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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만도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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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타노만도코로는 문자 그대로 "북쪽의 정무를 보는 곳"을 의미하며, 섭정이나 관백의 저택 내에서 북쪽에 위치한 건물, 즉 정실의 거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에는 선지를 통해 수여되는 칭호가 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인 고다이인에게 이 칭호가 사용되면서 고유 명사화되었다. 섭정 관백의 어머니에게 수여되는 칭호는 오키타노만도코로(오만도코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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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만도코로
기본 정보
고다이인 초상
고다이인 초상
다른 이름기타노만도코로 (北政所)
오네 (おね)
네네 (ねね)
고다이인 (高台院)
존칭기타노만도코로 (北政所)
개인 정보
아사히 (浅井)
이름오네 (於寧)
별칭네네 (ねね)
출생에이로쿠 11년 (1568년) 경
사망간에이 원년 9월 6일 (1624년 10월 18일)
배우자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버지아자이 히사마사
어머니오이치노카타
형제자매아자이 나가마사
도요토미 히데나가
아사히히메
친척도요토미 히데요리 (양자)
도쿠가와 히데타다 (조카사위)
고우히메 (조카)
센히메 (조카손녀)
신분만도코로
생애
시대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주요 사건오사카 전투 이후 도요토미 가문과 갈등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협력
묘소교토 고다이지
기타
종교불교
능/묘고다이인 영묘

2. 어원 및 변천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는 섭정이나 관백의 정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인 고다이인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기타노만도코로는 선지를 받아 수여되는 칭호가 되었고, 섭정이나 관백의 정실만이 그 대상이었다.

태합은 원래 직을 물려준 전임 관백을 뜻하는 보통 명사였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에는 주로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기타노만도코로도 섭정 관백의 정실을 칭하는 말이었지만, 고다이인 이후에는 주로 고다이인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정착되었다.[3]

2. 1. 어원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는 문자 그대로 "북쪽의 정무를 보는 곳"을 의미한다. 이는 섭정이나 관백의 저택 내에서 북쪽에 위치한 건물, 즉 정실의 거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평안 시대 귀족은 신덴즈쿠리라고 불리는, 수많은 가옥을 복도로 연결한 내리와 같은 구조의 저택에 거주했다. 정전인 신덴의 북쪽에는 "북쪽 대(北対)"라고 하는 사적인 거주동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주인의 정실인 '''기타노카타'''(北方)・'''기타노카타'''(北の方)가 가사 전반을 결재했다.

당시 귀족은 기본적으로 데릴사위였기 때문에 정실이 실권을 가지고 지위가 높았으며, 그들의 저택은 원래 정실의 친가가 소유하는 것이었다.

2. 2. 초기 의미

헤이안 시대 귀족은 신덴즈쿠리라는, 수많은 가옥을 복도로 연결한 내리와 같은 구조의 저택에 거주했다. 정전인 신덴은 공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신덴 북쪽에는 '북쪽 대(北対)'라고 하는 사적인 거주동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주인의 정실인 '''기타노카타'''(北方)・'''기타노카타'''(北の方)가 가사 전반을 결재했다.[1]

당시 귀족은 기본적으로 데릴사위였기 때문에 정실이 이처럼 실권을 가지고 지위가 높았다. 그들의 저택은 원래 정실의 친가가 소유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1]

2. 3. 칭호화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기타노만도코로는 선지를 받아 수여되는 칭호가 되었고, 그 대상은 섭정 또는 관백정실에만 한정되었다.

2. 4. 고유명사화

원래 "그 직을 자제에게 양위한 전 관백"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였던 "태합"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에는 주로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전까지는 "섭정 관백의 정실" 칭호였던 "기타노만도코로"도 고다이인 이후에는 주로 고다이인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3]

3. 역사적 사례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오섭가가 성립되면서 여러 명의 기타노만도코로가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헤이케 이야기에는 다이라노 키요모리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후지와라노 모토자네의 정실이 된 모리코와 고노에 모토미치의 정실이 된 칸시는 각각 "로쿠조 섭정전의 북정소", "후겐지전의 북정소"라고 불렸다. 후지와라노 다카후사의 정실이 된 키요모리의 다섯째 딸은 고시라카와 원의 총신이었던 다카후사가 섭정이나 관백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섭관가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기타노만도코로 칭호를 받는 인물이 줄어들었다. 산조니시 사네타카(三条西実隆)의 딸 호시는 구조 히사쓰네(九条尚経)와 혼인하고 '기타가타(北方)'가 되었지만, 히사쓰네가 관백에 임명된 후에도 오랫동안 기타노만도코로 칭호를 받지 못하고 3년 반이 지나서야 칭호가 수여되었다.[1]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도요토미 히데요시섭가 출신이 아닌 인물로는 처음으로 관백이 되었고, 자신의 정실(부인)인 고다이인에게 종삼위를 수여하고[2] '기타노만도코로'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 칭호는 원래 섭정 관백의 정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으나, 고다이인 이후에는 주로 그녀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3] 한편, 섭정 관백의 어머니에게는 '오키타노만도코로'(大北の政所)라는 칭호가 주어졌는데, 줄여서 '오만도코로(大政所)'라고 불렀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어머니 나카에게 이 칭호를 내렸다.

3. 1. 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섭관가가 분열되어 오섭가가 성립되었고, 섭정과 관백의 교체가 빈번해지면서 여러 명의 기타노만도코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쓰여진 『헤이케 이야기』 제1권에는 다이라노 키요모리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로쿠조 섭정전의 북정소"는 섭정 관백 후지와라노 모토자네의 정실이 된 넷째 딸 모리코를, "후겐지전의 북정소"는 섭정 관백 고노에 모토미치의 정실이 된 여섯째 딸 칸시를 가리킨다. "레이젠 대납언 다카후사 경의 북방"은 권대납언 후지와라노 다카후사의 정실이 된 다섯째 딸을 가리키는데, 고시라카와 원의 총신이었던 다카후사는 섭정이나 관백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시치조 수리 대부 노부타카 경과 함께 하셨다"는 수리 대부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의 아내가 된 맏딸을 가리키는 것으로, 노부타카에게는 정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북방이 아니었고, "함께하다"(시집가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3. 2. 무로마치 시대

무로마치 시대에는 섭관가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기타노만도코로 칭호를 받는 인물이 줄어들었다. 산조니시 사네타카(三条西実隆)의 딸 호시의 사례는 기타노만도코로 칭호 수여가 지연되는 경우를 보여준다.[1] 호시는 구조 히사쓰네(九条尚経)와 혼인하고 '기타가타(北方)'가 되었지만, 히사쓰네가 관백에 임명된 후에도 오랫동안 기타노만도코로 칭호를 받지 못했다. 3년 반이 지나서야 칭호가 수여되었다.[1]

3. 3.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섭가 출신이 아닌 인물로는 처음으로 관백이 되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정실(부인)인 고다이인에게 종삼위를 수여하고[2], '기타노만도코로'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 칭호는 원래 섭정 관백의 정실에게 주어지는 것이었으나, 고다이인 이후에는 주로 그녀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3]

한편, 섭정 관백의 어머니에게는 '오키타노만도코로'(大北の政所)라는 칭호가 주어졌는데, 줄여서 '오만도코로(大政所)'라고 불렀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어머니 나카에게 이 칭호를 내려, 이후에는 주로 나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참조

[1] 서적 戦国期公家社会と荘園経済 続群書類従完成会 2005
[2] 문서 後陽成天皇의 聚楽第行幸
[3] 문서 江戸時代의 史書, 高台院의 北政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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