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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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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사록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58호)는 남송 시대 주희와 여조겸이 편찬한 성리학 저서인 《근사록》의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지정본이다. 이 책은 《논어》 자장편의 구절에서 유래한 제목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622개 항목을 14권으로 엮은 책이다. 고려 말에 신유학과 함께 전래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여겨졌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된 《근사록》은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초주갑인자 인본으로, 초기 주자발과 초기간행 발문을 포함하고 있어 활자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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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58호)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근사록
근사록 표지 (권6, 권10)
근사록 표지 (권6, 권10)
국가대한민국
위치서울특별시 마포구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458
지정일2019년 12월 5일
시대노성래
소유자16세기 후반
수량2책

2. 역사적 배경

《근사록(近思錄)》은 남송주희와 여조겸이 함께 편찬한 책으로, 송나라 시대 이학(성리학)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진덕수의 《심경(心經)》과 함께 신유학(성리학)의 필수 문헌으로 중요시되었으며, 섭채의 《근사록집주》 등 많은 해설서가 나왔다. 고려 말 신유학이 수입될 때 전래되어 1370년(공민왕 19) 진주목사 이인민이 4책으로 번각 간행한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이다.[1]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끼친 대표적 성리학서로 의미가 있으며, 조선 전기의 간본으로서 서지학적 의미가 크다.[1]

2. 1. 원전의 성립

《근사록(近思錄)》은 남송주희(1130∼1200)와 여조겸(1137∼1181)이 함께 편찬한 책으로, 송나라 시대 이학(성리학)의 대표적인 저작이다.[1] 주희는 남송 이학을 집대성하여 후대에 '주자'라고 존칭되었으며, 《사서(四書)》를 정리하여 선비들의 교본으로 삼게 하였다.[1] 여조겸은 남송의 사상가이자 교육가였으며, 사학(史學)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1]

《근사록》이라는 책 제목은 《논어》 〈자장편〉의 "博學而篤志切問而近思仁在其中矣"(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하게 하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1] 주희는 1178년 4월에 이 책을 완성했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622개 항목을 뽑아 14권으로 엮었다.[1] 이후 《근사록》에 대한 여러 주석서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섭채(葉菜)가 1248년에 체제와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새로 엮은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가 널리 읽혔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근사록》은 대부분 《근사록집해》에 해당한다.[1]

《근사록》은 진덕수의 《심경(心經)》과 함께 신유학(성리학)의 필수 문헌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섭채의 《근사록집주》 등 많은 해설서가 나왔다.[1]

2. 2. 조선 전래와 간행

고려 말 신유학 수용과 함께 《근사록》이 전래되었다. 1370년 (공민왕 19) 진주목사 이인민이 4책으로 번각 간행한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이 판본은 보물 제262호, 보물 제1077-1호로 지정되어 있다.[1]

조선에서는 1436년 (세종 18년)경에 초주갑인자로 처음 간행되었으며, 현재 보물 제1077-2호로 지정되어 있다.[1]

3. 대상 판본의 특징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 판본은 중종 연간에 금속활자인 후기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간행된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이다. 비록 권수제(卷首題)는 《근사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근사록집해》를 담고 있다.[1]

이 판본은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세종 시기의 초주갑인자본보다 후대에 간행되었다. 권1-5가 결락된 영본(零本)이지만, 15세기 전기의 주자발(鑄字跋)과 초기간행 발문을 포함하고 있어 활자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1]

특히, 권말에 있는 김문(金汶)의 발문을 통해 이 책이 처음 인출된 시기가 1436년경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세종 시기 간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인쇄한 것이며, 실제 판본은 판식과 인쇄 상태를 고려할 때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1]

3. 1. 서지학적 특징

이 책은 남송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함께 편찬한 근사록으로, 송대 이학(理學)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비록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권수제(卷首題)는 대부분 《근사록》으로 되어 있다.[1]

이 책은 중종 연간에 금속활자인 후기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간행되었다. 판본의 형식과 인쇄 상태를 통해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초주갑인자 인본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세종 시기의 초주갑인자 인본보다는 후대에 간행되었고, 권1-5가 없는 불완전한 판본이지만, 15세기 전기의 주자발(鑄字跋)과 초기간행 발문을 포함하고 있어 활자 인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1]

판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항목내용
크기반곽(半郭) 26.4×16.0cm
형식9행 18자, 상하내향삼엽화문흑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黑魚尾)
책 수권6-14 (2책)[1]



권9의 끝에는 권근(權近), 변계량(卞季良), 김빈(金鑌) 등이 작성한 주자발(鑄字跋)이 인쇄되어 있다. 권14의 끝에는 김문(金汶)이 1436년에 작성한 발문이 있는데, 여기에는 《근사록》 간행 이유와 국왕이 김문에게 오자를 교정하고 인쇄를 명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1]

