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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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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엽병(Jäger)은 독일어 "사냥꾼"에서 유래된 군사 용어로, 18세기 독일에서 사냥꾼과 산림 거주자들을 모아 정찰, 수색, 선봉 임무를 수행하는 병과로 시작되었다. 이후 각국에서 경보병, 공수부대, 산악부대 등 다양한 부대에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현대에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여러 국가에서 경보병이나 특수 부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엽병은 각 국가의 군대에서 다양한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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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병

2. 단어의 유래 및 의미

엽병은 독일어 "예거(Jäger)"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사냥꾼"을 의미한다.[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은 대전차자주포를 판처예거(Panzerjägerde), 헌병을 펠트예거(Feldjägerde), 전투기요격기를 예거로 표기하기도 했다.[1]

3. 역사

엽병의 기원은 17세기스웨덴 육군의 "기마 엽병 중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대는 총기 사용에 능숙한 산림 노동자나 사냥터 감시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산병전이나 저격전 등 전열 보병과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엘리트 부대로 여겨졌다.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으로 화기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미니에식 라이플총이 보병 표준 장비가 된 크림 전쟁남북 전쟁 시기에 전열 보병의 전통적인 운용 방식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각국 군대는 전열 보병을 산병 중심으로 개편했고, 근대 보병의 야전 운용은 엽병을 비롯한 경보병의 계보를 잇게 되었다.

산병과 전열 보병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엽병은 독립 병과로서의 실체를 잃었지만, 그 명칭은 명예 칭호로 공수 부대나 산악 부대 등 경보병 부대명에 남아있다.

1744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저격병으로 활약한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인 변경병에게 감명받아 엽병을 창설했다.

독일어로 엽병은 "예거(Jäger)"라고 하며, 당시 독일은 라이플총 제조 기술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지역이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독일제 라이플총과 독일인 용병을 엽병이나 저격병으로 고용했다.

미국 독립 전쟁에 파견된 독일인 용병이 사용한 독일제(위)와, 주로 대륙군 민병에 의해 사용된 미국제(아래, 통칭:켄터키총)의 2종류의 라이플총


라이플총 제조 기술은 독일인 이민자들을 통해 신대륙에도 전해졌다. 미국 독립 전쟁에서 영국군에 고용된 독일인 용병(Hessian)과 대륙군에 합류한 독일인 이민자 민병대는 서로 엽병으로서 라이플총으로 전투를 벌였다.

라이플총은 머스킷총보다 명중률이 높았지만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엽병은 전열 보병과 달리 산개하여 개별 판단으로 사격하고 적 장교나 포병을 저격하며, 전열 보병의 돌격을 측면 지원했다. 또한 적 후방 교란, 산악전, 정찰 임무도 수행했다. 프로이센에는 "슈첸"(사수)이라 불리는 저격병도 있었지만, 엽병은 산병 전문 부대로 취급되었다. 프로이센군에서 엽병은 소규모였고, 1806년 전역에서 잠시 사라졌다.

독일 연방군은 프로이센 육군의 전통에 따라 경보병을 예거라고 부른다. 강하 엽병(공수병), 산악 엽병(산악병), 장갑척탄병(기계화 보병)에 부적합한 지형에서 운용되는 엽병(경보병)의 세 종류가 있다. 또한, 헌병도 펠트예거(야전 엽병)라고 불린다.

프랑스에서는 엽병을 "샤쇠르 아 피에(chasseurs à pied)"라고 부른다. 프랑스 엽병은 프로이센군의 예거에 대항하여 1740년에 창설되었지만, 초기에는 전열보병 연대나 경보병 대대 각 중대의 호칭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에 병종 호칭으로 일반화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은 엽병과 선발보병을 활용한 산병 전술로 유럽 대륙을 정복했다. 프랑스군 엽병은 소총 대신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활강식 머스킷을 장비했다.

포르투갈에는 "카사도르(caçadores)"라고 불리는 경보병이 있었으며, 나폴레옹 전쟁반도 전쟁 당시 스페인 게릴라와 포르투갈 민병대와 함께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다.

