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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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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크니컬러는 1914년 설립된 모회사(Technicolor Motion Picture Corporation)를 중심으로, 영화 제작 및 후반 작업에 사용된 다양한 기술과 공정, 그리고 관련 기업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초기에는 2색, 3색 공정을 거쳐 3색 테크니컬러, 염료 전달 공정, 이스트만컬러의 도입과 쇠퇴를 겪었다. 1932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3색 테크니컬러가 독점적으로 사용되면서 기술이 발전했고,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이스트만컬러의 등장으로 쇠퇴했지만, 1990년대 후반 염료 전달 공정이 재도입되어 고전 영화의 보존에 기여했다. 현재는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기업은 여러 차례 인수 및 분사를 거쳐 현재는 Vantiva와 Technicolor Creative Studios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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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러
개요
종류색채 영화 처리 기술
역사
발명가대니얼 F. 콤스톡과 허버트 T. 칼머스
발명 연도1916년
특허 번호미국 특허 1208490
설명2색 및 3색 공정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을 사용
설립 시기1915년
관련 회사반티바 (구 테크니컬러 SA)
초기 목적컬러 영화 제작 기술 개발
기술적 특징
주요 기술2색 공정 (초기)
3색 공정 (후기)
작동 원리여러 개의 필터를 사용하여 색상을 분리하고, 이를 특수 카메라와 필름을 통해 기록 및 재현
색상 구현염료를 사용하여 색상을 구현
특징생생하고 독특한 색감
사용 작품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추가 정보
관련 링크MIT와 테크니컬러가 할리우드 창조에 기여한 방법

2. 명칭

테크니컬러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최소 5가지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 '''테크니컬러'''(Technicolor): 모든 버전과 부가 서비스를 포괄하는 모회사(Technicolor Motion Picture Corporation)이다.(1914년~현재)
  • '''테크니컬러 랩'''(Technicolor labs): 현상, 인쇄, 그리고 모든 주요 컬러 영화 공정, 테크니컬러의 독점 공정을 포함한 후반 작업 서비스를 위해 테크니컬러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전 세계의 필름 현상소 그룹이다. (1922년~현재)
  • '''테크니컬러 공정'''(Technicolor process) 또는 '''포맷'''(format): 1932년의 "3-스트립" 공정으로 절정에 달한 영화 제작에 사용된 여러 맞춤형 이미지 시스템이다.(1917년~1955년)
  • '''테크니컬러 IB 인쇄'''(Technicolor IB printing): "IB"는 염료 전달 작업인 "침투"의 약자이다. 일반적인 발색성 컬러 인쇄에서 형성된 염료보다 더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염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컬러 영화 인쇄 제작 공정이다. 원래는 특수 테크니컬러 카메라로 흑백 필름에 촬영된 색상 분리 네거티브에서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다.(1928년~2002년, 1974년 이후 랩에 따라 가용 기간이 다름)
  • '''인쇄물'''(Prints) 또는 '''컬러 바이 테크니컬러'''(Color by Technicolor): 1954년 이후, 이스만컬러 (및 기타 단일 스트립 컬러 필름 재고)가 3개의 필름 스트립 카메라 네거티브 방식을 대체하는 동안, 테크니컬러 IB 인쇄 공정은 인쇄물을 만드는 한 가지 방법으로 계속 사용되었다.[28] 이 의미는 테크니컬러가 크레딧에 명시된 1954년 이후에 제작된 거의 모든 영화에 적용된다.(1953년~현재)[3][4]


테크니컬러는 영국에서 개발된 키네마컬러에 이은 컬러 영화 채색 기술로, 미국에서 1916년에 개발되었다.[45] 처음에는 키네마컬러와 마찬가지로 2색 방식이었지만, 이후 세계 최초로 3색 방식의 채색 기술로 확립되었다.

1922년부터 1952년 사이에 할리우드에서 컬러 영화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테크니컬러는 색 순도가 높아 정평이 있었으며, 《오즈의 마법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의 뮤지컬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 《잔 다르크》 등의 의상에 공을 들인 시대극 영화, 《백설 공주》, 《환타지아》 등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되었다. 《애수의 호수》, 《나이아가라》 등의 필름 느와르에서도 사용되었다.

"테크니컬러"는 테크니컬러 영화사(Technicolor Motion Picture Corporation, 현 테크니컬러의 일부)의 등록 상표이다.

3. 역사

테크니컬러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 테크니컬러(Technicolor): 1914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회사이다.
  • 테크니컬러 연구소(Technicolor labs): 1922년부터 현재까지 테크니컬러의 자산으로, 세계 곳곳의 영화 연구소에서 개발, 프린트, 필름 전사 등 컬러 영화 제작 이후 전반적인 제작을 담당한다.
  • 테크니컬러 프로세스(Technicolor process or format): 1917년부터 1955년까지 사용된 일련의 이미지 제작 시스템으로, 1932년에 정점을 찍은 3색 영화기법이다.
  • 테크니컬러 IB 프린팅(Technicolor IB printing): "IB"는 염색 과정의 "흡수"를 줄인 말로, 1928년부터 2002년까지 사용된 컬러 영화 제작 기법이다. 특수 테크니컬러 카메라로 촬영된 흑백영화용 네거티브 필름을 사용하며, 염료를 사용해 발색 방식 프린팅보다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1974년 이후에는 연구소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 테크니컬러(Prints or Color by Technicolor): 1954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스트먼 컬러와 같은 싱글 스트립 필름이 3개의 네거티브 필름 스트립을 대체했지만, 일부 테크니컬러 IB 프린트는 계속 사용되었다.[52] 1953년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영화 크레딧에 테크니컬러 이름이 나타난다.


1912년, 허버트 칼머스, 대니얼 콤스톡, 그리고 정비공 W. 버튼 웨스코트는 산업 연구 및 개발 회사인 칼머스, 콤스톡 앤 웨스코트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한 발명가의 플리커 현상이 없는 영화 시스템을 분석하도록 고용되었을 때, 그들은 영화 제작 기술과 과학, 특히 컬러 영화 제작 과정에 매료되었다. 이는 1914년 보스턴에서 테크니컬러를 설립하고 1915년 메인에서 법인으로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5]

1921년, 웨스코트가 회사를 떠났고, 테크니컬러 주식회사가 델라웨어에서 설립되었다.[6][7]

3. 1. 2색 테크니컬러

테크니컬러는 영국에서 개발된 키네마컬러에 이어 미국에서 1916년에 개발된 컬러 영화 채색 기술이다.[45] 처음에는 키네마컬러와 마찬가지로 2색 방식이었지만, 이후 세계 최초로 3색 방식의 채색 기술로 확립되었다.

1922년부터 1952년 사이에 할리우드에서 컬러 영화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테크니컬러는 높은 색 순도를 가져, 《오즈의 마법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의 뮤지컬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 《잔 다르크》 등의 시대극 영화, 《백설 공주》, 《환타지아》 등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되었다. 《애수의 호수》, 《나이아가라》 등의 필름 느와르에서도 사용되었다.

"테크니컬러"는 테크니컬러 영화사(Technicolor Motion Picture Corporation, 현 테크니컬러의 일부)의 등록 상표이다.

