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mm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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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5mm 필름은 1909년 국제 규격으로 인정된 영화 촬영 및 영사용 필름 규격이다. 조지 이스트먼과 윌리엄 케네디 딕슨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1889년 딕슨이 35mm 필름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5mm는 사운드, 컬러 기술 발전을 거치며 와이드스크린, 3D 영화에도 사용되었으며,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도 특유의 질감과 표현력으로 영화 제작과 상영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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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mm 필름은 1890년대에 개발되어 35mm 필름보다 넓은 화면과 고품질 사운드를 제공하며, 토드-AO, 파나비전 등의 기술 발전을 거쳐 쇠퇴했으나 최근 일부 영화의 개봉과 함께 부활하기도 했다. - 영화 규격 - 테크니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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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mm 필름 | |
---|---|
개요 | |
![]() | |
종류 | 필름 |
발명가 | 윌리엄 케네디 딕슨 |
발명 시기 | 1889년 |
제조사 | 에디슨 회사 이스트먼 코닥 |
현재 공급 업체 | 코닥 |
규격 | |
폭 | 35mm |
2. 역사 및 발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매우 많은 카메라와 영사기가 개발되었지만, 사용하고 있는 필름 폭은 제각각으로, 13~75 mm 범위로 들쭉날쭉했다.[69]1909년에 35 mm 필름이 국제 규격으로 인정되었다.[70]
1880년, 조지 이스트먼은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젤라틴 건판 사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스트먼은 W. H. 워커와 함께 사진을 담는 젤라틴 층이 코팅된 종이 롤을 위한 홀더를 발명했다. 한니발 굿윈은 1887년 최초의 투명하고 유연한 필름인 니트로셀룰로스 필름 베이스를 발명했다.[2][3] 이스트먼은 또한 이러한 구성 요소를 생산했으며, 1889년 이스트먼이 건식 젤라틴-브로마이드 유제를 이 투명한 베이스에 코팅하여 종이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러한 필름을 대량 생산한 최초의 주요 회사였다.[4]
유연한 필름의 출현과 함께 토마스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인 키네토스코프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는 1893년 5월 9일 브루클린 예술 과학 연구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5] 키네토스코프는 1인용 관람을 위한 필름 루프 시스템이었다.[6] 에디슨은 조수 윌리엄 케네디 딕슨과 함께 키네토스코프와 에디슨의 실린더 축음기를 결합한 키네토폰을 개발했다. 1892년 3월부터 이스트먼이, 1893년 4월부터 1896년까지 뉴욕의 블레어 카메라(Blair Camera Co.)가 에디슨에게 필름을 공급했다.[7][8]
딕슨은 1889년 35mm 영화 필름을 발명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13]652 에디슨 회사가 이스트먼 필름을 사용하고 있었다.[13]653–654딕슨은 1889년 이스트만 코닥 카메라에 공급된 투명한 70 mm 셀룰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여 더 적합한 필름을 개발했으며 "이 필름을 반으로 잘랐다".[13]653–654 이는 원래 프로젝션용이 아닌 1인용 뷰어인 키네토스코프용으로 개발되었다.[13]658 이미지는 확대해도 여전히 고품질이었으며 70mm 필름보다 경제적이었다(그리고 70mm를 자르면 폐기물이 발생하므로 다른 게이지보다 더 경제적이었다).[13]654
1896년경, "포토-로토스코프"라고 알려진 35mm 프로젝터가 런던의 W. C. 휴즈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는 "도그" 모션으로 필름을 전진시켰다.[12]
35mm는 오귀스트 뤼미에르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즉시 표준으로 받아들여졌고, 블레어 회사에서 이 영화 제작자들에게 판매된 필름이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주요 필름으로 사용되었다.[13]653
에디슨은 프레임당 4개의 스프라켓 구멍(천공)이 있는 35 mm 영화 필름의 디자인에 대한 독점적인 특허 권리를 주장하며 그의 유일한 주요 영화 제작 경쟁자인 아메리칸 뮤토스코프 앤 바이오그래프는 스프라켓 구멍이 아닌 마찰 피드를 사용하여 카메라를 통해 필름을 이동하는 68 mm 필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1902년 3월의 법원 판결은 에디슨의 주장을 무효화하여 모든 제작자 또는 배급자가 라이선스 없이 에디슨 35 mm 필름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이미 에디슨이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영국과 유럽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다.[14] 당시 필름은 일반적으로 천공되지 않은 상태로 공급되었으며, 영화 제작자가 자신의 표준에 따라 천공 장비를 사용하여 구멍을 뚫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개발한 변형은 수평축의 중간을 향한 프레임의 각 측면에 단일 원형 천공을 사용했다.[15]
35 mm 크기에서 필름 가격과 기록 영상의 품질이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35mm용 영사기는 매우 널리 보급되었고, 35 mm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상업적인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는 규격이 되었다.
1889년 말, 딕슨은 그림의 너비를 1/2인치에서 3/4인치로 늘리고, 높이가 3/4인치인 1인치로 늘렸다. 필름의 실제 너비는 현재 사용 중인 것보다 약간 작은 구멍인 4개의 구멍이 있는 양쪽 가장자리에 펀칭된 천공을 허용하기 위해 1 3/8인치였다. 1889년의 이 표준 필름 크기는 약간의 변동만 있을 뿐 현재까지 변경되지 않고 유지되었다".[13]652
영화가 투사되기 시작했을 때, 몇몇 투사 장치들은 기술적 실패, 홍보자들의 사업 수완 부족, 또는 이 두 가지 모두로 인해 실패하여 잊혀졌다. 35mm를 사용한 최초의 투사 장치인 바이타스코프는 기술적으로 우수했고 35mm 필름으로 제작된 많은 영화와 호환되었다. 에디슨은 1895-96년에 이 장치를 구입했고, 뤼미에르 형제의 35mm 투사 시네마토그래프도 1895년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그들은 35mm를 상영 표준으로 확립했다.[13]658
녹화 표준화는 이스트만과 에디슨의 사업 독점, 그리고 특허 시스템을 포함하는 에디슨의 전형적인 사업 모델로 인해 이루어졌다. 이스트만과 에디슨은 자신들의 필름 특허를 잘 관리했고[13]656 에디슨은 딕슨이 그의 고용을 떠난 지 1년 후인 1896년에 35mm 특허를 출원했으며[13]657 필름의 사용과 개발을 통제했다.[13]656
1908년, 에디슨은 산업에서 공동 사용을 위해 특허를 풀고 자신의 기술을 라이선스할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트러스트라고 불리는 "생산 회사 카르텔"인 영화 특허 회사(MPPC)를 설립했다.[13]656 1909년에 35 mm 필름이 국제 규격으로 인정되었으며[70], MPPC는 35mm를 "공식" 표준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35mm 게이지, 에디슨 천공 및 1.3:1(4:3) 화면비 (딕슨이 개발)가 표준이 되는 것에 동의했다.[13]652[16]
