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RMS 올림픽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RMS 올림픽은 1911년 처녀 항해를 시작한 올림픽급 여객선으로, 화이트 스타 라인 소속이었다. 이 선박은 큐나드 라인에 대항하기 위해 크기와 럭셔리함을 강조하여 건조되었으며, 자매선인 RMS 타이타닉과 거의 동일한 설계를 기반으로 했다.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수송선으로 사용되었으며, 1935년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10년 선박 - 이탈리아 전함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 알리기에리는 3연장 포탑 설계를 채택한 이탈리아 최초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 해군의 주력함으로 활약하다 1928년 해체되었다.
  • 영국의 배 - RMS 타이타닉
    RMS 타이타닉은 1912년 처녀 항해 중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호화 여객선으로, 당시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며 2,200명 이상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뉴욕으로 향하다 침몰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 영국의 배 - HMS 비글
    HMS 비글은 영국 해군의 브리그 슬루프함으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 연구에 기여한 두 번째 항해를 포함하여 세 번의 항해에 참여했으며, 해안 감시선으로 개조 후 해체되었다.
RMS 올림픽 - [배(Ship)]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RMS 올림픽, 뉴욕 도착 (1911년 6월 21일)
RMS 올림픽, 1911년 6월 21일 뉴욕 도착 (처녀 항해)
선박 이름RMS 올림픽
선박 종류객선 (오션 라이너)
선급올림픽급
선적항리버풀
항로사우샘프턴 – 셰르부르앙코탕탱 – 퀸스타운 – 뉴욕
무선 통신 부호 (1933년까지)MKC
무선 통신 부호 (1930년 이후)GLSQ
선박 이력
기국영국
선박 소유주화이트 스타 라인 (1911년~1934년)
큐나드 화이트스타 라인 (1934년~1935년)
선박 운영자화이트 스타 라인 (1911년~1934년)
큐나드 화이트스타 라인 (1934년~1935년)
발주1907년
건조해럴드 앤 울프, 벨파스트
건조 비용750만 미국 달러
야드 번호400
기공1908년 12월 16일
진수1910년 10월 20일
완공1911년 5월 31일
취역1911년 6월 14일
퇴역1935년 4월 12일
식별 번호영국 공식 번호 131346
호출 부호 HSRP (1933년까지)
호출 부호 GLSQ (1930년 이후)
호출 부호 GLSQ
최후1935년~1937년 해체
선박 제원
톤수45,324 총톤수; 1913년 이후 46,358; 1920년 이후 46,439
배수량52,067 톤
길이269.0 m (882 ft 9 in)
28.2 m (92 ft 9 in)
높이53.4 m (용골부터 굴뚝 상단까지)
흘수10.5 m (34 ft 7 in)
갑판9개 (승객용 8개, 승무원용 1개)
동력24개의 양단형 (6개 화로) 및 5개의 단단형 (3개 화로) 스카치 보일러 (원래 석탄 연소, 1919년에 석유 연소로 전환). 2개의 4기통 3단 팽창 왕복 엔진 (각각 15,000마력, 외측 날개 프로펠러용, 분당 85회전). 1개의 저압 터빈 (16,000마력). 총 46,000마력 (최고 속도에서 59,000마력 가능).
추진2개의 청동 3날개 측면 프로펠러. 1개의 청동 4날개 중앙 프로펠러.
속도21 노트 (운항 속도, 1911년)
23 노트 (운항 속도, 1933년)
24.2 노트 (최고 속도)
수용량승객 2,435명
승무원950명

2. 배경 및 건조

건조 중인 ''올림픽''. Arrol Gantry가 배 위로 높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타이타닉의 용골이 왼쪽에 보인다.


''올림픽''이 회색으로 칠해지고 진수될 준비를 마친 모습(1910년경). 건조 중인 타이타닉이 왼쪽에 보인다.


1910년 10월 20일 ''올림픽'' 진수


올림픽급 여객선 건조 계획은 1907년 중반, 화이트 스타 라인의 회장 J. 브루스 이스메이와 모회사 International Mercantile Marine Co.의 미국 금융가 J. 피어폰트 모건의 논의에서 시작되었다.[3] 당시 화이트 스타 라인은 큐나드 라인루시타니아모리타니아, 그리고 독일 해운사들로부터 큰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3] 이스메이는 속도보다는 크기와 경제성에 경쟁력을 두는 것을 선호하여, 이전보다 더 크고 편안하며 호화로운 새로운 등급의 여객선을 제안했다.

