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호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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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리호선우는 이치사 선우의 아들로, 조카 아선우 치세에 우현왕을 지냈다. 아들 선우가 즉위하자 우현왕이 되었고, 아선우가 죽자 선우로 옹립되었다. 즉위 후 한나라와 대립하여 변경을 침략했으나, 이광리의 대완 원정 중 한나라 장군 임문에게 패배했다. 이광리가 돌아오자 그를 공격하려 했으나, 그 해 겨울에 사망하였고 동생 저제후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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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호선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작위 | 탱리고도선우 |
재위 기간 | 기원전 102년 - 기원전 101년 |
전임자 | 아선우 |
후임자 | 저제후선우 |
이름 | |
휘 | 구리호, 구려호 |
가문 | |
왕조 | 흉노 |
가문 | 연제씨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이지사선우 |
친인척 | 조카 아선우, 동생 저제후선우 |
2. 생애
이치사 선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카 아선우 치세에서는 우현왕을 지냈다. 원봉 6년 아들 선우가 즉위하자 거려호는 우현왕이 되었다.
태초 3년 조카 아선우가 어린 아들만 남기고 죽자 대신 선우로 옹립됐다. 즉위했을 때 한나라에서 광록훈 서자위를 시켜 한나라의 오원군의 요새에서부터 흉노 땅인 여구산(廬胊山)까지 성채와 망루를 쌓게 했다. 그리고 유격장군 한설과 장평후 위항을 그 근처에 주둔시키고, 강노도위 노박덕에게 명하여 거연의 늪가에 요새를 쌓게 했다. 이해 가을, 운중, 정양, 삭방군으로 침입해 수천 명을 죽이거나 잡아갔고, 여러 이천석급 관료들을 패퇴시키고, 광록훈이 쌓은 성채와 망루도 파괴했다. 그리고 우현왕에게 주천, 장액군을 약탈하게 했다. 그러나 대완 원정 중인 이광리의 뒤를 지키는 한나라 장군 임문(任文)의 추격을 받아 얻은 것을 도로 잃었다. 이광리가 대완 원정에서 성공하고 돌아오자 그 뒤를 끊으려 했으나 그해 겨울에 병사했다. 동생 좌대도위 저제후가 뒤를 이었다.
2. 1. 초기 생애와 권력 승계
이치사 선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카 아선우 치세에서는 우현왕을 지냈다. 아선우 즉위 당시 한나라의 이간 계략의 목표로 지목됐으나 계략은 무위로 돌아갔다. 원봉 6년 아들 선우가 즉위하자 거려호는 우현왕이 되었다.태초 3년 조카 아선우가 어린 아들만 남기고 죽자 대신 선우로 옹립됐다. 즉위했을 때 한나라에서 광록훈 서자위를 시켜 한나라의 오원군의 요새에서부터 흉노 땅인 여구산(廬胊山)까지 성채와 망루를 쌓게 했다. 이해 가을, 운중, 정양, 삭방군으로 침입해 수천 명을 죽이거나 잡아갔고, 여러 이천석급 관료들을 패퇴시키고, 광록훈이 쌓은 성채와 망루도 파괴했다. 그리고 우현왕에게 주천, 장액군을 약탈하게 했다. 그러나 대완 원정 중인 이광리의 뒤를 지키는 한나라 장군 임문(任文)의 추격을 받아 얻은 것을 도로 잃었다. 이광리가 대완 원정에서 성공하고 돌아오자 그 뒤를 끊으려 했으나 병사했다. 동생 좌대도위 저제후가 뒤를 이었다.
2. 2. 한나라와의 갈등
원봉 6년(기원전 105년), 조카 아선우가 즉위하자 우현왕이 되었다.태초 3년(기원전 102년), 조카 아선우가 어린 아들만 남기고 죽자, 그의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거려호가 선우로 옹립됐다. 즉위했을 때 한나라에서 광록훈 서자위를 시켜 한나라의 오원군의 요새에서부터 흉노 땅인 여구산(廬胊山)까지 성채와 망루를 쌓게 했다. 그리고 유격장군 한설과 장평후 위항을 그 근처에 주둔시키고, 강노도위 노박덕에게 명하여 거연의 늪가에 요새를 쌓게 했다. 이해 가을, 운중·정양·삭방군으로 침입해 수천 명을 죽이거나 잡아갔고, 여러 이천석급 관료들을 패퇴시키고, 광록훈이 쌓은 성채와 망루도 파괴했다. 그리고 우현왕에게 주천·장액군을 약탈하게 했다. 그러나 대완 원정 중인 이광리의 뒤를 지키는 한나라 장군 임문(任文)의 추격을 받아 얻은 것을 도로 잃었다. 이광리가 대완 원정에서 성공하고 돌아오자 그 뒤를 끊으려 했으나, 그해 겨울에 병사했다. 동생 좌대도위 저제후가 뒤를 이었다.
2. 3. 대완 원정과 사망
우현왕을 지냈고, 태초 3년(기원전 102년)에 어린 아들만 남기고 죽은 조카 아선우를 대신해 선우로 옹립됐다. 즉위했을 때 한나라에서 광록훈 서자위를 시켜 한나라의 오원군의 요새에서부터 흉노 땅인 여구산(廬胊山)까지 성채와 망루를 쌓게 했다. 이해 가을, 운중, 정양, 삭방군으로 침입해 수천 명을 죽이거나 잡아갔고, 여러 이천석급 관료들을 패퇴시키고, 광록훈이 쌓은 성채와 망루도 파괴했다. 그리고 우현왕에게 주천, 장액군을 약탈하게 했다. 그러나 대완 원정 중인 이광리의 뒤를 지키는 한나라 장군 임문(任文)의 추격을 받아 얻은 것을 도로 잃었다. 이광리가 대완 원정에서 성공하고 돌아오자 그 뒤를 끊으려 했으나 병사했다. 동생 좌대도위 저제후가 뒤를 이었다.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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