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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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위병은 군주나 국가 원수의 신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군인 또는 부대를 의미한다. 고대 로마 제국의 프라이토리아니가 대표적이며,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존재해 왔다. 근위병은 왕실, 황실,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경호하며, 의례적인 행사에도 참여한다. 각 국가별로 다양한 명칭과 형태를 가지며, 때로는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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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위병 | |
|---|---|
| 위치 정보 | |
| 기본 정보 | |
| 역할 | 왕족 또는 국가 원수를 호위하는 군인 |
| 목적 | 경호 및 의전 |
| 역사 | |
| 기원 | 고대 문명 및 중세 시대의 왕실 경호대 |
| 발전 |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 |
| 현대 | 국가 원수 및 왕족 경호와 함께 의전 행사 담당 |
| 특징 | |
| 복장 | 화려하고 독특한 제복 착용 |
| 훈련 | 경호, 무술, 의전 교육 훈련 |
| 임무 | 경호 및 의전 행사 수행 |
| 상징성 | 국가 권위 및 전통을 상징 |
| 구성 | |
| 일반 | 육군, 해군, 공군 소속 인원 구성 |
| 지위 | 정규군 외에 별도 부대 편성 |
| 주요 근위대 | |
| 영국 | 버킹엄궁 근위대 |
| 일본 | 황궁 근위대 |
| 대한민국 | 국군 의장대 |
| 스웨덴 | 스웨덴 왕립 근위대 |
| 스페인 | 스페인 왕실 근위대 |
| 기타 | |
| 문화적 의미 | 국가 이미지 및 역사 반영 |
2. 역사

고대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신변 경호는 '''프라이토리아니'''가 담당했다. 이들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제정(帝政) 시작과 함께 조직되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년-337년)에 의해 해체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의 메세디(Mesedi), 이집트 고왕국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의 메드자이(Medjay),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소마토피라케스(Somatophylakes)도 근위병 역할을 수행했다.

미얀마의 왕궁 근위대(Royal Palace Guards), 브루나이의 왕실 경비대(Pengawal Diraja)가 있었다. 몰디브 술탄의 왕실 경호대인 한구 베이칼룬(Hangu Beykalun)은 무함마드 타쿠루파누 알-아우잠(1573–1585)에 의해 창설되었고, 술탄 무함마드 샴수딘 3세의 통치 말기인 193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기원과 같은 왕실 외국 부대 근위대(Royal Foreign Units Guards), 프랑스 근위대(Garde du Corps)와 같은 왕실 근위대(King's Royal Guard), 스코틀랜드 근위대(Garde Ecossaise),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와 같은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 (예: 스위스 100인 근위대), 프랑스 왕립군에서 복무한 근위대는 유럽의 군주국과 같은 프랑스 왕국(절대왕정)의 군주국에 복무했으며, 프랑스 국왕의 군사 가문(Maison militaire du roi de France)의 일부였다.
조지아 왕국의 모나스파(Monaspa), 고려의 토방(Tobang), 조선의 내금위(Naegeumwi), 칸디 왕국의 아파하미(Appuhamy|Athapattuva)가 있었다.
카스티야 왕국 및 카스티야 왕관의 몬테로스 데 에스피노사(Monteros de Espinosa)는 현재 스페인 왕립 근위대의 일부이다. 스페인의 발롱 근위대(Walloon Guards)는 스페인 네덜란드 출신으로 모병되었고, 스페인 근위대(Gardes Espagnoles)는 발롱 근위대와 함께 여단을 편성한 보병 연대이지만 스페인 내에서 모병되었다.
프랑스 왕국의 프랑스 국왕의 군사 가문(Maison militaire du roi de France)에는 프랑스 근위대(Garde du Corps), 스위스 근위대, 프랑스 근위대가 소속되어 있었다. 폴란드 왕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에는 폴란드 왕실 근위대(Royal Guard (Poland))가 있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하르트시어(Hartschier|Leibgarde der Hartschier), 프로이센 왕국과 후대 독일 제국의 근위대 군단(Guards Corps (German Empire))이 있었다. 1970년까지 교황청에는 바티칸 귀족 근위대(Noble Guard (Vatican))와 팔라틴 근위대(Palatine Guard)가 있었다.