1867년부터 화이트 스타 라인과 협력해 온 Harland & Wolff 조선소가 선박 설계를 맡았다.[4] 설계는 윌리엄 피리 경, 토마스 앤드루스, 에드워드 와일딩, Alexander Carlisle 등이 감독했다.[5] 1908년 7월 29일, 해럴드 앤 울프는 브루스 이스메이에게 도면을 제시했고, 이스메이는 설계를 승인하고 이틀 후 건설 시작을 승인했다.[5]

''올림픽''의 용골은 1908년 12월 16일에 기공되었고,[5] 1910년 10월 20일에 진수되었다.[7] 올림픽은 세 개의 프로펠러로 추진되었다. 두 개의 3엽 윙 프로펠러는 두 개의 삼단 팽창 엔진에 의해 구동되었고, 4엽 중앙 프로펠러는 삼단 팽창 엔진에서 배출되는 회수된 증기를 사용하는 터빈에 의해 구동되었다.[11]

타이타닉은 올림픽과 거의 동시기에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1911년9월 20일에는 영국 해군의 에드거급 방호순양함 호크와 충돌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2. 1. 타이타닉과의 관계



타이타닉올림픽은 거의 동일한 핵심 설계를 기반으로 건조되었다. 올림픽의 운항 경험을 바탕으로 타이타닉에는 몇 가지 변경 사항이 적용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타이타닉의 A 데크 산책로 앞쪽 절반이 강철 스크린으로 덮여 있었던 반면, 올림픽의 산책 데크는 전체 길이를 따라 열려 있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타이타닉의 총톤수는 올림픽보다 증가하여 세계 최대 선박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21]

올림픽의 B 데크 1등석 산책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아, 토마스 앤드류스는 타이타닉에서 이 공간을 없애고 실내 욕실이 딸린 더 넓은 선실을 만들었다. 또한, 타이타닉에는 카페 파리지앵과 확장된 레스토랑이 추가되었고, B 데크의 일부 시설이 변경되었다.

타이타닉의 침몰 이후, 올림픽은 대대적인 개조를 거쳤다. 선체 측면을 이중으로 하고 구명 보트 수를 늘리는 등 안전을 강화했다. 방수 구획을 추가하여 총 17개로 늘리고, 5개의 방수 격벽을 B 데크까지 올렸다.[22]

일각에서는 타이타닉과 올림픽이 서로 바뀌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3. 주요 특징

''올림픽''호는 호화로운 여객선으로 설계되었으며, 타이타닉호와 거의 동일한 시설, 설비, 갑판 배치 및 기술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14] 일등석 승객들은 개인 욕실이 갖춰진 호화로운 객실을 이용하거나, 크고 호화로운 식당 또는 좀 더 아늑한 A La Carte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 있었다. ''올림픽''급 선박만을 위해 지어진 화려한 그랜드 계단이 있었으며, E 데크까지 계단 뒤로 내려가는 3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15] 조지 왕조 양식의 흡연실, 야자수로 장식된 베란다 카페,[16] 수영장, 터키식 목욕탕,[17] 체육관,[18] 그리고 식사 및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여러 장소가 있었다.

이등석 시설에는 흡연실, 도서관, 넓은 식당 및 엘리베이터가 포함되었다.[53][19]

삼등석 승객들은 다른 배에 비해 비교적 쾌적한 숙박 시설을 이용했다. 당시 대부분의 배에서 제공하는 대형 기숙사 대신, ''올림픽''호의 삼등석 승객들은 2~10개의 침대가 있는 객실에서 여행했다. 삼등석 시설에는 흡연실, 공용 공간 및 식당이 포함되었다.[53][19]

