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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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신국은 선조 때 생원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다.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을 지냈고, 권율의 종사관과 어사를 역임했다. 북인이 소북과 대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소북의 우두머리로서 대북을 공격하다가 벼슬을 잃었으나, 후에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정묘호란 때 금나라 사신과의 화의 조약에 관여했으며,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37년 소현 세자가 인질로 선양으로 갈 때 그를 모시고 갔다.
김신국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으며 활약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선조 때 생원이 되었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다. 이후 관직에 진출하여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북인이 소북과 대북으로 갈라지자, 소북의 우두머리로 대북을 공격하다가 벼슬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그 후 다시 벼슬에 올랐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금의 사신과 화의 조약에 대해 결정을 보았다. 병자호란 때는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37년 소현 세자가 인질로 선양으로 갈 때 그를 모셨다.
2. 생애
2. 1. 초기 생애와 임진왜란
선조 때 생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아우가 적병에게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영남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다. 이듬해 문과에 합격하여 검열을 지낸 뒤, 권율의 종사관이 되었고 어사로 관서지방을 순시하기도 하였다.
2. 2. 관직 생활과 붕당 정치
선조 때 생원이 되었고 임진왜란 때 아우가 적병에게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영남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다.[4] 이듬해 문과에 합격하여 검열을 지낸 뒤, 권율의 종사관이 되었고 어사로 관서지방을 순시하기도 하였다.[4] 당시 북인이 소북과 대북으로 갈라지자, 소북의 우두머리로 대북을 공격하다가 벼슬을 빼앗겼다.[4] 그 후 다시 벼슬에 올라 호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금의 사신과 화의 조약에 대해 결정을 보았다.[4] 병자호란 때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용납되지 않았다.[4] 1637년 소현 세자가 인질로 선양으로 갈 때 모시고 갔다.[4]
2. 3.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정묘호란 때 금의 사신과 화의 조약에 대해 결정을 보았던 김신국은, 병자호란 당시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37년 소현 세자가 선양에 인질로 갈 때 그를 모시고 함께 갔다.[2]
2. 4. 소현세자 인질 동행
1637년, 소현세자가 선양에 인질로 갈 때 김신국이 모시고 갔다.[1]
참조
[1]
문서
선원록 참고
[2]
문서
익양군 (1488년)의 3녀
[3]
문서
정혜옹주 (1584년)와 윤신지의 차남
[4]
문서
사위 신여정(申汝挺)의 남동생 신여식(申汝拭)의 친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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