사르데냐 왕국과 후대 이탈리아 왕국에는 코라치에리(Corazzieri)와 사르데냐 그라나티에리(Granatieri di Sardegna)가 있었다. 불가리아 공국과 불가리아 왕국의 불가리아 국민 근위대(National Guards Unit of Bulgaria)에는 개인 기병 호위대(Personal Cavalry Convoy)가 있었다.
헝가리 왕실 귀족 근위대(Konigliche Ungarische adelige Leibgarde)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그 후의 1920-46년 헝가리 왕국에는 헝가리 왕실 근위대(Royal Hungarian Crown Guard)가 있었다. 포르투갈 왕국에는 도끼병 왕실 근위대(Royal Guard of the Halberdiers)가 있었고, 벨기에에는 왕궁 근위대(Royal Palace Guard)가 있었다. 현재 대통령 근위대로 불리는 그리스의 그리스 왕실 근위대(Royal Guard (Greece))와 루마니아의 루마니아 왕실 근위대(Romanian Royal Guards)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원래 대왕가와 나란히 씨족이었던 신하 계열의 호족과는 달리, 연계의 호족은 옛날부터 대왕가를 섬겨 온, 이른바 세습적인 씨족이었다. 대왕가의 신임도 두터웠고, 특히 대반씨나 물부씨 등은 군의 중핵이면서 동시에 근위병적인 역할을 맡아왔다고 생각된다.
5세기 또는 6세기 무렵에 사람(舎人) 제도가 확립되었다. 둔창(屯倉)이 집중되어 대왕가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이 되었던 동국의 국조(国造) 자제들을 중심으로 대왕가에 종속된 사람(舎人)은 오오토모 씨(大伴氏)·모노베 씨(物部氏)의 군대보다 더욱 대왕 친위대의 측면이 강했다. 사람(舎人)은 후에, 신변 경호는 중무성의 내사람(内舎人)(うどねり)에게, 직할 군사력은 병위부(兵衛府)(つはものとねり)에 계승된다.
우지부(靫負)는 서국의 국조(国造) 자제를 중심으로 궁성(宮城) 문의 경비를 담당하는 군대이다.
또한, 문부(門部)는 궁성의 문을 경비하는 반부(伴部)를 말한다. 궁성의 문에는 그 문의 경비를 담당하는 문부의 이름이 붙여져 왔으나, 818년(홍인(弘仁) 9년)에 전문(殿門) 개칭이 이루어져 당풍(唐風) 문호로 변경된다.
- 대반문(大伴門) → 응천문(応天門)
- : 천인일명(天忍日命)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대반씨(大伴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약견양문(若犬養門) → 황가문(皇嘉門)
- : 약견양련(若犬養連)이 경비를 담당한다.
- 옥수문(玉手門) → 담천문(談天門)
- : 옥수씨(玉手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사기문(佐伯門) → 조벽문(藻壁門)
- : 대반씨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기씨(佐伯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이복부문(伊福部門) → 은부문(殷富門)
- : 이복부씨(伊福部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해견양문(海犬養門) → 안가문(安嘉門)
- : 해견양련(海犬養連)이 경비를 담당한다.
- 저사문(猪使門) → 위감문(偉鑒門)
- : 저양씨(猪養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단지비문(丹治比門) → 달지문(達智門)
- : 화명명(火明命)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 산부문(山部門) → 양명문(陽明門)
- :
- 건부문(健部門) → 대현문(待賢門)
- : 건부씨(建部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적문(的門) → 욱방문(郁芳門)
- : 적씨(的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임생문(壬生門) → 미복문(美福門)
- : 임생씨(壬生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외무성에 소속된 내사인(内舎人, うどねり)은 천황의 최측근으로서 신변 경호를 담당했으며, 칼을 차고 근무하며 호위, 시중드는 일, 행차 시의 호위 등도 수행했다.
일본의 율령제에서는 다섯 개의 위부(衛府)가 설치되었으나, 이후 정리·재편성이 이루어졌다.
내위부(衛門府)(えもんふ・ゆげいのつかさ)는 태고부터 궁성의 문 경비를 담당해 온 씨족(氏族)인 우부(靫負)의 전통을 계승하는 문부(門部)를 중핵으로 하여 위사(衛士)도 배속시켰다. 에몬부(衛門府)라 칭했다. 직책은 궁문을 수비하고 통행자를 검찰하는 것이었다. 758년(덴표보자(天平宝字) 2년·준닌 천황(淳仁天皇))에 후지와라노 나카마로(藤原仲麻呂)에 의한 관호의 당풍화(唐風化)의 일환으로 사문위(司門衛)로 개칭되었으나, 후지와라노 나카마로(藤原仲麻呂) 실각 후 764년(쇼토쿠 천황(称徳天皇))에 다시 내위부(衛門府)로 개칭되었다. 808년(다이도(大同) 3년)에 좌우위사부(左右衛士府)에 통합되었다.