''올림픽''호는 당시 다른 배들보다 더 깨끗하고 세련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Harland and Wolff는 부피가 큰 외부 통풍구를 설치하는 대신, 전기 팬이 있는 작은 통풍구를 사용했으며, 추가 환기를 위해 "가짜" 네 번째 굴뚝을 사용했다. 동력 장치의 경우 왕복 엔진과 중앙 저압 증기 터빈을 결합하여 사용했다. 화이트 스타는 이 엔진 구성을 이전 여객선에서 성공적으로 테스트했으며, 팽창 엔진 또는 터빈 단독보다 경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호는 처녀 항해에서 평균 속도 21.7노트로 24시간당 650ton의 석탄을 소비했는데, 이는 루시타니아호와 모리타니아호의 24시간당 1000ton의 석탄 소비량과 비교된다.[20]

4. 운항 경력

1911년 5월 29일, 올림픽호는 해상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23] 6월 14일 사우샘프턴에서 뉴욕으로 처녀 항해를 시작했는데,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 지휘하고 설계자 토마스 앤드루스도 동행했다.[30]

올림픽호의 처녀 항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배이자 새로운 급의 슈퍼라이너 중 첫 번째였기 때문에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뉴욕에 도착한 후 올림픽호는 일반에 공개되었고 8,000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했으며, 10,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첫 번째 귀항을 위해 뉴욕 항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32]

4. 1. 초기 사고

1911년 9월 20일, 올림픽호는 다섯 번째 항해에서 영국 순양함 HMS 호크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다.[34] 솔렌트 해협에서 두 배가 나란히 항해하던 중, 올림픽호가 우현으로 방향을 틀자 호크호의 지휘관은 당황했고, 충분한 회피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43] 그 결과, 충각으로 설계된 호크호의 선수가 올림픽호의 선미 근처 우현 측면에 충돌하여[35] 선체에 수선 위와 아래로 두 개의 큰 구멍을 냈고, 두 개의 방수 구획이 침수되었으며 프로펠러 샤프트가 비틀렸다. 올림픽호는 선미 쪽으로 약간 가라앉았지만,[36] 자체 동력으로 사우스햄튼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상자는 없었다.[14][37]

''올림픽호''(왼쪽)와 ''호크호''(오른쪽)의 충돌 피해를 기록한 이미지(다른 모습)


이후 조사에서 영국 해군은 올림픽호의 큰 배수량이 호크호를 끌어당기는 흡입력을 생성했다며 올림픽호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비난했다.[41][42] 이 사고로 올림픽호의 운영사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법적 분쟁 결과 올림픽호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 났다.[43][44][45] 그러나 이 사고는 올림픽급 선박의 설계가 견고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43]

올림픽호는 수리를 위해 벨파스트로 돌아갔고, 수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타이타닉호의 프로펠러 샤프트를 사용해야 했다.[47] 1912년 2월 24일에는 프로펠러 날개 하나를 잃어 다시 수리를 받아야 했다.[46][48]

4. 2. 타이타닉 침몰 사고

1912년 4월 14일, 허버트 제임스 해독 선장의 지휘 아래 뉴욕에서 돌아오던 ''올림픽''호는 무선 통신사 어니스트 제임스 무어를 통해 ''타이타닉''호로부터 조난 신호를 수신했다. 당시 ''타이타닉''호는 ''올림픽''호에서 약 505마일(813 km) 서남서쪽에 있었다.[49][50] 해독 선장은 즉시 새로운 항로를 계산하고, 배의 엔진을 최고 출력으로 설정하여 구조를 위해 전속력으로 항해했다.

''올림픽''호가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위치에서 약 100해리(190 km) 떨어진 지점에 접근했을 때, 아서 로스트론 선장의 카르파티아호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로스트론 선장은 이미 사고 현장에 도착해 있었으며, "모든 구명정의 생존자를 확인했습니다. 약 675명의 생존자를 구조했으며, 타이타닉은 오전 2시 20분경에 침몰했습니다."라고 알렸다.[50] 그는 ''올림픽''호에게 화이트 스타 라인과 큐나드 라인에 이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뉴욕 항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50] 이후, ''올림픽''호의 무선실은 구조 소식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50]

''올림픽''호는 생존자들을 태우겠다고 제안했지만, 조셉 브루스 이스메이의 지시에 따라 로스트론 선장은 거절했다.[51] 이스메이는 생존자들이 ''타이타닉''호와 거의 똑같이 생긴 배에 타는 것이 정신적 고통을 줄 것을 우려했다.[52] 결국 ''올림픽''호는 4월 21일에 사우스햄튼으로 돌아왔으며, 추모의 의미로 모든 공연을 취소했다.[53][54]

