는 외무대신 취임 후 100번째 방문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전임 기시다 후미오가 약 4년 8개월간 93개국을 방문한 데 비해, 고노 다로는 2년도 안 되어 100개국을 방문하며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다. 특히 중동 국가 방문 횟수가 두드러졌다.
2019년 9월 개각으로 모테기 도시미쓰에게 외무대신 자리를 넘겨주고 방위대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무대신 재임 기간 동안 59회에 걸쳐 총 123개국을 방문하여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으며, 재임 기간 3일 중 하루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 되어 '스탬프 랠리 외유'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9년 9월 11일 제4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취임했다. 2020년 6월에는 이지스 어쇼어 배치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정식으로 배치 중단을 결정했다.
고노 다로는 자위대의 전쟁 참여를 허용하는 일본 헌법 제9조 개정을 지지하며, 일미 안보 조약을 지지하지만 주둔군 지위 협정(SOFA) 개정을 추진한다. 2023년 5월에는 일본이 AUKUS에 가입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8년 1월 외무대신 취임 6개월 후 외교 신조 표명에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와 같은 가치관을 국제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한 지원을 강조했다. 중동 외교에 힘을 쏟으며, 2019년 4월까지 방문한 100개국 이상 중 20개국이 중동 국가였다.
한일관계에서는 외무대신 재임 기간 중 징용공 소송 문제, 한일 무역 분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지만, 강경화 외무장관과는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사이였다. 징용공 소송 문제와 관련하여 2019년 7월 남관표 주일 대한민국 대사에게 “매우 무례하다”고 질책했지만, 장관 퇴임 후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하여 대사와 인사를 나누는 등 관계 개선 노력을 보였다.
중국에 대해서는 일본의 국익을 지키는 입장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2020년 6월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를 강하게 비판하고, 동중국해 등에서의 해양 진출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표명했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일미 양국 정부는 동맹에 따라 센카쿠 열도를 위해 무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고 답했다.
3.5. 기타
고노 다로는 정치적 "독불장군"으로 불리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임 총리 아베 신조와 기시다 후미오 총리, 그리고 그들의 각료 대부분과 달리, 고노는 극우주의 단체인 일본회의와 관련이 없다.
그는 정부의 원자력 정책, 특히 핵연료 사이클 추진 및 새로운 원전 건설 계획에 반대한다. 외무대신을 역임하기 전, 고노는 일본 정부가 앞으로 원자력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기록이 있다. 그는 특히 새로운 원자로 건설 계획에 반대했다. 고노는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이미 운영 중인 원전의 운영 기간을 제한하여 원자력의 위험에 대해 더 신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일본이 원전이 40년의 서비스 수명에 도달하면 폐쇄하여 원전 단계적 폐쇄를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정부의 원전을 핵심 에너지원으로 유지하려는 정책과 대조된다. 고노는 원자력 의존으로 인한 위험이 원전 사고와 오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는 "우리는 원자력에 너무 의존해 왔다…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관료와 전력 회사, 그리고 원자력을 옹호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인들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2017년 8월 3일 외무대신으로 임명된 후, 고노는 원자력 정책에 당파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2015년 10월 7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아베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비판을 유지할 것인지 질문받자, 고노는 자신의 상사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세율을 8%로 인상하는 것을 지지하며, 그 자금은 국민연금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노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일본의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의 이민 개방에 대한 저항을 비판하며 더 많은 이민을 옹호한다.
2020년 8월, 고노는 과거 천황과 혈통 관계가 없는 아버지를 둔 모계 계승 천황도 황위 계승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아이코 공주(나루히토 천황의 딸)를 포함한 황녀(천황의 자녀 또는 손녀)가 차기 천황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행 계승 규칙에 따르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는 남성 상속인에게 적절한 배우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노는 또한 자민당의 일부 보수적인 의원들이 제기한 부계 계승을 유지하기 위해 전 황족 가계 구성원을 복귀시키자는 제안에 대해 "600년 전에 황실에서 분리된 사람들을 일본 국민이 정말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 13일, 고노는 디지털청 장관 기자회견을 열어 마이넘버카드 보급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새로운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마이넘버카드는 일종의 여권과 같은 역할을 하며, 마이넘버카드의 보급과 이용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관계 부처 연락회의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에서 고노는 마이넘버카드와 건강보험증을 일원화하고, 종이 및 플라스틱 건강보험증을 2024년 가을에 폐지할 방침을 발표했다. 또한 마이넘버카드에 운전면허증 기능을 부여하는 "마이나 면허증" 도입에 대해 "앞당길 수 없는지 경찰청과 함께 검토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6월 1일, 고노는 TV 아사히 "하토리 신이치 모닝쇼"에 출연하여 "디지털화함으로써 사회를 편리하게 만들고 싶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행정을 효율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23년 7월 2일, 고노는 NHK 보도 프로그램 "일요토론"에 출연하여 마이넘버 제도의 혼란에 대해 사과하고, 마이넘버카드의 명칭 변경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2023년 7월 5일, 고노는 중의원 특별위원회에 출석하여 2026년 도입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마이넘버카드에 대해 설명하며, 양자 컴퓨터 등의 기술 발전에 따라 더 강력한 암호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23년 8월 9일, 고노는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의 마이나 보험증 이용 체험회를 시찰하고, 종이 건강보험증 폐지에 대해 "법으로 정해진 일"이라고 언급하며, 마이나 보험증의 이용 확대가 의료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3.6. 기자회견에서의 질문 무시
2018년 1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북방영토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것이 평화조약의 전제 조건이다"라는 인식을 보이자, 기자의 질문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라고 답변하지 않고 러시아 측 주장에 반론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NHK 기자는 "10년 동안 많은 기자회견에 참석했지만, 질문을 무시하는 회견은 처음이었다"고 말하며, "외무대신에게 요구되는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을 금할 수 없다. 성실한 회견 대응을 요구한다"고 외무성 기자클럽에 제안했다. 입헌민주당의 쓰지모토 기요미 국회대책위원장은 "고노 장관 실망스럽다", "기자가 질문하는 뒤에는 국민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고노 외무대신은 젊었을 때부터 '정보공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누구보다 강조했던 의원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완전히 변해서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와 매스미디어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고마자와 대학의 오사카 준 교수는 "매스미디어의 질문은 국민을 대표하는 질문이며, 제대로 된 답변을 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회견에서 이러한 태도를 보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이번 대응은 완벽한 '답변 거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노 다로는 그 후, "적어도 평소처럼 '답변을 삼가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해야 했습니다", "사과하고, 확실히 개선하겠습니다"라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사과했다.