벨 & 하웰은 MPPC가 35mm 형식을 채택했을 때, "매우 높은 품질"의 매체용 카메라, 프로젝터 및 천공기를 생산하여 이를 표준으로 더욱 굳혔다.[13]659
1917년, 영화 텔레비전 기술자 협회(SMPE)는 "산업의 지배적인 필름 게이지로서 35mm의 사실상 지위를 인정하여 이를 엔지니어링 표준으로 채택했다".[13]659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매우 많은 카메라와 영사기가 개발되었지만, 사용하고 있는 필름 폭은 제각각으로, 13~75 mm 범위로 들쭉날쭉했다.[69]
사진용 필름에서는, 1954년에 라이카에서 35mm 필름을 사용하는 라이카 M3가 발표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에서도 1957년에 니콘이 니콘 SP를 발매하여 인기를 얻은 것 등으로부터 35 mm 필름이 스탠다드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71]
1920년대에 사운드 영화가 등장하면서 35mm 필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워너 브라더스는 바이터폰이라는 사운드-온-디스크 시스템을 도입했고, 폭스 영화사는 무비톤이라는 사운드-온-필름 시스템을 도입했다.[17]1–2 필름 편집은 프레임 라인에서만 가능했지만, 소리는 각 네 개의 스프로킷 홀 사이의 전체 프레임에 저장되었기 때문에, 소리 편집자는 임의의 홀 세트에서 자를 수 있었고, 1/4 프레임 편집 해상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기술 덕분에 오디오 편집은 10.41 ms 이내의 정확도를 가질 수 있었다.[17]1–2
아날로그 광학 녹음의 한계는 잘 관리된 극장에서 오디오 주파수가 약 12kHz에서 잘린다는 것이었다.[17]4 스튜디오는 종종 투명한 필름 스트립에 오디오를 녹음했지만, 한쪽 가장자리에는 자기 테이프가 있었고, 전체 35mm 자기 테이프에 오디오를 녹음하는 것은 더 비쌌다.[17]5
1990년대에는 35mm 영화 릴리스 프린트를 위한 세 가지 디지털 사운드트랙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돌비 디지털은 사운드 측의 천공 사이에 저장되며, SDDS는 외부 가장자리(천공 너머)를 따라 두 개의 중복 스트립에 저장된다. 그리고 DTS는 사운드 데이터가 별도의 컴팩트 디스크에 저장되고, 아날로그 사운드트랙 바로 오른쪽과 프레임 왼쪽의 필름에 있는 타임코드 트랙으로 동기화된다.[18] 이 사운드트랙 시스템은 필름의 다른 부분에 나타나기 때문에, 한 영화가 이들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 개별 극장에 설치된 사운드 시스템에 관계없이 광범위한 배포가 가능했다.
21세기 초, 배급업체들은 은색(흑백) 사운드트랙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에 해로운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적용 트랙 대신 시안 염료 광학 사운드트랙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백열 여기 램프는 다량의 적외선을 생성하고, 시안 트랙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극장이 백열 여기 램프를 보완 색상의 빨간색 LED 또는 레이저로 교체하도록 요구했다. 이 LED 또는 레이저 여기기는 이전 트랙과 역호환된다.[19] 영화 ''애니싱 엘스''(2003)는 시안 트랙만으로 개봉된 최초의 영화였다.[19]
이 전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하이 마젠타" 프린트라고 알려진 중간 프린트가 배포되었으며, 이 프린트는 마젠타 염료 레이어에 인쇄된 은색 플러스 염료 사운드트랙을 사용했다. 얻어진 장점은 두 종류의 사운드 헤드 모두에서 파열음(상호 변조) 왜곡이 적은 광학 사운드트랙이었다.[20]
초기 영화 제작자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영화의 일부에 색 필름 착색을 사용했다.[25] 1920년대에는 모든 영화의 80~90%가 착색되었다.[25] 최초의 성공적인 천연색 공정은 영국의 키네마컬러(1909~1915)였다.[26][27][28] 키네마컬러는 빨간색과 녹색 필터가 있는 회전하는 디스크를 카메라 렌즈와 영사기 렌즈 앞에 사용하는 2색 가산 공정이었다.[26][27][28] 그러나 이 방식은 색상을 순차적으로 촬영하고 투사하여 움직이는 물체 주변에 색상 "가장자리"가 생기고 전반적인 색상 깜빡임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29]
1916년, 윌리엄 반 도렌 켈리는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최초의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한 미국 색상 공정인 프리즈마를 개발했다. 초기에는 키네마컬러와 마찬가지로 색상 요소를 차례로 촬영하고 가색으로 결과를 투사했다. 이후 프리즈마는 바이팩 사진술로 개선되었는데, 이는 두 개의 필름 스트립을 마주 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각 네거티브는 동일한 중복 필름의 한 면에 인쇄되었으며, 각 흑백 이미지에 화학적 톤 처리를 하여 주황색-빨간색 또는 청록색의 단색으로 변환하여 일반 영사기로 표시할 수 있는 양면, 양색 인쇄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양색 바이팩 사진술과 양면 인쇄 시스템은 멀티컬러, 브루스터 컬러, 시네컬러와 같은 후기 색상 공정의 기초가 되었다.
할리우드 장편 영화에서 색상은 테크니컬러의 등장으로 상업적으로 실용화되었다. 테크니컬러는 경쟁사보다 짧은 시간에 고품질 인쇄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초기 테크니컬러는 빨간색, 톤 다운된 청록색, 분홍색, 갈색, 베이지색 및 회색 범위는 재현할 수 있었지만 실제 파란색이나 노란색은 재현할 수 없는 2색 시스템이었다. 1922년에 개봉된 ''바다의 속삭임''(The Toll of the Sea)은 감산 색상 시스템으로 인쇄된 최초의 영화였다. 테크니컬러의 카메라는 빔 스플리터 프리즘을 사용하여 색상 필터링된 각 프레임 쌍을 하나의 흑백 필름 스트립에서 동시에 촬영했다. 이후 현상된 인쇄물에 있는 은 이미지를 화학적으로 톤 처리하여 보색의 이미지로 변환한 뒤, 두 스트립을 맞대어 접착하여 중복 필름과 유사한 단일 스트립을 형성했다.
1928년, 테크니컬러는 인화 공정을 통해 인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사진이 아닌 기계적인 방법이었으며, 색상 구성 요소를 필름의 동일한 면에서 결합할 수 있게 했다. 1932년, 테크니컬러는 만화와 1934년 실사를 위해 3색 공정을 도입했다. 렌즈 뒤의 빔 스플리터 큐브와 색상 필터를 사용하여 카메라는 세 개의 개별 흑백 필름 스트립을 동시에 노출시켰으며, 각 스트립은 가시 스펙트럼의 1/3을 기록하여 사실상 전체 색상 스펙트럼을 재현할 수 있었다.[30]
2색 공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934년, 윌리엄 T. 크리피넬과 앨런 M. 군델핑거는 시네컬러라는 회사 이름으로 멀티컬러 공정을 부활시켰다. 시네컬러는 애니메이션과 저예산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3색 테크니컬러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시네컬러는 프리즈마 및 멀티컬러와 동일한 중복 재고를 사용했지만 인쇄 및 처리 방법이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완성된 필름을 생산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1950년, 코닥은 모든 세 가지 기본 색상을 동일한 필름 스트립에 기록할 수 있는 최초의 이스트만 컬러 35mm 네거티브 필름을 발표했다.[32] 1952년에 개선된 버전은 할리우드에서 빠르게 채택되어 3스트립 테크니컬러 카메라와 바이팩 카메라의 사용이 색상 영화 촬영에서 쓸모없게 되었다. 이 "모노팩" 구조는 적색광, 녹색광 및 청색광에 민감한 세 개의 개별 유제 층으로 구성된다.