테크니컬러의 시작은 적·녹의 2색법 프로세스였다. 피사체를 프리즘으로 분해하여, 적색과 녹색 각각의 필터를 통과한 영상을 1개의 흑백 필름에 교대로 기록했다. 이후 2개의 필름에 감색법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십계(1923년)』, 『오페라의 유령(1925년)』, 『벤허(1925년)』 등의 작품에서 컬러 부분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2개의 필름을 영사용으로 붙여 놓았기 때문에 초점이 맞지 않는 기술적 문제와 영사용 필름의 내구성 문제가 있었다.

이후, 2개의 필름 화상을 1개의 영사용 필름으로 전사하는 「다이 트랜스퍼 방식」이 채용되었다. 이로써 상영 기술도 향상되었고,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1930년 이후, 대공황의 영향과 컬러 작품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테크니컬러사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3. 1. 1. 1세대 (1916-1917)

테크니컬러는 원래 2색 (적색 및 녹색) 시스템으로 존재했다. 1세대(1916)는 카메라 렌즈 뒤에 프리즘 빔 분할기가 흑백 네거티브 필름의 두 프레임을 순차적으로 노출했는데, 하나는 적색 필터를, 다른 하나는 녹색 필터를 사용했다. 두 프레임을 동시에 노출했기 때문에 필름은 정상 속도의 두 배로 촬영 및 투사해야 했다. 상영에는 두 개의 조리개(하나는 적색 필터, 다른 하나는 녹색 필터), 두 개의 렌즈, 화면에서 두 이미지를 정렬하는 조절 가능한 프리즘이 있는 특수 프로젝터가 필요했다.[53]

1917년 2월 21일 뉴욕에서 미국 광산 엔지니어 협회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54] 테크니컬러는 1세대로 《걸프 비트윈》을 자체 제작했는데, 1917년 9월 13일 보스턴에서 시작하여 뉴욕까지 동부 지역 몇몇 도시를 순회하며 영화 제작자와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55] 기술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투사 방식에 색을 더하는 기법을 적용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현재는 그레이스 데어몬드가 주연한 《걸프 비트윈》의 몇몇 장면만이 남아있다.[11]

테크니컬러 필름으로 처음 공개된 《걸프 비트윈》(1917) 중 현존하는 몇 장면

3. 1. 2. 2세대 (1922-1928)

컴스톡, 웨스콧, 칼머스는 색을 덧붙이는 방식에 미래가 없음을 깨닫고 색을 빼는 방식에 집중하여 기술을 축적했다. 이 기술은 1922년에 2세대 기술로 불리게 되었으며, 1900년대 후반에는 "투스트립 테크니컬러"(two-strip Technicolor)로도 불렸다. 이전에는 특수 테크니컬러 카메라가 빔분할기를 사용하여 녹색 필터와 적색 필터를 거친 두 개의 프레임을 각각 노출했다.[56]

2색 네거티브 필름을 프린트하기 위해 색을 빼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차이점이다. 색이 프린트에 물리적으로 나타나 특별한 영사 장비가 필요하지 않았고, 색이 올바르게 입혀진 두 이미지는 영사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영사할 수 있었다.

녹색 필터를 낀 프레임은 흑백 필름 스트립에 비춰졌고, 적색 필터를 낀 프레임은 다른 스트립에 비춰졌다. 개선을 거쳐 각 프레임의 색이 맞춰지는데, 필터의 보색과 어우러지도록 녹색 필터에는 주황-적색, 적색 필터에는 청록-녹색이 적용되었다. 착색과는 달리 전체 이미지에 균일한 색의 막을 쓰고 흑백 은색 이미지는 떨어져 투명한 유제가 입혀지도록 작용하여 밝은 부분은 깔끔하게 남고 검은색 부분은 진하게 색이 입혀졌으며, 중간 톤은 부분적으로 색이 입혀졌다. 필름통에 담긴 두 프린트는 일반적인 필름 두께의 절반에 불과했고, 서로 맞붙어 영사 화면을 연이어 만들었다.

1922년 11월 26일에 상영된 《바다의 희생자》는 2세대 테크니컬러로 제작된 첫 대중 영화이다.

바다의 희생자(1922)의 한 장면. 최초로 일반 공개된 테크니컬러 영화이자, 2색 감산 색상 공정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이다.


두 번째 테크니컬러 작품은 1924년에 개봉한 《황무지의 방랑자》이다. 2세대 테크니컬러는 《십계》(1923), 《오페라의 유령》(1925), 《벤허》(1925),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의 《검은 해적》(1926)과 같은 대작에도 적용되었다.

《오페라의 유령》(1925) 프레임을 확대한 부분. 실내 세트장에서 사용된 최초 작품 중 하나이고 다양하게 촬영됨을 보여주었다.


2세대는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기술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영사에 쓰이는 두 이미지가 같은 면에 완벽하게 맞지 않고 담겨 어긋남이 생기는 문제였다. 이는 투사 광학 관점에서 거리에 비해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필름이 재사용을 거치면서 원형으로 말리는 현상이었다.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각 프레임이 영사기 입구의 강렬한 빛에 열을 받아 조금씩 불룩해졌고, 식힌 후에도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접합한 프린트는 휘기 쉬웠고, 휘는 방향이 불규칙하여 영사 전문가도 이를 완전히 제어하기 어려웠다. 테크니컬러는 새로운 프린트를 공급하고 말려진 프린트를 보스턴 연구소로 보내 다시 사용해야 했다. 양쪽 표면에 이미지가 있어 긁힘에 매우 취약했고, 긁힘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2세대 필름을 겹붙이면 영사기를 통과할 때 약한 접점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불거지기 전에 테크니컬러는 이미 접합한 프린트 방식을 임시방편으로 인식하고 다음 세대를 개발할 준비를 마쳤다.[57]

3. 1. 3. 3세대 (1928-1932)

1916년에 맥스 핸시글이 영화에 처음 적용한 것과 동일한 색을 옮기는 기술을 바탕으로 3세대(1928)를 개발하였고, 색깔 흡수의 이점으로 만든 이중 접합 프린트로 만든 영사용 필름에 끝을 고했다. 3세대 테크니컬러 카메라는 2세대의 그것과 동일했고 차례대로 각각의 적색필터와 녹색필터를 낀 흑백 프레임을 영사했다.

연구소에서는 프레임을 바꿔가며 프린트하는 방식으로 분류했는데, 네거티브 필름을 색이 그대로 옮겨지는 2개의 프레임에 번갈아 색을 입혔고 적색 필터링된 프레임은 특별히 준비한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필름 스트립 위에 프린트하고 녹색 필터링된 프레임은 다른 매트릭스 필름에 프린트하는 식이었다. 제작 중에 매트릭스 필름을 녹이는데 쓰는 젤라틴의 일부분이 굳었는데 빛을 강하게 쬐어주면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잔여물은 씻어버렸다. 그 결과로 2 개의 안정적인 이미지는 단단하고 가장 두꺼운 젤라틴은 네거티브 필름에서 가장 선명하고 노출이 가장 적었다.