3.7. 산케이 신문에 대한 날조 발언
2019년 7월 1일, 고노 다로는 도쿄 강연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 "((두 섬 반환이 아니라) 네 섬 반환으로 돌아가 협상을 재개할 생각이 전혀 없는가?)"라는 질문에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같은 날 산케이 신문은 이를 "고노 외상, 네 섬 반환 '생각 없다'"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고노는 트위터에 "심한 날조"라고 트윗하며, 기자회견에서 "오보"라고 주장했다. 이후 산케이 신문의 항의를 받고, 7월 9일 "말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과하겠다"며 트윗을 삭제했다.
3.8. 비를 부르는 남자 발언
2019년 10월, 고노 다로는 자신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서 "저는 지역에서 종종 '비를 부르는 남자'라고 불렸습니다. 제가 방위상이 된 이후로 이미 태풍이 세 개나 왔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태풍 19호 등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경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노 다로는 기자회견과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불쾌한 감정을 느끼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고 사과했다.
3.9. 가짜 뉴스 발언
2020년 6월 이지스 어쇼어 배치 프로세스 중단 발표를 둘러싸고, 같은 달 7일 고노의 발표 이전에 아키타시에 대한 이지스 어쇼어 배치 포기를 보도한 NHK와 요미우리 신문을 향해 "허위 보도(페이크 뉴스)"라고 비난했다. 당시 "결과적으로 보도대로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라고 답했지만, 15일에 고노가 배치 포기를 발표했다.
3.10. 풍선형 비행 물체에 대한 대응
2020년 6월, 당시 방위상이었던 고노 다로는 미야기현에서 목격된 풍선형 비행 물체의 행방에 대해 질문을 받자 "풍선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하며,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3년 2월 14일, 일본 정부는 이 풍선들에 대해 "중국이 띄운 무인 정찰 풍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다. 고노 다로는 당시 안보 인식에 대해 "당시 말씀드린 대로(영향은 없다)"라고 말했지만, 야당으로부터는 "판단이 적절했는가. 3년 전에 제대로 분석했어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3.11. 내각부 태스크포스의 부적절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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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3일, 내각부 규제개혁추진실은 고노 다로가 2020년에 설치한 「재생에너지 등에 관한 규제 등의 총점검 태스크포스(이하 TF)」에서 사용된 자료에 중국 국영 전력회사 중국 국가전력망(国家电网)의 회사명과 로고가 들어 있었다고 발표했다. 해당 자료는 내각부 HP에 게재된 후, X에서 지적을 받고 발견되었다. 3월 27일, 문제가 된 자료를 작성·제출한 공익재단법인 「자연에너지재단」의 다이린 미카(大林ミカ) 사업국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무적인 실수였다고 해명하며 TF 민간 구성원을 사임했다. 또한, 자신이 TF에 참여하게 된 경위에 대해 고노 다로의 추천이 있었다고 밝혔다.
4월 2일, 고노 다로는 다이린 미카를 구성원으로 기용한 것에 대해 “특별히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TF에서) 정리한 내용도 각의 결정에 반영되었다”고 했으며, 다이린 미카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6월 3일, 내각부는 TF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중국의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부정했지만, TF가 “행정 운영상의 의견 교환, 간담(懇談)의 장”임에도 불구하고 구성원이 구체적인 쟁점을 제기하여 각 부처에 정책 대응을 요구하는 등 본래 권한을 넘어선 운영이 이루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다음 날인 6월 4일, 고노 다로는 TF 폐지를 표명하며 “TF의 논의 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기에 폐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린 요시마사(林芳正) 내각관방장관은 “간담회 등의 운영에 관한 정부의 지침에 비추어 부적절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러한 일이 없도록 주의했다”고 말하며, 고노 다로에게 구두로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4.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당선 여부 | 득표수 | 득표율 (%) | 정당 |
|---|---|---|---|---|
| 1996년 제41회 총선거 | 당선 | 84,723표 | 36.44 | 자유민주당 |
| 2000년 제42회 총선거 | 당선 | 120,001표 | 47.44 | 자유민주당 |
| 2003년 제43회 총선거 | 당선 | 148,955표 | 59.89 | 자유민주당 |
| 2005년 제44회 총선거 | 당선 | 186,770표 | 63.88 | 자유민주당 |
| 2009년 제45회 총선거 | 당선 | 163,470표 | 53.25 | 자유민주당 |
| 2012년 제46회 총선거 | 당선 | 192,604표 | 79.98 | 자유민주당 |
| 2014년 제47회 총선거 | 당선 | 155,388표 | 66.79 | 자유민주당 |
| 2017년 제48회 총선거 | 당선 | 159,647표 | 67.63 | 자유민주당 |
| 2021년 제49회 총선거 | 당선 | 201,515표 | 79.32 | 자유민주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