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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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군은 16세기 초 구스타프 1세 바사에 의해 창설되어 17세기 스웨덴 제국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18세기 대북방 전쟁에서 패배한 후 국토 방위에 전념했으며, 제1, 2차 세계 대전 동안 중립을 유지했다. 냉전 기간에는 소련의 위협에 대비해 징병제를 유지하다가 2010년 폐지했으나, 2017년 지원병 부족으로 징병제를 재도입했다. 2024년 3월 7일에는 핀란드와 함께 NATO에 가입했다. 스웨덴군은 영토 보전, 국가 방어, 재난 지원, 국제 평화 유지 작전 참여를 주요 임무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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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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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스웨덴 국방군 |
원어 이름 | Försvarsmakten |
창설일 | 1521년 |
현재 형태 | 1975년 |
본부 | 스톡홀름 |
웹사이트 | 스웨덴 국방군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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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 |
구성군 | [[파일:Armén vapen bra.svg|20px]] 육군 [[파일:Marinen vapen bra.svg|20px]] 해군 [[파일:Amfibiekåren vapen.svg|20px]] 해병대 [[파일:Flygvapnet vapen bra.svg|20px]] 공군 [[파일:Hemvarnet vapen bra.svg|20px]] 향토방위대 |
지휘부 | |
최고 사령관 | 스웨덴 정부 (크리스테르손 내각) |
국방부 장관 | [[파일:Kommandotecken Försvarsministern.svg|size=25px]] 폴 욘손 |
최고 사령관 | [[파일:Kommandotecken Överbefälhavaren.svg|size=25px]] 미카엘 클라에손 (대장) |
병력 | |
징집 연령 | 18–47세 |
징병제 | 시행 |
병력 정보 연도 | 2017년 추정 |
가용 병력 | 3,020,782명 |
가용 여성 병력 | 2,760,451명 |
복무 가능 병력 | 1,980,592명 |
복무 가능 여성 병력 | 1,649,875명 |
연간 징집 가능 인원 | 58,937명 |
연간 징집 가능 여성 인원 | 56,225명 |
현역 병력 | 25,600명 (평시), 64,000명 (전시) |
예비군 | 34,000명 |
재정 | |
예산 | 120억 4천만 달러 (2024년) |
GDP 대비 국방비 비율 | 2.2% (2024년) |
산업 | |
국내 공급 업체 | BAE 시스템즈 AB 사브 보포스 다이내믹스 사브 코쿰스 사브 AB |
관련 정보 | |
역사 | 스웨덴의 군사사 |
계급 | 스웨덴군 계급 |
2. 역사
스웨덴군의 역사는 16세기 초, 구스타프 1세 바사에 의해 창설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로 스웨덴군은 스웨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창설 이후 수많은 분쟁에 참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스웨덴은 중립을 유지하며 대비 태세를 강화했지만, 전후 전간기에는 군대가 대폭 감축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스웨덴은 중립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재무장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징병을 통해 병력을 충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스웨덴은 소련의 침공에 대비하여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으나, 스웨덴 의회의 반대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으로 1972년 중단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을 주된 위협으로 간주하여 징병제를 유지하며 군사력을 유지했다. 냉전 종식 후에는 위협 감소로 군축과 함께 2010년 징병제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과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다시 부각되면서, 2017년 징병제가 재도입되었다. 현재의 징병제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된다.
2020년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이후, EU의 상호 방위 조항은 영국에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2022년 스웨덴과 영국은 상호 안보 협정을 체결하여 어느 한 국가가 공격받을 경우 지원을 재확약했다.[68][69]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웨덴은 핀란드와 함께 NATO 가입을 신청했고, 2024년 3월 7일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70]
스웨덴군은 콩고 위기 당시 유엔 콩고 작전 부대의 일원으로, 보스니아 전쟁 이후 SFOR에, 국제 안보 지원군(2002~2014)과 그 후속 작전인 결연한 지원 작전(2015~2021)에 참여하여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 국제 평화 유지 활동에도 참여해 왔다.
2. 1. 스웨덴 제국 시대 (17세기 ~ 18세기 초)
구스타프 1세 바사에 의해 스웨덴군이 창설된 17세기는 스웨덴 제국의 시대였으며, 스웨덴 제국군은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였다.[12] 스웨덴군은 이 시기에 군사 혁신을 선도하는 세력 중 하나였으며, 삼십년 전쟁, 제2차 북방 전쟁, 스카니아 전쟁, 대북방 전쟁 등 많은 전쟁에 참여했다.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스웨덴은 유럽에서 패권을 다투는 강국 중 하나로서 군사 기술을 선도하는 입장에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의 삼십년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군사 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다.