18세기 오스트리아는 "Frei-Corps"(프라이코어)라는 의용군 엽병을 사용했지만, 오스트리아군 장교들은 산병전을 경시하여 수가 적었다. 19세기에는 티롤 지방에 4개의 엽병 연대 "카이저예거(황제 엽병)"가 설치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엽병 부대로 1918년 제정 붕괴까지 존속했다.

러시아는 산병전을 중시하여 많은 엽병 연대를 창설했다. 러시아 엽병은 프랑스군처럼 소총 대신 일반 머스킷총을 사용했다. 일부 저격병과 엘리트 부대인 카라비니에만 소총을 장비했다. 이 경보병 부대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주요 적이었다.

스웨덴군에는 산악 엽병(fjälljägare), 해안 엽병(kustjägare), 강하 엽병(fallskärmsjägare), 공정 엽병(luftburna jägare) 등 다양한 엽병 부대가 있다. 돌프 룬드그렌은 해안 엽병 출신으로 유명하다. 공군의 비행장 엽병(flygbasjägare)은 비행장 주변 정찰과 강하한 비행사 구출 임무를 수행하며, 엽견은 중요한 도구이다. 엽병 부대 군인은 종종 장교로 영입된다.

미국에서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독립파 민병이 엽병, 저격병으로 활약하여 "''One shot One kill''"이라는 전통이 군에 강하게 남아있으며, 보병총 명중률에 대한 요구가 높다. 또한, 일반 민병의 무장 권리를 미국 헌법 수정 제2조에서 보장하고 있다.

3. 1. 18세기

18세기 중엽 독일에서 사냥꾼과 산림 거주자들을 모아 만든 병과가 예거이다. 대다수는 중산층이었고, 귀족 출신도 일부 있었다. 이들은 정찰, 수색, 대규모 부대의 선봉 등의 임무를 맡았다. 예거는 숙련된 소총수는 아니었지만, 정교한 사격술을 보유했고, 기습전에 능했다.[3] 장교들을 중심으로 적을 공격했으며, 참호를 제작하는 공병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4] 예거는 히르슈폔거(Hirschfängerru, 사슴잡이), 사브르, 언월도 등을 휴대했다.

18세기 전반, 독일 각국에서 왕실이나 귀족 소유 영지의 사냥 관리인, 사냥꾼, 산림 관리인을 모집하여 소총병, 산병 부대를 전문적으로 편성하기 시작했다.[5]

19세기 초, 시민 신분이었던 ''예거''는 일반 보병이 사용하던 머스킷 대신 소총을 사용했다. 초기 장총은 장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사거리와 정확도가 더 뛰어났다. ''예거''는 주로 정찰, 산병 또는 더 무거운 병력의 엄호에 사용되었다.[6]

프로이센, 헤센,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등 많은 국가들이 7년 전쟁 전후로 ''예거'' 부대를 창설했다. 초기에는 특정 작전에만 편성되었다가 해산되었지만,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과의 국경 경비를 위해 ''예거'' 부대를 영구적으로 유지했다.[7] 폐하의 근위 예거 연대는 1917년까지 존속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 ''예거'' 군단은 1740년 11월 창설된 기마 부대에서 시작되어 두 개 소대로 확장되었다. 이들은 전쟁 시 안내원과 정찰병으로 활동했으며, 탈영병 체포와 밀수품 압수 임무도 수행하는 유용한 국경 경비대로 활약했다. 1744년에는 보병 ''예거''가 합류하여 독립 부대로 활동하다 1784년 정규 연대로 통합되었다.[8] 근접 전투를 위해 ''예거''는 곧은 날의 사냥 단검(''히르슈펭거''), 짧은 사브르, 팔카타를 휴대했다.