1952년 시네라마 와이드스크린 공정의 성공은 영화 산업에 혁신 경쟁을 불러왔다.[42] 텔레비전 시청자 증가로 인해 영화 관객이 감소함에 따라, 영화계는 텔레비전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파노라마 비전)을 제공하고자 했다. 20세기 폭스는 앙리 크레티앵이 발명한 아나모픽 광학 시스템을 획득하여 시네마스코프 기술을 개발했다.[42]
다른 주요 스튜디오들은 더 간단하고 저렴한 해결책을 찾았다. 카메라와 프로젝터는 기존의 구면 렌즈를 사용하고, 필름 프로젝터 게이트에 탈착 가능한 조리개판을 사용하여 프레임 상단과 하단을 잘라 넓은 화면비를 만들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66:1의 화면비로 이 트렌드를 시작했고,[43]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1.85:1 형식을 도입했다. 1956년까지 1.85:1 화면비가 미국 "표준" 형식이 되었다.
1953년 9월, 20세기 폭스는 로브를 통해 시네마스코프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44] 시네마스코프는 최초의 상업화된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공정이었으며, 여러 "형식"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까지 파나비전이 자체 렌즈로 시네마스코프 렌즈의 많은 기술적 한계를 해결했고,[41] 1967년까지 시네마스코프는 파나비전 등으로 대체되었다.[45]
비스타비전, 슈퍼스코프, 테크니라마 등 다양한 와이드스크린 포맷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구식이 되었다. 비스타비전은 루카스필름 등에서 특수 효과 작업을 위해 부활되기도 했으며, 슈퍼스코프 변형은 슈퍼 35 형식의 전신이 되었다.
슈퍼 35는 1982년 조 던튼에 의해 부활되었고, 테크니컬러가 "슈퍼 테크니스코프"로 마케팅했으며, 이후 슈퍼 35로 정착했다.[46] 슈퍼 35는 2.40:1 화면비를 생성하기 위해 프레임을 크롭하는 방식이다.[47] 21세기 초 디지털 중간(DI) 등장으로 슈퍼 35 촬영은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
3-perf 풀다운은 필름 소비를 25% 줄일 수 있어, 여러 영화 감독과 촬영 감독들이 옹호해 왔다. 1975년 미클로스 렌테는 "Trilent 35"라는 3-perf 시스템을 발명했지만, 업계 채택에는 실패했다.[48] 룬 에릭슨은 3-perf 시스템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나,[49] 영화 산업은 기존 프로젝터 수정 문제로 변화를 만들지 않았다. 3-perf는 텔레비전 영화 제작에서 HDTV의 16:9 비율을 얻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비스타비전은 1954년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더 미세한 입자의 네거티브와 프린트를 제작하기 위해 만들었다.[52] 이 형식은 35mm 필름을 수평으로 실행하며, 프레임은 8개의 천공 길이로, 더 넓은 가로 세로 비율과 더 큰 디테일을 제공한다.[47] 존 다이크스트라는 스타워즈에서 비주얼 효과를 위해 비스타비전 카메라 시스템을 부활시켰다.[54]
21세기 초 디지털 3D 영화의 성공으로, 테크니컬러[21], 파나비전(Panavision)[22] 등은 35mm 필름 기반 3D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 시스템들은 "오버-언더" 스테레오 3D 인쇄물의 개선된 버전이다. 영사기를 통과하는 필름의 선형 속도와 사운드 재생은 모두 일반적인 2D 작동과 정확히 동일하게 유지된다. 테크니컬러 시스템은 빛의 편광을 사용하고, 파나비전 시스템은 스펙트럼 빗살 필터 시스템을 사용한다. 2012년 6월, 파나비전 3D 시스템은 시장에서 철수되었다.[23]
이스만 코닥은 초기에 아세테이트 기반 필름을 도입했지만, 이 필름은 부서지기 쉽고 수축하는 경향이 있어, 가연성이 높은 질산염 기반 셀룰로스 필름이 영화 카메라와 인쇄 필름에 주로 사용되었다.[33] 1949년 코닥은 모든 니트로셀룰로스(질산염 기반) 필름을 더 안전하고 튼튼한 셀룰로스 트리아세테이트 기반의 "안전 필름"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1950년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트리아세테이트 스톡의 안전성을 인정하여 코닥에게 과학 기술 아카데미상(오스카)을 수여했다.[34] 1952년까지 모든 카메라 및 영사기 필름은 트리아세테이트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필름 인쇄본이 합성 폴리에스터 안전 베이스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1990년대 초부터 인쇄용 트리아세테이트 필름을 대체하였다. 폴리에스터 필름은 강도가 매우 높아 찢어지지 않고 늘어나 영사기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영사기 램프에 오래 노출되어도 녹지 않는 장점이 있다.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와 일부 중간 필름은 여전히 트리아세테이트 베이스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용매 기반 네거티브 어셈블리 프로세스와 호환되기 때문이다. 폴리에스터 필름은 용매 기반 어셈블리 프로세스와 호환되지 않는다.
2010년에서 2015년을 전후한 과도기에 영화 상영 산업이 디지털 영사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대부분의 영사실에서 35mm 필름 영사기가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되었다.[24] 201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극장이 디지털 영사로 전환되었으며, 일부는 35mm 영사기를 계속 사용했다.[24] 전 세계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가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5mm 필름은 여전히 열성 팬과 형식 애호가들을 위한 틈새 시장에 남아있다.