좌우위사부(左右衛士府)는 위사(衛士)를 중핵으로 한다. 위사는 농민(農民) 출신자로 구성되기 때문에 인원이 많다. 대내리(大内裏)의 청사를 경비하고, 경내의 야간 경계를 주된 직책으로 하였다. 758년(덴표보자(天平宝字) 2년·준닌 천황(淳仁天皇))의 관호의 당풍화(唐風化)의 일환으로 사좌우용사위(司左右勇士衛)로 개칭되었으나, 764년에 다시 좌우위사부가 되었다. 808년에 폐지된 내위부(衛門府)를 통합하고, 811년(홍인(弘仁) 2년) 좌우위사부를 좌우에몬부(左右衛門府)로 개칭했다.
좌우병위부(左右兵衛府)(ひょうえふ・つはものとねり)는 병사인(兵舎人)(つわものとねり)의 전통을 계승한다. 사인(舎人)은 구 국조(国造)가의 자제로 구성되기 때문에 궁실 직할의 군사력으로서 중시되었다. 오위부 시대에는 위부 중에서 가장 천황(天皇)에 가까운 위치에서 경호하였다. 령제에서는 상급 관인의 자제로부터 뽑힌 병위(兵衛)가 중핵이었다. 후세까지 존속하였으나 근위부(近衛府)(후술)의 성립으로 점차 중요성이 저하되었다.
2. 1. 고대 ~ 중세
고대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신변 경호는 '''프라이토리아니'''가 담당했다. 이들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제정(帝政) 시작과 함께 조직되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년-337년)에 의해 해체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의 메세디(Mesedi), 이집트 고왕국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의 메드자이(Medjay),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소마토피라케스(Somatophylakes)도 근위병 역할을 수행했다.
미얀마의 왕궁 근위대(Royal Palace Guards), 브루나이의 왕실 경비대(Pengawal Diraja)가 있었다. 몰디브 술탄의 왕실 경호대인 한구 베이칼룬(Hangu Beykalun)은 무함마드 타쿠루파누 알-아우잠(1573–1585)에 의해 창설되었고, 술탄 무함마드 샴수딘 3세의 통치 말기인 193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기원과 같은 왕실 외국 부대 근위대(Royal Foreign Units Guards), 프랑스 근위대(Garde du Corps)와 같은 왕실 근위대(King's Royal Guard), 스코틀랜드 근위대(Garde Ecossaise),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와 같은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 (예: 스위스 100인 근위대), 프랑스 왕립군에서 복무한 근위대는 유럽의 군주국과 같은 프랑스 왕국(절대왕정)의 군주국에 복무했으며, 프랑스 국왕의 군사 가문(Maison militaire du roi de France)의 일부였다.
조지아 왕국의 모나스파(Monaspa), 고려의 토방(Tobang), 조선의 내금위(Naegeumwi), 칸디 왕국의 아파하미(Appuhamy|Athapattuva)가 있었다.
카스티야 왕국 및 카스티야 왕관의 몬테로스 데 에스피노사(Monteros de Espinosa)는 현재 스페인 왕립 근위대의 일부이다. 스페인의 발롱 근위대(Walloon Guards)는 스페인 네덜란드 출신으로 모병되었고, 스페인 근위대(Gardes Espagnoles)는 발롱 근위대와 함께 여단을 편성한 보병 연대이지만 스페인 내에서 모병되었다.
프랑스 왕국의 프랑스 국왕의 군사 가문(Maison militaire du roi de France)에는 프랑스 근위대(Garde du Corps), 스위스 근위대, 프랑스 근위대가 소속되어 있었다. 폴란드 왕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에는 폴란드 왕실 근위대(Royal Guard (Poland))가 있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하르트시어(Hartschier|Leibgarde der Hartschier), 프로이센 왕국과 후대 독일 제국의 근위대 군단(Guards Corps (German Empire))이 있었다. 1970년까지 교황청에는 바티칸 귀족 근위대(Noble Guard (Vatican))와 팔라틴 근위대(Palatine Guard)가 있었다.