영국군의 "레인저"는 17세기 영국령 북아메리카에서 기동성이 뛰어난 보병 및 기마 보병 부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18세기 후반 독일계 헤센군이 영국군 소속으로 북아메리카에서 복무하면서 ''예거''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3. 2. 나폴레옹 시대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엽병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 시기 엽병은 민병대의 성격보다는 나폴레옹이 점령한 독일 지역에서 저항을 목적으로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용병의 성격을 띠었다. 초기에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비로 장비를 마련하거나 기부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공동으로 마련했다. 엽병은 프랑스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으며, 특히 일선 장교들을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발미 전투 이후 유럽 전역에서 경보병 전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프로이센 왕국의 정규 보병이 프랑스 저격수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규 보병에서 병사를 차출하여 산병으로 싸우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독일어권 국가들이 '예거(Jäger)'를 채택했다. 이론적으로 '예거'는 2인 1조로 활동했으며, 밀집대형 보병으로부터 100~200야드 이내에 머물렀다. 그러나 전투가 격렬해지면 이러한 지침이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다. '예거'는 엄격하게 훈련받는 정규 보병과는 달리,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주도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활기차고 대담한 병사들이 '예거'로 선발되었다.

특히 프로이센은 초기 나폴레옹 시대에 경보병 전술을 발전시켰다.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가 주도한 군대 재편 이후 '예거' 군단이 강화되었다.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뤼베크 전투에서 패배한 프로이센군은 프랑스 혁명군의 예를 따라 국가 군대가 되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외국 용병은 제거되었고, 체벌은 드물어졌으며('예거' 부대에는 폐지), 승진은 실력주의에 따라 이루어졌다. 나폴레옹의 중앙 유럽 침공과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 부르주아 출신의 새로운 자원병들이 조직되었다. 프로이센에서 이 '예거'는 애국적인 자원병이었으며, 자신의 비용으로 또는 기부를 통해 무기와 군복 비용을 부담했고, 종종 클럽과 연맹을 조직했다. 초기 산병 전술을 채택한 요르크는 프로이센의 경보병 감찰관이 되어 틸지트 조약 이후 평화로운 시기에 새로운 '예거' 부대의 증가와 개선을 감독했다. 프로이센 '예거' 중 가장 유명한 부대는 뤼초프 자유군단의 자원병이었다.

프로이센군은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에서 보조 부대로서 경험을 쌓았으며, '예거'는 종종 전략적 수준에서 사용되었다. 요르크가 러시아 제국과 타우로겐 협정을 협상한 후, 그들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병사들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직후, 각 군의 예거들은 나폴레옹 군대에 맞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며, 프로이센 예거는 워털루 전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그루시 군단을 와브르 전투에서 저지했다.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은 군사적 사상자, 특히 장교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이는 능력주의적 장교단으로의 전환과 함께 계급 내에서 많은 승진을 이끌었다. 나폴레옹 전쟁 말기에 게르만 국가의 군대에서 하급 장교의 상당수는 전직 예거 병사들이었다.

3. 3. 1차 세계대전 이전

20세기 초, 예거는 제정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스웨덴, 노르웨이 군대에서 복무했다. 그중 독일 예거 연대가 가장 유명했는데, 암녹색 외투와 샤코(shakos)를 착용했다. 독일 예거 연대는 제국 근위대, 13개 열의 예거 대대, 프러시안, 맥켈렌부르크, 작센 부대 등으로 구성되었다.[7]

왕립 바이에른 예거 대대 제2 아샤펜부르크. 1910년경 오버예거, 야전 행군 복장


독일 제국군의 평시 프로이센 육군에는 근위 예거 대대 1개(근위 예거 대대)와 일반 ''예거'' 대대 12개가 있었다. 이 중 ''대공국 메클렌부르크-슈베린 제14 예거 대대''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출신이었고, ''베스트팔리셰 예거 대대 제7''은 샤움부르크-리페 공국에서 창설되었다. 나머지 10개는 프로이센 영토 출신이었다. 근위 소총 대대는 ''예거''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예거'' 편성이었으며,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 ''샤쇠르'' 대대의 기원을 가지고 ''예거'' 대대의 샤코와 녹색 튜닉을 착용했다.[7]