2. 1. 초기 역사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매우 많은 카메라와 영사기가 개발되었지만, 사용하고 있는 필름 폭은 제각각으로, 13~75 mm (0.51~2.95인치) 범위로 들쭉날쭉했다.[69]1909년에 35 mm 필름이 국제 규격으로 인정되었다.[70]1880년,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은 젤라틴 건판 사진을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스트먼은 W. H. 워커와 함께 사진을 담는 젤라틴 층이 코팅된 종이 롤을 위한 홀더를 발명했다. 한니발 굿윈(Hannibal Goodwin)은 1887년 최초의 투명하고 유연한 필름인 니트로셀룰로스 필름 베이스를 발명했다.[2][3] 이스트먼은 또한 이러한 구성 요소를 생산했으며, 1889년 이스트먼이 건식 젤라틴-브로마이드 유제를 이 투명한 베이스에 코팅하여 종이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러한 필름을 대량 생산한 최초의 주요 회사였다.[4]
유연한 필름의 출현과 함께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자신의 발명품인 키네토스코프 개발에 착수했으며, 이는 1893년 5월 9일 브루클린 예술 과학 연구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5] 키네토스코프는 1인용 관람을 위한 필름 루프 시스템이었다.[6] 에디슨은 조수 윌리엄 케네디 딕슨(William Kennedy Dickson)과 함께 키네토스코프와 에디슨의 실린더 축음기를 결합한 키네토폰을 개발했다. 1892년 3월부터 이스트먼이, 1893년 4월부터 1896년까지 뉴욕의 블레어 카메라(Blair Camera Co.)가 에디슨에게 필름을 공급했다.[7][8]
딕슨은 1889년 35mm 영화 필름을 발명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13]652 에디슨 회사가 이스트먼 필름을 사용하고 있었다.[13]653–654딕슨은 1889년 이스트만 코닥 카메라에 공급된 투명한 70 mm 셀룰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여 더 적합한 필름을 개발했으며 "이 필름을 반으로 잘랐다".[13]653–654 이는 원래 프로젝션용이 아닌 1인용 뷰어인 키네토스코프용으로 개발되었다.[13]658 이미지는 확대해도 여전히 고품질이었으며 70mm 필름보다 경제적이었다(그리고 70mm를 자르면 폐기물이 발생하므로 다른 게이지보다 더 경제적이었다).[13]654
1896년경, "포토-로토스코프"라고 알려진 35mm 프로젝터가 런던의 W. C. 휴즈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는 "도그" 모션으로 필름을 전진시켰다.[12]
35mm는 오귀스트 뤼미에르(Auguste and Louis Lumière)와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ère) 형제에 의해 즉시 표준으로 받아들여졌고, 블레어 회사에서 이 영화 제작자들에게 판매된 필름이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주요 필름으로 사용되었다.[13]653
에디슨은 프레임당 4개의 스프라켓 구멍(천공)이 있는 35 mm 영화 필름의 디자인에 대한 독점적인 특허 권리를 주장하며 그의 유일한 주요 영화 제작 경쟁자인 아메리칸 뮤토스코프 앤 바이오그래프는 스프라켓 구멍이 아닌 마찰 피드를 사용하여 카메라를 통해 필름을 이동하는 68 mm 필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1902년 3월의 법원 판결은 에디슨의 주장을 무효화하여 모든 제작자 또는 배급자가 라이선스 없이 에디슨 35 mm 필름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이미 에디슨이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영국과 유럽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다.[14] 당시 필름은 일반적으로 천공되지 않은 상태로 공급되었으며, 영화 제작자가 자신의 표준에 따라 천공 장비를 사용하여 구멍을 뚫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개발한 변형은 수평축의 중간을 향한 프레임의 각 측면에 단일 원형 천공을 사용했다.[15]
35 mm 크기에서 필름 가격과 기록 영상의 품질이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에, 35mm용 영사기는 매우 널리 보급되었고, 35 mm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상업적인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는 규격이 되었다.
2. 2. 표준화 과정
1889년 말, 딕슨은 그림의 너비를 인치에서 인치로 늘리고, 높이가 인치인 1인치로 늘렸다. 필름의 실제 너비는 현재 사용 중인 것보다 약간 작은 구멍인 4개의 구멍이 있는 양쪽 가장자리에 펀칭된 천공을 허용하기 위해 인치였다. 1889년의 이 표준 필름 크기는 약간의 변동만 있을 뿐 현재까지 변경되지 않고 유지되었다".[13]652영화가 투사되기 시작했을 때, 몇몇 투사 장치들은 기술적 실패, 홍보자들의 사업 수완 부족, 또는 이 두 가지 모두로 인해 실패하여 잊혀졌다. 35mm를 사용한 최초의 투사 장치인 바이타스코프는 기술적으로 우수했고 35mm 필름으로 제작된 많은 영화와 호환되었다. 에디슨은 1895-96년에 이 장치를 구입했고, 뤼미에르 형제의 35mm 투사 시네마토그래프도 1895년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그들은 35mm를 상영 표준으로 확립했다.[13]658
녹화 표준화는 이스트만과 에디슨의 사업 독점, 그리고 특허 시스템을 포함하는 에디슨의 전형적인 사업 모델로 인해 이루어졌다. 이스트만과 에디슨은 자신들의 필름 특허를 잘 관리했고[13]656 에디슨은 딕슨이 그의 고용을 떠난 지 1년 후인 1896년에 35mm 특허를 출원했으며[13]657 필름의 사용과 개발을 통제했다.[13]656
1908년, 에디슨은 산업에서 공동 사용을 위해 특허를 풀고 자신의 기술을 라이선스할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트러스트라고 불리는 "생산 회사 카르텔"인 영화 특허 회사(MPPC)를 설립했다.[13]656 1909년에 35 mm 필름이 국제 규격으로 인정되었으며[70], MPPC는 35mm를 "공식" 표준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35mm 게이지, 에디슨 천공 및 1.3:1(4:3) 화면비 (딕슨이 개발)가 표준이 되는 것에 동의했다.[13]652[16]
벨 & 하웰은 MPPC가 35mm 형식을 채택했을 때, "매우 높은 품질"의 매체용 카메라, 프로젝터 및 천공기를 생산하여 이를 표준으로 더욱 굳혔다.[13]659
1917년, 영화 텔레비전 기술자 협회(SMPE)는 "산업의 지배적인 필름 게이지로서 35mm의 사실상 지위를 인정하여 이를 엔지니어링 표준으로 채택했다".[13]659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매우 많은 카메라와 영사기가 개발되었지만, 사용하고 있는 필름 폭은 제각각으로, 13~75 mm (0.51~2.95인치) 범위로 들쭉날쭉했다.[69]
사진용 필름에서는, 1954년에 라이카에서 35mm 필름을 사용하는 라이카 M3가 발표되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일본에서도 1957년에 니콘이 니콘 SP를 발매하여 인기를 얻은 것 등으로부터 35 mm 필름이 스탠다드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71]。
2. 3. 사운드 기술 혁신
1920년대에 사운드 영화가 등장하면서 35mm 필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워너 브라더스는 바이터폰이라는 사운드-온-디스크 시스템을 도입했고, 폭스 영화사는 무비톤이라는 사운드-온-필름 시스템을 도입했다.[17]1–2 필름 편집은 프레임 라인에서만 가능했지만, 소리는 각 네 개의 스프로킷 홀 사이의 전체 프레임에 저장되었기 때문에, 소리 편집자는 임의의 홀 세트에서 자를 수 있었고, 프레임 편집 해상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기술 덕분에 오디오 편집은 10.41 ms 이내의 정확도를 가질 수 있었다.[17]1–2아날로그 광학 녹음의 한계는 잘 관리된 극장에서 오디오 주파수가 약 12kHz에서 잘린다는 것이었다.[17]4 스튜디오는 종종 투명한 필름 스트립에 오디오를 녹음했지만, 한쪽 가장자리에는 자기 테이프가 있었고, 전체 35mm 자기 테이프에 오디오를 녹음하는 것은 더 비쌌다.[17]5
1990년대에는 35mm 영화 릴리스 프린트를 위한 세 가지 디지털 사운드트랙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돌비 디지털은 사운드 측의 천공 사이에 저장되며, SDDS는 외부 가장자리(천공 너머)를 따라 두 개의 중복 스트립에 저장된다. 그리고 DTS는 사운드 데이터가 별도의 컴팩트 디스크에 저장되고, 아날로그 사운드트랙 바로 오른쪽과 프레임 왼쪽의 필름에 있는 타임코드 트랙으로 동기화된다.[18] 이 사운드트랙 시스템은 필름의 다른 부분에 나타나기 때문에, 한 영화가 이들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 개별 극장에 설치된 사운드 시스템에 관계없이 광범위한 배포가 가능했다.
