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안현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길안현주는 조선 세종의 손녀이자 영응대군과 대방부부인 송씨의 딸로, 1457년에 태어나 1519년에 사망했다. 이름은 억천이며, 1463년 현주에 봉해졌다. 1469년 구수영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으며, 자녀들은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으나 연산군 시대의 정쟁과 사화에 휘말리는 불운을 겪었다. 특히 후손들이 중종 대에 왕실과 인척 관계를 형성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57년 출생 - 헨리 7세
헨리 7세는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후 튜더 왕조를 창시하고, 요크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며 왕권을 강화하고 잉글랜드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한 인물이다. - 1457년 출생 - 성종 (조선)
성종은 조선의 제9대 국왕으로,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 아들이며 예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친정 후 홍문관 설치, 경국대전 반포 등 조선의 통치 체제 확립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나, 폐비 윤씨 사사 사건과 서얼 차별 강화는 비판받기도 한다. - 1519년 사망 - 호조 소운
호조 소운은 무로마치 막부의 중신으로 이세 종수이나 이세 신쿠로 등으로 불렸으며, 이마가와 가문의 가독 다툼에 개입하고 이즈, 사가미 등지를 정복하며 고호조씨의 기반을 마련한 센고쿠 시대 초기의 중요 인물이다. - 1519년 사망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다재다능한 천재로, 미술, 과학,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와 같은 걸작 회화로 유명하다. - 조선 세종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 조선 세종 - 월인천강지곡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이자 훈민정음 창제 후 초기 한글 활자본으로, 석가모니의 공덕과 교화를 담고 있으며 국보 제320호로 지정된 조선 전기 국어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 길안현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길안현주 |
| 휘 | 억천(億千) |
| 부친 | 영응대군 |
| 모친 | 대방부부인 송씨 |
| 작위 | 조선의 왕족 |
| 출생일 | 1457년 7월 |
| 사망일 | 1519년 10월 (62세) |
| 배우자 | 구수영 |
| 자녀 | 5남 5녀 |
2. 생애
1457년(세조 3년)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영응대군과 대방부부인 송씨의 딸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억천(億千)이다. 1463년(세조 9년) 대군의 딸에게 주어지는 '현주(縣主)' 작호를 받아 '''길안현주'''(吉安縣主)에 봉해졌다.[1]
1467년(세조 13년) 구치홍의 아들 구수영과 혼인이 결정되었으나, 아버지 영응대군의 죽음으로 혼례가 연기되었다.[2] 1469년(성종 1년) 구수영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길안현주의 자녀들은 연산군 때의 정쟁과 사화에 휘말리는 불운을 겪었다.
길안현주의 후손들은 왕실의 인척이 되었는데, 증손자인 구사안과 손자인 구한은 각각 중종의 딸인 효순공주, 숙정옹주와 혼인하였다. 구사안의 동생인 구사맹의 딸 계운궁 구씨는 선조의 5남 정원군(원종)과 혼인하여 인조를 낳았으며, 후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다.
1519년(중종 14년) 10월 사망하였으며, 12월 양주 팔곡산에 안장되었다.[1]
2. 1. 출생과 초기 생애
1457년(세조 3년) 7월,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영응대군과 대방부부인 송씨의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억천'''(億千)이며, 영응대군과 대방부부인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생존하였다. 영응대군과 세조의 우애가 돈독하여, 어려서부터 세조가 총애하였으며 많은 물품을 하사하였다.[1]1463년(세조 9년), 대군의 딸에게 주어지는 '현주(縣主)'의 작호를 받아 '''길안현주'''에 봉해졌다. 조선 초기에는 대군의 적녀에게도 현주의 작호를 주었으나, 《경국대전》 반포 이후 왕세자의 서녀에게만 부여하였다.
2. 2. 혼인
1467년(세조 13년) 1월, 구치홍의 아들 구수영과의 혼인이 결정되었으나, 며칠 뒤 아버지 영응대군이 병으로 사망하여 혼례가 연기되었다.[2] 1469년(성종 1년) 구수영과 혼인하였으며 슬하에 5남 5녀를 두었다.2. 3. 자녀들의 혼인과 수난
1469년(성종 1년), 구수영과 혼인하였으며 슬하에 5남 5녀를 두었다.길안현주의 자녀들은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는데, 연산군 때에 정쟁과 사화에 휘말리는 불운을 겪었다.
첫째 사위인 임희재는 1504년(연산군 10년) 연산군을 비방한 죄로 능지처참 되었으며[3], 셋째 사위인 안양군은 갑자사화에 휘말려 사사되고 가산은 모두 적몰되었다.[4] 넷째 아들인 구문경은 연산군의 딸 휘신공주와 혼인하였는데, 중종반정 이후 휘신공주가 폐서인 되자, 구문경 또한 부마의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구문경의 아버지 구수영의 청으로, 구문경과 휘신공주는 이혼하였는데,[5] 이후 중종은 유순의 건의에 따라 구문경과 휘신공주를 재결합시켰다.[6]
2. 4. 후손
1469년(성종 1년) 구수영(具壽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길안현주의 자녀들은 왕실과 중첩된 혼인을 맺었으나, 연산군 때의 정쟁과 사화에 휘말리는 불운을 겪었다.첫째 사위인 임희재는 1504년(연산군 10년) 연산군을 비방한 죄로 능지처참 되었으며[3], 셋째 사위인 안양군은 갑자사화에 휘말려 사사되고 가산은 모두 적몰되었다.[4] 넷째 아들인 구문경은 연산군의 딸 휘신공주와 혼인하였는데, 중종반정 이후 휘신공주가 폐서인 되자 구문경 또한 부마의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구문경의 아버지 구수영의 청으로 구문경과 휘신공주는 이혼하였는데[5], 이후 중종은 유순의 건의에 따라 구문경과 휘신공주를 재결합시켰다.[6]
길안현주의 후손들 또한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증손자인 구사안과 손자인 구한은 각각 중종의 딸인 효순공주, 숙정옹주와 혼인하였다. 구사안의 동생인 구사맹의 딸 계운궁 구씨는 선조의 5남 정원군(원종)과 혼인하여 인조를 낳았으며, 후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다.