18세기 대북방 전쟁에서는 초반에는 우세했지만 최종적으로 러시아 제국 등에 패배하였고, 이후 스웨덴은 해외 진출을 포기하고 국토 방위에 전념하게 된다.
2. 2. 중립 정책과 양차 대전 (18세기 ~ 20세기 중반)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강화된 대비태세 기간 이후, 스웨덴군은 전간기에 심각한 감축을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스웨덴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재무장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남성들의 대규모 징병에 의존하여 병력을 확보했다.[12]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스웨덴은 소련의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고려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스웨덴 정부는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이는 스웨덴 국방연구소에서 민간 방위 연구라는 명목 하에 진행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지하 핵실험이 가능할 정도로 연구가 진척되었다. 그러나 당시 리크스다그(스웨덴 의회)는 핵무기 연구 개발을 금지하고, 연구는 핵 공격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만 수행되어야 한다고 공약했다. 개발을 계속할 선택지는 1966년에 포기되었고, 스웨덴은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다. 프로그램은 1972년에 최종적으로 종료되었다.[12]
냉전 기간 동안, 스웨덴에 대한 가장 큰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된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기 위해 전시 징병 제도가 유지되었다. 냉전의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인식된 위협을 줄였고, 군대는 축소되었으며, 징병은 2010년 폐지될 때까지 점점 더 적은 징집병을 받았다. [13]
2. 3. 냉전 시대와 중립 정책의 변화 (20세기 중반 ~ 20세기 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스웨덴은 소련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고려했다.[68]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스웨덴 정부는 스웨덴 국방연구소에서 민방위 연구라는 명목 하에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지하 핵실험이 가능할 정도로 연구가 진척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웨덴 의회는 핵무기 연구 개발을 금지하고, 연구는 핵 공격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만 수행되어야 한다고 약속했다. 개발 지속 여부는 1966년에 포기되었고, 스웨덴은 1968년에 핵확산방지조약에 서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1972년에 최종적으로 종료되었다.[68]냉전 동안, 전시 대량 징병제는 스웨덴에 가장 큰 군사적 위협으로 여겨졌던 소련에 대한 억제책으로 유지되었다. 냉전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2010년에 징병제가 비활성화될 때까지 징집병 수가 점차 감소하면서, 인지된 위협이 감소하고 군대가 축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68]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1994년 '평화를 위한 동반자 협정' 이후 NATO와 협력해 왔다. 스웨덴은 2014년 NATO 웨일스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분쟁 개입과 동시에 강화 기회 파트너 지위를 부여받은 5개 파트너 국가 중 하나였다.[68]
2. 4. 징병제 폐지와 재도입 (21세기 초)
냉전 종식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스웨덴에 인식된 위협 감소로 이어져 군대가 축소되었고, 2010년에는 징병제가 폐지되었다. 징병제는 점점 더 적은 수의 신병을 수용했다.[13]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과 2014년 우크라이나 사건은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과 의도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켜, 스웨덴 내에서 국방비 지출 증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복무할 자원봉사자 수가 부족해 징병제가 다시 도입되었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징병제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된다.[39]
2010년 징병제 폐지 이후, 2017년에 다시 활성화되었다. 2018년부터 여성과 남성 모두 동등한 조건으로 징집된다.[39] 징병제 재도입의 주요 원인은 자원병만으로는 군대를 유지하기에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39][40]
스웨덴 국방군은 현재 매년 5,000~6,000명의 징집병을 훈련시키고 있다.[41]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군은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42] 2022년 12월, 2035년 말까지 연간 징집병을 10,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43]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인의 79%가 어떤 형태로든 징집병을 지지하며, 이는 징집병의 수가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47%가 19세/20세의 대다수가 징집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44]
1995년 중반, 스웨덴 육군은 보편적 군사 훈련에 기초한 국가 복무 제도로 15개 기동 여단과 그 외에 동원 시간이 1~2일인 다양한 종류의 100개 대대(포병, 공병, 레인저, 방공, 수륙양용, 보안, 감시 등)로 구성되었다. 국가 복무가 선택 복무제로 대체되자, 군대 규모의 축소로 인해 점점 더 적은 수의 청년들이 징집되었다. 2010년까지 스웨덴 육군은 90일 이내에 동원할 수 있는 2개 대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2019년까지 자원봉사 제도가 완전히 시행되었을 때, 육군은 7개 기동 대대와 1주일의 준비태세를 갖춘 다양한 종류의 14개 대대로 구성되었다. 향토방위군은 22,000명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37] 2019년에 자원봉사대와 결합된 국가 복무 제도가 복원된 스웨덴군은 2025년까지 3개 여단을 기동 부대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38]
1995년 국민복무제도 | 2010년 선택적 복무제도 | 2019년 자원병 제도 | 2025년 선택적 복무제도/자원병 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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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여단 | 2개 대대 | 7개 대대 | 3개 여단 |
100개 대대 | 4개 중대 | 14개 대대 | ? |
1~2일 | 90일 | 7일 | ? |
2. 5. NATO 가입 (2024년)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1994년 평화를 위한 동반자 협정 이후 NATO와 협력해왔다. 스웨덴은 2014년 NATO의 웨일스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분쟁 개입과 동시에 강화 기회 파트너 지위를 부여받은 5개 파트너 국가 중 하나였다.[70]2022년 6월 29일, 스웨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에 따른 유럽의 안보 환경 변화를 고려하여 핀란드와 함께 공식적으로 NATO 가입을 신청했다.[70] 그 뒤 NATO 회원국들의 비준 과정을 거쳐 2024년 3월 7일에 NATO에 정식 가입했다.
