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
1. 개요
북인은 조선 시대 성리학의 한 분파로, 조식의 학문적 정통성을 강조하며, 동인에서 정여립 모반 사건 이후 남인과 분리되어 형성되었다. 선조 때 정권을 장악했으며, 임진왜란 시기에는 주전론을 펼쳤다. 광해군 시기에는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되었으며, 인조반정으로 몰락했다. 대북은 광해군을 지지하고 소북은 영창대군을 지지하며 대립했다. 북인은 대동법을 추진하는 등 실용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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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설립 -
대영 제국
대영 제국은 1583년부터 1997년까지 존속하며 전 세계에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역사상 가장 큰 식민 제국 중 하나였으나, 탈식민화 운동과 강대국들의 부상으로 쇠퇴하여 1997년 홍콩 반환을 기점으로 역사의 막을 내렸다. -
16세기 설립 -
라말라
라말라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위치한 도시로, 아랍계 기독교인에 의해 건설되어 오스만 제국, 영국군 점령, 요르단 및 이스라엘 점령을 거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 행정 수도 역할을 하며 주요 금융 및 상업 중심지이다. -
1910년 폐지 -
대한제국
대한제국은 고종이 황제 즉위와 함께 선포한 황제 국가로, 광무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지향했으나, 일본의 영향력 강화로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멸망했으며,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
1910년 폐지 -
한성부
한성부는 조선의 수도를 관할하며 행정, 사법, 재정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정2품인 한성판윤이 최고 책임자였으며, 1895년 지방 행정 구역으로 개편되었다가 1910년 경성부로 개칭되었다. -
조선의 붕당 -
소론
소론은 조선 후기 서인에서 분파된 정치 세력으로, 윤증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남인에 대한 온건한 입장과 왕위 계승 문제에 있어 노론과 대립했으며, 강화학파를 형성하는 등 독자적인 학풍을 이루었다. -
조선의 붕당 -
경신환국
2. 성리학적 정체성
북인은 성리학의 정통이 이언적, 이황이 아니라 조식에게 있다는 회퇴변척론(晦退辨斥論)을 폈다. 이는 1611년에 정치적, 사회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3. 구성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의 역모 사건을 계기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파되었다. 정철의 건저의 사건을 전후하여 정여립의 사형을 주장한 서인과의 대결에서 남인은 상대적으로 온건론을 내세웠고, 강경파는 북인을 형성했다. 중심 인물은 정인홍, 정여립, 이발(李潑), 이산해 등이다. 이들은 유성룡이 이끄는 남인과 대립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조식을 따르는 선비들이었다. 반면 남인에는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는 유학자들이 참가했다.
이발과 이산해의 집이 각각 서울 북악밑과 한강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북인이라 불렀으며 이들과 뜻을 달리했던 우성전이 남산 밑에 살았기에 남인이라 불렀다.
4. 대북파와 소북파
1602년 정인홍이 임진왜란 발발 책임과 타협적 정책을 빌미로 유성룡을 탄핵하면서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북인은 고위 관료 중심의 대북과 신진 세력인 소북으로 나뉘었다. 선조 말기에는 소북이, 광해군 대에는 대북이 집권했으며, 소북은 영창대군을, 대북은 광해군을 지지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동인의 전통은 서인의 보복을 피해 살아남은 남인과 일부 소북이 잇게 되었다.
4.1. 대북 (정치)
1606년 인목왕후가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하여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이 치열해졌다. 1608년 선조가 세자 문제를 결정 짓지 못하고 사망하여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광해군을 적극 지지한 대북이 집권당으로 부상했다. 이이첨, 허균, 홍여순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북은 다시 육북(肉北)·골북(骨北)·중북(中北)으로 나뉘었고, 소북은 청소북(淸小北)·탁소북(濁小北)으로 분열했다.
1623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북인은 몰락했고, 특히 광해군 재위 당시 집권당이었던 대북은 거의 전멸하였다.
4.2. 소북 (정치)
1602년 임진왜란 발발의 책임과 타협적 정책을 빌미로 정인홍의 탄핵을 받은 유성룡이 밀려나면서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북인은 고위 관료 중심의 대북과 신진 세력인 소북으로 나뉘었는데, 1606년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자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젊은 관료 중심의 소북이 대북과 대립했다.
4.2.1. 청소북
소북은 소수 세력으로 남아 영조의 탕평책 때 일시적으로 복권되었지만(탁소북, 청소북), 그 외에는 정치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4.2.2. 탁소북
영조의 탕평책 때 일시적으로 복권된 소북의 분파이다.
5. 몰락
1606년,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자 북인 내에서 광해군을 지지하는 원로 관료(노장) 중심의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젊은 관료(소장) 중심의 소북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그러나 1608년, 선조가 세자를 결정하기 전에 사망하자, 대북의 공작으로 인해 어린 영창대군보다 실적과 나이 모두 흠잡을 데 없는 광해군을 왕위에 앉히는 현실적인 선택이 이루어져 광해군이 즉위했다.
광해군 즉위 후 대북은 정권을 장악하고,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해 영창대군과 이능창(정원군의 셋째 아들이자 인조의 친동생)을 살해하고, 다른 당파(서인, 남인, 소북)를 축출하여 20년 동안 조정을 지배했다. 그러나 대북은 다시 골북, 육북, 중북 3개의 파벌로 나뉘어 당쟁이 끊이지 않았다.
1623년 3월 13일, 능양군(인조)을 옹호하는 서인파를 중심으로 한 궁정 쿠데타(인조반정)가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추방되고, 서인이 정권을 잡았다.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파 수십 명이 처형되고 수백 명이 유배되어 대북파는 정치 무대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후 남인과 서인 사이에서 정쟁이 벌어졌다. 한편, 소북은 소수 세력으로 남아 영조의 탕평 정치 때 일시적으로 복권되었지만 (탁소북, 청소북), 그 외에는 정치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6. 특징
북인은 임진왜란 때 화의론을 이끌었던 남인에 맞서 강력한 주전론을 펼쳤고, 실천과 실무를 중시하여 만물의 근원이나 성리학적 질서를 밝히는 데 강점을 갖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민간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전후 복구를 하자는 취지로 북인들이 추진했던 대동법은 조선 최대의 세제 개혁으로 불린다.
7.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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