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로켓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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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 로켓 사건은 1995년 1월, 노르웨이에서 발사된 과학 로켓을 러시아의 조기 경보 레이더가 핵미사일로 오인하면서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었던 사건이다. 로켓 발사 전에 30여 개국에 사전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외무부의 실수로 인해 정보가 군에 전달되지 않았고, 로켓의 궤적이 잠수함 발사 미사일과 유사하게 감지되면서 러시아는 핵무기 발사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는 조기 경보 시스템과 정보 전달 체계를 재평가하고 개선했으며, 핵무기 보유국 간의 정보 공유와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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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로켓 사건 | |
---|---|
지도 정보 | |
사건 개요 | |
발생일 | 1995년 1월 25일 |
참가국 |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 |
원인 | 노르웨이의 안도야 로켓 발사대에서 블랙 브란트 XII 로켓 발사 |
결과 | 러시아 핵 억지력이 약 8분 동안 고도의 경계 태세에 돌입 |
지속 시간 | 0시간 24분 0초 |
로켓 정보 | |
![]() | |
추가 정보 | |
발사 장소 | 안도야 로켓 발사대 |
로켓 종류 | 블랙 브란트 XII |
최대 비행 거리 | 1453km |
관련 사건 | 2009년 노르웨이 나선형 이상 현상 |
2. 역사적 배경
노르웨이 로켓 사건은 냉전 종식 후 거의 4년 만에 발생한 몇 분간의 핵 긴장 상황이었다. 1995년 사건은 신속하게 발생했으며, 특히 러시아군 내 많은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미국과 NATO를 매우 의심하던 시기에 일어났다. 반면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는 훨씬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되었다.[4]
2. 1. 냉전 종식과 핵 긴장 완화
냉전 종식 약 4년 후, 포스트 냉전 시대의 핵 위기의 한 장면이었다. 1995년의 이 사건은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던 가장 심각한 사고 중 하나로 간주되지만, 일본에서는 전주에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관련 뉴스로 매일매일 뉴스가 가득했던 탓에,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나 1983년 소련에서 핵 공격 경계 시스템의 오작동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다.[4] 당시 많은 러시아인, 특히 군 관계자들은 여전히 미국과 NATO에 강한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4]2. 2. 냉전 시대 핵무기 오경보 사건
냉전 종식 약 4년 후 발생한 포스트 냉전 시대의 핵 위기 상황 중 하나였다. 1995년 사건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나 1983년 소련 핵 공격 경계 시스템 오작동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던 가장 심각한 사고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4] 당시 일본에서는 전주에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관련 뉴스로 매일매일 뉴스가 가득했기 때문에 1995년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특히, 당시 많은 러시아인, 그 중에서도 군 관계자들은 여전히 미국과 NATO에 강한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3. 사건 전개
노르웨이와 미국 과학자들은 로켓 발사 이전에 러시아를 포함한 30여 개국에 미리 통보했지만, 이 정보는 러시아군 레이더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블랙 브랜트 XII 로켓은 무르만스크주의 러시아군 조기경보레이다에 탐지되었고, 레이더 운영자들은 로켓의 속도와 비행 패턴이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흡사하다고 판단했다.[2]
3. 1. 블랙 브랜트 XII 로켓 발사
1995년 1월 25일, 노르웨이와 미국의 과학자들은 오로라 연구를 위해 노르웨이 안도야 로켓 발사장에서 블랙 브랜트 XII 관측 로켓을 발사했다. 과학자들은 로켓 발사 이전에 러시아를 포함한 30여개국에 미리 통보를 했었지만, 이 정보는 러시아군 레이다에는 전달되지 않았다.블랙 브랜트 XII 로켓은 무르만스크주에 위치한 러시아군 조기경보레이다에 탐지되었고, 레이다 운영자들은 로켓의 속도와 비행 패턴이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흡사하다고 판단했다.[2] 올레네고르스크의 조기경보 레이더 기지에서도 로켓이 탐지되었는데,[3] 레이더 운영자들은 로켓이 미국 해군의 잠수함 발사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은 로켓의 궤적을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공격의 전조로 잘못 해석했다.[3]