사르데냐 왕국과 후대 이탈리아 왕국에는 코라치에리(Corazzieri)와 사르데냐 그라나티에리(Granatieri di Sardegna)가 있었다. 불가리아 공국과 불가리아 왕국의 불가리아 국민 근위대(National Guards Unit of Bulgaria)에는 개인 기병 호위대(Personal Cavalry Convoy)가 있었다.
헝가리 왕실 귀족 근위대(Konigliche Ungarische adelige Leibgarde)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그 후의 1920-46년 헝가리 왕국에는 헝가리 왕실 근위대(Royal Hungarian Crown Guard)가 있었다. 포르투갈 왕국에는 도끼병 왕실 근위대(Royal Guard of the Halberdiers)가 있었고, 벨기에에는 왕궁 근위대(Royal Palace Guard)가 있었다. 현재 대통령 근위대로 불리는 그리스의 그리스 왕실 근위대(Royal Guard (Greece))와 루마니아의 루마니아 왕실 근위대(Romanian Royal Guards)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원래 대왕가와 나란히 씨족이었던 신하 계열의 호족과는 달리, 연계의 호족은 옛날부터 대왕가를 섬겨 온, 이른바 세습적인 씨족이었다. 대왕가의 신임도 두터웠고, 특히 대반씨나 물부씨 등은 군의 중핵이면서 동시에 근위병적인 역할을 맡아왔다고 생각된다.
5세기 또는 6세기 무렵에 사람(舎人) 제도가 확립되었다. 둔창(屯倉)이 집중되어 대왕가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이 되었던 동국의 국조(国造) 자제들을 중심으로 대왕가에 종속된 사람(舎人)은 오오토모 씨(大伴氏)·모노베 씨(物部氏)의 군대보다 더욱 대왕 친위대의 측면이 강했다. 사람(舎人)은 후에, 신변 경호는 중무성의 내사람(内舎人)(うどねり)에게, 직할 군사력은 병위부(兵衛府)(つはものとねり)에 계승된다.
우지부(靫負)는 서국의 국조(国造) 자제를 중심으로 궁성(宮城) 문의 경비를 담당하는 군대이다.
또한, 문부(門部)는 궁성의 문을 경비하는 반부(伴部)를 말한다. 궁성의 문에는 그 문의 경비를 담당하는 문부의 이름이 붙여져 왔으나, 818년(홍인(弘仁) 9년)에 전문(殿門) 개칭이 이루어져 당풍(唐風) 문호로 변경된다.
- 대반문(大伴門) → 응천문(応天門)
- : 천인일명(天忍日命)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대반씨(大伴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약견양문(若犬養門) → 황가문(皇嘉門)
- : 약견양련(若犬養連)이 경비를 담당한다.
- 옥수문(玉手門) → 담천문(談天門)
- : 옥수씨(玉手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사기문(佐伯門) → 조벽문(藻壁門)
- : 대반씨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기씨(佐伯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이복부문(伊福部門) → 은부문(殷富門)
- : 이복부씨(伊福部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해견양문(海犬養門) → 안가문(安嘉門)
- : 해견양련(海犬養連)이 경비를 담당한다.
- 저사문(猪使門) → 위감문(偉鑒門)
- : 저양씨(猪養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단지비문(丹治比門) → 달지문(達智門)
- : 화명명(火明命)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 산부문(山部門) → 양명문(陽明門)
- :
- 건부문(健部門) → 대현문(待賢門)
- : 건부씨(建部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적문(的門) → 욱방문(郁芳門)
- : 적씨(的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 임생문(壬生門) → 미복문(美福門)
- : 임생씨(壬生氏)가 경비를 담당한다.
외무성에 소속된 내사인(内舎人, うどねり)은 천황의 최측근으로서 신변 경호를 담당했으며, 칼을 차고 근무하며 호위, 시중드는 일, 행차 시의 호위 등도 수행했다.
일본의 율령제에서는 다섯 개의 위부(衛府)가 설치되었으나, 이후 정리·재편성이 이루어졌다.