이후 ''올림픽''호는 미국 및 영국의 타이타닉 침몰 사고 조사에 적극 협조했다.[55] 양측 조사 위원회는 ''올림픽''호의 구명정, 방수문, 격벽 등 ''타이타닉''호와 동일한 장비를 점검했다.[55] 1912년 5월에는 영국 측 조사를 위해 해상 테스트가 수행되었는데, 이는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발견하고 회전하는 데 걸린 시간을 추정하기 위한 것이었다.[56]

4. 3. 1912년 파업

파업 중인 스토커들


''올림픽''호의 새로운 구명정, 설치 준비 완료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이후, ''올림픽''호의 승무원들은 구명정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파업을 벌였다. ''올림픽''호는 ''타이타닉''호와 마찬가지로 승선자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구명정을 싣지 않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서둘러 추가적으로 중고 접이식 구명정을 장착했다.[54]

1912년 4월 말, 사우샘프턴에서 뉴욕으로 출항하려던 찰나, 284명의 화부들이 선박의 새로운 접이식 구명정이 항해에 적합하지 않다고 우려하여 파업을 시작했다.[57][58] 화이트 스타 라인은 사우샘프턴과 리버풀에서 100여 명의 비노조 선원을 급히 고용하여 대체했다.

수송선에서 옮겨진 40척의 접이식 구명정 중 많은 수가 썩어 있었고 펼쳐지지 않았다. 선원들은 화이트 스타 라인의 사우샘프턴 지점장에게 나무 구명정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점장은 무역 위원회 검사관으로부터 항해에 적합하다는 승인을 받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선원들은 항의하며 작업을 중단했다.[58]

4월 25일, 파업 참가자 대표단은 4척의 접이식 구명정 시험을 지켜보았는데, 그중 하나가 항해에 부적합했다. 대표단은 구명정이 교체되면 선원들에게 복귀를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업 참가자들은 배에 탑승한 비노조 파업 파괴자 선원들을 해고할 것을 요구했고, 화이트 스타 라인은 이를 거부했다. 54명의 선원은 비노조 선원들이 자격이 없고 위험하다며 함께 항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배를 떠났고, 이로 인해 예정된 출항이 취소되었다.[59]

결국 54명의 선원은 반란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1912년 5월 4일 포츠머스 치안 판사는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징역이나 벌금 없이 석방했다.[60] 화이트 스타 라인은 대중의 여론을 의식하여 파업 참가자들의 복귀를 허용했고, ''올림픽''호는 5월 15일에 출항했다.

4. 4.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올림픽호는 처음에는 징용을 면제받았다.[53][67] 1914년 10월 27일 아일랜드 북방에서 기뢰에 접촉한 영국의 전함 오데셔스 구조에 투입되었으나, 악천후로 인해 예인 밧줄이 끊어져 오데셔스는 침몰했다.[68]

1915년 9월, 올림픽호는 영국 해군성의 명령으로 군용 수송선으로 징용되었다.[69] 12 파운드포와 4.7 인치포를 장착하고, 1915년 9월 24일 수송선 2810호로 리버풀에서 갈리폴리 전역을 위해 그리스 무드로스로 부대를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동지중해에서 수송 임무를 계속했다.[70][71]

같은 시기, 건조 직후의 자매선 브리타닉호도 병원선으로 징용되었으나, 이듬해인 1916년 지중해에서 독일 제국 해군의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했다.[69]

1916년부터 1917년까지 올림픽호는 캐나다 정부의 관리 하에 핼리팩스에서 영국으로 부대를 수송했다.[72] 1917년에는 6인치 포를 장착하고, 대즐 위장 도색을 했다. 같은 해 미국이 참전하자 미국에서 영국으로 대량의 부대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1918년 5월 12일, 올림픽호는 독일 잠수함 U-103의 뇌격을 받았지만, 선장 Bertram Fox Hayes|버트럼 폭스 헤이즈영어는 어뢰를 피한 후 U-103을 향해 뱃머리를 돌려 몸통 박치기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U-103은 잠항 장치를 포함한 선체 구조가 파괴되어 침몰했다.[73]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상선이 군함을 격침시킨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다.[74] 헤이즈 선장은 이 공로로 영국 정부로부터 DSO를,[75]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명예 금메달을 수여받았다.[71]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올림픽호는 347000ton의 석탄을 소비하며 12만 명의 병력을 수송했고, 약 296118.56km를 항해했다.[77] 종전 후 여객선으로 복귀한 올림픽호는 점검 중 흘수선 아래에서 찌그러진 부분을 발견했는데, 이는 불발된 어뢰의 충돌 흔적으로 밝혀졌다.