각각의 최종 색입힘을 끝내기 위해 염색통에 매트릭스 필름을 적셨고 그 색은 카메라 필터 색과 이른바 보색 관계였다. 적색필터링된 프레임을 입은 스트립은 청록-녹색이 입혀지고 녹색필터링된 프레임 스트립은 주황-적색이 입혀진다. 각 프레임에 젤라틴이 두꺼우면 색도 잘 빨아들였다. 평평하게 젤라틴이 코팅된 "비어 있는" 필름에 각 매트릭스 필름을 차례로 붙여 젤라틴이 매트릭스의 염색을 "빨아"들였다. 키틴질로 탈아세틸화한 매염제를 프린팅하기 전에 비어 있는 필름에 바르고 염색이 흡수된 이후에는 번지거나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했다.

염색 흡수기법이 광학 사운드트랙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매우 높은 유화제가 필요했는데 유성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어 있는" 필름은 기존의 흑백필름이었고 테두리선과 마찬가지로 사운드트랙은 색을 입히는 기법보다 평범하게 제작되었다.

테크니컬러 3세대로 만든 첫작품은 《바이킹》(1928)이었고 음악과 음향효과를 지원했다. 영화의 음악와 함께 《붉은 야만인》(1929), 《신비의 섬》(1929)은 일부분 음성지원하는 대사가 있는 부분이 대부분 촬영되었지만 역시나 흑백인 부분도 있었다. 다음의 음성지원 영화는 완전히 혹은 거의 테크니컬러 3세대로 제작했다.

영화 제목연도
《브로드웨이의 황금광들》1929
《쇼오브쇼》1929
《샐리》1929
《베가본드 킹》1930
《팔로우 스루》1930
《골든 던》1930
《홀드 에브리씽》1930
로그 송1930
《송 오브 플레임》1930
《송오브웨스트》1930
《라이프 오브 더 파티》1930
《스윗 키티 벨라스》1930
《브라이드 오브 더 리저먼트》1930
《맘바》1930
《우피!》1930
킹 오브 재즈1930
《언더 어 텍사스 문》1930
《브라이트 라이츠》1930
《비에니즈 나이츠》1930
《우먼 헝그리》1931
《키스 미 어게인》1931
《피프티 밀리언 프렌치맨》1931



어브 이웍스, 왈터 란츠와 같은 프로듀서들이 만든 컬러 유성 만화를 포함한 단편들이 테크니컬러 3세대로 다수 제작되었다. 《송 오브 플레임》은 와이드스크린(비토스코프라 불리는 65mm 필름을 사용한 시스템을 채택)을 적용한 최초의 컬러영화가 되었다.

1931년에는 테크니컬러 3세대가 개선되어 더 생생하고 선명한 색감을 나타냈다.[58] RKO 픽처스는 《더 런어라운드》(1931)라 불리는 영화에 처음 3세대를 사용했다. 이 새로운 기법은 색감을 살릴 뿐만 아니라 얼룩(벌레같이 생김)을 스크린에서 지웠는데 이 얼룩으로 예전에는 테두리가 흐릿하고 화면이 흐려졌다. 이 신기술은 비용을 줄였는데(30평방센티미터당 약 100KRW에서 80KRW으로) 색 혁명의 도래였다.[59] 워너브라더스는 다음 세 영화(제작 계획을 발표한 6편 중에서)를 내세워 다시 한번 첫 주자가 되었다.

영화 제목연도
《맨하탄 퍼레이드》1932
《닥터X》1932
《밀랍박물관의 미스터리》1933



RKO 픽처스는 이 새로운 기업으로 영화 4편을 더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60] 하지만 이 중 《Fanny Foley Herself》(1931)라 불리는 오직 한 편만이 실제로 제작됐다.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8편의 작품 계획을 발표하고 MGM이 2편의 컬러 영화를 만들겠다 했지만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61] 이는 새로운 컬러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미지근한 반응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립적으로 제작된 《레공: 처녀의 춤》(1934)과 《킬루 더 타이거》(1935) 등 2편의 영화가 개선된 테크니컬러로 제작되었다.

테크니컬러 2세대와 3세대로 만들어진 극소수의 영화만이 살아남는다. 1940년대 후반에 테크니컬러는 창고정리를 위해 영화 대부분을 폐기했는데 스튜디오가 재활용을 그만둔 이후의 일이다. 1950년대에 원본 테크니컬러 작품이 살아남아 텔레비전용 흑백작품으로 사용되었지만 사용 직후에 폐기했다. 이는 초기의 많은 컬러영화들이 흑백영화로 남겨진 이유이다.

마이너 영화사로 시작해 메이저 스튜디오로 도약한 워너브라더스는 영화의 도입부에 소리를 삽입했고 영화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테크니컬러 프린팅을 설립했다. 컬러영화 혹은 테크니컬러로 영화를 만들었던 워너 브라더스를 따라 이중천연색 컬러와 멀티컬러(후에 시네컬러라 불림)와 같은 다른 쟁쟁한 기법들도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색의 도입은 비용을 어느정도 아꼈지만 영화팬을 더 늘리지는 못했다. 이와 더불어 대공황이 영화사들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켰고 테크니컬러의 매출 창출은 끝을 고했다.

Process 3 테크니컬러의 예시. 영화 ''연대의 신부''(1930)의 마이아나 로이와 월터 피지언

3. 2. 3색 테크니컬러 (1932-1955)

테크니컬러는 영국에서 개발된 키네마컬러에 이어, 미국에서 1916년에 개발된 컬러 영화 채색 기술이다.[45] 처음에는 키네마컬러와 마찬가지로 2색 방식이었지만, 이후 세계 최초로 3색 방식의 채색 기술로 확립되었다.

1922년부터 1952년 사이에 할리우드에서 컬러 영화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테크니컬러는 색 순도가 높아, 《오즈의 마법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의 뮤지컬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 《잔 다르크》 등의 시대극 영화, 《백설 공주》, 《환타지아》 등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되었다. 《애수의 호수》, 《나이아가라》 등의 필름 느와르에서도 사용되었다.

"테크니컬러"는 테크니컬러 영화사(Technicolor Motion Picture Corporation, 현 테크니컬러의 일부)의 등록 상표이다.

1932년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제작의 애니메이션단편 영화꽃과 나무》는 이 방식 최초의 작품으로, 제1회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디즈니는 흥행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1935년까지 3색 컬러 작품 제작 독점 계약을 맺었다.

1935년 RKO 제작 《허영의 도시》는 이 방식을 사용한 세계 최초의 장편 작품이 되었고, 1936년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작 《언덕 위의 외로운 소나무》는 처음으로 야외 촬영을 실시한 작품이 되었다. 1937년 공개된 디즈니의 세계 최초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 공주》는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에서는 "'''총천연색'''"으로 번역되어 선전되었다.

1935년 미국의 이스먼 코닥독일의 아그파 게바르트는 삼원색을 3층으로 기록하는 컬러 필름을 완성했다. 테크니컬러 3색법으로 촬영에 필요한 큰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을 때에는 컬러 필름에 의한 촬영이 이루어졌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의 고니시로쿠도 비슷한 시스템(코니컬러)을 개발했다. 이후 일본 영화 업계는 국위 선양의 목적도 있어서 비교적 큰 촬영 현장에서도 코니컬러의 도입을 추진했고, 후지필름이 개발하는 리버설 시네 필름의 등장까지 이어졌다.