2. 5. 사망
1519년(중종 14년) 10월 사망하였다. 12월 양주 팔곡산에 안장하였다.[1]3. 가족 관계
| 배우자 | 구수영(1456~1523) |
|---|---|
| 장남 | 구숭경 (중종비 장경왕후의 고모부) |
| 며느리(장남) | 파평 윤씨 (윤보의 딸)[7] |
| 차남 | 구희경(1488~1541) |
| 며느리(차남) | 거창 신씨 (신수겸의 딸, 연산군비 폐비 신씨의 조카) |
| 증손자 | 구사안 (능원위) - 중종의 3녀 효순공주와 혼인 |
| 증손자 | 구사맹 (능안부원군) - 능양군의 외조부 |
| 삼남 | 구승경 |
| 며느리(삼남) | 안동 권씨 (권자균의 딸) |
| 사남 | 구문경 (능양위, 폐위됨) |
| 며느리(사남) | 휘신공주 (폐위됨, 1491~ ? ) - 연산군의 장녀 |
| 오남 | 구신경(1494~1562) |
| 며느리(오남) | 고성 이씨 (이균의 딸) |
| 손자 | 구한 (능창위) - 중종의 8녀 숙정옹주와 혼인 |
| 장녀 | 구순복[8] |
| 사위(장녀) | 임희재(1472~1504) (임사홍의 아들) |
| 차녀 | 심광문의 처 |
| 삼녀 | 면천군부인 구씨(1480~1556) |
| 사위(삼녀) | 안양군 이항(1480~1505) - 성종의 셋째 아들 |
| 사녀 | 최상의 처 |
| 오녀 | 이희현의 처 |
장남 구숭경과 삼남 구승경, 장녀 구순복과 차녀 심광문의 아내는 어머니 길안현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3. 1. 직계 조상
- 조부 : 세종(1397~1450)
- 조모 : 소헌왕후 심씨(1395~1446)
- 아버지 : 영응대군(1434~1467)
- 외조부 : 송복원(1390~1454) - 단종 비 정순왕후의 조부
- 외조모 : 순천 김씨
- 어머니 : 대방부부인 송씨(?~1507) - 단종 비 정순왕후의 고모
3. 2. 배우자와 자녀
| 배우자 | 구수영(1456~1523) |
|---|---|
| 장남 | 구숭경 (중종비 장경왕후의 고모부) |
| 며느리(장남) | 파평 윤씨 - 윤보의 딸[7] |
| 차남 | 구희경(1488~1541) |
| 며느리(차남) | 거창 신씨 - 신수겸의 딸. 연산군비 폐비 신씨의 조카 |
| 증손자 | 구사안 (능원위) - 중종의 3녀 효순공주와 혼인 |
| 증손자 | 구사맹 (능안부원군) - 능양군의 외조부 |
| 삼남 | 구승경 |
| 며느리(삼남) | 안동 권씨 - 권자균의 딸 |
| 사남 | 구문경 (능양위, 폐위됨) |
| 며느리(사남) | 휘신공주 (폐위됨, 1491~ ? ) - 연산군의 장녀 |
| 오남 | 구신경(1494~1562) |
| 며느리(오남) | 고성 이씨 - 이균의 딸 |
| 손자 | 구한 (능창위) - 중종의 8녀 숙정옹주와 혼인 |
| 장녀 | 구순복[8] |
| 사위(장녀) | 임희재(1472~1504) - 임사홍의 아들 |
| 차녀 | 심광문의 처 |
| 삼녀 | 면천군부인 구씨(1480~1556) |
| 사위(삼녀) | 안양군 이항(1480~1505) - 성종의 셋째 아들 |
| 사녀 | 최상의 처 |
| 오녀 | 이희현의 처 |
장남 구숭경과 삼남 구승경, 장녀 구순복과 차녀인 심광문의 아내는 어머니 길안현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참조
[1]
문서
길안현주 이씨 묘지명
[2]
실록
영응대군 이염의 사위를 정하고 입시한 여러 신하들에게 종친의 도리에 대해 말하다
[3]
일기
승지 권균 등에게 명하여 임희재의 능지 처사 등을 감독하게 하다
[4]
일기
의금부 낭청을 보내어 이항 · 이봉을 사사하게 하다
[5]
실록
능천 부원군 구수영이 폐왕과 절혼하기를 원하니 윤허하다
[6]
실록
유순 등에 따라 구문경 부부를 결합시키고 문정부정 상과 노종도 결합시키다
[7]
문서
장경왕후의 조부
[8]
일기
공주의 뜻을 보아 구순복을 특별히 놓아주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