내위부(衛門府)(えもんふ・ゆげいのつかさ)는 태고부터 궁성의 문 경비를 담당해 온 씨족(氏族)인 우부(靫負)의 전통을 계승하는 문부(門部)를 중핵으로 하여 위사(衛士)도 배속시켰다. 에몬부(衛門府)라 칭했다. 직책은 궁문을 수비하고 통행자를 검찰하는 것이었다. 758년(덴표보자(天平宝字) 2년·준닌 천황(淳仁天皇))에 후지와라노 나카마로(藤原仲麻呂)에 의한 관호의 당풍화(唐風化)의 일환으로 사문위(司門衛)로 개칭되었으나, 후지와라노 나카마로(藤原仲麻呂) 실각 후 764년(쇼토쿠 천황(称徳天皇))에 다시 내위부(衛門府)로 개칭되었다. 808년(다이도(大同) 3년)에 좌우위사부(左右衛士府)에 통합되었다.
좌우위사부(左右衛士府)는 위사(衛士)를 중핵으로 한다. 위사는 농민(農民) 출신자로 구성되기 때문에 인원이 많다. 대내리(大内裏)의 청사를 경비하고, 경내의 야간 경계를 주된 직책으로 하였다. 758년(덴표보자(天平宝字) 2년·준닌 천황(淳仁天皇))의 관호의 당풍화(唐風化)의 일환으로 사좌우용사위(司左右勇士衛)로 개칭되었으나, 764년에 다시 좌우위사부가 되었다. 808년에 폐지된 내위부(衛門府)를 통합하고, 811년(홍인(弘仁) 2년) 좌우위사부를 좌우에몬부(左右衛門府)로 개칭했다.
좌우병위부(左右兵衛府)(ひょうえふ・つはものとねり)는 병사인(兵舎人)(つわものとねり)의 전통을 계승한다. 사인(舎人)은 구 국조(国造)가의 자제로 구성되기 때문에 궁실 직할의 군사력으로서 중시되었다. 오위부 시대에는 위부 중에서 가장 천황(天皇)에 가까운 위치에서 경호하였다. 령제에서는 상급 관인의 자제로부터 뽑힌 병위(兵衛)가 중핵이었다. 후세까지 존속하였으나 근위부(近衛府)(후술)의 성립으로 점차 중요성이 저하되었다.
2. 2. 근대 ~ 현대
근대 이후, 히타이트 제국의 메세디, 이집트 고왕국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의 메드자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소마토피라케스, 미얀마의 왕궁 근위대, 브루나이의 왕실 경비대, 몰디브 술탄의 왕실 경호대인 한구 베이칼룬 등 다양한 국가에서 근위병이 존재했다. 몰디브의 한구 베이칼룬은 무함마드 타쿠루파누 알-아우잠에 의해 창설되었고, 1930년대 초에 해체되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기원과 같은 왕실 외국 부대 근위대, 프랑스 근위대(Garde du Corps)와 같은 왕실 근위대, 스코틀랜드 근위대(Garde Ecossaise), 스위스 근위대(Swiss Guard)와 같은 스위스 근위대(예: 스위스 100인 근위대)는 유럽의 군주국과 같은 프랑스 왕국(절대왕정)의 군주국에 복무했으며, 프랑스 국왕의 군사 가문(Maison militaire du roi de France)의 일부였다. 조지아 왕국의 모나스파, 고려의 토방, 조선의 내금위, 칸디 왕국의 아파하미도 근위병의 역할을 수행했다.
카스티야 왕국 및 카스티야 왕관의 몬테로스 데 에스피노사는 현재 스페인 왕립 근위대의 일부이며, 스페인의 발롱 근위대와 스페인 근위대도 존재했다. 프랑스 왕국의 프랑스 국왕의 군사 가문, 폴란드 왕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폴란드 왕실 근위대, 바이에른 왕국의 하르트시어, 프로이센 왕국과 후대 독일 제국의 근위대 군단도 근위병 조직이었다. 1970년까지 교황청의 바티칸 귀족 근위대와 팔라틴 근위대가 존재했고, 사르데냐 왕국과 후대 이탈리아 왕국의 코라치에리와 사르데냐 그라나티에리가 있었다.
불가리아 공국과 불가리아 왕국의 불가리아 국민 근위대의 개인 기병 호위대, 헝가리 왕실 귀족 근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그 후의 1920-46년 헝가리 왕국에서 존재했던 헝가리 왕실 근위대, 포르투갈 왕국의 도끼병 왕실 근위대, 벨기에의 왕궁 근위대, 현재 대통령 근위대로 불리는 그리스의 그리스 왕실 근위대, 루마니아의 루마니아 왕실 근위대 등도 근위병 조직이었다.