작센 왕국 육군은 2개의 ''예거'' 대대(Kgl. Sächsisches 1. Jäger-Bataillon Nr. 12, Kgl. Sächsisches 2. Jäger-Bataillon Nr. 13)를 추가했다. 작센 ''예거''는 프로이센보다 더 어두운 녹색 튜닉, 검은색 면, 샤코 옆에 검은색 물소 털 깃털을 부착하는 등 복장상 특징이 있었다. 왕립 바이에른 육군은 2개의 ''예거'' 대대(Kgl. Bayerisches 1. Jäger-Bataillon, Kgl. Bayerisches 2. Jäger-Bataillon)를 제공했으며, 이들은 녹색 면을 가진 바이에른 보병의 밝은 파란색을 착용했다.[8]

3. 4.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은 다양한 경보병부대에 엽병(Jäger)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조직했다. 예를 들어 남부 유럽의 험한 지형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경보병 부대의 사단, 산악엽병(게비르크스예거de), 공수부대(팔시름예거), 대전차부대, 대전차병기에는 PanzerJager라는 이름을 붙였다.

4. 각국의 엽병

1744년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7년 전쟁에서 저격병으로 활약한 오스트리아의 크로아티아인 변경병에게 감명을 받아 엽병을 창설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여러 국가에서 엽병 부대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 독일: 독일어로 엽병은 "예거(Jäger)"라고 불린다. 16세기 발명된 라이플총 제조 기술을 가진 마이스터들이 있었고, 이 기술은 길드를 통해 보호받았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독일제 라이플총과 독일인 용병을 고용했다.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영국군에 고용된 독일인 용병(Hessian)과 대륙군에 가담한 독일계 민병이 엽병으로 싸웠다. 독일 연방군은 프로이센 육군의 전통에 따라 경보병을 예거라고 부르며, 강하 엽병, 산악 엽병, 장갑척탄병 등 다양한 엽병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헌병도 펠트예거(Feldjäger)로 불린다.
  • 프랑스: 프랑스어로 엽병은 "샤쇠르 아 피에(chasseurs à pied)"라고 불리며, 이는 도보·보병을 의미한다. 프로이센군의 예거에 대항하여 1740년에 창설되었으나, 초기에는 전열보병 연대 또는 경보병 대대의 각 중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부터 병종의 명칭으로 일반화되었다. 현대 프랑스에서도 산악 부대 병사를 알파인 엽병(Chasseurs alpins), 공수 부대 병사를 공수 엽병(chasseurs parachutistes) 등으로 부른다.
  • 오스트리아: 18세기에는 "Frei-Corps"(프라이코어)라고 불리는 여러 병과 혼성 의용군의 엽병을 사용했다.[2] 19세기에는 티롤 지방에 4개의 엽병 연대 "카이저예거(황제 엽병)"가 설치되어 1918년 제정 붕괴 때까지 존속했다.[2]
  • 러시아: 산병전이 중시되어 많은 엽병 연대가 창설되었다. 러시아 엽병은 프랑스군과 마찬가지로 소총이 아닌 일반 머스킷총을 사용했다.[3] 일부 저격병과 엘리트 부대인 카라비니에들만이 소총을 장비했다.[3]
  • 스웨덴: 스웨덴에서 "예가레"(jägare)는 특수 부대나 경보병과 같은 병력을 의미한다. 팔스크름스예가레(공수 강습대), 쿠스예가레(해안 레인저), 육군 레인저 대대 소속 레인저, 생명 기병 연대 소속 공수 레인저, flygbasjägarna(공군기지 레인저), 근위대 소속 시가전 담당 헌병 부대 등 다양한 엽병 부대가 존재한다.
  • 미국: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독립파에 참가한 민병이 엽병·저격병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One shot One kill"이라는 전통이 군 내에 강하게 남아있으며, 보병총의 명중 정확도에 대한 요구치가 높다.
  • 기타 국가: 포르투갈에서는 "카사도르"(caçadores)라고 불리는 경보병이 반도 전쟁 당시 스페인의 게릴라와 포르투갈 민병과 함께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활약했다.[1]

4. 1. 독일

1744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가 7년 전쟁에서 저격병으로 활약한 오스트리아의 크로아티아인 변경병(Grenzers)에게 감명을 받아 창설한 것이 시초이다.