4. 5. 전후

''올림픽'' 1923년 1등석 승객 명단


1922년 촬영된 ''올림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올림픽''은 민간 여객선으로 복귀하여 1920년대 동안 인기 있는 선박으로 활약했다. 1920년 6월 25일 여객 서비스에 복귀한 올림픽은 그해 한 번의 항해에서 2,249명의 승객을 수송했고, 1920년 하반기에 28,000명 이상의 승객을 수송했다.[82] 1921년에는 38,000명의 승객을 수송하며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마리 퀴리, 아서 코난 도일, 찰리 채플린, 메리 픽포드, 더글러스 페어뱅스, 그리고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에드워드 8세 등 유명 인사들이 ''올림픽''을 이용했다.[83] ''올림픽''이 타이타닉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에, 많은 승객들이 자매선의 항해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올림픽''에 탑승했다는 점도 인기의 한 요인이었다.[86] 1919년 8월 민간 운송 서비스 복구를 위해 벨파스트로 돌아온 올림픽은 내부 현대화와 보일러를 석탄 연소에서 기름 연소로 개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이로 인해 연료 보급 시간은 며칠에서 몇 시간으로 단축되었고, 엔진 RPM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기관실 인원도 크게 줄었다.[79]

1924년 3월 22일, ''올림픽''은 뉴욕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다. ''올림픽''이 뉴욕 항구에서 후진하던 중, 선미가 소형 여객선 포트 세인트 조지와 충돌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처음에는 ''올림픽''의 피해가 경미한 것으로 보였으나, 나중에 선미 기둥이 파손되어 전체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87]

1929년 사우샘프턴의 ''올림픽''


1920년대 미국의 이민법 변화로 입국이 허용되는 이민자 수가 크게 제한되었다.[90] 이로 인해 해운 회사들은 관광객 유치에 힘쓰게 되었고, ''올림픽''은 1927~28년 전환기에 1등석, 2등석, 3등석 외에 관광객 3등 객실 승객을 수용하도록 개조되었다.[53]

대공황은 해운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30년까지 대서양 항로에는 연간 약 100만 명의 승객이 있었지만, 1934년에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93] 또한, 더 크고 빠른 신형 여객선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이 심화되었다. ''올림픽''은 1930년까지 평균 1,000명의 승객을 태웠지만, 1932년에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1932년 말, 여객 수송 감소로 ''올림픽''은 4개월간의 점검 및 개조를 받았다. 1933년 3월 운항 재개 시 "새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엔진 성능도 향상되어 23knots를 초과하는 속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3년과 1934년 ''올림픽''은 처음으로 순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1934년의 ''올림픽'', 몇 달 후 충돌하여 침몰시킬 난터켓 등대선을 지나고 있다


1934년, ''올림픽''은 또다시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 짙은 안개 속에서 뉴욕으로 입항하던 ''올림픽''은 난터켓 등대선 ''LV-117''과 충돌하여 침몰시켰다.[94] 이 사고로 등대선 승무원 11명 중 7명이 사망했다.[96]

5. 퇴역 및 해체

1934년, 화이트 스타 라인은 영국 정부의 주도로 큐나드 라인과 합병하여 큐나드 화이트 스타를 설립했다.[98] 이 합병으로 퀸 메리와 퀸 엘리자베스의 건조 자금이 지원되었고, 이 두 척의 신규 선박이 취역하면 기존의 낡은 여객선들은 점차 퇴역할 예정이었다.