1871년 9월 3일, 일본에서는 병부대소보 어전친위병 소좌 이상에게 칙어가 내려져 정진 헌신이 명령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옛 에도 성 터에 궁성(황궁)이 설치되고, 일본 제국 육군에 근위사단, 이어 궁내성에 황궁경찰이 창설되었지만, 천황·황족의 신변 경호는 궁내성 시종직에 소속된 내사인이 담당했다. 1948년, 황궁경찰의 시위관이 천황·황족의 신변 경호를 담당하게 되고, 경호 담당 내사인에게는 황궁호위관으로서의 신분이 부여되었다.
1872년 일본에서 천황에 직속하는 근위도독 아래, 壯兵(소년병)으로 구성된 근위병이 창설되었다. 1873년 징병령에 따라 징병은 진대에만 배치되도록 되어, 근위의 壯兵 제도는 유지되었다. 1878년 근위 포병 일부가 소동을 일으켰다(다케하시 사건). 근위도독은 초대가 야마가타 아리토모, 2대가 사이고 다카모리였다.
1880년의 「메이지 13년 10월 5일 달 乙 제62호」에 의한 개정 후의 「근위 조례」에 따르면, 근위병은 전적으로 輦下(천황이 타는 가마)를 호위하고,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다른 징발에는 응하지 않도록 규정되었다. 1891년 근위도 사단제를 채용하여 근위사단이 되었다.
다케하시 사건에 의해, 근위병 이외의 궁성 경비 조직으로서 궁내성에, 고대의 궁성 문을 수비했던 반부의 명칭을 부활시켜 「문부」를 설치했다. 1886년, 문부는 황궁경찰로 개편되었다. 다이쇼 시대에는 천황 및 기타 황족의 경호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의 경찰에서 문무양도에 뛰어난 경부나 경부보를 모아 특별경호과를 설치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의 항복에 따른 종전에 따라, 육군 근위사단과 황궁경찰을 통합하여 궁내성에 금위부가 발족한다. 1946년에 GHQ의 명령으로 해체되었다. 육상자위대에서는 제32보통과연대가 구 육군의 근위보병연대에 따라 "근위연대"를 자칭하고 있다.[7][8]
금위부는 해체되었지만, 금위부 황궁경찰부만 황궁경찰서로서 분리되어 존속했으며, 1947년 경시청 황궁경찰부로 이관된다. 1954년 경찰청의 부속기관이 되어 현재의 「'''경찰청 황궁경찰본부'''」로 개칭된다. 황궁경찰의 문장은 오엽오리 나무이다.
1956년의 「쇼와 31년 12월 19일 국가공안위원회 규칙 제5호」의 「황궁호위관의 복제에 관한 규칙」에 따라, 황궁호위관은 제복으로서 일반의 경찰관과 동일한 것을 착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경시청 경비부에도 천황이나 황족의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관이 소속된 경호과가 존재한다. 경호 제1계가 천황·황후·황태후 담당, 경호 제2계가 황태자·황태자비·내정황족 담당, 경호 제3계가 내정 외 황족 담당이다.
3. 각국의 근위대
조선 시대에는 내금위를 포함한 금군(근위군)으로 금위영, 어영청,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왕궁 경비를 위해 내금위와 무예청이 설치되었다. 효종 때 내금위는 다른 왕궁 경비 조직과 통합되어 내삼청이 되었고, 이후 용호영이 되었다. 무예청은 조선 말기에 무위소에 통합되었다.
조선 말기에 금군은 대폭 재편되어, 무위소, 훈련도감, 호위청이 통합되어 무위영이 되었고, 금위영, 총위영, 어영청, 용호영을 재편하여 친군 3영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왕궁 수문군의 교대 의식을 재현한 왕궁 수문장 교대식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1907년(융희 원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따라 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가 설치되었다. 1909년 7월 30일에는 궁중에 친위부가 설치되었다. 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는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존속하여 조선보병대·조선기병대가 되어 1930년(쇼와 5년)까지 한국 근위병의 명예를 지켰다.