엽병은 독일어로 Jäger라고 쓰고 "예거"라고 읽는다. 당시 독일은 16세기에 발명된 라이플총 (에도 시대 후기 일본에서는 란어로 야겔총이라고 불렸다)의 제조 기술을 계승하는 마이스터들이 공방을 차리는 몇 안 되는 지역이었으며, 그 제조 기법은 길드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유럽 제국들이 독일제 라이플총과 그 사용에 능숙한 독일인 용병을, 자군의 엽병·저격병으로 고용했다.

라이플총 제조 기술은 독일인 이민을 통해 신대륙에도 전해졌다.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영국군에 고용된 독일인 용병(Hessian)과 대륙군에 가담한 독일인 이민들의 민병이, 서로 엽병으로서 라이플총으로 싸우게 되었다.

라이플총은 전열 보병이 사용하는 머스킷총 (게베어총)에 비해 명중 정확도는 훨씬 높지만 재장전에 시간이 걸렸다. 그 때문에 전열 보병이 대열을 짜서 전진하여 목표에 대해 일제 사격을 반복하고, 총검에 의한 백병전으로 결착을 내는 전술을 취한 것에 비해, 엽병은 산개하여 개개의 판단으로 사격을 행하고 적의 장교나 포병을 저격하여 전열 보병의 돌격을 측면 지원하는 전술로 운용되었다.

엽병은 전열 보병의 측면 지원 외에도 적군 후방 교란·산악전·저격·정찰을 임무로 했다. 당시 프로이센에는 "슈첸"(단수형은 슈체, 사수 또는 총병을 의미한다)라고 불리는 저격병도 동시에 존재했지만, 이것이 산병 임무 외에 밀집 전투에도 참여한 것에 대해, 엽병은 어디까지나 산병 전문 부대로 취급되었다. 프로이센군에서 엽병은 수가 적었고, 1806년의 전역에서 일단 소멸했다.

독일 연방군에서는 프로이센 육군의 전통을 따라 경보병을 예거라고 부른다. 강하 엽병 (파르실름예거, 공수병), 산악 엽병 (게비르크스예거, 산악병), 장갑척탄병 (판처그레나디어, 기계화 보병)에 부적합한 지형에서의 운용을 중시한 엽병(예거, 경보병)의 3종류를 보유한다 (예: 독일 특수 작전 사단 제31공중 기동 여단 제311강하 엽병 대대(Fallschirmjägerbataillon 311), 독일 제23산악 엽병 여단(Gebirgsjägerbrigade 23)). 그 외, 헌병도 펠트예거 (Feldjäger, 직역하면 "야전 엽병")라고 호칭된다. 독일어로 헌병을 나타내는 단어는 Militärpolizei (군사 경찰)이나 Feldgendarmerie (야전 헌병)이지만, 연방군의 병과명으로는 Militärpolizei를 거쳐 Feldjäger가 채용되었다.

4. 2. 프랑스

프랑스어로는 "샤쇠르 아 피에"(chasseurs à pied)라고 불리며, 이는 도보·보병을 의미한다. 프랑스 엽병은 프로이센군의 예거에 대항하여 1740년에 창설되었으나, 초기에는 전열보병 연대 또는 경보병 대대의 각 중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가 병종의 명칭으로 일반화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부터였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은 엽병과 선발보병을 활용한 산병 전술을 능숙하게 구사하여 유럽 대륙을 정복했다. 프랑스군 엽병은 소총 대신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활강식 머스킷을 장비했다.