3. 스웨덴군의 독트린
스웨덴군은 다음 네 가지 주요 임무를 가지고 있다.[17]
1. 스웨덴의 영토 보전을 확보한다.
2. 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국가를 방어한다.
3. (예: 홍수) 재난 발생 시 민간 사회를 지원한다.
4. 국제 평화 유지 작전에 병력을 파병한다.
스웨덴은 인접 지역에서 전쟁 발생 시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8] 그러나 스웨덴은 여러 외국과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스웨덴은 유럽 연합 회원국으로서 EU 전투단의 선도국 역할을 하고 있으며,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 및 대서양-유럽 파트너십 이사회 회원 자격을 통해 NATO와 긴밀한 협력 관계(합동 훈련 포함)를 유지하고 있다.[19][20] 2008년에는 합동 작전 능력 향상 등을 위해 북유럽 국가 간에 파트너십이 시작되었고, 이는 북유럽 방위 협력(NORDEFCO)의 창설로 이어졌다.[21][22] 확대된 군사 협력에 대한 대응으로, 2009년 방위 제안은 북유럽 국가 또는 유럽 연합 회원국이 공격받는 경우 스웨덴이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23]
최근 정치적 결정들은 국제 작전 참여 능력을 강조해 왔으며, 이는 훈련과 장비 조달의 주요 단기 목표가 되었다.[24][25][26] 그러나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영토 방위가 다시 강조되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부대는 1년 이내에 동원될 수 없었다. 2009년 국방장관은 향후 모든 군이 1주일 이내에 완전 동원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27]
2013년 스웨덴 국경 근처에서 러시아의 공중 훈련이 널리 보도된 후, 스웨덴 국민의 6%만이 스웨덴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확신을 표명했다.[28]
4. 조직
1974년 정부 형태 조약 제정 이전에는 스웨덴 국왕이 법적으로 최고사령관(스웨덴어: högsta befälhavare)이었다. 그 이후로 칼 16세 구스타프는 여전히 장군과 제독의 명예 계급을 갖고 있지만, 이 역할은 순전히 의례적인 것이다.[30]
스웨덴 국방군은 스웨덴 육군, 스웨덴 공군, 스웨덴 해군 세 개의 군으로 구성되며, 예비군인 스웨덴 향토 방위대가 추가된다. 1994년 이후 처음 세 군은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단일 통합 정부 기관으로 조직되었지만, 향토 방위대는 최고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한다. 그러나 각 군은 서로 다른 군복, 계급 및 기타 군 특유의 전통을 사용하여 각각의 독립성을 유지한다.
스웨덴 국방군 최고사령관(스웨덴어: Överbefälhavaren, ÖB)은 스웨덴 국방군의 기관장이자 현역 최고위직 장교인 네 별 계급 장군 또는 해군 장교이다. 최고사령관은 일반적으로 스웨덴 국방부 장관을 통해 스웨덴 정부에 보고하며, 정부는 다시 리크스다그에 보고한다. 현 최고사령관은 마이클 클라에손 장군이다.[29]



스웨덴 국방군 본부는 스웨덴 국방군의 최고 사령부이다.[31] 최고 사령관이 이끌고 있으며, 민간인 사무총장이 그의 부사령관으로서, 각기 다른 책임을 맡은 기능별 국장들이 있다 (예: 군사정보 및 안보국). 전체적으로 국방군 본부에는 민간인 직원을 포함하여 약 2,100명의 직원이 있다.[32][33]
4. 1. 주요 기지
예타 군수 연대Göta trängregemente|예타 트렝레게멘테sv, Göta Logistic Regiment|예타 군수 연대영어
3 헬리콥터
3. Helikopterflottiljen|헬리콥테르플로틸리엔sv
1 헬리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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