대한제국 병합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옛 대한제국 군인으로 여전히 재직 중인 자는 1911년 제정된 「조선군인에 관한 건」(메이지 44년 칙령 제36호)의 규정에 따라 동일 계급의 일본 육군 군인에 상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일반 조선 군인은 조선주둔군 사령부 또는 조선주둔헌병대 사령부 소속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전에 설치되었던 한국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는 조선주둔군 사령부 또는 조선주둔헌병대 사령부 소속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보병대'''와 '''조선기병대'''로 개칭된 채로 이왕가와 창덕궁 경호를 위해 존속되었다. 이들 부대는 "근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이왕가의 사실상 근위병이었다. 다만, 의례적인 역할만 수행한다는 점과, 유사한 임무는 일반 육해군 및 조선총독부 경찰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1913년(다이쇼 2년) 3월에 조선기병대가 폐지되었고, 조선보병대의 규모도 2개 중대 324명으로 축소되었다. 1929년(쇼와 4년)에는 조선보병대 정원이 202명으로 줄었고, 1930년(쇼와 5년)에는 조선보병대도 폐지되었다.
3. 1. 대한민국
조선 시대에 내금위를 포함한 금군(근위군)으로 금위영, 어영청,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왕궁 경비를 위해 내금위와 무예청이 설치되었다. 효종 때 내금위는 다른 왕궁 경비 조직과 통합되어 내삼청이 되었고, 이후 용호영이 되었다. 무예청은 조선 말기에 무위소에 통합되었다.조선 말기에 금군은 대폭 재편되어, 무위소, 훈련도감, 호위청이 통합되어 무위영이 되었고, 금위영, 총위영, 어영청, 용호영을 재편하여 친군 3영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왕궁 수문군의 교대 의식을 재현한 왕궁 수문장 교대식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1907년(융희 원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따라 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가 설치되었다. 1909년 7월 30일에는 궁중에 친위부가 설치되었다. 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는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존속하여 조선보병대·조선기병대가 되어 1930년(쇼와 5년)까지 한국 근위병의 명예를 지켰다.
대한제국 병합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옛 대한제국 군인으로 여전히 재직 중인 자는 1911년 제정된 「조선군인에 관한 건」(메이지 44년 칙령 제36호)의 규정에 따라 동일 계급의 일본 육군 군인에 상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일반 조선 군인은 조선주둔군 사령부 또는 조선주둔헌병대 사령부 소속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전에 설치되었던 한국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는 조선주둔군 사령부 또는 조선주둔헌병대 사령부 소속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보병대'''와 '''조선기병대'''로 개칭된 채로 이왕가와 창덕궁 경호를 위해 존속되었다. 이들 부대는 "근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이왕가의 사실상 근위병이었다. 다만, 의례적인 역할만 수행한다는 점과, 유사한 임무는 일반 육해군 및 조선총독부 경찰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1913년(다이쇼 2년) 3월에 조선기병대가 폐지되었고, 조선보병대의 규모도 2개 중대 324명으로 축소되었다. 1929년(쇼와 4년)에는 조선보병대 정원이 202명으로 줄었고, 1930년(쇼와 5년)에는 조선보병대도 폐지되었다.
3.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 3. 바티칸
교황청에는 스위스 근위대가 배치되어 있다.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1506년에 창설되었다. 1527년의 로마 약탈 당시 스위스 근위병이 스스로 희생하여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보호한 것을 계기로, 이후 교황청의 근위병은 스위스인으로만 한정되었다.3. 4. 스페인
스페인에서는 '''왕립 근위대'''()가 스페인 국왕과 스페인 왕실 구성원의 경호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스페인 육군의 「독립 부대」로서 위치하고 있다.[5] 규모는 연대 수준이다.[5] 왕립 근위대는 의식이나 행사에도 참여하지만, 일반적인 군대로서 기능하며, 확실한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일반 병사와 동일한 전투 훈련을 받는다.[5]3. 5. 프랑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위대를 강화하여 황제 근위대(La Garde Impériale)를 편성했다. 황제 근위대 중 최정예 보병 부대는 제1근위 척탄병 연대, 제1근위 엽병 연대 등이었다.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한 베테랑 병사들로 편성된 부대는 구참근위대(La Vieilles Gardes)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부대 명예 칭호이자 정예 부대의 증표였다.
한편, 궁정 경비뿐 아니라 전장에서 활동하는 황제의 경호도 황제 근위대의 일부인 근위 엽기병 연대나 엘리트 헌병 기병이 담당했다.
현재도 프랑스 국가헌병대(Gendarmerie)에 의해 프랑스 공화국 친위대(Garde Républicaine)가 편성되어 있다. 공화국 친위대 제1연대는 대통령의 경호를, 공화국 친위대 제2연대는 국회의사당과 정부 고위 관료 등의 경비·경호를 담당한다.