21세기 초, 배급업체들은 은색(흑백) 사운드트랙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에 해로운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적용 트랙 대신 시안 염료 광학 사운드트랙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백열 여기 램프는 다량의 적외선을 생성하고, 시안 트랙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극장이 백열 여기 램프를 보완 색상의 빨간색 LED 또는 레이저로 교체하도록 요구했다. 이 LED 또는 레이저 여기기는 이전 트랙과 역호환된다.[19] 영화 ''애니싱 엘스''(2003)는 시안 트랙만으로 개봉된 최초의 영화였다.[19]
이 전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하이 마젠타" 프린트라고 알려진 중간 프린트가 배포되었으며, 이 프린트는 마젠타 염료 레이어에 인쇄된 은색 플러스 염료 사운드트랙을 사용했다. 얻어진 장점은 두 종류의 사운드 헤드 모두에서 파열음(상호 변조) 왜곡이 적은 광학 사운드트랙이었다.[20]
2. 4. 컬러 기술 발전
초기 영화 제작자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영화의 일부에 색 필름 착색을 사용했다.[25] 1920년대에는 모든 영화의 80~90%가 착색되었다.[25] 최초의 성공적인 천연색 공정은 영국의 키네마컬러(1909~1915)였다.[26][27][28] 키네마컬러는 빨간색과 녹색 필터가 있는 회전하는 디스크를 카메라 렌즈와 영사기 렌즈 앞에 사용하는 2색 가산 공정이었다.[26][27][28] 그러나 이 방식은 색상을 순차적으로 촬영하고 투사하여 움직이는 물체 주변에 색상 "가장자리"가 생기고 전반적인 색상 깜빡임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29]1916년, 윌리엄 반 도렌 켈리는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최초의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한 미국 색상 공정인 프리즈마를 개발했다. 초기에는 키네마컬러와 마찬가지로 색상 요소를 차례로 촬영하고 가색으로 결과를 투사했다. 이후 프리즈마는 바이팩 사진술로 개선되었는데, 이는 두 개의 필름 스트립을 마주 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각 네거티브는 동일한 중복 필름의 한 면에 인쇄되었으며, 각 흑백 이미지에 화학적 톤 처리를 하여 주황색-빨간색 또는 청록색의 단색으로 변환하여 일반 영사기로 표시할 수 있는 양면, 양색 인쇄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양색 바이팩 사진술과 양면 인쇄 시스템은 멀티컬러, 브루스터 컬러, 시네컬러와 같은 후기 색상 공정의 기초가 되었다.
할리우드 장편 영화에서 색상은 테크니컬러의 등장으로 상업적으로 실용화되었다. 테크니컬러는 경쟁사보다 짧은 시간에 고품질 인쇄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초기 테크니컬러는 빨간색, 톤 다운된 청록색, 분홍색, 갈색, 베이지색 및 회색 범위는 재현할 수 있었지만 실제 파란색이나 노란색은 재현할 수 없는 2색 시스템이었다. 1922년에 개봉된 ''바다의 속삭임''(The Toll of the Sea)은 감산 색상 시스템으로 인쇄된 최초의 영화였다. 테크니컬러의 카메라는 빔 스플리터 프리즘을 사용하여 색상 필터링된 각 프레임 쌍을 하나의 흑백 필름 스트립에서 동시에 촬영했다. 이후 현상된 인쇄물에 있는 은 이미지를 화학적으로 톤 처리하여 보색의 이미지로 변환한 뒤, 두 스트립을 맞대어 접착하여 중복 필름과 유사한 단일 스트립을 형성했다.
1928년, 테크니컬러는 인화 공정을 통해 인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사진이 아닌 기계적인 방법이었으며, 색상 구성 요소를 필름의 동일한 면에서 결합할 수 있게 했다. 1932년, 테크니컬러는 만화와 1934년 실사를 위해 3색 공정을 도입했다. 렌즈 뒤의 빔 스플리터 큐브와 색상 필터를 사용하여 카메라는 세 개의 개별 흑백 필름 스트립을 동시에 노출시켰으며, 각 스트립은 가시 스펙트럼의 1/3을 기록하여 사실상 전체 색상 스펙트럼을 재현할 수 있었다.[30]
2색 공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934년, 윌리엄 T. 크리피넬과 앨런 M. 군델핑거는 시네컬러라는 회사 이름으로 멀티컬러 공정을 부활시켰다. 시네컬러는 애니메이션과 저예산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3색 테크니컬러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시네컬러는 프리즈마 및 멀티컬러와 동일한 중복 재고를 사용했지만 인쇄 및 처리 방법이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완성된 필름을 생산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1950년, 코닥은 모든 세 가지 기본 색상을 동일한 필름 스트립에 기록할 수 있는 최초의 이스트만 컬러 35mm 네거티브 필름을 발표했다.[32] 1952년에 개선된 버전은 할리우드에서 빠르게 채택되어 3스트립 테크니컬러 카메라와 바이팩 카메라의 사용이 색상 영화 촬영에서 쓸모없게 되었다. 이 "모노팩" 구조는 적색광, 녹색광 및 청색광에 민감한 세 개의 개별 유제 층으로 구성된다.
2. 5. 와이드스크린과 3D
1952년 시네라마 와이드스크린 공정의 성공은 영화 산업에 혁신 경쟁을 불러왔다.[42] 텔레비전 시청자 증가로 인해 영화 관객이 감소함에 따라, 영화계는 텔레비전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파노라마 비전)을 제공하고자 했다. 20세기 폭스는 앙리 크레티앵이 발명한 아나모픽 광학 시스템을 획득하여 시네마스코프 기술을 개발했다.[42]다른 주요 스튜디오들은 더 간단하고 저렴한 해결책을 찾았다. 카메라와 프로젝터는 기존의 구면 렌즈를 사용하고, 필름 프로젝터 게이트에 탈착 가능한 조리개판을 사용하여 프레임 상단과 하단을 잘라 넓은 화면비를 만들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66:1의 화면비로 이 트렌드를 시작했고,[43]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1.85:1 형식을 도입했다. 1956년까지 1.85:1 화면비가 미국 "표준" 형식이 되었다.
