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마타 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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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마타 유이치는 일본의 배우이자 민담 해설가였다. 1947년 도요코 영화에 입사하여 배우로 데뷔했으며, 1950년 영화 《일본 전몰 학생의 수기 키케, 와다츠미의 소리》에서 학도 장교 역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신토호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며, 《투쟁의 광장》, 《스파이와 정조》 등 여러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신토호 도산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악역을 주로 맡았고, 민담 해설가로도 활동하며, 1984년에는 예술제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6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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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 유이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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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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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미카와 마사하루 |
출생일 | 1924년 7월 19일 |
출생지 | 일본 오카야마현 유바라촌 |
사망일 | 2006년 4월 29일 |
사망지 | 일본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49년-2001년 |
최종 소속 | 프리랜스 |
수상 | |
수상 내역 | 예술제상 대중 연예 부문 우수상 (1984년) |
2. 경력
1941년 도쿄부립 제6중학교를 졸업하고, 니혼 대학 전문부 영화과를 중퇴했다.[1] NHK 오사카 방송 극단 연구생을 거쳐 1947년 도요코 영화에 입사하며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영화 『일본 전몰 학생의 수기 키케, 와다츠미의 소리』 출연으로 주목받았다.
1953년에는 신토호로 이적하여 단바 데쓰로, 아마치 시게루 등과 함께 1950년대 신토호 영화에서 활약했다.
신토호 도산 후에는 프리랜서가 되어 주로 악역 배우로 활동하는 한편, 민담 이야기꾼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4년에는 민담 공연으로 제39회 예술제 우수상을 수상했다.[2]
2006년 4월 29일, 심부전으로 인해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 자택에서 향년 81세로 사망했다.
2. 1. 배우 활동
1947년 도요코 영화에 입사하여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1] 1950년 영화 『일본 전몰 학생의 수기 키케, 와다츠미의 소리』에서 성격이 온화하고 청렴한 학도 장교 역을 연기하며 주목받았다.1953년 신토호로 이적하여 단바 데쓰로, 아마치 시게루 등과 함께 활동하며 1950년대 신토호 영화에 다수 출연했다. 1959년에는 영화 『투쟁의 광장』, 1960년에는 『스파이와 정조』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같은 해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의 컬트 영화 『지옥』에도 출연했다.
신토호가 도산한 후에는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며 주로 악역을 연기했다. 신토호 시절 함께 활동했던 단바 테츠로, 아마치 시게루, 우츠이 켄, 스가와라 분타 등 다른 배우들이 영화사 도산 후에도 다른 영화 제작사나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서 성공을 이어간 것과 비교하면, 누마타는 상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단바 테츠로는 누마타가 훌륭한 배우였음에도 술버릇 문제로 인해 경력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3]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특수 촬영 작품이나 시대극 등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자주 맡아 "괴물 배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만년에는 호러 영화 『링』(1998년)에서 야마무라 사다코의 아버지인 야마무라 케이 역을 맡았고, 『슈라 유키히메』(2001년)에도 출연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1970년대 이후 신토호 영화는 텔레비전 지상파 방송이나 비디오 출시가 드물었으나, 2010년대 이후 케이블 텔레비전 전문 채널 등에서 신토호 시절 작품들이 재조명되면서 그의 젊은 시절 연기를 다시 접할 기회가 생겼다.