단 분리 후, 레이더에 포착된 로켓 발사는 다탄두 재진입 차량(MRV)과 유사했다. 러시아 관제센터는 노르웨이 과학 로켓이 러시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채지 못했다. 탄도를 추적하는 데 10분 중 8분이 걸렸는데, 이는 임박한 공격에 대한 핵 반응 발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었다. 바렌츠 해에서 발사된 잠수함 발사 트라이던트 미사일은 10분 안에 러시아 본토에 도달할 수 있었다.[3]
3. 2. 러시아 조기경보 레이더의 오인
노르웨이와 미국 과학자들은 로켓 발사 전에 러시아를 포함한 30여 개국에 사전 통보를 했지만, 이 정보는 러시아군 레이더 기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1][5] 러시아 외무부는 발사 계획을 통보받았으나, 외무부의 실수로 인해 러시아 총참모부나 러시아군의 어떤 부서에도 이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4]올레네고르스크의 조기경보 레이더는 블랙 브랜트 XII 로켓을 탐지했고,[3] 레이더 운영자들은 로켓의 속도와 비행 궤적이 미국 해군의 잠수함 발사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2] 러시아군은 초기 단계에서 로켓의 궤적을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공격의 전조로 잘못 해석했다.[3]
3. 3. 핵무기 발사 직전 상황
무르만스크주 올레네고르스크의 조기경보 레이더 기지에 블랙 브랜트 XII 로켓이 탐지되었다.[3] 레이더 운영자들은 로켓의 속도와 비행 패턴이 미국 해군의 잠수함 발사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2] 이 때문에 러시아군은 초기에 로켓의 궤적을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공격의 전조로 잘못 해석했다.[3]러시아군은 레이더를 무력화하는 전자기파(EMP) 무기를 탑재한 트라이던트 미사일이 바다에서 발사되어 기습 공격을 개시, 자국의 레이더망을 교란시키는 상황을 우려했다. 고고도 핵폭발에서 나오는 감마선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레이더망을 혼란에 빠뜨리고 전자 장비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7]
로켓의 단 분리 이후, 레이더에 포착된 로켓 발사 형태는 MIRV(다탄두 탄도미사일)와 유사했다. 러시아 사령부는 로켓이 러시아 방향이 아닌 해상으로 향한다는 것을 즉시 인지하지 못했다. 로켓 궤적 추적은 8~10분간 지속되었으며, 이 시간 동안 긴급한 공격에 대한 핵 반격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바렌츠해에서 발사되는 잠수함 발사 트라이던트 미사일은 10분 이내에 러시아 본토에 도달할 수 있었다.[7]
4. 러시아의 대응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핵 가방을 활성화했다. 이 핵가방은 군통수권자의 핵 발사 권한을 부여하는 데 사용되며, 모든 사령부에 이 명령들이 자동으로 전달될 수 있다. 하지만 핵경보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발령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주말 뉴스에 보도되었다.[12]
로켓은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 영공으로 진입하지 않았으며, 과학 로켓은 계획대로 발사된 지 24분 만에 스피츠베르겐섬 인근에 낙하했다.
4. 1.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핵 가방 활성화
러시아 군 지휘부는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발령하고, 이 사실을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옐친 대통령은 핵 공격 승인에 사용되는 핵 가방(체게트)을 활성화하고, 핵 발사 코드를 작동시켰다.[12][4][8] 이는 핵무기 보유국 정상이 핵 공격 준비를 위해 핵 가방을 활성화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다.[4][8]명령을 받은 러시아 해군의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들은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으며 핵 보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1][4]
4. 2. 러시아 잠수함 부대의 전투 준비 태세 돌입
명령을 받은 러시아 해군의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들은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으며 핵보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12][4][1]4. 3. 위기 해소
러시아 관측 요원들은 로켓이 러시아 영공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로켓은 발사 후 24분 만에 계획대로 스발바르 제도 근처에 떨어졌다.[3][4][7][8] 이 사건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핵 경보가 발령되지 않았으며, 일주일 후 주말 뉴스에 보도되었다.[12][4]5. 사건의 결과 및 영향
이 사건은 하마터면 핵전쟁을 야기할 뻔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재평가하고 재설계했으며, 핵전쟁 관련 정보 공유 및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강화했다.