1953년 9월, 20세기 폭스는 로브를 통해 시네마스코프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44] 시네마스코프는 최초의 상업화된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공정이었으며, 여러 "형식"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까지 파나비전이 자체 렌즈로 시네마스코프 렌즈의 많은 기술적 한계를 해결했고,[41] 1967년까지 시네마스코프는 파나비전 등으로 대체되었다.[45]
비스타비전, 슈퍼스코프, 테크니라마 등 다양한 와이드스크린 포맷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구식이 되었다. 비스타비전은 루카스필름 등에서 특수 효과 작업을 위해 부활되기도 했으며, 슈퍼스코프 변형은 슈퍼 35 형식의 전신이 되었다.
|thumb|right|upright=1.5|Super 35 형식 다이어그램]]
슈퍼 35는 1982년 조 던튼에 의해 부활되었고, 테크니컬러가 "슈퍼 테크니스코프"로 마케팅했으며, 이후 슈퍼 35로 정착했다.[46] 슈퍼 35는 2.40:1 화면비를 생성하기 위해 프레임을 크롭하는 방식이다.[47] 21세기 초 디지털 중간(DI) 등장으로 슈퍼 35 촬영은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
|thumb|right|upright=1.5|3-perf Super 35 형식 다이어그램]]
3-perf 풀다운은 필름 소비를 25% 줄일 수 있어, 여러 영화 감독과 촬영 감독들이 옹호해 왔다. 1975년 미클로스 렌테는 "Trilent 35"라는 3-perf 시스템을 발명했지만, 업계 채택에는 실패했다.[48] 룬 에릭슨은 3-perf 시스템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나,[49] 영화 산업은 기존 프로젝터 수정 문제로 변화를 만들지 않았다. 3-perf는 텔레비전 영화 제작에서 HDTV의 16:9 비율을 얻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비스타비전은 1954년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더 미세한 입자의 네거티브와 프린트를 제작하기 위해 만들었다.[52] 이 형식은 35mm 필름을 수평으로 실행하며, 프레임은 8개의 천공 길이로, 더 넓은 가로 세로 비율과 더 큰 디테일을 제공한다.[47] 존 다이크스트라는 스타워즈에서 비주얼 효과를 위해 비스타비전 카메라 시스템을 부활시켰다.[54]
21세기 초 디지털 3D 영화의 성공으로, 테크니컬러[21], 파나비전(Panavision)[22] 등은 35mm 필름 기반 3D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 시스템들은 "오버-언더" 스테레오 3D 인쇄물의 개선된 버전이다. 영사기를 통과하는 필름의 선형 속도와 사운드 재생은 모두 일반적인 2D 작동과 정확히 동일하게 유지된다. 테크니컬러 시스템은 빛의 편광을 사용하고, 파나비전 시스템은 스펙트럼 빗살 필터 시스템을 사용한다. 2012년 6월, 파나비전 3D 시스템은 시장에서 철수되었다.[23]
2. 6. 안전 필름
이스만 코닥은 초기에 아세테이트 기반 필름을 도입했지만, 이 필름은 부서지기 쉽고 수축하는 경향이 있어, 가연성이 높은 질산염 기반 셀룰로스 필름이 영화 카메라와 인쇄 필름에 주로 사용되었다.[33] 1949년 코닥은 모든 니트로셀룰로스(질산염 기반) 필름을 더 안전하고 튼튼한 셀룰로스 트리아세테이트 기반의 "안전 필름"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1950년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트리아세테이트 스톡의 안전성을 인정하여 코닥에게 과학 기술 아카데미상(오스카)을 수여했다.[34] 1952년까지 모든 카메라 및 영사기 필름은 트리아세테이트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현대에는 대부분의 필름 인쇄본이 합성 폴리에스터 안전 베이스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1990년대 초부터 인쇄용 트리아세테이트 필름을 대체하였다. 폴리에스터 필름은 강도가 매우 높아 찢어지지 않고 늘어나 영사기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영사기 램프에 오래 노출되어도 녹지 않는 장점이 있다.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와 일부 중간 필름은 여전히 트리아세테이트 베이스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용매 기반 네거티브 어셈블리 프로세스와 호환되기 때문이다. 폴리에스터 필름은 용매 기반 어셈블리 프로세스와 호환되지 않는다.2. 7. 디지털 시네마로의 전환
2010년에서 2015년을 전후한 과도기에 영화 상영 산업이 디지털 영사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대부분의 영사실에서 35mm 필름 영사기가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되었다.[24] 201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극장이 디지털 영사로 전환되었으며, 일부는 35mm 영사기를 계속 사용했다.[24] 전 세계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가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5mm 필름은 여전히 열성 팬과 형식 애호가들을 위한 틈새 시장에 남아있다.3. 속성
35mm 필름은 흑백 및 컬러 네거티브 필름 외에도, 현상 시 투사 가능한 양화상을 생성하는 흑백 및 컬러 리버설 필름이 있다. 또한 적외선 사진과 같이 보이지 않는 빛의 파장에 민감한 필름도 있다.
35mm 필름의 일반적인 포맷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초창기 영화는 토머스 에디슨이 지정한 1.33:1 화면비로 촬영되었다.[35] 워너 브라더스는 동기화된 축음기 디스크를, 폭스는 필름에 직접 사운드트랙을 광학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36]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사운드-온-필름" 방식을 채택했고, 이미지 비율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워졌다.[37]
1929년, 영화 및 텔레비전 기술자 협회(Society of Motion Picture Engineers)는 0.800 in x 0.600 in의 표준 조리개 비율을 설정했다.[38] 1932년,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이를 확장하여 1.375:1의 아카데미 비율을 만들었다.[39] 1950년대 이후 극장 개봉 영화의 화면비는 1.85:1(유럽에서는 1.66:1) 또는 2.35:1(1970년 이후에는 2.40:1)이 되었다.[39]
아나모픽 형식은 넓은 이미지를 위해 카메라와 프로젝터에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며, 현재 화면비는 약 2.39:1이다.[40] 1952년 시네라마의 성공 이후, 20세기 폭스는 앙리 크레티앵의 아나모픽 광학 시스템을 이용한 시네마스코프 기술을 선보였다.[42]
다른 스튜디오들은 더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고, 1953년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66:1 화면비를 도입했다.[43]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1.85:1 형식을 소개했다. 1956년까지 1.85:1이 미국 표준 형식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1.66:1이 표준이 되기도 했다. 1953년, 20세기 폭스는 로브를 통해 시네마스코프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44] 1960년대 초, 파나비전이 시네마스코프 렌즈의 기술적 한계를 해결하면서 대체되었다.[41][45]
|thumb|right|upright=1.5|Super 35 형식 다이어그램]]
슈퍼 35는 1982년 조 던튼에 의해 부활했다.[46] 이 방식은 1.33:1 영역으로 촬영 후, 2.40:1 화면비를 만들기 위해 프레임을 크롭한다.[47] 2000년까지 광학 프린터를 사용했으나, 디지털 중간(DI) 등장 이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되어 더욱 인기를 얻었다.[47]
|thumb|right|upright=1.5|3-perf Super 35 형식 다이어그램]]
비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비율(1.85:1)은 필름 사용이 비효율적이다. 3-perf 풀다운은 필름 소비를 25% 줄일 수 있다. 1975년 미클로스 렌테가 3-perf 시스템을 특허받았지만, 업계는 채택하지 않았다.[48] 룬 에릭슨이 이를 옹호했지만,[49] 영화 산업은 기존 프로젝터 수정 문제로 변화를 주저했다. 텔레비전 영화 제작에서는 3-perf 형식이 때때로 사용된다.[50] 슈퍼 35mm 필름과 함께 사용하면 HDTV의 16:9 비율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중간 과정이 표준이 되면서, 3-perf는 장편 영화 제작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51]
필름 천공은 필름 측면에 뚫린 구멍으로, 초기에는 둥근 형태였으나 마모와 변형에 취약하여 벨 & 하웰(Bell & Howell, BH) 천공으로 발전했다. BH 천공은 위아래 가장자리가 직선이고 양 옆이 바깥쪽으로 굽은 형태이며, 네거티브 및 인터네거티브 필름의 표준으로 사용된다.[57] BH 천공은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반복 사용 시 찢어지는 응력이 발생하고, 인화물이 수축하는 경향이 있었다.