1930년대에 확립된 프린트 제작 과정은 전용 카메라를 사용하여 색상 분해 촬영을 하고, 흑백 네거티브 필름 3개로부터 광학 경화 처리로 젤라틴 막에 영상을 생성한 "매트릭스"라는 원판을 만들고, 사운드 트랙과 화면의 외곽, 보색 염료(dye)를 입힌 각 매트릭스로 컬러 이미지를 인쇄하는 "염료 전사(전염)" 방식이다. 당시 감도가 한 자릿수였던 컬러 필름 촬영에 비해, 공정이 복잡하고 시간도 걸리지만, 확실한 기법이었다.

컬러 필름의 감도가 실용적일 정도로 높아지자, 테크니컬러는 코닥과 아그파의 컬러 네거티브 필름으로부터 다이 트랜스퍼 방식으로 프린트를 제작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1954년에는 대형의 비스타비전, Todd-AO, 울트라 파나비전 70, 테크니라마 등에서도 고화질의 프린트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1974년대부 2》를 마지막으로, 테크니컬러사는 다이 트랜스퍼 방식의 프린트 시설을 폐쇄했다. 기재는 중국에 매각되었지만, 품질 유지가 어려워 1993년에 중단되었다.

1997년 테크니컬러사는 다이 트랜스퍼 방식에 의한 필름 제작을 재개했다. 이는 1960년대 - 1970년대에 행해지던 프로세스의 개량판으로, 《오즈의 마법사》, 《화니 걸》, 《이창》, 《지옥의 묵시록・특별 완전판》 등의 필름 재생에 한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토이 스토리》 등의 대규모 예산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채용되었다.

2000년 이후 디지털 리마스터가 보급되면서 삼색법의 평가가 일변했다. 테크니컬러는 원리적으로 "3개의 흑백 필름"이기 때문에, 크게 퇴색되지 않아 디지털 리마스터도 용이하게 행해졌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특별판의 디지털 리마스터는, 조지 루카스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테크니컬러판[46]을 참조하여 색상 조정이 이루어졌다.

2002년 다이 트랜스퍼 방식에 의한 필름 제작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테크니컬러 프린트용으로 제작되어 보관되어 온 "3개의 흑백 네거티브 필름"이 색 재현에서 유리하며, 제작 50주년을 기념한 2022년 《대부》 복원에서 화면의 리프레시에 기여하고 있다.

3. 2. 1. 4세대: 개발과 도입 (1932-1935)

1924년 테크니컬러는 이미 컬러 영화제작의 구상단계였고 1929년까지 실제로 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할리우드는 1929년과 1930년에 상당수의 테크니컬러 영화를 제작했고 많은 이들은 머지않아 영화계가 컬러영화 제작만을 고집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1931년까지 대공황이 영화 산업에 타격을 주었고 이는 제작 비용 삭감으로 이어졌다. 1932년이 되어서 컬러영화 제작 수는 뚝 떨어졌지만 그 시점에 버튼 웨스콧과 조셉 A. 발은 3색 컬러 영화 카메라 제작을 끝마쳤다. 이전에 사용하던 갑갑한 적녹 스펙트럼에 대항해 테크니컬러는 스튜디오를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일 준비가 되었다. 새로운 카메라는 흑백 필름 3개를 동시에 노출했는데 촬영한 각각의 필름은 다양한 색으로 스펙트럼을 이뤘다. 새로운 제작 기법은 1955년 마지막 작품까지 이어진다.

1930년대의 3색 테크니컬러 카메라


대부분의 총천연색 영화에 비해 테크니컬러는 색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색을 빼서 섞는 이점을 가졌다. 색을 더하는 방식의 키네마컬러나 크로노크롬 제작 방식과 달리 테크니컬러는 특수 투사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색을 더하는 듀페이컬러와 다른점으로 투사된 이미지는 빛을 흡수하거나 모자이크가 두드러진 필터 레이어를 사용하지 않아 빛이 침침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색을 빼는 방식과 다르게 테크니컬러는 화질과 프린팅의 속도가 균형을 잡았다는 점이다.

테크니컬러 4세대 카메라는 미첼 카메라 코퍼레이션이 테크니컬러의 상세사양에 맞춰 만들었고 내부의 컬러 필터, 분사 큐브 프리즘 안에서 표면을 분사하도록 만든 빔 분사기, 흑백 필름 3통(그래서 "3색"이라 일컬음)이 들었다. 빔 분사기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3분의 1만을 반사기와 녹색 필터를 통과하면 하나의 필름에 상을 맺어 스펙트럼에 녹색 화면만을 기록했다. 나머지 빛의 3분의 2는 거울에 반사되어 자홍색 필터를 통과하였고 그 결과로 녹색을 흡수하고 적색과 청색 스펙트럼만 빠져나오게 한다. 이 필터 뒤에는 유화제가 다른 필름 2줄 표면을 서로 맞붙게 도왔다. 필름의 앞면은 적색방지 정색이라 푸른빛만 기록한다. 유화제 표면에 적색-주황 코팅이 되어 반대편 적색에 민감한 전정색(많은 색을 사용한) 유화제에 푸른빛 맺힘을 막아 적색만 스펙트럼에 기록한다.

네거티브 필름 3개는 각각 특수 매트릭스 필름에 프린트한다. 제작을 거치고 나면 매트릭스 필름 3개를 차례로 표현하는 젤라틴의 두드러짐은 미세하지만 각 필름의 가장 두꺼운(그리고 가장 흡수를 많이 한)부분은 어둡고 얇은 부분은 밝다. 매트릭스 필름은 각각 염료에 담겨 네거티브 필름에 기록된 빛깔(청록은 적색, 자홍색은 녹색, 노란색은 청색에 담기는데 테크니컬 컬러 프린팅 토론을 보려면 CMYK 감산혼합을 참조하라)을 흡수한다.

미리 테두리선을 인쇄하고 사운드트랙이 입혀진 흑백필름은 처음에 매염하고 그 다음 3색이 입혀진 매트릭스 필름을 각각 가져다 붙이고 컬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각각의 염료는 젤라틴에 담고 흡수하여 스트립에 코팅했는데 단순히 표면에 붙이는 것이 아니어서 "염료 흡수"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기계적인 프린팅 기법으로서 평판인쇄나 석판인쇄[62]와는 비교가 애매하고 사진술이라 부를 수 없는데 프린팅할 때 빛 노출에 의한 화학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4세대 필름 초기에는 미리 프린트된 필름의 절반이 녹색으로 칠해진 흑백 필름이었고 이른바 키(Key) 혹은 K 레코드라 일컬었다. 필름 제작 기법은 대게 사진 속 뾰족한 부분 주위로 다른 색들로 뒤범벅되어 비현실적이었다. 또한 프린징 현상라고도 불린다.) 검은색이 덧칠해지면 최종 프린트에 대비가 심해지고 비현실적인 부분을 가린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결과물은 다채로운 색이 어느정도 나타난다. 1944년에 테크니컬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제작기법을 개발했고 K 레코드는 이로써 끝이 난다.