''올림픽''이 1935년 10월 13일 해체를 위해 재로우에 도착하는 모습


''올림픽''은 대서양 횡단 노선에서 제외되었고, 1935년 4월 5일 뉴욕을 마지막으로 떠나 영국으로 돌아와 사우스햄튼에 정박했다. 새로운 회사는 잠시 동안 여름 크루즈에 이 선박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이 아이디어는 폐기되었고 매물로 내놓았다.[99]

옛 경쟁선인 모리타니아와 함께 5개월 동안 정박한 후, ''올림픽''은 존 자비스 경에게 97500GBP에 팔렸다. 1935년 10월 11일, ''올림픽''은 사우스햄튼을 마지막으로 떠나 이틀 뒤 재로우에 도착하여 부분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1935년에서 1937년 사이에 ''올림픽''의 상부 구조가 해체되었고, 1937년 9월 19일에는 선체가 토스 W. 워드의 인버케이싱 조선소로 예인되어 1937년 말까지 최종 해체가 완료되었다.[22]

퇴역 당시 ''올림픽''은 대서양을 257번 왕복했으며, 상업 항해에서 43만 명의 승객을 수송하고 약 2896812.00km를 항해했다.[99][100]

6. 유물



''올림픽'' 호의 호화로운 내장은 해체되기 전에 경매에 부쳐졌다.[101]

일등석 라운지와 선미 대계단의 일부 설비는 영국 노섬벌랜드 주 알n윅에 있는 알n윅 화이트 스완 호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판넬, 조명기구, 바닥재, 문, 그리고 ''올림픽'' 호의 창문들은 노섬벌랜드 주 할트위슬에 있는 페인트 공장에 설치되어 있다가 2004년에 경매에 부쳐졌다.[102] 랭커셔 주 클레이턴-르-무어스에 있는 스파스 하우스 호텔의 한 스위트룸에는 조명기구, 싱크대, 옷장, 벽난로 등 선실 중 하나의 가구가 갖춰져 있다. 라운지에 있던 수정 및 오르몰루 전기 샹들리에는 셰필드의 커틀러스 홀에 설치되어 있다.[103] 일부 목재 패널은 랭커셔 주 패디햄에 있는 성 요한 세례자 가톨릭 교회의 증축(1937년 완성)에 사용되었다.[104]

셀러브리티 크루즈는 2000년에 자사의 새로운 유람선인 셀러브리티 밀레니엄에 "RMS ''올림픽''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올림픽'' 호의 오리지널 목재 패널 일부를 구입했다. 이 유람선에 따르면, 이 패널은 ''올림픽'' 호의 À la Carte 레스토랑에 사용되었었다.[101]

''올림픽'' 호의 함교 종은 인디언 오차드, 스프링필드, 매사추세츠에 있는 타이타닉 역사 협회에 전시되어 있다.[105][106]

''올림픽'' 호의 대계단에 있던 "명예와 영광이 시간을 왕관을 씌우다"를 묘사한 시계는 사우샘프턴의 시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07][108]

RMS Olympic Steinway Vertegrand Upright Piano #157550
''올림픽'' 스타인웨이 버티그랜드 업라이트 피아노 No.157550


1912년, 분할된 호두나무 케이스를 가진 스타인웨이 버티그랜드 업라이트 피아노 No.157550은 스타인웨이 함부르크 공장에서 미완성 상태로 출고되어 런던 지점으로 보내졌다. 1913년에는 하랜드 & 울프의 인테리어 장식 회사인 Aldam Heaton & Co에 의해 조각과 금색 악센트로 장식되었다. 이 피아노는 처음에는 일등석 응접실의 선미 우현 모서리에 배치되었다.[109]

2017년, 노섬벌랜드 주 헥섬 44 Priestpopple에 있는 옛 당구장은 철거되었다. AAG 고고학의 철거 현장에서의 고고학적 발굴 중에 ''올림픽'' 호의 의자 중 하나가 발견되었다. ''올림픽'' 호의 설비들은 1935년 11월 팰머스 워크스(Palmers Works)에서 10일간 경매에 부쳐졌으며, 당구장은 1936년에 개장했다.[110]