1924년 코닥(Kodak)은 안정성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직사각형 밑면과 둥근 모서리를 가진 "코닥 표준"(KS) 천공을 도입했다.[58] KS 천공은 내구성이 뛰어나 배포 인화물 및 특수 용도의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에 적합하지만, 블루스크린 등의 작업에는 정합성이 부족하여 부적합하다.[59][60] KS1870 천공은 배포 인화물의 현대적인 표준이다.[57] BH 천공은 ''N''(네거티브), KS는 ''P''(포지티브)로도 불린다.
DH 천공은 1932년에 KS와 BH의 장점을 결합하여 제안되었으나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62][63][53][64] 테크니컬러 염료 침투 인쇄 등에 사용되었으나, 코닥의 모노팩 이스트만컬러 필름 출시로 수요가 감소했다.[60][65]
1953년 20세기 폭스는 시네마스코프 도입과 함께 입체 음향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더 작은 CS 천공(CinemaScope, "폭스 홀")을 사용했다.[6] CS 천공 필름은 표준 KS 스프로킷으로는 작동하지 않지만, KS 인쇄물은 CS 스프로킷에서 작동 가능하다. 자기 스트라이프 35mm 필름이 돌비 스테레오 등장 이후 구식이 되면서 CS 천공 필름은 더 이상 제조되지 않는다.
연속 접촉 인쇄 시에는 원본과 네거티브 필름을 함께 배치하는데, 네거티브 필름은 스프로킷 휠에 더 가깝기 때문에 피치가 약간 더 짧아야 한다.[56]
3. 1. 일반적인 특징
35mm 필름은 흑백 및 컬러 네거티브 필름 외에도, 현상 시 투사 가능한 양화상을 생성하는 흑백 및 컬러 리버설 필름이 있다. 또한 적외선 사진과 같이 보이지 않는 빛의 파장에 민감한 필름도 있다.3. 2. 일반적인 포맷
35mm 필름의 일반적인 포맷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초창기 영화는 토머스 에디슨이 지정한 1.33:1 화면비로 촬영되었다.[35] 워너 브라더스는 동기화된 축음기 디스크를, 폭스는 필름에 직접 사운드트랙을 광학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36]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사운드-온-필름" 방식을 채택했고, 이미지 비율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워졌다.[37]
1929년, 영화 및 텔레비전 기술자 협회(Society of Motion Picture Engineers)는 0.800 in x 0.600 in의 표준 조리개 비율을 설정했다.[38] 1932년,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이를 확장하여 1.375:1의 아카데미 비율을 만들었다.[39] 1950년대 이후 극장 개봉 영화의 화면비는 1.85:1(유럽에서는 1.66:1) 또는 2.35:1(1970년 이후에는 2.40:1)이 되었다.[39]
아나모픽 형식은 넓은 이미지를 위해 카메라와 프로젝터에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며, 현재 화면비는 약 2.39:1이다.[40] 1952년 시네라마의 성공 이후, 20세기 폭스는 앙리 크레티앵의 아나모픽 광학 시스템을 이용한 시네마스코프 기술을 선보였다.[42]
다른 스튜디오들은 더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고, 1953년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1.66:1 화면비를 도입했다.[43]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1.85:1 형식을 소개했다. 1956년까지 1.85:1이 미국 표준 형식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1.66:1이 표준이 되기도 했다. 1953년, 20세기 폭스는 로브를 통해 시네마스코프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44] 1960년대 초, 파나비전이 시네마스코프 렌즈의 기술적 한계를 해결하면서 대체되었다.[41][45]
|thumb|right|upright=1.5|Super 35 형식 다이어그램]]
슈퍼 35는 1982년 조 던튼에 의해 부활했다.[46] 이 방식은 1.33:1 영역으로 촬영 후, 2.40:1 화면비를 만들기 위해 프레임을 크롭한다.[47] 2000년까지 광학 프린터를 사용했으나, 디지털 중간(DI) 등장 이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되어 더욱 인기를 얻었다.[47]
|thumb|right|upright=1.5|3-perf Super 35 형식 다이어그램]]
비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비율(1.85:1)은 필름 사용이 비효율적이다. 3-perf 풀다운은 필름 소비를 25% 줄일 수 있다. 1975년 미클로스 렌테가 3-perf 시스템을 특허받았지만, 업계는 채택하지 않았다.[48] 룬 에릭슨이 이를 옹호했지만,[49] 영화 산업은 기존 프로젝터 수정 문제로 변화를 주저했다. 텔레비전 영화 제작에서는 3-perf 형식이 때때로 사용된다.[50] 슈퍼 35mm 필름과 함께 사용하면 HDTV의 16:9 비율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중간 과정이 표준이 되면서, 3-perf는 장편 영화 제작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51]
3. 3. 천공 (Perforations)
필름 천공은 필름 측면에 뚫린 구멍으로, 초기에는 둥근 형태였으나 마모와 변형에 취약하여 벨 & 하웰(Bell & Howell, BH) 천공으로 발전했다. BH 천공은 위아래 가장자리가 직선이고 양 옆이 바깥쪽으로 굽은 형태이며, 네거티브 및 인터네거티브 필름의 표준으로 사용된다.[57] BH 천공은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반복 사용 시 찢어지는 응력이 발생하고, 인화물이 수축하는 경향이 있었다.1924년 코닥(Kodak)은 안정성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직사각형 밑면과 둥근 모서리를 가진 "코닥 표준"(KS) 천공을 도입했다.[58] KS 천공은 내구성이 뛰어나 배포 인화물 및 특수 용도의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에 적합하지만, 블루스크린 등의 작업에는 정합성이 부족하여 부적합하다.[59][60] KS1870 천공은 배포 인화물의 현대적인 표준이다.[57] BH 천공은 ''N''(네거티브), KS는 ''P''(포지티브)로도 불린다.
DH 천공은 1932년에 KS와 BH의 장점을 결합하여 제안되었으나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62][63][53][64] 테크니컬러 염료 침투 인쇄 등에 사용되었으나, 코닥의 모노팩 이스트만컬러 필름 출시로 수요가 감소했다.[60][65]
1953년 20세기 폭스는 시네마스코프 도입과 함께 입체 음향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더 작은 CS 천공(CinemaScope, "폭스 홀")을 사용했다.[6] CS 천공 필름은 표준 KS 스프로킷으로는 작동하지 않지만, KS 인쇄물은 CS 스프로킷에서 작동 가능하다. 자기 스트라이프 35mm 필름이 돌비 스테레오 등장 이후 구식이 되면서 CS 천공 필름은 더 이상 제조되지 않는다.