칼머스는 월트 디즈니를 설득하여 《엉터리 교향곡》의 에피소드인 《꽃과 나무》(1932년)를 4세대인 "3색" 컬러 영화로 제작하여 첫걸음을 내딛는다. 다채로운 테크니컬러에서 잠재성을 본 디즈니는 4세대를 독차지하려 1935년 10월까지 계약서를 연장한다.[63] 플라이셔 스튜디오와 어브 이웍스 스튜디오와 같은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소외되어 2색 테크니컬러에 만족하거나 시네컬러와 같은 경쟁사 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꽃과 나무》는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호평을 받아 처음으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상을 거머쥔다. 1933년부터 엉터리 교향곡의 모든 후속작이 3색 컬러영화로 만들어진다. 《엉터리 교향곡》의 에피소드인 〈아기돼지 삼형제〉(1933년)는 관객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어 제목인 엉터리교향곡보다 더 유명해졌다. 할리우드는 컬러 영화 제작에 다시 뛰어든다. 잡지 《포춘》에 따르면 RKO 픽처스의 제작자이자 《킹콩》(1933년)의 감독인 메리안 C. 쿠퍼는 《엉터리 교향곡》의 에피소드 한편을 보고 "다시는 흑백영화를 절대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3. 2. 2. 디즈니의 선점 (1932-1937)

허버트 칼머스는 월트 디즈니에게 그의 ''실리 심포니'' 만화 영화인 ''꽃과 나무''(1932)를 새로운 "3원색" 방식인 프로세스 4를 사용하여 촬영하도록 설득했다. 풀 컬러 테크니컬러의 잠재력을 확인한 디즈니는 1935년 9월까지 애니메이션 영화에 이 프로세스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19] 이로 인해 플라이셔 스튜디오와 업 아이웍스 스튜디오와 같은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2원색 테크니컬러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시네컬러와 같은 경쟁 프로세스를 사용해야 했다.

''꽃과 나무''는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최초의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33년부터 모든 후속 ''실리 심포니''는 3원색 프로세스로 촬영되었다. ''실리 심포니'' 중 하나인 ''아기 돼지 삼형제''(1933)는 관객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함께 상영된 장편 영화를 능가할 정도였다. 할리우드는 다시 컬러 영화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포춘'' 잡지에 따르면, "메리안 C. 쿠퍼, RKO 라디오 픽처스의 프로듀서이자 ''킹콩''(1933)의 감독은 ''실리 심포니'' 중 하나를 보고 다시는 흑백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디즈니의 첫 60편 정도의 테크니컬러 만화 영화는 3원색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이후 개선된 "순차 노출"("SE") 프로세스가 채택되었다. 이 3원색 프로세스의 변형은 주로 만화 작업을 위해 설계되었다. 카메라는 한 줄의 흑백 네거티브 필름을 포함하고, 각 애니메이션 셀은 번갈아 가며 빨간색, 녹색, 파란색 필터 뒤에서 세 번, 세 개의 순차적인 프레임으로 촬영되었다(소위 "테크니컬러 컬러 휠"은 당시 Acme, Producers Service 및 Photo-Sonics 애니메이션 카메라의 옵션이었다).[20] 세 개의 개별 염료 전사 인쇄 매트릭스는 각 보색인 시안, 마젠타, 노란색의 빨간색, 녹색 및 파란색 기록에서 생성되었다.

순차 노출은 디즈니의 "진실한 삶의 모험" 실사 시리즈에도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원래 16mm 저대비 코닥크롬 커머셜 실사 필름은 먼저 16mm 요소의 한 번의 통과로 35mm 미세 입자 SE 네거티브 요소로 복제되어 16mm 원본의 마모를 줄이고 색상 간의 등록 오류를 제거했다. 그 후 실사 SE 네거티브는 다른 테크니컬러 프로세스에 들어가 SE 애니메이션 및 3원색 스튜디오 실사와 통합되어 필요한 경우 결합된 결과를 생성했다.

3. 2. 3. 할리우드의 확신 (1935-1939)

1929년1930년할리우드는 상당수의 테크니컬러 영화를 제작했고, 많은 이들은 머지않아 영화계가 컬러영화 제작만을 고집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1931년 대공황이 영화 산업에 타격을 주면서 제작 비용을 줄여야 했다. 1932년 컬러영화 제작 수는 뚝 떨어졌지만, 버튼 웨스콧과 조셉 A. 발은 3색 컬러 영화 카메라 제작을 끝마쳤다. 이전의 갑갑한 적녹 스펙트럼 대신 테크니컬러는 다채로운 색으로 스튜디오를 물들일 준비가 되었다. 새 카메라는 흑백 필름 3개를 동시에 노출했는데, 각각의 필름은 다양한 색으로 스펙트럼을 이뤘다. 이 새로운 제작 기법은 1955년 마지막 작품까지 이어진다.

테크니컬러는 대부분의 총천연색 영화와 달리 색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빼서 섞는 이점을 가졌다. 키네마컬러나 크로노크롬처럼 색을 더하는 방식은 특수 투사 장비가 필요했지만, 테크니컬러는 그렇지 않았다. 듀페이컬러와 달리 투사된 이미지는 빛을 흡수하거나 모자이크가 두드러진 필터 레이어를 사용하지 않아 빛이 침침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색을 빼는 방식임에도 화질과 프린팅 속도의 균형을 잡았다는 것이다.

테크니컬러 4세대 카메라는 미첼 카메라 코퍼레이션이 테크니컬러의 상세 사양에 맞춰 만들었다. 내부에는 컬러 필터, 분사 큐브 프리즘 안에서 표면을 분사하도록 만든 빔 분사기, 흑백 필름 3통(그래서 "3색"이라 일컬음)이 들어 있었다. 빔 분사기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3분의 1만을 반사기와 녹색 필터를 통과시켜 하나의 필름에 상을 맺어 스펙트럼에 녹색 화면만을 기록했다. 나머지 빛의 3분의 2는 거울에 반사되어 자홍색 필터를 통과했고, 그 결과 녹색을 흡수하고 적색과 청색 스펙트럼만 빠져나왔다. 이 필터 뒤에는 유화제가 다른 필름 2줄 표면을 서로 맞붙게 도왔다. 필름 앞면은 적색방지 정색이라 푸른빛만 기록한다. 유화제 표면에 적색-주황 코팅이 되어 반대편 적색에 민감한 전정색(많은 색을 사용한) 유화제에 푸른빛 맺힘을 막아 적색만 스펙트럼에 기록했다.

네거티브 필름 3개는 각각 특수 매트릭스 필름에 프린트한다. 제작을 거치면 매트릭스 필름 3개를 차례로 표현하는 젤라틴의 두드러짐은 미세하지만, 각 필름의 가장 두꺼운(그리고 가장 흡수를 많이 한) 부분은 어둡고 얇은 부분은 밝다. 매트릭스 필름은 각각 염료에 담겨 네거티브 필름에 기록된 빛깔(청록은 적색, 자홍색은 녹색, 노란색은 청색. 테크니컬 컬러 프린팅 토론은 CMYK 감산혼합 참조)을 흡수한다.