현대 프랑스에서도 산악 부대 병사를 알파인 엽병(Chasseurs alpins), 공수 부대 병사를 공수 엽병(chasseurs parachutistes) 등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프랑스 육군 제27 산악여단 소속의 제13 알파인 엽병 대대(13e bataillon de chasseurs alpins), 프랑스 육군 제11 공수여단 소속의 제1 엽병 공수 연대(1er régiment de chasseurs parachutistes) 등이 있다.

4. 3. 오스트리아

18세기 오스트리아에서는 "Frei-Corps"(프라이코어)라고 불리는 여러 병과 혼성 의용군의 엽병을 사용했다.[2] 하지만 오스트리아군 장교들은 산병전을 경시했기 때문에 이들은 정예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가 적었다.[2] 19세기가 되자 티롤 지방에 4개의 엽병 연대 "카이저예거(황제 엽병)"가 설치되었으며, 그 이후부터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유일한 엽병 부대로 1918년 제정 붕괴 때까지 존속했다.[2]

4. 4. 러시아

러시아에서는 산병전이 중시되었으며, 일찍부터 많은 엽병 연대(러시아에서는 엽병과 경보병은 동의어)가 창설되었다. 러시아 엽병은 프랑스군과 마찬가지로 소총이 아닌 일반 머스킷총을 사용했다.[3] 일부 저격병과 엘리트 부대인 카라비니에들만이 소총을 장비했다.[3] 이 충실한 경보병 부대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최대 적이 되었다.[3]

4. 5. 스웨덴

스웨덴에서 "예가레"(jägare)는 특수 부대나 경보병과 같은 병력을 의미한다. 현재 스웨덴군에는 다음과 같은 엽병 부대들이 존재한다.

  • fallskärmsjägare (직역: "공수 레인저"): 공수 강습대 소속이다.
  • kustjägare (직역: "해안 레인저"): 스웨덴 상륙군의 해군 특공대이다.
  • 육군 레인저 대대 소속 레인저
  • 생명 기병 연대 소속 공수 레인저 (fallskärmsjägare와 동일 연대)
  • flygbasjägarna (직역: "공군기지 레인저"): 스웨덴 공군의 외곽 경계 순찰대이다.
  • 근위대 소속 시가전 담당 헌병 부대


역사적으로 "예가레"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부대는 1834년 예므틀란드의 인구가 희박한 국경 지역에 주둔한 보병 및 기병 부대인 예므틀란드 헤스트예가르카르와 1853년의 예므틀란드 펠트예가르카르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육군 레인저 학교, 이후 라플란즈 예가르레기멘테가 키루나에 설립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당시 기병 연대는 주로 레인저 연대(K 3 및 K 4) 또는 전차 연대로 발전했다.

스웨덴군에는 산악 엽병(fjälljägare), 해안 엽병(kustjägare), 강하 엽병(fallskärmsjägare), 공정 엽병(luftburna jägare), 비행장 엽병(flygbasjägare) 등 다양한 엽병 부대가 존재한다. 산악 엽병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북부의 추운 환경에 익숙해져 엘리트 취급을 받는다. 해안 엽병은 스웨덴의 긴 해안에서 활약하며, 마찬가지로 긴 훈련을 거쳐 엘리트 부대로 여겨진다. 돌프 룬드그렌은 해안 엽병 출신으로 유명하다. 비행장 엽병은 공군의 비행장 주변 정찰과 강하한 비행사 구출 임무를 수행하며, 엽견은 이들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 엽병 부대 군인은 종종 장교로 영입된다.

4. 6. 미국

미국에서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독립파에 참가한 민병(그 대부분은 농민과 사냥꾼이었다)이 엽병·저격병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개별 병사의 저격 기술 연마를 요구하는 "One shot One kill"이라는 전통이 군 내에 강하게 남아있다. 보병총의 명중 정확도에 대한 요구치도 다른 유럽 각국 군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일반인인 민병이 무장할 권리를 "자유로운 국가의 안전에 필수적"으로 미국 헌법 수정 제2조에서 보장하고 있다.