참조

[1] 웹사이트 RMS Olympic Specification File http://www.markchirn[...] 2007-11
[2] 웹사이트 Things to do in Northern Ireland https://discovernort[...]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웹사이트 Oceanic II http://www.thegreato[...]
[7] 서적
[8] 웹사이트 Twenty famous films https://www.charlesu[...]
[9] 서적 Catalogue of Kinemacolor Film Subjects http://archive.org/d[...] McGill University Library
[10] 웹사이트 "Olympic Class" Film Archive (1908–1937) | William Murdoch https://www.williamm[...]
[11] 서적
[12] 웹사이트 "SS Laurentic (I)" http://www.geocities[...] 2009-06-29
[13] 뉴스 Jamestown Weekly Alert https://chroniclinga[...] Jamestown North Dakota 1912-04-18
[14] 웹사이트 RMS Olympic – The Old Reliable https://web.archive.[...] 2012-04-19
[15] 웹사이트 Les escaliers de 1 Classe http://pagesperso-or[...] 2009-07-30
[16] 웹사이트 La Vie à bord du Titanic http://pagesperso-or[...] 2009-07-30
[17] 웹사이트 Les Bains Turcs et la Piscine http://pagesperso-or[...] 2009-07-30
[18] 웹사이트 Le Gymnase http://pagesperso-or[...] 2009-07-30
[19] 웹사이트 New York Times – Olympic Like A City – 18 June 1911 http://www.encyclope[...]
[20] 웹사이트 RMS Mauretania http://www.merchantn[...]
[21]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22] 웹사이트 The Titanic's Forgotten Sister https://www.forbes.c[...] 2018-01-01
[23] 서적
[24] 웹사이트 RMS Olympic http://www.whitestar[...]
[25] 서적
[26] 서적
[27] 서적
[28] 간행물 The Huge New Dock at Southampton https://babel.hathit[...] Scientific American Supplement 1911-08-19
[29] 웹사이트 Olympic and Titanic: Maiden Voyage Mysteries, by Mark Chirnside and Sam Halpern http://www.encyclope[...]
[30] 서적
[31] 웹사이트 ANDREWS, Mr Thomas – Titanic First Class Passenger Biography http://www.titanic-t[...] 2012-04-20
[32]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33] 서적
[34] 서적
[35] 서적
[36] 서적 RMS Olympic: Titanic's Sister https://books.google[...] The History Press 2015-09-07
[37] 웹사이트 Olympic http://perdurabo10.t[...] 2012-04-24
[38] 뉴스 Titanic's unsinkable stoker https://www.bbc.co.u[...] BBC News 2012-03-30
[39] 간행물
[40] 간행물
[41] 서적 Great Ship Disasters MBI Publishing Company
[42] 잡지 Why A Huge Liner Runs Amuck https://books.google[...] Hearst Magazines 1932-02-01
[43] 서적 TITANIC PRC Publishing Ltd
[44] 웹사이트 « Maiden Voyage – Collision With HMS ''Hawke'' » http://olympic.50web[...] 2009-05-21
[45] 간행물
[46] 간행물
[47] 간행물
[48] 웹사이트 Classic Liners and Cruise Ships – RMS Titanic http://www.cruiseser[...] Cruiseserver.net 2009-07-16
[49] 간행물
[50] 웹사이트 United States Senate Inquiry, Day 18, Proces Verbal (SS Olympic) https://www.titanici[...]
[51] 웹사이트 TIP {{!}} United States Senate Inquiry {{!}} Day 18 {{!}} Proces-Verbal (SS Olympic), cont. http://www.titanicin[...] 2019-02-03
[52] 간행물
[53] 웹사이트 TGOL – Olympic http://www.thegreato[...] 2012-04-26
[54] 간행물
[55] 웹사이트 TIP – United States Senate Inquiry – Day 18 http://www.titanicin[...] 2012-05-19
[56] 간행물
[57] 간행물
[58] 뉴스 Firemen strike; Olympic held https://timesmachine[...] 1912-04-25
[59] 뉴스 Olympic Strikers Make New Demand https://timesmachine[...] 1912-04-26
[60] 뉴스 Free Olympic Mutineers. https://timesmachine[...] 1912-05-05
[61] 간행물
[62] 잡지 The Rebuilt ''Olympic'' https://books.google[...] 1913-03-12
[63] 웹사이트 Modifications to Olympic following the Titanic disaster http://www.titanicol[...]
[64] 서적 Picture History of British Ocean Liners, 1900 to the Present https://archive.org/[...] Dover Publications
[65] 문서 List of on board facilities from the Passenger List (First Class) for the White Star Lines steamer RMS "Olympic" for April 28, 1923 voyage from New York to Southampton.
[66] 간행물