미리 테두리선을 인쇄하고 사운드트랙을 입힌 흑백필름은 처음에 매염하고, 그 다음 3색이 입혀진 매트릭스 필름을 각각 가져다 붙여 컬러 이미지를 만들었다. 각각의 염료는 젤라틴에 담겨 흡수되어 스트립에 코팅되었는데, 단순히 표면에 붙이는 것이 아니어서 "염료 흡수"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기계적인 프린팅 기법으로서 평판인쇄나 석판인쇄[62]와는 비교하기 어렵고 사진술이라 부를 수 없는데, 프린팅할 때 빛 노출에 의한 화학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4세대 필름 초기에는 미리 프린트된 필름의 절반이 녹색으로 칠해진 흑백 필름이었고, 이른바 키(Key) 혹은 K 레코드라 불렀다. 필름 제작 기법은 대개 사진 속 뾰족한 부분 주위로 다른 색들이 뒤범벅되어 비현실적이었다. (프린징 현상라고도 불림) 검은색을 덧칠하면 최종 프린트에 대비가 심해지고 비현실적인 부분을 가렸다. 하지만 대체로 결과물은 다채로운 색이 어느 정도 나타났다. 1944년 테크니컬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제작 기법을 개발했고, K 레코드는 이로써 끝이 났다.

스튜디오들은 여건이 마련되면 3색 테크니컬러를 적용하여 라이브액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를 원했다. 3색 테크니컬러 촬영에는 매우 밝은 빛이 필요해 영화의 빠르기는 ASA 5의 속도로 끔찍하게 느려졌다. 이 때문에 카메라를 다수 사용하고 3색 시네마토그라피를 많이 접하지 못한 탓에 스튜디오 회의실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1934년 9월 잡지 《포춘》 기사에 따르면, 회사 설립부터 10년 동안 수익이 두 배밖에 되지 않고 아직 대박을 치지도 않았음에도 테크니컬러 회사 투자자들이 기뻐했다. 이는 칼머스의 심복들이 회사 주식의 절반을 통제하여 은행이나 적대적인 투자자 누구에게도 경영권을 양도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30년대 중반 MGM을 제외한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가 금융 침체를 겪었고, 테크니컬러는 촬영 기법의 폭을 넓히며 암울한 업계에 한 줄기 빛이 되었다.

1933년 11월, 테크니컬러의 허버트 칼머스와 RKO앤 하딩이 주연을 맡은 3색 테크니컬러 영화 《바깥 세상》(The World Outside)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65]

처음 선보인 라이브액션 3색 테크니컬러 작품은 MGM의 《고양이와 허수아비》로, 1934년 2월 16일에 개봉한 뮤지컬 작품이다. 1934년 7월 1일에는 MGM이 《헐리우드 파티》를 열었고, 월트 디즈니에서 제공한 테크니컬러 애니메이션 핫초콜릿 군인(Hot Choc-late Soldiers)이 포함되었다. 같은 해 7월 28일 워너브라더스는 《서비스》(Service with a Smile)를, 9월 22일에는 《굿모닝 이브》(Good Morning, Eve!)를 개봉했는데, 레온 에롤 주연의 3색 테크니컬러 코미디 단편 영화였다. 테크니컬러 투자자들이 설립한 영화사 파이오니어 픽처스는 3색 테크니컬러 라이브액션 단편 영화 《라차쿠카라차》를 1934년 8월 31일에 개봉했다. 라차쿠카라차는 2개의 필름을 사용한 뮤지컬 코미디로 65만달러가 들었는데, 이는 2개의 필름을 사용한 흑백영화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RKO가 개봉을 맡았으며, 이 단편은 새로운 테크니컬러를 소개하고 라이브액션 필름의 가능성을 열어준 성공작이었다. 3색 테크니컬러는 1934년에 영화 시리즈물 제작에도 기여했는데, 조지 알리스 주연의 《로스차일드 가문》 마지막 시리즈와 에디 칸터 주연의 《키드밀리언스》도 이에 해당한다.

파이오니어와 RKO의 합작인 《베키샤프》(1935년)는 3색 테크니컬러를 통틀어 최초의 실사 영화 작품이다. 처음에는 3색 테크니컬러가 실내 촬영용이었으나, 1936년 《더 트레일 오브 론섬 파인》이 처음으로 로케이션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년)는 1937년 12월에 개봉되어 1938년 최고 흥행작이 되면서 제작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3색 테크니컬러 작품은 특별 제작이 필요해 무겁고 덩치가 큰 장비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스튜디오는 테크니컬러 카메라를 구매하지 않고 대여했으며, 카메라 전문가와 "색 입히기" 담당 감독이 제작 가능한 세트장, 의상, 화장을 정했다. 초기 제작한 다수의 작품은 허버트의 전처이자 회사 경영자인 나탈리 칼머스가 관리했다. 영화감독들은 그녀와 일하기 어려워했는데, 빈센트 미넬리는 칼머스 부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66] 영국계 법인들은 영화 제작자의 명성에 먹칠하지 않으려 "색 조절" 작업을 강조했지만, 칼머스의 전처는 "테크니컬러 감독"이라는 명칭을 더 선호했다. 그녀와 일하는 "협력자" 중 다수는 자격 증명이 없었고, 그녀가 은퇴한 후에는 영국계 법인으로 옮겨갔는데, 레오나르드 도스(Leonard Doss)가 폭스의 컬러 컨설턴트(Fox's DeLuxe Color)를 한 것이 그 예이다.

이미지를 분할하는 과정은 필름에 닿는 빛의 양을 줄였다. 여러 필름통에서 필름이 돌아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지자 초기 테크니컬러 작품들은 흑백 영화보다 훨씬 많은 빛이 필요했다. 《오즈의 마법사》 필름셋이 스튜디오의 뜨거운 빛을 계속 쬐면 기온이 38°C를 넘어, 스태프들은 물을 많이 마셔야 했다. 몇몇 배우와 여배우는 조명도가 높아 눈을 영영 다칠 염려가 있다며 항의하기도 했다.[67]

추가 조명, 3배나 많은 필름, 프린트에 염료를 물들이는 비용까지, 테크니컬러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했다.

3. 2. 4. 한계와 제작의 어려움 (1939-1950년대)

테크니컬러 4세대 카메라는 미첼 카메라 코퍼레이션이 테크니컬러의 상세 사양에 맞춰 제작했으며, 내부에 컬러 필터, 분사 큐브 프리즘 안에서 표면을 분사하도록 만든 빔 분사기, 흑백 필름 3통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3색"이라 일컬었다. 빔 분사기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3분의 1만을 반사기와 녹색 필터를 통과하면 하나의 필름에 상을 맺어 스펙트럼에 녹색 화면만을 기록했다. 나머지 빛의 3분의 2는 거울에 반사되어 자홍색 필터를 통과하였고 그 결과로 녹색을 흡수하고 적색과 청색 스펙트럼만 빠져나오게 한다. 이 필터 뒤에는 유화제가 다른 필름 2줄 표면을 서로 맞붙게 도왔다. 필름의 앞면은 적색방지 정색이라 푸른빛만 기록한다. 유화제 표면에 적색-주황 코팅이 되어 반대편 적색에 민감한 전정색(많은 색을 사용한) 유화제에 푸른빛 맺힘을 막아 적색만 스펙트럼에 기록한다.[62]