5. 1. 러시아 조기경보 시스템 재평가
이 사건으로 러시아는 조기경보 레이다를 재평가하고 재설계하게 되었다.[4] 또한, 통보 및 공개 절차도 재평가되어 재설계되었다.[1]5. 2. 국제적 협력 강화
이 사건은 핵전쟁 관련 정보 공유 및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제적인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러시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조기경보레이다를 재평가하고 재설계에 들어갔다. 노르웨이와 미국의 과학자들이 과학 장비를 탑재한 로켓을 고고도로 발사할 계획을 러시아를 포함한 30개국에 미리 알렸지만, 이 정보가 레이더 운용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5] 이 사건 이후, 통보 및 공개 절차가 다시 검토되고 재설계되었다.[5]1999년에 동일 기종 로켓 발사가 실시되었을 때는, 일반적인 통보와는 별도로 미국 측이 독자적인 경로를 통해 러시아 군 당국에 발사 관련 정보를 제공하여 주지시켰다. 그 결과, 1995년처럼 러시아군이 관측 로켓을 핵미사일로 오인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9]
6. 평가와 교훈
노르웨이 로켓 사건은 냉전이 끝난 후에도 핵무기의 위험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나 1983년 소련 핵 오경보 사건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95년의 이 사건은 핵무기 보유국 간의 오해와 불신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4]
당시 러시아군 내 많은 이들은 여전히 미국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를 의심하고 있었다.[4] 러시아는 로켓 발사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전달 과정의 문제로 인해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발령되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핵 가방을 활성화하기까지 했다.[1][4] 러시아 잠수함들은 핵 보복을 준비하기도 했다.[1]
다행히 로켓이 러시아 영공을 벗어나면서 위협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3][4] 이 사건은 핵무기 보유국 간의 정보 공유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르웨이와 미국의 과학자들은 로켓 발사 계획을 러시아를 포함한 30개국에 통보했으나,[1] 이 정보는 러시아 레이더 기술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1] 이는 러시아 외무부의 실수 때문이었다.[4]
이후 러시아는 조기경보 레이다 시스템을 재평가하고 재설계했으며,[4] 핵 위기 상황에서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 절차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1]
6. 1. 우발적 핵전쟁 위험성
노르웨이 로켓 사건은 냉전 종식 약 4년 후 발생한 핵 긴장 상황이었다.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나 1983년 소련 핵 오경보 사건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95년 사건은 가장 심각한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사건은 신속하게 발생했으며, 특히 러시아군 내 많은 이들이 여전히 미국과 NATO를 매우 의심하던 시기에 일어났다.[4]이 사건으로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까지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전달되었고, 옐친 대통령은 핵 발사를 승인하는 데 사용되는 "핵 가방"이 자동으로 활성화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옐친은 처음으로 자신의 "핵 발사 코드"를 작동시켰다.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경고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발표되지 않았으며, 일주일 후 뉴스에 보도되었다.[4]
경계령이 발령됨에 따라 러시아 잠수함 함장들은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가 핵 보복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1]
곧이어 러시아 관측자들은 로켓이 러시아 영공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로켓은 발사 후 24분 만에 계획대로 스발바르 근처에 떨어졌다.[3][4]
노르웨이 로켓 사건은 핵무기 보유국이 핵 가방을 활성화하여 공격을 준비한 유일한 사례이다.[4] 이 사건은 냉전 종식 약 4년 후 발생한 포스트 냉전 시대의 핵 위기의 한 장면이었다. 당시 많은 러시아인, 특히 군 관계자들은 여전히 미국과 NATO에 강한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6. 2. 정보 공유 및 소통의 중요성
이 사건은 핵무기 보유국 간의 정보 공유 및 소통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노르웨이와 미국의 과학자들은 로켓 발사 계획을 러시아를 포함한 30개국에 통보했지만,[1] 이 정보는 러시아 레이더 기술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1] 러시아 외무부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발사 계획이 통보되었으나, 외무부의 실수로 인해 러시아 총참모부나 군의 어떤 부서에도 전달되지 않았다.[4] 한 러시아 장군은 언론에 노르웨이의 미사일 발사 메시지 중 "기상 로켓 발사를 선원들에게 알릴 것"이라는 문구를 러시아 관료들이 너무 직역했다고 말했다. "외무부 관리들은 그 요청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선원들은 그 사건을 알았습니다. 군대는 몰랐죠."[3]이러한 오해는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 러시아는 조기경보 레이다를 재평가 및 재설계에 들어갔으며,[4] 군 지휘 계통을 통해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까지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전달되었고, 옐친 대통령은 핵 발사를 승인하는 데 사용되는 "핵 가방"을 자동으로 활성화했다.[4] 러시아 잠수함 함장들은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가 핵 보복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1]
이 사건은 핵 위기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 공유와 투명한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사건 이후, 통보 및 공개 절차가 재평가되고 재설계되었다.[1] 1999년에 실시된 동일 기종 로켓 발사에서는, 일반적인 통보와는 별도로 미국 측이 독자적인 경로를 통해 러시아 군 당국에 발사 관련 정보를 제공하여 주지시켰기 때문에, 1995년처럼 러시아군이 관측 로켓을 핵미사일로 오인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9]
참조
[1]
웹사이트
This Week in EUCOM History: January 23–29, 1995
http://www.eucom.mil[...]
United States European Command
2012-01-23
[2]
웹사이트
False Alarms in the Nuclear Age
https://www.pbs.org/[...]
Public Broadcasting System
2001-11-06
[3]
서적
War scare: Russia and America on the nuclear brink
Praeger
[4]
웹사이트
Verden har aldri vært nærmere atomkrig
http://www.nrk.no/ny[...]
2012-02-2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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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年、米露は危うく核戦争をしかけた
https://jp.rbth.com/[...]
ロシア・ビヨンド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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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eek in EUCOM History
http://www.eucom.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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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e Alarms in the Nuclear Age
http://www.pbs.org/w[...]
Public Broadcasting System
2001-11-06
[12]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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