연속 접촉 인쇄 시에는 원본과 네거티브 필름을 함께 배치하는데, 네거티브 필름은 스프로킷 휠에 더 가깝기 때문에 피치가 약간 더 짧아야 한다.[56]
4. 기술 사양
SMPTE에 의해 표준화된 35mm 필름의 기술 사양은 다음과 같다.
- 1피트당 16 프레임 (프레임당 19mm (긴 피치))
- 초당 24 프레임(fps); 분당 27.4m. 304.8m는 24fps에서 약 11분이다.
- 수직 풀다운
- 프레임당 4개의 퍼포레이션 (3-퍼프 제외). 1 퍼포레이션 = 4.7625mm. 1 프레임 = 19.05mm.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13d3b4aa_44eeb107.svg|thumb|upright=2.04|아카데미 규격 35 mm 구면 필름 인쇄물 상의 영역:
- 1=카메라 조리개
- 2=아카데미 비율, 1.375:1
- 3=1.85:1 비율
- 4=1.6:1 비율
- 5=텔레비전 스캔 영역
- 6=텔레비전 "액션 세이프" 영역
- 7=텔레비전 "타이틀 세이프" 영역
]]
;35 mm 구면[47]
- ''화면비'': 카메라 조리개에서 1.375:1. 1.85:1 및 1.6:1은 이것보다 하드 매트 또는 소프트 매트 처리된다.
- ''카메라 조리개'': 22mm x 16mm
- ''영사기 조리개''(전체 1.375:1): 21mm x 15.3mm
- ''영사기 조리개''(1.6:1): 21mm x 12.6mm
- ''영사기 조리개''(1.85:1): 21mm x 11.3mm
- ''TV 방송국 조리개'': 20.7mm x 15.5mm
- ''TV 전송'': 20.1mm x 15.1mm
- ''TV 안전 액션'': 18.1mm x 13.6mm; 코너 반경: 3.6mm
- ''TV 안전 타이틀'': 16mm x 12mm; 코너 반경: 3.2mm
;슈퍼 35mm 필름[47]
- ''화면비'': 4-퍼프 카메라 조리개에서 1.3:1
- ''카메라 조리개(4-퍼프)'' : 24.9mm x 18.7mm
- ''사용된 사진''(35mm 아나모픽): 24mm x 10mm
- ''사용된 사진''(70mm 확대): 24mm x 10.9mm
- ''사용된 사진''(35mm 플랫 1.85): 24mm x 13mm
;35mm 아나모픽[47]
- ''화면비'': 2.39:1, 2x 수평 아나모픽을 가진 1.19:1 프레임에서
- ''카메라 조리개'': 22mm x 18.6mm
- ''영사기 조리개'': 21mm x 17.5mm
4. 1. 구면 35mm
35mm 필름의 일반적인 화면비는 1.375:1이며, 이는 아카데미 비율로 알려져 있다. 카메라 조리개는 0.866 x 0.630인치(22 x 16mm)이고, 영사기 조리개는 이보다 약간 작은 0.825 x 0.602인치(21 x 15.3mm)이다.4. 2. 슈퍼 35mm
슈퍼 35는 원래 무성 영화의 1.33:1 화면비인 에디슨 규격의 전체 4-퍼프 네거티브 영역(24.89mm x 18.67mm)을 활용한다.[46] 이후 1.85:1 비율과 유사하게 프레임 하단 또는 중앙에서 이미지를 잘라내어 2.40:1 화면비를 만든다. (24mm x 10mm)[46]이러한 방식은 네거티브 영역을 확장하여, 전체 네거티브 영역(240mm²)이 2.40:1 화면비를 가지면서도 아카데미 프레임의 1.85:1 비율(248.81mm²)보다 약간 작은 영역(9mm²)을 사용하게 한다.[47] 이렇게 잘라낸 프레임은 중간 단계를 거쳐 아나모픽 영사 표준에 맞는 4-퍼프 아나모픽 압착 인쇄물로 변환된다. 이 방식을 통해 아나모픽 렌즈 없이 일반 렌즈로도 "아나모픽" 프레임을 촬영할 수 있다.
2000년까지 슈퍼 35로 촬영된 영화는 광학 프린터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압착했다. 그러나 디지털 중간(DI) 기술이 도입되면서 슈퍼 35 촬영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4-퍼프 1.33:1 (또는 3-퍼프 1.78:1) 원본을 스캔하여 컴퓨터에서 2.39:1 프레임으로 자르는 작업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화질 저하나 입자 증가 없이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47]
4. 3. 아나모픽 35mm
아나모픽 35mm는 1957년에 도입된 필름 포맷이다. 아나모픽 형식을 사용하며, 시네마스코프(1953)와 같은 다른 35mm 필름 포맷과 함께 영화 촬영에 사용된다.5. 한국 영화 산업과 35mm 필름
6. 현재와 미래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도 불구하고, 35mm 필름은 여전히 영화 제작자와 관객들에게 그 특유의 질감과 표현력으로 사랑받고 있다.[72][73] 특히, 테크니컬러나 파나비전과 같은 기업들은 35mm 필름용 상영 시스템을 새롭게 출시하여, 3D 영화 상영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72][73] 이러한 시스템은 1960년대 "over-under" 스테레오 3D 영화의 최신판으로, 일반 35mm 필름용 상영 장비에서도 최소한의 개조로 상영 가능하다.
"over-under" 일반 상영용 필름은 좌우 비 2.39:1의 비왜상 필름 영상을 2D 스코프 사이즈용 좌우 비가 2.39:1의 왜상 필름 영상으로 변환한다. 프레임 치수는 테크니스코프의 2개 구멍 필름 규격에 기반하지만, 좌우 필름을 동시에 움직일 때 사용되는 필름 규격은 일반적인 4개 구멍이다. 상영기를 통해 비춰지는 필름과 음성의 속도는 일반 2D와 완전히 같다.
테크니컬러는 좌우 눈에 보이는 영상을 세밀하게 분리하여 편광을 이용하며, 왜상 렌즈(아나모픽 렌즈)에 미세한 편광 발생 렌즈를 장착한다. 파나비전은 스펙트럼 필터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테크니컬러 시스템과 유사하게 분광 필터 렌즈와 조합하여 사용 가능하다. 편광 디지털 3D 효과를 위해 테크니컬러 시스템은 스크린을 필요로 하지만, 두 시스템 모두 렌즈 교체만으로 2D와 3D 영상 전환이 가능하다.
2012년 6월, 파나비전은 35mm 필름 및 디지털 상영 장비용 3D 사업에서 철수했다.[74] 이는 DVDPO 시어트리컬이 대신 시장용 3D 시스템을 맡게 되었으며, "글로벌 경제 및 3D 시장의 어려움"이 철수 이유로 설명되었다.[74]
이처럼 35mm 필름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보존 및 복원의 중요성 또한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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