네거티브 필름 3개는 각각 특수 매트릭스 필름에 프린트한다. 제작을 거치고 나면 매트릭스 필름 3개를 차례로 표현하는 젤라틴의 두드러짐은 미세하지만, 각 필름의 가장 두꺼운 (그리고 가장 흡수를 많이 한) 부분은 어둡고 얇은 부분은 밝다. 매트릭스 필름은 각각 염료에 담겨 네거티브 필름에 기록된 빛깔 (청록은 적색, 자홍색은 녹색, 노란색은 청색에 담기는데 테크니컬러 프린팅 토론을 보려면 CMYK 감산혼합을 참조하라)을 흡수한다.[62]

미리 테두리선을 인쇄하고 사운드트랙이 입혀진 흑백 필름은 처음에 매염하고 그 다음 3색이 입혀진 매트릭스 필름을 각각 가져다 붙이고 컬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각각의 염료는 젤라틴에 담고 흡수하여 스트립에 코팅했는데 단순히 표면에 붙이는 것이 아니어서 "염료 흡수"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기계적인 프린팅 기법으로서 평판인쇄나 석판인쇄[62]와는 비교가 애매하고 사진술이라 부를 수 없는데, 프린팅할 때 빛 노출에 의한 화학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4세대 필름 초기에는 미리 프린트된 필름의 절반이 녹색으로 칠해진 흑백 필름이었고 이른바 키(Key) 혹은 K 레코드라 일컬었다. 필름 제작 기법은 대게 사진 속 뾰족한 부분 주위로 다른 색들로 뒤범벅되어 비현실적이었다. 또한 프린징 현상라고도 불린다. 검은색이 덧칠해지면 최종 프린트에 대비가 심해지고 비현실적인 부분을 가린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결과물은 다채로운 색이 어느 정도 나타난다. 1944년에 테크니컬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제작 기법을 개발했고 K 레코드는 이로써 끝이 난다.[62]

영화 평론가 매니 파버는 1943년 테크니컬러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영화가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테크니컬러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테크니컬러로 제작된 영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깊이 있는 내용은 항상 밝고 유쾌하며 실체가 없는 가면과 같은 색상의 축제 분위기와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이 영화의 경직성과 융통성 부족이 테크니컬러의 결과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

> — ''The New Republic'', 1944년 7월 19일.[23]

테크니컬러의 3원색 공정의 주요 단점 중 하나는 카메라에 특수하고 부피가 크며 대용량의 방음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영화 스튜디오는 테크니컬러 카메라를 구매할 수 없었고, 카메라 기술자와 세트, 의상, 분장이 시스템의 한계를 넘지 않도록 보장하는 "색상 감독"과 함께 제작을 위해 임대해야 했다. 많은 초기 제작에서 감독은 허버트 칼머스의 전 부인이자 회사의 공동 소유주였던 나탈리 칼머스였다. 감독들은 그녀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빈센트 미넬리는 "칼머스 부인 눈에는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24]

칼머스는 "테크니컬러 감독"이라는 직함을 선호했지만, 영국 라이선스 업체들은 영화 감독의 직함을 "희석"시키지 않기 위해 일반적으로 "색상 관리"를 고집했다. 그녀는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일했으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크레딧에 오르지 못했다. 그녀가 은퇴한 후, 이러한 협력자들은 라이선스 업체로 옮겨졌고, 예를 들어 레너드 도스는 폭스사로 가서 폭스사의 딜럭스 컬러에 대해 동일한 기능을 수행했다.[62]

이미지를 분할하는 과정은 필름에 도달하는 빛의 양을 감소시켰다. 사용된 필름의 필름 속도가 상당히 느렸기 때문에 초기 테크니컬러 제작은 흑백 제작보다 더 많은 조명을 필요로 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촬영장에서 뜨거운 스튜디오 조명으로 인해 온도가 약 37.8°C를 자주 초과했으며, 더 두꺼운 의상을 입은 일부 캐릭터는 많은 양의 물을 섭취해야 했다고 한다. 일부 배우들은 높은 수준의 탄소 아크 조명과 그 고도로 작용하는 자외선으로 인해 영구적인 눈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25]

추가 조명, 3배의 필름 양, 염료 이전 투사 인쇄 제작 비용으로 인해 테크니컬러는 높은 영화 예산을 요구했다.

3. 2. 5. 이스트먼컬러의 도입과 쇠퇴 (1950년대-1970년대)

이스트먼 코닥은 1950년에 최초로 35mm 컬러 영화 네거티브 필름을 도입했다. 이스트만컬러를 사용한 최초의 상업 장편 영화는 1951년 12월에 개봉된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 다큐멘터리 《로얄져니》였다.[68] 1952년, 이스트만 코닥은 고품질 컬러 인쇄 필름을 도입하여 스튜디오가 값비싼 염료 함침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표준 사진 프로세스를 통해 인쇄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68] 같은 해, 테크니컬러 연구소는 염료 전달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이스트만컬러 네거티브뿐만 아니라 Ansco 및 DuPont 컬러 필름과 같은 다른 재고에서도 트리플 매트릭스와 함침 인쇄물을 직접 얻었다.

1954년에는 대형의 비스타비전, Todd-AO, 울트라 파나비전 70, 테크니라마 등에서도 고화질의 아름다운 프린트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유니버설에서 1954년에 촬영하고 제인 러셀과 제프 챈들러가 출연한 《폭스파이어》(1955)는 미국에서 테크니컬러 3색 카메라로 촬영한 마지막 실사 작품이었다.

1953년 3월, 테크니컬러는 할리우드 3D 열풍을 이용하여 입체 영화용 입체경 카메라를 공개했다. 이 장비는 총 6개의 필름 스트립(왼쪽 눈용 3개, 오른쪽 눈용 3개)을 한 번에 실행하는 두 개의 3 스트립 카메라를 사용했다.[69] 이 카메라 설정으로 촬영된 영화는 《탕헤르로의 비행》(1953)과 마틴과 루이스 코미디 《머니 프롬 홈》(1953) 단 두 편뿐이었다.

테크니컬러 프로세스의 종말이 분명해짐에 따라, 회사는 1957년에 3색 카메라를 와이드 스크린 사진에 맞게 재활용하고 테크니라마 프로세스를 도입했다.[52]

1960년대 중반부터 보도 등에서 컬러 필름의 신속한 프린트가 필요하게 되었고, 감도도 상승하면서 다이 트랜스퍼 방식은 미국에서 채택되지 않게 되었다. 1974년의 《대부 2》를 마지막 작품으로, 테크니컬러사는 다이 트랜스퍼 방식의 프린트 시설을 폐쇄했다. 기재는 중국에 매각되었지만, 품질 유지가 어려워 프린트 제작은 1993년에 중단되었다.

1975년, 미국 염료 전달 공장이 폐쇄되었고 테크니컬러는 이스트만 전용 프로세서가 되었다. 1977년, 로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염료 전달 프린터는 다리오 아르젠토가 그의 공포 영화 《서스페리아》의 인쇄물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70] 1980년, 이탈리아 테크니컬러 공장은 염료 전달 인쇄를 중단했다.