[67]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68] 서적 Steel Titan: The Life of Charles M. Schwab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69]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70] 서적 West Ken (Q. O.) Yeomanry and 10th (yeomanry) Batt. The Buffs, 1914-1919 https://books.google[...] A. Melrose 1920
[71]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72]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73] 서적 The German submarine war, 1914–1918 https://books.google[...] Constable 2011-05-03
[74] 서적 Lost Patrols: Submarine Wrecks of the English Channel Periscope Publishing Ltd
[75] 웹사이트 Page 7302 – Supplement 30756, 18 June 1918 – London Gazette – The Gazette https://www.thegazet[...] 2014-05-16
[76]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77] 웹사이트 RMS Olympic http://members.aol.c[...] Members.aol.com 2008-11-06
[78] 웹사이트 Page 11575 – Supplement 31553, 12 September 1919 – London Gazette – The Gazette https://www.thegazet[...] 2014-05-21
[79] Webarchive Olympic II http://www.titanic-t[...] 2021-01-06
[80] 간행물
[81] 웹사이트 Target Olympic: Feuer! https://markchirnsid[...] 2018-05-01
[82]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83]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84] 웹사이트 I'm Glad To Be Home http://www.britishpa[...] 1925-02-16
[85] Webarchive Archie Leach, ''Ladies Home Journal'' http://www.archielea[...] 2021-01-06
[86] 서적 The Titanic: End of a Dream Penguin Books
[87]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88] 뉴스 Lord Pirrie dies on ship bound here https://timesmachine[...] 1924-06-09
[89] 뉴스 Bringing Pirrie's body. https://timesmachine[...] 1924-06-10
[90] 간행물
[91]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92] Webarchive SS ''Bismarck''/RMS ''Majestic'', ''Monsters of the Sea: The Great Ocean Liners of Time'' http://www.ocean-lin[...] 2014-11-09
[93]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94] 웹사이트 History of U.S. Lightships http://www.palletmas[...] Palletmastersworkshop.com 2009-07-16
[95] 웹사이트 Lightship bell raised from ocean's depths http://www.southcoas[...] 2004-09-03
[96] 웹사이트 Vessel Designation LV117 (Nantucket) http://www.nightbeac[...] nightbeacon.com
[97] 웹사이트 "Olympic" Rams Lightship http://www.britishpa[...] 1934-05-28
[98] 웹사이트 White Star Line Archives – 1931 https://www.chriscun[...] Chriscunard.com 2009-07-16
[99] 서적 The 'Olympic' Class Ships The History Press
[100] Webarchive RMS Olympic: Another Premature Death? – Mark Chirnside http://www.encyclope[...] 2021-01-06
[101] 웹사이트 Olympic Today http://www.atlanticl[...] 2012-05-19
[102] 웹사이트 North Atlantic Run – RMS Olympic Haltwhistle Auction http://www.northatla[...]
[103] 웹사이트 The Hall and its Collections http://www.cutlers-h[...] 2017-03-03
[104] 웹사이트 Padiham – St John the Baptist http://taking-stock.[...] Catholic Trust for England and Wales and [[English Heritage]] 2019-08-19
[105] 웹사이트 Titanic Museums of the World http://www.titanicun[...] 2021-11-04
[106] 웹사이트 Titanic Museum https://titanichisto[...] 2021-07-20
[107] 웹사이트 RMS Olympic BL24990_002 http://www.englishhe[...] Englishheritageimages.com 2012-02-29
[108] 웹사이트 Collections and Exhibitions https://web.archive.[...] 2015-09-10
[109] 도서
[110] 웹사이트 Historic find for Hexham billiard hall time team https://www.hexham-c[...] 2021-08-26
[111] 서적 Lloyd's Register https://plimsoll.sou[...] Lloyd's Register 2021-02-16
[112] 서적 Lloyd's Register https://plimsoll.sou[...] Lloyd's Register 2021-02-16
[113] 서적 20世紀全記録 クロニック 講談社 1987-09-2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