표지를 다시 장정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권14 끝에 있어야 할 권근, 변계량, 김빈 등의 주자발이 권9 끝에 잘못 붙어 있다. 따라서 이를 권14 끝 김문의 초기간행 발문 다음으로 옮겨 바로잡아야 한다.[1]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지만, 표지는 후대에 다시 장정되었고, 본문 상단과 하단은 습기로 인해 오염되어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권10 책의 상단 일부가 유실되었고, 본문 상단 대부분이 습기로 오염되었다. 표지는 다시 장정되었으며, 본문 전체에 습기로 얼룩진 흔적이 있고, 각 책의 첫째 장 전면에 헤지고 훼손된 부분이 있다.[1]

동일한 판본이 국내에 여러 종 알려져 있으며, 광산 김씨 종가, 국립중앙도서관, 청주고인쇄박물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1]

3. 2. 보존 상태 및 문제점

이 책은 권6-14에 해당하는 영본 2책으로, 판의 크기는 반곽(半郭) 기준 26.4×16.0cm이다. 9행 18자로 쓰여 있으며, 상하내향삼엽화문흑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黑魚尾) 판식을 지닌다.[1]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 표지: 후대에 다시 제작(개장)되었다.[1]
  • 본문:
  • 상단과 하단이 습기로 인해 얼룩지고(누습) 부식되는 현상(산화)이 진행 중이어서 수리가 필요하다.[1]
  • 권10 책의 상단부 일부가 없어졌다(유실).[1]
  • 본문 상단 대부분이 습기로 인해 얼룩졌다.[1]
  • 각 책의 첫째 장 전면에 찢어지고(헤짐) 일부가 떨어져 나간(결락) 부분이 있다.[1]
  • 주자발(鑄字跋) 위치 오류: 1436년 처음 활자본으로 간행할 당시의 주자발이 권9 다음에 잘못 붙어 있다. 이는 표지를 다시 꾸미는 과정(장황)에서 생긴 실수로, 권14 말 김문(金汶)의 초기간행 발문 다음에 위치해야 한다.[1]

4. 《근사록》의 영향과 가치

근사록》은 남송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함께 편찬한 책으로, 송대 이학(理學)의 대표적인 저작이다.[1] 주희는 남송의 이학을 집대성하여 후대에 '주자(朱子)'로 존칭되었으며, 《사서》를 집정하여 천하의 선비들이 교본으로 삼았다.[1] 여조겸은 남송의 사상가이자 교육가였으며, 사학(史學)에서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다.[1]

《근사록》이라는 제목은 《논어》 자장편(子張編)의 "博學而篤志切問而近思仁在其中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배우기를 널리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중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 주희는 1178년 4월에 이 책을 완성했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622개 항목을 뽑아 14권으로 엮었다.[1] 이후 《근사록》에 대한 여러 주석서가 나왔는데, 그중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는 1248년 섭채(葉菜)가 체제와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새로 엮은 것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대부분 《근사록집해》에 해당한다.[1]

김문(金汶)의 발문에 따르면, 《근사록》은 1436년에 처음 인출되었다.[1] 하지만 이 책은 중종 연간에 금속활자인 후기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것이다.[1] 비록 세종 시기의 초주갑인자 인본보다는 후대에 간행되었고, 권1-5가 결락된 영본이지만,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초주갑인자 인본으로서 15세기 전기의 주자발(鑄字跋)과 초기간행 발문을 포함하고 있어 활자 인쇄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1]

4. 1. 성리학 연구에 끼친 영향

근사록》은 진덕수의 《심경》과 함께 성리학(신유학)의 필수 문헌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섭채의 《근사록집주》 등 많은 해설서가 나왔다.[1] 고려성리학(신유학)이 들어올 때 함께 전래되어 1370년(공민왕 19) 진주목사 이인민이 4책으로 다시 새겨 간행한 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1]

《근사록》은 조선 시대 지식인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졌으며, 조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성리학 서적이다.[1] 《근사록집해》를 비롯한 다양한 주석서의 등장은 《근사록》 연구를 더욱 심화시켰다.

4. 2. 서지학적, 문화적 가치

《근사록》은 조선 중종 연간에 금속활자인 후기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책이다. 비록 세종 시기의 초주갑인자본보다는 후대에 간행되었고, 권1-5가 없는 불완전한 판본이지만, 16세기 후반에 간행된 초주갑인자본으로서 조선 초기 활자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1] 특히, 15세기 전기의 주자발(鑄字跋)과 초기간행 발문을 포함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1]

판식은 반곽 26.4×16.0cm, 9행 18자, 상하내향삼엽화문흑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黑魚尾) 형태이다.[1] 표지는 후대에 개장되었으며, 본문은 누습으로 인한 오염과 일부 유실이 있어 보존 처리가 필요하다.[1] 특히, 표지를 새로 장정하면서 권14 말에 있어야 할 권근, 변계량, 김빈 등이 작성한 주자발이 권9 말에 잘못 붙어 있는 오류가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1]

《근사록》은 고려 말 조선 초 유학자들에게 필독서였으며, 조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성리학 서적이다.[1] 조선 전기 간본으로서 서지학적 가치가 크며, 동일 판본이 국내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1] 그중 광산 김씨 종가 소장본은 보물 제1019-1-10호로 지정되어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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