1978년, 영국 라인은 폐쇄되어 장비를 중국으로 배송한 베이징 영화 및 비디오 연구소에 매각되었다. 장이머우의 《국두》(1990)와 리처드 W. 헤인스가 감독한 《스페이스 어벤저》(1989)와 같은 중국과 홍콩의 많은 영화가 테크니컬러 염료 전달 프로세스로 제작되었다.[71] 베이징 라인은 열악한 처리 과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1993년에 폐쇄되었다.

4. 1995년 이후

MacAndrews & Forbes는 1982년 테크니컬러, Inc.를 1억달러에 인수[35]한 후, 1988년 영국 회사인 칼튼 커뮤니케이션스 PLC에 7.8억달러에 매각했다.[36] 테크니컬러, Inc.는 2000년에 필름 처리 회사인 CFI를 인수했다.[37] 2001년부터 테크니컬러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전자 및 미디어 대기업인 Thomson Multimedia SA의 일부가 되었다.[38] 2010년 2월 1일, Thomson 그룹은 미국 영화 기술 자회사 이름을 따라 회사 전체를 "테크니컬러 SA"로 변경했다.[39]

2020년 6월 24일, 테크니컬러는 코로나19의 영향을 이유로 미국에서 챕터 15 파산을 신청했다.[40]

2021년 5월, 테크니컬러의 후반 작업 부서는 Streamland Media에 인수되었다.[41] 2022년 9월 27일, IoT, 광대역 및 비디오 솔루션 사업을 유지하는 테크니컬러 SA는 Vantiva로 리브랜딩되었으며, VFX, 모션 그래픽 및 애니메이션 사업은 테크니컬러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며, 이 두 회사는 공개적으로 독립적인 회사로 분사되었다.[42][43]

4. 1. 염료 흡수 제작의 재도입 (1997-2002)

1997년, 테크니컬러는 일반 필름 프린팅에 염료 흡수 방식을 다시 도입했다. 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프린팅 방식을 개량한 것으로,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창》, 《화니 걸》,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와 같이 조건이 맞는 영화의 복원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72][31]

염료 흡수 제작 방식은 제작비가 높은 헐리우드 현대 작품에도 사용되었는데, 《불워스》, 《씬 레드 라인》, 《고질라》, 《토이 스토리 2》, 《진주만》 등이 이에 해당한다.[71][72][32][31]

테크니컬러는 톰슨에 인수된 후인 2002년에 염료 흡수 제작을 중단했다.[72][31]

4. 2. 기록 보관에 쓰이는 염료 흡수 방식 테크니컬러

1990년대 후반까지도 염료 전사 방식은 영화 보존에 여전히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염료 전사 방식은 안정적인 산성 염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테크니컬러 인쇄물은 보존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염료 전사 시대의 테크니컬러 인쇄물은 적절한 보관만 한다면 수십 년 동안 원래 색상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는 반면, 1983년 이전에 제작된 이스트만컬러 필름은 덜 안정적인 광화학 염료로 인해 자외선 및 고온 다습한 조건에 노출된 후 색이 바랠 수 있다. 일부 인쇄물에서는 퇴색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불과 5~10년 만에 인쇄물의 색상이 갈색 적색으로 변색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3-스트립 카메라 네거티브는 모두 은 기반 흑백 필름으로 제작되었으며, 적절한 취급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이는 가정 시청용으로 비디오 형식으로 변환된 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중요성이 커졌다. 비디오 전송에 대한 최상의 색상 품질 관리는 테크니컬러 네거티브에서 광학적으로 인쇄하거나, 3-스트립 흑백 네거티브를 디지털 방식으로 재조합하여 저대비 필름에 인쇄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3-스트립 보존 네거티브와 ''스타워즈''의 염료 전사 인쇄물을 제작했다. 이 "보호"본은 1997년 스페셜 에디션 ''스타워즈''를 제작할 때 색상 값을 참조하는 데 사용되었다.[73]

테크니컬러 네거티브로 인해 발생한 한 가지 문제는 한 스트립에서 다른 스트립으로의 수축률이다. 3-스트립 네거티브는 세 개의 롤로 촬영되기 때문에 보관 조건에 따라 수축률이 달라진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을 통해 수축된 네거티브의 크기를 디지털 방식으로 조정하여 다른 네거티브와 일치시킴으로써 네거티브를 정확하게 재정렬할 수 있다. G, 즉 녹색 기록은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해상도를 가진 기록이므로 참조로 사용된다.

또한 카메라 렌즈와 관련하여 올바른 "방향"(에멀젼 위치)을 가진 기록이다. 수축 및 재정렬(크기 조정)은 연속 노출(단일 롤 RGB) 테크니컬러 카메라 네거티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보존 요소(미세 입자 양화)가 연속 노출이었다면 3-스트립 타이틀에서 제거할 수 있었지만, 이 경우 보존 요소는 3,000피트 또는 6,000피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 3-스트립 합성 카메라 및 보존 요소는 1,000피트 또는 2,000피트이다(그러나 해당 길이의 세 개의 기록이 필요하다).

현대적인 재현 과정에서 해결해야 했던 한 가지 문제는 세 개의 필름 스트립의 콘트라스트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테크니컬러 인쇄물에서 (예를 들어) 영화적 페이드가 이미지가 페이드될 때 이미지의 색상 균형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준다.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송은 서로 다른 색상 균형을 수정하려고 시도했으며 대체로 성공적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인공물이 남아 있어 이미지의 채도가 높은 부분에서 잘못된 색상이 나타날 수 있다. 화염의 이미지가 샷에 포함된 경우 예상되는 주황/노란색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종종 녹색으로 묘사된다.

4. 3. 오늘날의 테크니컬러

테크니컬러 회사는 매우 성공적인 필름 처리 회사로 남아 있었으며, 이후 비디오 및 오디오 복제 (CD, VHS, DVD 제조) 및 디지털 비디오 프로세스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MacAndrews & Forbes는 1982년 테크니컬러, Inc.를 1억달러에 인수[35]한 후, 1988년 영국 회사인 칼튼 커뮤니케이션스 PLC에 7.8억달러에 매각했다.[36] 테크니컬러, Inc.는 2000년에 필름 처리 회사인 CFI를 인수했다.[37] 2001년부터 테크니컬러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전자 및 미디어 대기업인 Thomson Multimedia SA의 일부가 되었다.[38] 2010년 2월 1일, Thomson 그룹은 미국 영화 기술 자회사 이름을 따라 회사 전체를 "테크니컬러 SA"로 변경했다.[39]

2020년 6월 24일, 테크니컬러는 COVID-19의 영향을 이유로 미국에서 챕터 15 파산을 신청했다.[40]

2021년 5월, 테크니컬러의 후반 작업 부서는 Streamland Media에 인수되었다.[41] 2022년 9월 27일, IoT, 광대역 및 비디오 솔루션 사업을 유지하는 테크니컬러 SA는 Vantiva로 리브랜딩되었으며, VFX, 모션 그래픽 및 애니메이션 사업은 테크니컬러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며, 이 두 회사는 공개적으로 독립적인 회사로 분사되었다.[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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