3. 6. 독일
독일 제국 시대에는 근위대(근위사단)가 베를린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제1근위사단(1. Garde-Division), 제2근위사단(2. Garde-Division), 근위기병사단(Garde-Kavallerie-Division)이 편성되어 있었다.
3. 7. 스웨덴
스웨덴에도 왕궁을 경호하는 근위병이 있다. 그 기원은 스웨덴이 독립한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에는 스웨덴 군주 근위대였던 스웨덴군 전투 부대 중 하나였다.18세기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는 근위 연대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1772년).
현재 스웨덴의 근위병은 일반적인 근위연대와 주로 왕실과 궁전을 경호하는 근위병이 있다.

3. 8.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호위병에는 여러 유형이 있었다.술탄의 주변에는 평소에 정예 병사들이 2명 1조로 시중들었는데,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의 "보디가드"와 같은 역할도 수행하여, 술탄에게 위험이 닥치면, 예를 들어 화살로 노려졌을 때 즉시 자신의 몸을 던져 목숨을 바쳐 술탄을 보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붉은색 옷과 붉은색 천이 드리운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표식이었다. (역사 드라마 『오스만 제국 외전〜사랑과 욕망의 하렘〜』에서는 제10대 황제 술레이만 1세와 그의 가족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아래 그림과 똑같은 빨간 옷을 입은 병사가 자주 등장한다.)
또한 '''보스탄치'''(Bostancıtr)라고 분류되는 호위병도 있었는데, 보스탄치는 주로 술탄의 궁전(예를 들어 톱카프 궁전 등)과 그 부지를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원래 "보스탄치"는 "정원사"라는 뜻의 말이었다. 보스탄치는 궁전의 경비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술탄의 배도 젓는 일을 하였다. 보스탄치의 지도자는 파샤 계급에 속했다(즉, 지도자는 이른바 "장관급"이었다). 보스탄치는 많은 시대에는 약 3000명이나 되었다. 징병 시에는 제국의 다른 호위 군단 예니체리(다음에 설명)와 연계하여 활동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보스탄치 1명이 보통 병사 수명분의 강력함을 가졌다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보스탄치의 수가 약 600명으로 줄었다.
또한 술탄 직속 군대 안에서는, 종래의 검 등의 무기를 사용하는 군대와는 별도로, 새롭게 화기를 장비한 최정예 상비 보병 군단인 예니체리가 창설되었다. 술탄 직속의 주력 군단으로서 원칙적으로 수도 이스탄불에 있는 병영에 거주하며 수도 이스탄불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결혼은 금지되었지만, 높은 봉급을 받고 면세 등의 특권도 누렸다. (예니체리는 강력한 부대였지만, 술탄의 호위나 수도 경비뿐만 아니라 수도 이외의 각 도시에도 배치되어 조직이 확대됨에 따라 반란도 일으키게 되었다.)

4. 현대적 의의
군주제가 폐지된 국가라도 역사적 경위 등에 따라 근위병이나 친위대 등의 명칭이 존속하는 경우가 있다. 단, 일본어에서는〈근위〉(고노에/近衛일본어)라 함은 세습 원수(元首)를 호위하는 자를 나타내며, 세습이 아닌 원수를 호위하는 자는 통상적으로는 근위병이라는 말에 해당하지 않는다.
5. 같이 보기
wikitext
- 가정사단
- 황실 근위대
- 근위대
- 대통령 경호대
- 컬러 가드
- 명예 경호대
- 국왕/여왕의 친위대
참조
[1]
서적
El Ejército de Alfonso XIII - Tropas de la Casa Real
[2]
서적
Pillars of Monarchy
[3]
서적
Pillars of Monarchy
[4]
웹사이트
경호의 대상이 세습제인지 아닌지 등과 같은 것에는 기본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5]
웹사이트
스페인 왕립 근위대
https://wikijp.org/w[...]
[6]
서적
미완의 메이지 유신
筑摩書房
[7]
서적
속 공포전기
이카로스 출판
[8]
웹사이트
홍보지 「두호사단」헤세이 30년 8월호
https://www.mod.go.j[...]
제1사단 사령부 총무과 홍보반
2018-08-00
[9]
뉴스
Marines did not volunteer by the thousands for sentry duty in Trump White House.
https://apnews.com/a[...]
AP News
[10]
웹사이트
전후의 육상자위대에 있어서 구육군내의 근위사단과 같은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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