4. 7. 기타 국가

포르투갈에서는 "카사도르"(caçadores)라고 불리는 경보병이 존재했으며, 나폴레옹 전쟁반도 전쟁 당시 스페인의 게릴라와 포르투갈 민병과 함께 침공하는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활약했다.[1]

18세기의 오스트리아에서는 "Frei-Corps"(프라이코어)라고 불리는 여러 병과 혼성 의용군의 엽병을 사용했지만, 오스트리아군 장교는 산병전을 경시했기 때문에 정예임에도 수가 적었다.[1] 19세기가 되자 티롤 지방에 4개의 엽병 연대 "카이저예거(황제 엽병)"가 설치되었으며, 그 이후부터는 동국의 유일한 엽병 부대로 1918년 제정 붕괴까지 존속했다.[1]

러시아에서는 산병전이 중시되었으며, 일찍부터 많은 엽병 연대(러시아에서는 엽병과 경보병은 동의어)가 창설되었다.[1] 러시아의 엽병은 프랑스군과 마찬가지로 소총이 아닌 일반 머스킷총을 사용했다.[1] 일부 저격병과 엘리트 부대인 카라비니에들만이 소총을 장비했다.[1] 이 충실한 경보병 부대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최대 적이 되었다.[1]

스웨덴군에는 산악 엽병(fjälljägare), 해안 엽병(kustjägare), 강하 엽병(fallskärmsjägare), 공정 엽병(luftburna jägare), 비행장 엽병(flygbasjägare)등 다양한 종류의 엽병이 존재한다.[1] 산악 엽병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북부의 추운 환경에 익숙해져 엘리트 취급을 받는다.[1] 스웨덴의 긴 해안에서 활약하는 해안 엽병은 이와 마찬가지로 긴 훈련을 거쳐 엘리트 부대로 여겨진다.[1] 돌프 룬드그렌은 해안 엽병 출신으로 유명하다.[1] 비행장 엽병은 공군의 비행장 주변의 정찰과 강하한 비행사를 구출하며, 엽견은 비행장 엽병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1] 엽병 부대의 군인이 종종 장교로 영입된다.[1]

미국에서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독립파에 참가한 민병 (그 대부분은 농민과 사냥꾼이었다)이 엽병·저격병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한 점 때문에, 개별 병사의 저격 기술 연마를 요구하는 "''One shot One kill''"이라는 전통이 군 내에 강하게 남아있으며, 보병총의 명중 정확도에 대한 요구치가 다른 유럽 각국 군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 또한, 일반인인 민병이 무장할 권리를 "자유로운 국가의 안전에 필수적"(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으로 미국 헌법 수정 제2조에서 보장하고 있다.[1]

5. 현대의 엽병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과 화기 발달로 인해 전열 보병이 개편되면서 엽병은 독립된 병과로서의 실체를 잃었다. 엔필드 소총과 같은 미니에식 라이플총이 보병의 표준 장비가 되면서, 전열 보병의 전통적인 운용 방식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국 군대는 산병 중심의 보병 운용으로 전환했고, 근대 보병은 엽병을 비롯한 경보병의 역할을 이어받게 되었다.[11]

엽병이라는 명칭은 명예 호칭으로 남아, 주로 공수 부대나 산악 부대 등 경보병 부대명에 사용되고 있다. 현대 독일 연방군, 오스트리아 연방군, 스웨덴군, 핀란드군 등에서 엽병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 '''독일 연방군:''' 독일 연방군에서 ''예거''(Jäger, 약칭 Jg)는 경보병, 공수부대, 산악부대 소속 병사들의 가장 낮은 병 계급이다. NATO OR1 등급으로, 미국 육군영국 육군의 이등병과 유사하다.[10] 독일 ''연방군''은 군사 경찰 부대에 ''야전 예거''(Feldjäger)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흑수리 훈장의 별 배지(''가르데르른'')가 있는 붉은 베레모를 착용한다. 현대 ''예거''형 보병 부대는 ''예거'', ''강하엽병'', ''산악 예거'' 등으로 구분된다.
  • '''오스트리아 연방군:''' 오스트리아 연방군에서 "예거"는 보병 부대를 지칭하는 공식 용어이다. 기계화 보병은 "전차척탄병"으로 불린다. 오스트리아 육군의 특수부대는 "야크코만도"라고 불린다.
  • '''스웨덴군:''' 스웨덴의 "예가레"(jägare)는 특수 부대나 경보병을 의미한다. 공수 강습대, 스웨덴 상륙군의 해군 특공대, 육군 레인저 대대 등이 있다.
  • '''핀란드군:''' 핀란드에서 ''예게리''/''예게레''(핀란드어/스웨덴어: "jäger")는 평시 보병 부대의 가장 낮은 계급(병)이다. 핀란드 육군과 뉘란드 여단(핀란드 해군 소속)의 해병대에서 사용된다. 핀란드 국경 경비대에서는 병 계급을 "라야예게리"("국경 예게르")라고 부른다.


덴마크, 리투아니아, 노르웨이, 네덜란드, 우크라이나 등에서도 엽병 부대가 존재한다.

  • '''덴마크:''' 현대 덴마크 육군에서 ''예거''는 특수 부대인 ''예거코르세트''(Jægerkorpset)를 지칭한다. 2019년에는 제13 경보병 대대가 슐레스비스케 포드레지먼트의 일환으로 창설되었다.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에서는 '''대(大) 비타우타스 예거(엽병) 대대'''(리투아니아어: Vytauto Didžiojo jėgerių batalionas)[12]가 리투아니아 특수 작전 사령부의 일부를 구성한다.
  • '''노르웨이:''' 노르웨이군에는 "예거"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부대가 있다. 해군 특수 작전 사령부(Marinejegerkommandoen), 특수 작전 사령부(Forsvarets Spesialkommando) 등이 있으며, Kystjegerkommandoen (해안 레인저), Fjernoppklaring (장거리 정찰), Artillerijeger (포병 레인저) 등도 예거 부대로 분류된다.
  • '''네덜란드:''' 나폴레옹 시대 이후 예거 대대는 정규 보병에 편입되었다. 1950년, 여러 보병 연대가 해산되면서 림뷔르흐주와 관련된 새로운 연대인 림뷔르흐세 예거가 창설되었다.[15]
  • '''우크라이나:''' 2022년 12월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군은 3개의 예거 여단을 보유하고 있다.[16]

참조

[1] 서적 Uniforms of the Electorate of Hesse-Kassel from the years 1835–1843
[2] 서적 The Evolution of Operational Art, 1740–1813 Routledge
[3] 서적 The Military Experience in the Age of Reason
[4] 문서 The Hessians" Mercenaries from Hessen-Kassel in the American Revolution Cambridge
[5] 서적 The Military Experience in the Age of Reason
[6] 서적 Frederick the Great's Army – Specialist Troops
[7] 서적 Jäger & Schützen – Dress & Distinctions 1910–14
[8] 서적 Jäger & Schützen – Dress & Distinctions 1910–14
[9] 서적 The German Cavalry from 1871 to 1914
[10] 문서 The abbreviation "OR" stands for ''"Other Ranks / fr: sous-officiers et militaires du rang / ru:другие ранги, кроме офицероф"''
[11] 웹사이트 Dienstgrade und Uniformen der Bundeswehr (Service Ranks and Uniforms of the German Federal Defence Forces) http://www.bundesweh[...] Bundeswehr
[12] 웹사이트 Vytauto Didžiojo jėgerių batalionas (VDJB) https://kariuomene.k[...] Lietuvos Respublikos Krašto 2017-06-06
[13] 웹사이트 Kystjegerkommandoen https://snl.no/Kystj[...] 2021-06-25
[14] 웹사이트 The Norwegian Special Forces https://www.forsvare[...]
[15] 웹사이트 Oprichting, afstamming en geschiedenis Regiment Limburgse Jagers http://www.limburgse[...] 2018-07-15
[16] 뉴스 The Ukrainian Army’s Jaeger Brigades Are Its Middleweight Forest Troops https://www.forbes.c[...] Forbes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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